1월 평가서 + 2월 계획서

날이 다시 추워졌다. 지난주 본가에 다녀올 때만 해도 날이 많이 풀려서 상대적으로 얇은 외투를 걸치고 기차에 탔는데, 도착 후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비가 오는 데다 바람 때문인지 쌀쌀하게 느껴지긴 했다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손이 곱아서 자판을 두드리기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추위는 핑계일 뿐.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비단 추위 때문이겠는가. 더군다나 너는 추위를 좀처럼 타지 않는다고 떠벌이면서 주변의 감탄을 사는 일을 즐기지 않았느냐. 더구나 그 감탄에 "보기와는 다르다"는 말이 덧붙여지기라도 하면 한층 들뜨곤 하지 않았느냐. 추위는 핑계, 가공하고 가련한 핑계일 뿐이다. 이전에도 코로나면 코로나, 더위면 더위, 세상 어느 하나 핑계가 되지 않을 것이 없었고 그래서 핑계는 마를 일이 없었다.  그렇게 온갖 핑계의 변주와 향연 속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세월만 보낸 것이 벌써 얼마더냐. 그러는 사이에 방학도 다 지나가고 있다. 그토록 기다리던 방학이 말이다.

1월을 시작하면서는 큰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기필코 논문을 마무리해야 했다. 1월 중으로 적어도 한 편, 가능하면 두 편...이라지만 사실 한 편이라도 끝내면 다행인 줄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고, 어쩌면 그조차도 끝내지 못할 거라는 예감까지도 진작부터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결과 또한 예감대로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한 절반 정도는 끝낸(그보다는 끝냈다고 생각한) 면역 사유와 행성 사유 논문. 에스포지토와 라투르 두 인물의 사상과 둘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려던 것이 원래 계획이었으나, 라투르가 "행성 사유"라는 말을 직접 쓰는 것이 아니고 라투르보다는 차크라바르티와 육 휘가 라투르의 영향권에서 쓰는 말이기 때문에 좀더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팬데믹이 두 사유의 연결의 필요성을 일깨웠음을 보이는 것이 관건. 조금만 집중해서 정리하고 종합하면 되거늘 그게 안 되어서 1월 첫 번째 마감을 놓치고 두 번째 마감마저도 놓치고는 오늘에 이른 것이다. 

역시 핑계에 지나지 않으나 일을 많이 벌인 것도 사실이다. 동료들과 이름하여 인공지능 세미나를 시작해서 인공지능 윤리나 그 밖의 이론/담론을 살피고 있다. 또 "제자"와 프랑스철학 세미나도 시작해서 지난 학기 대학원 수업에서 읽었던 코이레 2차문헌을 읽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인문대 소식지나 잡지 기고문을 수정하는 데도 꽤 많은 공과 시간을 들였다. 거기에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한 논문 작성법 특강까지. 

그 와중에 1월 중순에는 1주일간 디지털인문학 겨울학교에도 참가했다. 애당초 목표대로 아마도 나만 빼고 다들 알고 있었던 듯한 "파이선"이 뭔지 대강 알고 실습까지 해봤다는 것으로 만족... 하기보다 이 방법을 내 필요에 맞게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은 한다. 이를테면 당장 번역서 색인 작업이라든지. 앱을 개발할 수도 있겠고. 그러나 네트워크 분석 등 "멀리서 읽기"라는 디지털인문학 방법론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이고 인문학의 본령과 본분은 어디까지나 "촘촘하게 읽기" 즉 개념과 사상의 분석과 종합에 있다 할 것이다. 겨울학교 강사진 대부분이 이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한 일을 적는다 해서 해야 할 일 또는 했어야 할 일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해야 할"일과 "했어야 할 일" 또는 "할 수 있었던 길"은 원래부터 가능태 같은 걸로 있었던 것이 아니고 "한 일"과 똑같이 그리고 동시에 생긴 일이다(베르그손). 오직 "한 일"만 있고 "한 일"은 "한 일"일 뿐이고 남은 것은 "할 일" 뿐. 아래에 그 일들을 적어보기로 한 것은 거의 전적으로 페이스북의 한 "친구"가 2월의 계획을 빼곡하게 적은 것을 보고는 경외심과 경각심이 생긴 탓이다.

2월 들어서 다른 건 몰라도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두 가지가 있었다. 다음 학기 대학원 수업에서 다룬 후 올해 안으로 완역하기로 한 디디-위베르만의 텍스트 번역과 다음 학기 학부 수업 교재인 두뇌보완계획 100. 각각 하루에 6쪽 및 3장씩 나가기로 했는데 전혀 손대지 못한 채로 일주일이 흘러 버렸다. 실은 지난주 아니 지난 주말까지도 1월 마감 논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있던 탓...이라는 것 역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거기에다 조금 전 부주의로 과일향이 첨가된 비타민 음료를 들이키고 말았으니... 아직까지는 괜찮으나 조금이라도 반응이 올라치면 내일 아침으로 예정된 프랑스철학 세미나를 취소할 참이다. 오늘 아침 인공지능 세미나가 명목상으로는 내 본의는 아니었으나 사실은 그 누구보다 바라마지 않았던 나의 자기실현적 예언으로 취소된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그렇지만 과일이 들어가지 않은 비타민 음료를 겨우 찾고 또 판매처를 겨우 찾아서 10개들이 한 상자를 사다가 냉장고에 채워 놓은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손님용으로 단 한 병 남겨두었던 과일향 첨가 음료를 집어들어 마시고야 말았으니 기가 차도 한참은 찰 노릇인 것은 사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빨리 시작해야 한다. 

...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1. 문제의 면역 사유-행성 사유 논문 완성 및 투고. 거절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이번에는 끝을 내야 한다. 두 가지의 저널 옵션이 있는데 일단은 완성이 우선. 2월 18일까지. 

2. 코이레 해제를 위한 과학사 또는 과학철학사 논문. 일단 얼개를 짜고 견본으로 삼을 만한 "역자 해제" 탐색 및 탐독 중. 너무 많아서 탈이다. 게다가 너무 많이 보면 겸손을 넘어 좌절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역할모델과 선례와 범례야말로 다다익선. 그 밖에 관련 참고문헌 정리 그리고 기존의 쿤 번역서들을 참조해서 초벌 번역을 수정해야 하는 일이 남아 있다. 2월 말까지.

3. 젠더연구소 학술대회 사회.  그냥 사회일 뿐이지만 그렇다고 사회만 보면 그뿐인 것도 아니라 준비가 필요하다.  2월 20일.

4. 여이연 강좌. 버라드의 물질이론과 양자역학과 영화 "오펜하이머" 등.  지난 가을 인문학 강좌에서 출발하되 한참은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당시 쓰려다 역시나 포기한 논문...의 일부는 이미 출간이 되었는데, 남은 부분도 내용상으로는 상당하고 중요성 또한 상당하다. 사실은 좀더 핵심적인, 그런데, 아니 어쩌면 오히려 그래서 비껴갔던 부분을 이제는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다루어야 한다. 2월 22일. 이걸 더 발전시켜서 3월 여성철학회에서 발표하고 4월 학술지 투고. 

5. 세계철학자대회 발표 신청. 세계철학자대회는 8월 로마에서 열리는데 사실 그보다 7월 빈에서 열리는 과학철학사 학회에 관심이 더 있었으나 발표 신청 마감. 세계철학자대회도 원래 1월 말까지였으나 3월 말로 마감이 연장되었다. 마감이 연장되기도 했고 번역서 자료 조사 차원에서 파리에도 들러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지원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으나 뜻대로 될지... 주제는 ㄱ. 광기의 역사와 ㄴ. 코이레-메를로퐁티와 프랑스 인식론의 계보 중에서 고민 중. 3월 말.

6. 그 밖에 다른 학회들도 있고 또 지원사업도 욕심이 나지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연구재단의 "신진연구자지원사업"...을 차라리 코이레-메를로퐁티 혹은 더 넓혀서 "고전시대" 연구로? 박사논문의 연장선상으로 말이다. 칸트, 라플라스, 콩트, 쿠르노, 베르그손, 푸앵카레... 영어 논문 출간을 목표로. 한편으로는 중복에 유의해야 한다. 특히 베르그손 번역을 아카넷 고전번역에 지원해야 하는데 아마도 올해는 힘들 것이다. 아닌가? 올해 일단 내보고? 어쨌든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신진연구자사업은 지원은 3월 6일까지. 

... 이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일단은 여기까지. 이미 지나친 감이 있다. 모자람만 못할 리만치.


왜 하필 이 시점에

이곳 생각이 났을까. 마감을 이미 넘겨버린 발표문 때문인가? 자포자기? 일생일대 중요한 일들 중 몇 개를 줄줄이 앞두고 그제부터 일이 이상하게 풀리지 않는 느낌. 불안감. 아이폰으로 글을 적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던가? 이 아이폰 SE의 성능이 저하된 탓도 있는 듯하다. 애플 뮤직의 굿 바이브 리스트를 틀었는데 라나 델 레이의 나른한 목소리가 나온다. 가사가 달달해선가? 숙대입구에서 충무로 가는 길...

급히 마무리하던 글을 다시 꺼내다. 지금은 이 글을 처음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약 2개월이 지난 후, 그리고 지금은 다시, 아니 어쩌면 여전히, 충무로다. 

이제껏 이곳에서 지켜오던 원칙을 깨고 지명을 약자가 아닌 실명으로 적은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이었을까? 이 글이 제대로 마무리되었다면, 즉 적어도 통상적인 과정을 거쳤더라면, 그 과정 중에 검열이 시행되었을 것이고 그러면서 익명화 처리도 이루어졌으리라. 그러나 이번에는 2개월 전의 기록을 있는 보존한다는 취지에서 그대로 남기기로 한다.

지난 2개월은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기 중 하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지난 2년도 그랬다. 2번의 이직. 그리고 그보다 최소한 2번의 이사. 그 외에도 자잘한 이동이 여러 번이나. 참으로 역설적인 것이, 15년 가까이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지내면서는 정작 한 곳에서 10년을 넘게 살았던 반면, 귀국 후 비로소 원주민/토착민으로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살 만한 조건을 갖춘 이후로는 좀처럼 정착하지 못하고 유목민으로 살게 된 것이다.  그러다 지난 2개월 사이에는 이제껏 가본 적이 없는 새로운 도시에 한 달 새 두세 번을 드나들었고 급기야 오는 9월부터는 바로 그 도시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제 조금은 더 안정적인 삶을 구가하게 된 셈. 그렇지만 당분간은, 적어도 앞으로 1년 간은, 안정까지는 힘들겠고 그저 준안정 상태 정도만 바랄 뿐.

그런데 왜 또 하필 이 시점에 이곳 생각이 났을까? 

우선은 이사를 1주일 남겨둔 상태... 라는 것이 이유겠다. 이것이 어떻게 이유가 될 수 있냐고? 좋게 말하면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격언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예의 그 고질적인 현실 도피 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가 하면... 도대체 할 일이 한둘인가? 

우선은 쓰던, 아니 실은 거의 시작도 안 한, 논문을 20일까지 내야 하는데... 20일이 바로 이삿날이고, 이래저래 정리할 시간을 확보하고자 한다면, 논문은 15일까지 마무리해야 한다. 그런데 15일은 마침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 개봉일이다. 마침 이 논문은 양자역학 (어쩌면 그리고/또는 양자장론!)에 관한 것이므로 어쨌든 관련 내용을 다루고 마침 개봉까지 한 이 영화를 언급하거나 나아가 분석하면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좋은 접근이 되리라 생각된다. 마침 논문에서 다루어야 하는 저자(캐런 버라드)도 양자역학과 원자폭탄을 다룬 논문을 발표한 바 있으니.

방학까지 번역을 대강 마쳐놓기로 한 "히스테리의 발명". 그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원래는 관련해서 논문도 하나 발표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그 상황에서는 벗어났다. 그렇지만 올해 안으로 저 번역을 마쳐야 하는 상황은 그대로다. 그러나 상황 상 오는 겨울방학을 기다려야 할 듯하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다른 번역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논문에 대한 부담의 무게를 이전보다는 어느 정도 덜어낸 채로 번역에 임할 수 있게 되어 다행.

기출판 논문 교정 후 개고 및 가이아를 적용한 작품/작가론. 당분간은 불가.

무엇보다도 9월부터 바로 시작할 수업이 무려 세 개나 된다. 게다가 그  중에서 둘은 처음 해보는 윤리학 수업. 물론 이전의 토론 수업에서 윤리학 관련 내용에 상당 부분을 할애한 바 있으므로 그때 쌓은 콘텐츠를 적극 이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강의는 새롭든 새롭지 않든 늘 부담이긴 매한가지. 

생각해 보니 지난 2개월을 "인생에서 가장 역동적이었던 시기 중 하나"라 한다면 그것은 정확히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겠다. 6월은 숨가삐 보냈으나 7월에는 하필 코로나에 확진되는 바람에 거의 아무 것도 못 했으니. 차라리 코로나는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확진 후 2주 정도야 증상 때문에 그렇다 쳐도 그 이후에는 그냥 시간을 흘려 보낸 것이다.

조금 아까 잠깐 바깥에 나가 보니 바람이 제법 부는 것이 한여름은 다 지나간 것임에 분명하다. 다가올 가을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고조되는 "8월 말, 9월 초" 시기.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동명 영화(Fin août, début septembre)는 박사과정 동안 그야말로 내 인생 영화였는데 지금이라고 달라졌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적어도 심정적으로는. 그러나 사실 심정적으로만 그렇고 에릭 로메르의 "가을 이야기(Conte d'automne)"에 보다 가까워진 것이 현실. 대학생이 된 아들을 두고 아들의 여자친구와 우정을 나누며 그녀의 전 남자친구이자 고등학교 철학교사였던 동년배 중년 남성의 소개를 받는 중년 여성을 그린 그 영화 말이다. 왜 하필 이 시점에 이 영화가 생각났는가 하면... 며칠 전 그 영화 주인공의 나이를 넘어섰기 때문일 수 있겠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과의 불화를 끝내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때인 것만은 분명하다.


인생 최고 흑역사, 계단 인사말... 그리고 흑역사는 계속된다?


- 이전 포스트 Scarph : PauvRe, Haute, Solitaire et melAnColique: 인생 최고 흑역사와 후일담 에 이어진 글. 그렇지만 실은 그 글 앞에 쓰여진 글. 인생 최고의 흑역사를 쓴 바로 그날 하루 전에 써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것은 계단 인사말이 되겠다.

3 juil. 2019 à 21:50

감사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책이나 다른 글들로 접했던 여러분들을 직접 만나 뵙고 또 이렇게 앞에 모시고 발표까지 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발표 기회를 주신 학회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아울러 발제문을 사전에 준비하지 못하고, 또, 발표 형식 면에서도, 준비한 원고를 그대로 읽는 (그것도 객석과 공유하지도 않고 혼자서만) 유럽 인문학의 전통을 그대로 답습한 점에 대해서도, 양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게는 이 자리가 몇 가지 점에서 감회가 더더욱 새롭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11년 전인 2008년 바로 이 자리에서 세계철학자대회가 열렸고 당시 파리에서 유학 중이던 저는 처음으로 모국에서 발표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때 계셨던 몇몇 선생님들을 이 자리에서 다시 뵙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09년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럽 분석철학회에서 발표할 기회가 있었고, 그때 택한 주제가 바로 아돌프 그륀바움의 유신론적 우주론 비판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손을 놓고 있었던 이 주제를 소환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꼭 10년 뒤인 지난해, 논문을 마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륀바움의 별세 소식을 접했습니다. 10년 동안 이 주제와 관련해서 발전하거나 달라진 논의는 없는지 확인해 보고도 싶었습니다. 오늘 발표는 차후 이 주제에 대해 보다 본격적으로 논의를 전개하기 위한 시론이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어제 김상욱 선생님 발표에서 나왔던 "우주는 심심하다"라는 명언, 기억하실 겁니다. 우주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어떤 의도 없이 생겨나 또 운행되고 있다. 또 그 안의 운동도 특정한 의미 없이 진행된다. 우주에 대한 과학자의 생각을 대변한 것이고 여기 계신 철학자 여러분도 아주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실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요? 중요한 학회 발표를 앞두고도 준비가 미진한 상황에서 세상이 내일 멸망했으면, 아니 아예 소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혹시 해본 적 없으신지요? (그런 생각 해본 사람이 최소한 한 사람 있는데 누구라고 얘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이 세상이 소멸해서 없어진 상황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해보게 되는 상상입니다.

그런데 인간을 포함한 생물이나, 지구나 태양을 포함한 천체들이, 개별적으로는 생성하고 소멸한다 해도, 그 모든 것을 포괄하고 포함하는 총체로서의 우주 전체가 생성하고 소멸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요? 사실 상상조차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주가 늘 있었던 것이 아니고 없는 것이 가능하다. 우주가 없었거나 앞으로 없어지는 일이 가능하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던 이러한 일들이,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기독교-유대교의 도그마를 거쳐서, 가능할 뿐 아니라 당위적인 사실이 되었고, 이로부터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문제가 제기되었다. 바로 그 문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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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인사말을 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설마 발표문을 준비하지 못하고, 발표문을 준비하지 못했더라도 발표장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가던 도중에 내리리라고는, 그리하여 이름하여 "서울역 회군"의 역사를 쓰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 그런데 어제 자정이 마감이라던 그 글은? 아직 못 썼다... 그리고 학회지 담당인 편집이사님께 메일로 슬쩍 마감 연장 여부를 물어봤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학회 대표 계정으로 문의했던 것임을 조금 전에야 알았다. 이쯤 되면 이 학회하고는, 아니 이 학계와는 도통 연이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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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최고 흑역사와 후일담

- 이전 포스트 Scarph : PauvRe, Haute, Solitaire et melAnColique: 인생 최고 흑역사와 후일담 에 이어진 글.
- 이번에도 아스테릭스(*) 각주는 사후 추가.


4 JUIL. 2019 15:39

인생 최고의 흑역사를 기록하다.

5일 전에 쓰던 그 발표문, 결국 끝내지 못했다. 게다가 발표마저도 펑크를 내고서 연구실로 와서 앉은 지금. 처참하지만 의외로 그렇게까지 비관적이지는 않다.

원인? 시간은 넉넉했다. 그렇지만 이래저래 또 집중을 하지 못한 채로 몇 주를 흘려 보냈다. 여기저기 발표한다고 광고는 다 해놓고. 당장 8월과 9월 발표*가 예정되어 있는데 그건 다 어쩌려고? 다른 발표가 문제가 아니라 다른 건 다 해도 이것만큼은 놓치면 안 되고 제일 잘해야 했거늘.

비극적인 결말을 어느 정도는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제? 지난 목요일, 그러니까 1주일 전. 23일 발표문 마감을 넘긴 후 그래도 3~4일의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목요일은 이모 생일이었다. 그전에, 이번에도 내 쪽에서 먼저 자진해서 제안을 해놓고서 바로, 후회는 아니고 뭐랄까, 불길한 예감 같은 게 있었다. 이상적으로라면, 아니 예상했고 충분히 또 가능한 각본대로라면, 지난 목요일까지는 발표문에 이어 번역 발제문까지 다 마쳐놓은 상태에서 홀가분하게 저녁을 보내고 파티를 즐길 수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이렇게 무리하게 일정을 잡아 놓으면 그 일정에 맞추려 스스로에 동기를 부여하기보다는 일은 일대로 못하고 신의는 신의대로 저버리게 될 것은 불보듯 뻔하지 않은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으면서도 그리고 나중에 이내 후회를 했으면서도 취소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 거대하고 중요한 일을 취소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이후로 이어진 내 행동 하나 하나가 오늘의 이 비극적 결과에 대한 복선이요 그 결과로 이어지도록 한 계기로 작용했다. 지난 목요일까지는 그 전날까지 밤을 새고 매진한 후유증에 시달렸고, 금요일 내내 멍하니 있다 오후가 되어서야 목요일까지 냈어야 할 발제문을 완성해서 보내고, 주말에는 넋 놓고 <마농의 샘>과 남북미 정상회담을 지켜 보았고, 중간중간에는 단체 대화방에서 누군가의 이름과 메세지를 보고는 착잡한 기분과 회한과 망상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작업에 돌입한 것은 아마 이번 월요일이었을 것이다. 그냥 지난 목요일 미완성본으로라도 보냈더라면? 그보다 이번 학회에서 아예 흔적을 지웠으니 그게 더 낫다는 생각도 드나... 그럴 거면 미리 못하겠다 하든지! 어제 메밀을 먹고서 우황청심원에 항히스타민제에 온갖 약을 먹어대는 소동을 벌인 것은 또 어떤가. 네가 어제 저녁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 존 것이 과연 메밀 때문이기만 할까?

이 일은 내 커리어 상의 중대한 오점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40대가 훌쩍 넘었는데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내 커리어. 신의는 신의대로 못 지키고 실력은 실력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실력이란 게 있다면! 어쩌려는 건가? 어쩌자는 건가? 정말이지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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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다가 겨우 생각났다. ㄱ 재단에서의 발표였다. 이것도 준비를 많이 못한 상태에서 겨우 끝마쳤으나... 발표장까지 무사히 갔던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자위하고 말 정도로 내 상태는 심각했던 것이다.
** 그리고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지금. 당시 미완성으로 남긴 발표문 앞에 앉았다. 그렇게 대형사고를 친 후, 올해 안으로 완성해서 학회지에 투고하겠다고 공언하고 또 스스로도 다짐을 해두었는데, 학회지 마감기한이 바로 오늘 자정인 것이다. 정확하게는 어제까지였으나 오늘까지는 가능하다는 답변을 오늘 아침에 편집국으로부터 받았다. 아무래도 무리인 것이 사실이지만, 이번에 마무리하지 않으면 다시 기회가 없을 것을 안다. 어제까지 끝냈으면 좋았겠고, 원래는 토요일부터 이틀 꼬박 투자해서 마무리할 계획이었으며, 그 계획은 반드시 성사되어야 했으나, 또 4개월 전과 비슷하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주말을 허망하게 보내버렸다. 4개월 전에 남북미 정상의 만남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조국 이슈가 있었고, 누군가는 또 잊을 만하면 나타나서 마음을 헤집어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다 오늘은 또 부모님 결혼기념일. 아침에 안될 줄 알면서 저녁 외식 제안을 했으나 정오를 향해 가는 지금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아 예약을 하고 두분만 가십사 말씀드린 참이다. 그래서 이곳 공부방 근처의 한 곳을 추천해 드렸더니 엄마가 됐다고, 동네에 생각해 둔 곳이 있다고, 어딘지는 비밀이라고 하신다.

... 그럼 이제 그건 됐고 이제 꼭 12시간 남았다. 세상이여, 12시간 후에 다시 만나세.

... 그런데 어디까지 했더라?

인생 최고 흑역사의 서막

- 다음은 지금으로부터 4개월 전인 6월 29일, 일기를 목적으로 "베어"라는 이름의 앱을 다운로드 받은 뒤 작성한 첫 엔트리다. 왜 4개월 전 일기를 이 시점에서 끄집어내는지는 차차 밝혀질 것이다.
- 아스테릭스(*)로 표시된 각주는 4개월 후의 시점에서 추가된 것이다.



#일기

29 JUIN 2019 À 18:58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일단 제목을 다는 일부터가 문제였는데, 이것 봐라, 제목 대신 태그 또는 해쉬태그를 달았더니 말끔히 해결되는구나. 제목과 주제어는 다르다. 주제어를 다 포괄하면서 그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단 하나의 문장이나 단 하나의 구절이나 심지어 단 하나의 단어로 제한되는 것이 제목이다. 반면 주제어는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 존재를 필요 이상으로 늘리면 안 된다는 오캄 면도날 원리의 지배를 받을 필요도 없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쓰던 에디터, 지금은 이름도 생각이 안 나는 바로 그 일기 앱* (지금 새로이 시작한 이 "베어"는 n번 째로 접한 앱이다)의 "폴더"에 대한 설명이 생각난다. 폴더라는 기능 혹은 특성에 대해 그 에디터의 개발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폴더는 그 자체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개별적인 글들이고 폴더는 그 글들을 묶어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나는 그때까지 보편자 문제에 대한 그렇게 간명한 설명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설명 덕에 범주가 무엇인지, 보편자 문제의 쟁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유명론이어야 하는지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듯 어떤 텍스트나 이론이 아무리 들이파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아, 그런 뜻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일이 있다. 사실 많았다. 거의 대부분 그랬다. 푸앵카레의 규약 개념이 그랬고 또... 이해하는 일이 득도나 계시처럼 일시적으로 혹은 우연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분명 문제다.

지금 쓰고 있는 "그륀바움의 기원적 실존 문제 비판". 발표문 마감일은 진작에 넘겼고 발표일을 4~5일 남겨둔 시점에서 아직도 이 문제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중에 있다. 그야말로 "무로부터의 창조"가 아니고 비록 10년 전이긴 하지만 기존 발표문을 출발점으로 삼았기에 어느 정도 수월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웬걸, 보면 볼수록 10년 전에 내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을 용감하게 했는가를 깨닫고 있는 중이다. 2009년 9월에 발표**한 것이니 조금 있으면 꼭 10년! 준비 과정은 무척 괴로웠으나 어찌 어찌 발표를 끝낸 후,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나가다가 우연히 공중전화 박스(당시만 해도 드물지 않았다)에 쓰다 만 전화카드(이 역시 여전히 사용되던 때였다)를 발견하고 환희에 차서 파리와 피사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진 환상적인 이탈리아 여행. 내 생애 최고로 아름다운 순간이었고 내 스스로도 가장 빛난다고 느꼈던 순간이었다. 발표가 이 모든 황금기의 말하자면 원인을 제공한 사건이었거늘, 이제사 다시 보니 내용도 별로 없고 그나마 있는 내용도 한심한 수준이었다니.

일단 오늘은 이 정도로 해두자. 일기는 이제 이 "곰"에게 맡겨도 되겠음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그리고 필력이 그래도 좀 되살아나고 있다는 느낌을 얻은 것만으로도 일종의 성과라 해도 좋겠다. 이제 밥을 먹고 다시 그륀바움으로 돌아가자. 발표문은 어떻게든 오늘밤 안으로 끝내야 한다. 되도록 끝내서 내일 감자 수확***에도 참여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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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생각이 났는데 이름이 journl 이었다. 너무도 오래 전, 아마 2004년 아이북에서 쓰던 앱일 것이다.  당시만 해도 그리 안정적인 앱은 아니어서 쓰던 도중에 날린 글도 허다했음에도 한동안은 열심히 꽤나 썼다. 백업파일도 남겨 놓았었는데 이후 아이북에서 맥북프로로, 다시 맥북프로에서 지금의 맥북에어로 기변을 거치는 과정에서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다. 한편 문제의 앱 journl 에 대해 구글링을 해보니 같은 이름의 iOS용 앱이 있고 꽤 괜찮아 보이는데 그 사이에 개발이 중단된 모양이다.


** 스위스 주네브(제네바)에서 열린 유럽분석철학회 발표였다. 국제 학회 발표로는 2008년 서울에서 열린 철학자대회 이후 두 번째이긴 하지만(두 번째이자 현재로서는 마지막...) 홈그라운드가 아니고 아무 연고가 없는 이국땅에서 혼자 발표를 한 것은 당시 내게는 나름대로 큰 성과였다. 그리고 그 "기록"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 외사촌 ㅇ 언니의 형부가 교외에서 주말 농장을 일구는데 솜씨가 좋아 감자뿐 아니라 고구마, 무, 가지 등등 계절별로 다양한 작물을 수확하고 있다. 너무나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였는데 지금껏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지난 주말인 20일에도 고구마 수확이 있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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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기회

너도 나도 알아. 네가 내 인생을 구원하고 또 내가 네 인생을 구원하리란 걸. 문제는 너도 나도 인생을 구원할 생각이 없다는 거야. 그렇게 너도 나도 늙어가겠지. 서로가 아닌 다른 구원자를 끊임없이 찾아 헤매면서. 진정한 구원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뻔히 알면서도. 그래도 구원의 기회는 아직 남아 있어. 그리고 그건 전적으로 네게 달렸어.

사사롭고도 호사로운 일상

춘삼월이 무색하게 쌀쌀한 저녁에 치과 치료를 받고 온 엄마의 부탁으로 구립도서관에 들러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빌려 오려다 눈이 후두둑 떨어지는 바람에 책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다른 심부름을 하러 시장으로 향하는 길에 전부터 눈여겨 봐두었던 꽃집이 눈에 마침 띄길래 들어가서 파스칼 페랑의 <채털리 부인>을 본 뒤로 이른 봄이면 으레 생각나곤 하던 노란 수선화를 사려다가 이내 망설여져 둘러 보다 예전에 살던 집 창가에 놓고 키우던 생각이 나서 하얀 스윗윌리암스가 연분홍 장미와 안개꽃과 프리지어와 섞인 꽃다발을 사 들고 나와 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치과 치료를 받고 온 엄마가 책을 빌려 달라고 부탁했는데 빌려 오다가 책이 눈에 젖으면 안될 것 같아서 대신에 택한 것이 꽃이었노라고 말했다면 꽃집 주인이 좋아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에 꽃은 꽃대로 책 대신에 눈에 젖은 채로 반찬가게에 가서 꽃이 예쁜데 다 젖어서 어쩌냐는 가게 주인에게 백김치를 주문하고 값을 치르려니 꽃을 사는 바람에 돈이 모자라 집에 가서 가져오겠다고 말하고 시장 어귀까지 나와서야 비로소 백김치가 아니라 동치미나 물김치가 엄마의 주문이었음을 알고는 발걸음을 돌려 다시 가게로 가서 물김치를 사 들고서 집에 들어가 엄마에게 꽃다발과 같이 안기고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것은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그리고 또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못 했으며 앞으로도 얼마 간은 언감생심일 사사롭고도 호사로운 일상이었던 것이다.

  

좋아요

그는 자꾸만 물었다. "좋아요?" 그럴 때마다 에스엔에스가 언어 현상, 나아가 의식 전반에 끼친 영향에 대해 생각했다. 실명을 건다고는 하지만 워낙 규모가 크고 다중이 참여하는 까닭에 역설적으로 익명성이 보장되는 가상 공간의 언어가 이렇게 가장 내밀한 대화에까지 파고드는 순간. 

거기에 아니라 답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나는 마치 그런 법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답하곤 했다. "좋아요." 답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그저 상대방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거나 메아리로 되돌렸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좋아요? 좋아요. 질문도 바보 같지만, 답은 더 바보 같은데, 그것이 가능한 유일한 답이라 생각하면 더더욱 맥이 빠지곤 했다. 질문을 던진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건대 그것은 딱히 다른 한 말이 없으니 유일하게 가능한 질문, 아니 말이었겠고, 일단 그런 생각이 든 상태에서 답을 하자니 더더욱 맥이 빠졌다. 내 입장에서 보자면 나 역시 상대방에게 같은 질문을 할 수도 있었겠으나, 또다시 의미 없는 "좋아요"의 연쇄로 그 바보 같고 맥 빠진 질문과 답변이 이어질 것이 두려워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진짜로 답에 조금만 관심이 있고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최소한 이렇게 되묻지 않았겠는가. 어디가 어떻게 무엇이 왜 얼마나 좋은가 하고.

이 정도면 별점 체제는 양반이다. 세상의 모든 가치 판단과 미적 평가가 이토록 단순한 좋다/싫다는 이분법적 잣대로 귀결된다. 단순하기도 하고 원초적이기도 하다. 좋으면 웃고 싫으면 우는 신생아의 감정 표현. 가장 근본에 가까운 정서라고도 하겠다. 스피노자의 감응론도 결국은 이에 가깝다. 제법 복잡미묘해 보이는 정서들도 결국은 내 존재 역량을 상승시키는 정서와 하강시키는 정서, 이 둘의 변용에 불과하다. 거꾸로는 온갖 종류의 복잡다단하고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이를 갖는 것으로 여겨지는, 오욕칠정은 물론이요 그를 넘어 화, 울화, 분노, 한, 원한 등등 세밀화하자면 정말이지 무한히 가능할 모든 인간의 정서가 고도로 농축된 표현이 바로 "좋아요" 혹은 "싫어요"라 보는 것도 가능하겠다. 

말로는 이렇게 하지만 나도 요새는 이모티콘과 초성체를 자주 쓴다. ㅎㅎ ㅋㅋ ㅇㅇ ㅜㅜ 등등. 그런데 ㅎㅎ와 ㅎㅎㅎ 사이에 또 미묘한 차이가 느껴지는 까닭에 늘 ㅎㅎ와 ㅎㅎㅎ 중 어느 것을 쓸 것인가 고민하곤 한다. 이모티콘 또한. 씨익 하는 웃음인 😏 이나 유쾌하고 화통한 웃음인 😁, 그리고 약간 부끄러운 듯 뺨을 붉힌 웃음인 ☺️ 의 차이. 어쩌면 감정에 관한 한 이모티콘이야말로 그 어느 언어보다 더 직접적이고 확실하며 무엇보다 접근 가능하며 심지어 보편적인 표현을 가능케 하는지도 모르겠다. 괜히 emotion+icon 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좋아요"와 "I like"와 "J'aime" 가 치켜든 엄지손가락 형상의 기호인  👍 아래에 통일되는, 이것이야말로 보편 언어 이념의 실현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지 않는가. 여전히 모국어와 제2 언어 양쪽과의 불화와 소외, 그로 인한 분열로부터 헤어날 길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러한 원초적 언어의 부흥은 해방구이자 편법의 수단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남용은 해로울 터다.

논문, 논문, 논문... 아직도!




"잔느는 결국 논문 끝냈다니?"
"그게... 끝내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할머니, 잔느 언니는 왜 늘 논문만 써요?"
"그건 아무도 모른단다."



"파티 하시나 봐요?"
"아뇨. 제가 집에 처박혀서 논문을 끝내려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필요한 식량을 구비하는 거랍니다."
"아, 논문 쓰세요? 저도 젊었을 때 하나 썼어요. 
고생물학으로요. 그런데 잘 안 풀려서..."

 
Tiphaine Rivière, Carnets de thésard, Seuil, 2015
 그리고 다시 보는 카프카의 "계단"생각
 

어떤 유비


또 하나 유사한 것은 밤에 생각이 난다는 점. 그러나 순간의 충동에 양보하면 그 즉시 후회하게 마련이라는 점 또한.

이제 조금 있으면 70일. 한 5년 전부터 간헐적으로 시도했다가 실패하기를 여러 번, 스스로도 미덥지 못해 "취미가 금연"이라는 자학적 농담까지 하고 다니던 중, 그래도 작년 가을부터 미약하게나마 성과를 보기 시작했다. 중간에 1주일 정도의 휴지기를 두어 번 가지고, 또 일종의 "포상"의 의미에서 한두 대의 예외를 두긴 했지만. 기침과 가래, 소화 장애 등 생리적인 증상에서부터, 전반적인 우울 및 불안, 체중 증가, 다소간의 퇴행성 행동--구강기 유아마냥 자꾸 입에 무언가 물고 싶은 욕구가 강해져 실제로 빨대를 물고 있는다든지, 어쩌다 얻어 피울 상대를 만나는 등의 기회가 생길라치면 강한 충동이 이는 나머지 그 상대를 집요하게 조르고 보챈다든지 하는 강박적이고 유아적인 행태를 보인다든지--등 다양한 종류의 금단 현상을 거쳐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든 듯하다. 장이 계속해서 거북한 것을 제외하면. 

이렇게 15년만(!) 계속하면 비흡연자와 똑같은 조건으로 초기화된단다. 물론 그 기간 동안 노화가 진행될 것을 생각하면 초기상태로 복원되는 것은 아니겠으나, 가차 없는 불가역성 원리가 지배하는 세계에 이 정도의 예외가 허용되는 것이 어딘가. 

가만히 돌이켜 보면, 돌이킬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위의 사례처럼 돌이킬 수 없고 돌이켜서는 안 되는 일이 더 많지만.  

맥북 수난이대

맥북프로를 샀던 것이 2010년 여름이었으니 벌써 칠년이 다 돼간다. 그 전에는 아이북을 썼다. 2005년 여름부터 2010년 여름까지, 그렇게 딱 5년 동안이었다. 5년 내내 가끔 팬이 돌기는 해도 대체로 멀쩡하고 속을 썩이는 일은 없었다. 

당시만 해도 여전히 애플 사용자는 소수였다. 주변의 컴덕들 사이에서는 반애플 정서도 제법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적잖은 비아냥을 감수하면서까지 맥의 전도사(이자 스티브 잡스의 팬)를 자처하는 걸로 지인들 사이에서는 제법 유명한 편이었다. 2010년이었던가, 잡스가 운명했을 때 내게 소식을 전하며 안부를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새부턴가 주변에서 맥북 시리즈가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운 지인들에서부터 도서관이나 학회장에서 보는 학자들, 연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청중까지. 애플이 이렇듯 이 시장을 석권하게 된 사실은 나같은 탐미주의자 그리고/혹은 스노브들을 현혹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미적인 우수성만으로는 설명되기 힘들고,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다. 아이폰의 보급으로 애플의 브랜드 가치가 상승한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학생 및 교육자들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백 투 스쿨" 행사가 상당한 파급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내 가설이다. 딱 그 용도, 즉 수업이나 세미나에 참석하고 논문을 쓰고 하는 등등의 이른바 학술적 용도에 맞으면서, 안정적이고 또 맥 특유의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를 갖춘 사실도 고려해야겠지만. 이렇게만 놓고 보면, 혹은 결과적으로 보자면, 나름대로 선구자이자 트렌드 세터였던 셈인데, 사실 그보다는, 어쩌다 아이북을 쓰게 되고 그 뒤로 쭉 이어온 경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 물론 "앺등이" 특유의 페티쉬즘과 스노비즘 성향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심지어 부끄러워 하지도 않고 대놓고 드러내고 다녔으니 말 다했다. 

어쨌든 그렇게 시대에 앞서(!) 5년 간 고이고이 아껴 쓰던 아이북. 국립도서관 지하 연구관에서였다. 팬소리가 윙 하고 나더니 제멋대로 종료. 그리고 부팅 불가. 하늘이 노래졌다. 그리고 수차례 재시동 시도. 그 지하 연구관이 또 어떤 곳인가. 절대 정숙이 요구되며 일체의 소음도 불허하는 곳 아닌가. 환경도 환경이고 몇 번 시도해도 안되길래 결국 포기. 그리고는 도서관을 나서 파리 동쪽과 북쪽으로 오가며 주변의 같은 기종 사용자를 비롯 컴덕(이지만 반애플 정서의 소유자였던)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자구책을 모색했다 (그러고 보니 요전에 이 에피소드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낸 뒤, 바로 다음날, 덥썩 교체를 결정하고는, 오페라의 애플스토어에서 즉석 구매. 백투스쿨로 할인가에다가 그과 더불어 아이팟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로부터 5년 전 아이북 구입시에도 아이팟을 받았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지 6년째 되어가던 작년. 초반부터 상태가 눈에 띄게 나빠졌다. 최초의 사태가 일어난 것은 3월 30일 새벽. 아마도 운영 체제인 앨 캐피탄을 업데이트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고, 정확히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이제 가물가물한데, 아마도 유튭으로 동영상을 돌리려던 찰나였던 것 같다. 그 전에도 동영상을 돌릴라치면 팬 소리가 나서, 내가 겁이 난 나머지 강제로 종료하는 일이 더러 있긴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양상이 달랐다. 열어 두었던 논문 작성용 앱인 스크리브너에서부터 모든 앱들이 일제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애플 컴퓨터 사용자라면 누구나 아는 공포의 무지개빛 비치볼 회전 (사실 애플 사용자라고 누구나 안다면 과장이다. 정상적인 사용자라면 그다지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애플 좋다는 게 뭔가)! 너무나 놀라서 작업들을 중요하지 않은 순서대로 하나 하나 종료를 해나갔다. 스크리브너의 차례가 오기 전에 사태가 종식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그러나 결국은 실패. 강제종료를 한 뒤 수차례 재시동 시도. 복구 모드 및 안전 모드로 시도. 역시나 수차례. 

나름대로 평소 백업에 신경을 쓴다고는 하나 이런 사태가 벌어질 즈음이면 하필 며칠간 경계를 늦춘 상태였다든지, 설사 그랬다고 해도 그 며칠동안 별 성과가 없었다면 크게 애석할 일도 없으련만 하필, 그 전에는 계속 안 풀리던 문제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혀 오랜만에 생산성을 고취하고 있는 시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저 사태는 그 수준이 아니었다. 아예 부팅이 안 되어 사태 이전은 물론이요 그 이후의 전개마저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이 모든 역사를 무화시켜 버리는 특이점의 사건이었달까. 메타포로 더 적당한 것은 블랙홀 이론이겠다. 지난 10년의 역사, 그리고 향후 최소한 10년 후의 역사를 빨아들인 사건의 지평선. 논문을 그만두라는 계시로 해석이 충분히 가능한 사건.

일단은 운영 체제를 재설치하면 되겠는데 (걸핏하면 윈도우를 재설치해야 하는 아이비엠 컴퓨터와는 달리 맥에서는 드문 일. 운영 체제를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처음에는 그래도 복구 디스크를 찾아서 복구 모드로 시동이 되더니 시동 횟수가 반복될수록 그마저도 불가능해지나 싶었다. 구입 당시 들어있던 설치 씨디롬으로도 하드웨어 테스트도 해보고, 심지어 아마도 개발자용으로 만들어졌을 벌바팀 모드로도 시동해서 파일 시스템 체크도 하고 (내가 아무리 라텍 사용자라 그 옛날 도스를 방불케 하는 사용 환경을 전적으로 낯설어 하는 건 아니라 해도 갑자기 터미널에서 fsck, cd.. 등의 명령어를 입력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어찌 당황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드디스크 테스트를 해보니 문제가 있어 포맷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포맷을 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 역시 맥 쓰면서는 좀처럼 해보기 힘든 일). 다행히 논문을 포함한 각종 데이타들은 비교적 안전히 보관돼 있는 걸로 보였다. 그래서 그 데이타들을 통째로 복사해서 외장 디스크에 옮기고, 하드 디스크를 포맷한 뒤, 운영 체제를 새로 설치하고 외장 디스크의 복사본을 원래 자리로 되옮기기로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오, 결코 간단치 않았다. 일단 외장 디스크부터 포맷해야 했다. 거기에는 주로 하드 디스크 공간 확보를 위해 따로 저장해 둔 파일들이 있었다. 논문 자료들도 있지만 지난 10년간 누군가로부터 받거나 내가 따로 모아둔 영화, 음악, 그리고 그밖의 각종 음성 및 영상자료들. 뭐 이들 중 상당수는 다시 구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10년의 역사가 아쉬웠다. 무엇보다도, 내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찬란했을 시절의 사진들. 잠시 그 영상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눈물을 머금고 삭제를 눌렀다.

그리하여 외장 디스크 포맷. 여기에 복원용 디스크 생성. 그리고는 하드 디스크 포맷. 그리고 구입당시 받았던 시디롬으로 역시 당시의 운영 체제인 스노우라이언 설치. 아니, 일단은 외장 디스크를 시동 디스크로 설정하고 거기에서 다시 시작했던가? 다행인 것은 애플에서 한두 해 전부터 운영 체제를 무료로 공개, 앱스토어에서 최신 버전 다운로드가 가능해졌다는 사실. 그러나 불행인 것은 집에서 인터넷 연결이 시원치 않아 그 정도 용량의 데이터 전송은 불가능하다는 사실. 타임머신을 타고 5-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현 시점으로 돌아오긴 했는데, 내 집만 유일하게 5년 전 그 상태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달까.

그리하여 그렇게, 하룻밤을 꼬박 새고는, 아침 일찍 유선 인터넷 연결이 가능한 국립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새 것과 다름 없는 하드 디스크를 새로이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앨 캐피탄부터 시작해서 다른 앱들, 기본 설치에서부터 스크리브너를 포함, 유료 앱들까지 다...는 아니고 정말 필요불가결한 것들만 선별, 이른바 간단 설치를 수행했다. 그렇게 하는 데만 해도 만 하루가 넘게 걸렸다. 그래도 비교적 단시간 안에 5년 간 이 컴퓨터가 초기 상태에서 가장 최근의 상태까지 걸어온 진화의 과정을 재연한, 말하자면 압축적 근대화의 작업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해서 겨우 정상화한지 불과 일주일 후인 4월 7일. 다시 비치볼이 돌기 시작하고 모든 앱들이 일제히 무응답하는 일이 발생. 다행히 지난 사태 이후로 타임머신 기능을 활성화시킨 상태였기에 이번에는 비교적 수월할 줄 알았으나... 결코 그렇지 않았다. 다시 안전 모드로 시동하고, 디스크 검사를 하고, 오닉스라는 디스크 관리 앱으로 검사 및 복구를 수행한 끝에 간신히 복구 성공. 대체 근본적인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앨캐피탄의 한 버전(10.11)에서 파일 시스템 상의 논리적 오류가 발생하게 된 것 같다는 것이 내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이다. 무선 인터넷 연결상의 문제는 앨캡 전반에 걸쳐 있는 것 같고. 

그 이후로 한 6개월 간, 제발 이 논문이 끝날 때까지만 버텨주길 빌며 살얼음 걷듯 조심스레 다룬 탓에 비교적 탈없이 잘 쓰고 있었으나... 논문은 끝나지 않았고 (이것이야말로 이 모든 사태의 결과라기보다는 궁극적 원인이었던 것이다!), 급기야는 10월 13일 밤, 맙소사, 반년 전과 똑같은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경험의 힘일까, 줄잡아 하루 정도의 시간은 버리게 생겼지만, 그래도 복구가 가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게다가 이전 사태의 영향으로 백업 또한 예전보다는 자주 해두곤 했기 때문에 여파 또한 전보다 더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다음날, 파리로 출장을 와있던 동생이 마침 시간이 나서 저녁을 같이 보내게 되었고, 이때 지난 밤 사태에 관해 들은 동생은, 그렇게 불안해서 어떻게 쓰겠느냐며 구입을 제안했다. 6년 전 아이북 사태 때 새로 구입할 것을 제안한 것도 동생이었다. 그래서 그 길로 바로 라데팡스 애플스토어에 가서 맥북에어를 구입했다. 일체의 사전 조사 없이, 복권 당첨자라면 모를까, 요새 누가 할까 싶은 무모한 소비 행위였지만, 그렇게 비합리적이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시간과 타이밍이 문제였기에. 물론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날 새 맥북에어를 들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망가진 맥북프로를 복구하는 일이었다. 이전과 똑같이 지난한 과정 (복구 모드 후 운영시스템 재설치)을 거쳐 사태 직전까지의 데이타를 온전히 복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데이타와 설정을 다시 맥북에어로 옮길 수 있었다. 몇몇 중요한 앱들을 새로 등록을 하고 시리얼키를 입력하는 등의 또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긴 했지만. 

그리하여 맥북프로와 맥북에어를 양손에 거느리는 2원 체제를 갖추게 된지도 어언 4개월여. 새로운 운영체제인 시에라를 설치했다 몇몇 앱과의 호환성 문제로 다시 앨캡으로 다운그레이드한다든지 등의 몇 번의 부침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어느 정도 체제 안정기에 접어든 듯하다. 여전히 문제는 논문이다. 

로맨스 이후

이른바 "로맨스 영화"(로맨틱 코미디, 멜로드라마, etc.)들이 가족 및 사랑 이데올로기를 재현하거나 (재)생산하는 방식에 관하여. 

편의상 이 부류의 영화들을 로맨스로 통칭하자. 이성애 중심의 가족 및 낭만적 사랑 이데올로기에 기반하여 주인공 및 등장인물들이 짝을 얻고 안정과 평화를 (되)찾고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결말로 가는 플롯 구성이 기존 이 부류 영화들의 규칙 중 하나였다. 로맨스는 부부의 생리학이든 연애론이든 간에, 전혀 새로울 것이 없고 앞으로도 뭔가 새로운 게 나올까 싶고, 새롭건 진부하건 간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끊임없이 재생산될 수밖에 없을, 보편적이고 영원한 테마틱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장르"를 넘어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만큼, 이 영화들에 어떤 하나의 범주와 그에 준하는 속성을 부여하기란 어렵고, 이런 범주화가 과연 유의미한지 또는 유효한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에스에프나 호러 같은 대표적인 "장르물"을 생각해 보면 그 차이가 분명해진다. 이 장르야 이미 존재 이유에서부터 내적 기준에 이르기까지 그 기반을 확고히 다지고 있고, 장르의 하위 개념으로서 존재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장르라는 개념 자체가 거기에서부터 나왔으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로맨스" 부류는 같은 하나의 장르로 규정되기에는 너무 보편적이며 또 그 변주 또한 너무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어드저스트먼트 뷰로>나 <소스 코드> 같은 버젓한 에스에프 영화들도 로맨스 코드를 버젓하게 갖추고 있는 바, 이런 영화들까지 로맨스로 치자면 도대체 로맨스가 아닌 것이 있겠느냔 말이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크로넨버그의 <플라이>를 상영하는 극장 매표소 앞에서, 너무 무섭지 않느냐며 주저하는 한 관객에게 직원이 '사랑 이야기'라며 안심시키는 것도 봤다.

이런 위험과 부담을 무릅쓰고, 대신 이러한 시도의 한계--성급한 일반화, 피상적 분석, etc.--를 숙지한 채로, 일반화 논의를 밀고 나가보자. 

로맨스의 상당수는, "옛날 옛날에"로 시작해서 "그들은 아이를 많이 많이 낳고 오래 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동화, 좀 더 나간다면 셰익스피어 희극이나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에 기원을 둔, 소위 "로맨틱 코미디"이거나, 아니면, 두 주인공이 둘 다 죽거나 아니면 한 사람만 죽고 다른 한 사람은 남겨진 채로 불행한 여생을 보내는 걸로 끝나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혹은 [폭풍의 언덕]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비장미 혹은 신파가 넘치는 멜로 드라마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어쨌든 이 모든 이야기의 처음이자 끝, 나아가 본질은, 두 영혼의 조합 혹은 합일 여부에 있었을 터다. 나머지는, 매우 거칠게 말해서, 부차적 요소나 극적인 장치에 불과했고.  

이 구도가 복잡해지게 된 첫 번째 계기는, 아마도, 이른바 "근대적 주체"가 등장하고, 근대 산업화 및 도시화 이후로 이 주체가 더욱더 개인화되고 분자화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두 영혼의 합일 여부에 앞 각 영혼의 개별성과 특이성이 부각되고, 이들 앞에는 이제 "주체"로 거듭나고 자아(정체성)을 실현해야 할 과제가 놓이게 된다. "또 다른 반쪽"이나 "영혼의 쌍둥이", 즉 타자와의 조화나 합일은 더 이상 당위이거나 목표가 아니고, 기껏해야 이 과제를 실현키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그러면서, 역으로, 타자와의 조화나 합일의 당위성을 지적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일이 지배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게 된다. 이것이 현대식 가족 및 낭만적 사랑 이데올로기다. 이제, (악인을 제외한) 주인공 및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안정과 평화와 행복을 찾는 동시에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깨닫도록 하고, 그럼으로써, 암묵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일정하고 규격화된 메세지-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신성하다,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등등-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설득하는 일이 중요해진 것이다.  

2004년작인 [500일의 썸머]<500>까지만 해도 그랬다. 3인칭 전지적 시점의 내레이터는 "탐이 그 동안의 연애사에서 깨달은 바가 있다면, 그것은, 지구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우연들에 전 우주적 의미를 부여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하고 끝을 맺으려다 "그러나..."를 덧붙인다. 탐이 또 다시, 저 보편적이고 냉엄한 진리를 거스르고,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소한 우연에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 내레이터는 말을 잇지 못하고, 탐은 카메라를 향해 윙크를 보낸다. 관객에게 자신이 받은 큐피드/우연의 여신의 가호를 관객에게 전수라도 할 기세다. 이렇듯, "사람은 결국 혼자다. 혼자인 것 맞는데..."하고 말꼬리를 흘리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덧붙이고, 거기에 뭔가 더불어 사는 삶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그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 이것이 로맨스의 논리 구조였다. 그 중 어떤 논증들은 진부하거나 설득력이 떨어지거나 어떤 결론들은 기만적이기까지 했다 해도 말이다. 

그런데 2010년대에 나온 로맨스들은 이러한 전통 서사로부터 자유로운 듯 보인다. 특히, [블루 발렌타인], [벨빌 도쿄], [비기너스] 등, 2010년을 전후로 해서 나온 30대 이성애 커플들의 관계를 다룬 영화들이 그렇다.  

[블루 발렌타인]은, 아이, 강아지, 일 등등에 치여 살던 30대 부부가 마침내 파경을 맞게 되는 약 48시간의 일과가 이야기의 주축이다. 두 사람 모두 가족에 관한 한 상처를 지니고 있다. 남편은 엄마 없이 자랐고, 아내는 애정이 식은 부모(아빠는 가부장) 밑에서 자랐다. 처음에 그들이 꾸린 가정은 이에 대한 보상 기제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48시간 동안, 몇몇 사소한 사건들로 갈등이 벌어지고, 이 갈등은 그때까지 쌓인 앙금을 표면화하여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아이에겐 부모가 필요하다"는 남편에게 부인은 "원수지간인 부모 밑에서 자라는 것만큼 아이에게 비극적인 건 없다"고 말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는 뒤돌아 혼자 걸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비춘다. 

이 영화에서는 첫 만남에서 결혼까지의 과거, 그리고 맞벌이 부부로 사는 현재, 이 두 시간대가 별다른 구분 없이 맞물린 채로 진행된다. 과거와 현재라고는 하지만 그 시간차는 겨우 5-6년 정도. 시대적 배경이나 인물들의 외모상의 변화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근과거"의 재현은 배우를 바꾸거나 배우에게 코스튬을 입히거나 시대를 반영한 세트를 꾸미는 사극/역사물과는 다른 테크닉을 요한다. 이를테면, 딱히 플래시백임을 보여주는 장치 없이 과거 시퀀스들이 현재의 곳곳에 랜덤하게 끼어들면, 보는 사람은 뭐가 현재고 뭐가 과거인지 혼동하게 되고, 플롯을 시간 순서대로 그리고/또는 인과적으로 재구성하는 데에 애를 먹게 될 것이다 [이터널 선샤인]의 경우가 그러했고, 2011년경 나온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그러했다 (후자는 로맨스와 거리가 멀지만. 멀어도 한참 멀지만. 그런데, 또, 그렇게 먼가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이 본격 첩보물 영화에도 로맨스 코드는 당연히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별다른 장치 없이도 그런 혼란의 소지를 전혀 남기지 않고 있다. 젊고, 첫 만남에 설레고, 임신이나 결혼이라는 변화가 마냥 두렵기만 한 20대의 그들과, 30대로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강아지를 키우고 일터에 나가는 등등의 일상에 치인 현재의 그들, 이 둘 사이의 간극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는 테제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벨빌 도쿄]의 주인공은 영화평론가와 영화관 프로그래머인 파리지엥 부부. "벨빌 도쿄"라는 제목은, 극 중 남편이 도쿄 영화제 출장이라는 핑계를 대고 파리에 사는 애인의 집에 며칠 묶던 중에 동양 사람들 (주로 중국인들)이 많은 파리 북동쪽 벨빌의 한 가게에 들어가 아내에게 전화를 하는 장면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임신 중인 아내에게 헤어지자고 말한다. 아무 것도 모르던 아내는 황당해 하다가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데, 남편이 돌아온다. 아내는 또 괴로워하다가 또 이별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지만, 남편이 (생각보다 훨씬) 이중적인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도쿄에 있는 줄 알았던 남편을 파리 거리에서 우연히 발견, 뒤를 쫓다가 애인에 집까지 당도...) 먼저 스스로 떠난다 . 이 영화 역시 주인공이 혼자 뒤돌아 걸어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비기너스]는 30대 후반의 미혼 남성인 주인공의 시점을 취하고 있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웃음을 잃었다가 파티에서 만난 발랄한 프랑스 아가씨를 만나 애도를 끝낸다. 그런 점에서, 앞서 언급한 두 영화는 다르다 하겠다. 우선, 굳이 하위장르를 따져 세분하자면, 내가 개인적으로 "연애입문 및 성장담"이라 부르는 장르(플로베르의 [감성교육]과 발자크의 [골짜기 백합]에서부터 트뤼포의 두아넬 연작이 이에 속한다. 베르테르도?)에 속한다 볼 수 있겠다. 그리고 희극과 비극의 이분법 구도에서는 희극에 가깝다. 감독도 일러스트레이터 출신이고, 또 주인공도 로스앤젤레스에서 일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인 만큼, 발랄한 일러스트 컷도 많고 아기자기한 데코도 많고. 그럼에도 영화는 별로 밝지 않다. 주인공이 어둡기 때문이다. 단지 부친상을 당해서가 아니다. 주인공의 현재를 장식하는 주변 인물들이 밝을수록, 주인공의 회상에 등장하는 아버지가 70이 넘어 커밍아웃을 하고 젊은 게이들과 정력적인 정치 및 사교 활동을 펼칠수록, 그의 어두운 면모는 더더욱 부각되며, 이는 프랑스 아가씨가 짐을 싸들고 집으로 같이 살러 왔을 때 이 아가씨가 지닌 어둠의 포스와 더불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서 절정에 다다른다. 

위의 영화들이 결론을 단정적으로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셋 다 열린 결말이라 보는 편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결말을 긍정적으로 보느냐 부정적으로 보느냐는 전적으로 관객의 몫일 게고, 관객은 자신의 인생관이나 연애관이나 현재의 심리 상태에 비추어 결말에 대해 각자 다른 해석을 내놓을 것이다. [블루 발렌타인]과 [도쿄 벨빌]의 경우, 영화가 이혼 법정에서 끝나지 않은 이상, '언해피'하지는 않은 엔딩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긴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러기에 주인공이 뒤돌아서는 마지막 장면들은, 오, 쓸쓸하기 짝이 없다. [비기너스] 같은 경우, 아가씨는 떠나고 주인공은 아가씨를 찾아 뉴욕까지 가서 결국 두 사람이 재상봉하고 있는 만큼, 남녀 주인공 둘이 벽을 깨고 서로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행복한 미래를 암시하는 여지를 비교적 충분히 남겨놓고 있는데, 그럼에도, 관점의 주관성이라는 근본적 한계를 십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 "열린 결말"은, 이 결말이야말로, 그다지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 사이에는 섬이 있다"는 시인의 명제는 유효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 섬에 가고 싶"어했다. 그리고 많은 영화들이 그러한 보편 정서를 반영, 자기애 가득하고 자기중심적이고 유아론적인 인물이 점차 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아 가고 마침내 결말에 가서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섬"에 당도하는 과정을 그려왔다. 그런데 위의 세 영화들은 "사람들 사이에는 섬이 있다"는 첫 명제를 반복하고 거기에 커다란 마침표를 찍는 데에 그친다. 관계에 대해 희망이나 환상을 심어주는 것은 고사하고, 회의론을 재고할 최소한의 계기조차 제공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섬"에 가고픈 열망이 집단의식 차원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거나, 아니면 영화가 재현하거나 생산하려는 가족 및 사랑 이데올로기가 변했거나, 둘 중 하나이거나 아님 둘 다이거나.
...라는 것이 2011년 가을 무렵 이 글을 시작하면서 했던 생각이었다. 당시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비슷한 주제--30대 이성애 커플의 삶과 사랑--의 영화들을 보며 "어떤 경향"을 읽어내려는 의도에서. 이런 성격의 글이 시기를 놓치면 아무 소용 없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그냥 버리지는 못하고 어쩌지도 못하고 그렇게 방치한 채로 몇 달을 보내던 중, 아니, 보내는 내내, 그 사이에 나온 다른 영화들을 보며, 관계 불가능성 가설을 검증하고 보완하려 노력했다. 그 결과, 이 가설을 철회하거나 대대적으로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관계의 원천적 불가능성보다는 관계의 재개념화를 포착했어야 했다.
...라는 것이 2012년 초, 정확히 이맘 때, 처음에 시작했던 글을 끝맺어 보려 다시 시작하면서 했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무려 5년이 지났다. 하필 30대의 마지막과 겹쳐 버린 그 5년이라는 세월 동안, 관계에 대한 나의 입장은 극단적 회의론과 대책없고 위험천만한 낭만주의를 정신없이 오갔고, 그렇게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끝에, 결국에는 다시, 원천적 불가능론으로 복귀하기에 이르렀다. 무릎 위에서 재롱 부리는 손주를 같이 바라보고, 밤에 늦게 들어오면 얄밉기는 해도 밥은 먹여주고, 밸런타인에는 초콜릿도 주고, 전기가 나가면 퓨즈를 갈아줄 누군가와 더불어 예순 네살을 맞이(Beatles, "When I'm Sixty-Four" : 나의 결혼관을 바꾸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여전히 최고의 청혼가라 생각하는 노래)하는 일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생각하니 다소 슬프긴 하지만, 이까짓 일시적이고 감상적인 기분 쯤이야, 진리에 바친 삶을 위해서라면야 (vitam imprendere vero)!

A une passante

Vous traversiez la rue, Madame. Il y avait, devant vous, des voitures qui attendaient que vous passiez, comme moi, de l'autre côté, en vélo. Vous avez jeté un regard aux voitures à votre gauche, puis à moi, à votre droite, puis vous vous êtes tournée vers moi pour me dire : "C'est interdit !" J'allais dire : crier. Oui, Madame, je suis désolée, mais moi qui n'ai pas l'habitude de parler de tonne aussi agressive avec des gens de la rue, comme la plupart des gens d'ailleurs je crois, vous m'a bien étonnée.

En effet, c'était une route "sens unique" et j'allais rouler mon vélo dans le contresens. Mais, Madame, le saviez-vous ? Paris serait peut-être une ville de cauchemar pour les conducteurs, avec ses routes étroites et de sens unique, mais il n'en est pas de même pour les cyclistes. Dans certaines routes, déjà nombreuses et de plus en plus nombreuses, il est permis aux vélos de conduire contre les sens uniques. J'ignore si tel était le cas de la rue où nous nous sommes croisées, mais, même s'il n'y a pas de signe "sauf vélo" qui garantit que telle exception est tout à fait légale, il y a souvent une complicité entre conducteurs et cyclistes pour que ceux-là laissent passer ceux-ci.

De tout cela, je ne vous ai rien dit. La route en question me paraissait assez étroite et montante, j'aillais plutôt marcher sur le trottoir, et ce, après être descendue du vélo. Quand je vous l'ai dit, vous avez répété : "Non, c'est interdit le vélo sur le trottoir !" Vous croyiez que j'allais passer en montée sur mon vélo. J’avoue que cela m'arrive de ne pas descendre du vélo au trottoir, mais ceci uniquement quand il n'y a personne ou peu et il y a suffisamment de place pour que je ne dérange personne avec mon cheval. Evidemment vous ne me connaissez pas, je ne peux vous demander de me connaitre à ce point-là pour vous renseigner sur mes règles de conduite cycliste. Mais qu'est-ce qui vous dit que je ne sois une assez bonne citoyenne, quelqu'un qui a l'horreur d'être impoli et fait tout ce qu'il faut pour ne gêner personne ? Sur quoi fonde votre raisonnement ? 

Je ne veux pas vous prendre pour une raciste ou une xénophobe. Peut-être vous aviez simplement une mauvaise humeur et vous vous sentiez irritée par rien. Cela arrive à tout le monde, m'arrive à moi aussi, peut-être plus que quiconque. Mais je crains que, vu la situation, vous risquiez de vous faire prendre pour une telle : une dame assez âgée parle de manière aussi hostile et austère à une fille asiatique plus jeune qui a du mal à se défendre, qu'inspirerait une telle situation ? J'exagère peut-être. Mais pas tellement, vu ce qui se passe en ce moment. Je sens que ce genre de tragédie n'est plus réservée aux banlieues. On dit que c'est la face sombre de la mondialisation, ce repli sur soi et ce rejet de l'autre ou d'autrui, et c'est un phénomène de plus en plus mondialisé. A quoi, hélas, Paris n'échappe pas, en tout cas semble avoir de plus en plus mal à y résister. Excusez-moi de vous le dire, vous êtes vous-même un un symptôme de ce phénomène et vous m'en avez donné une preuve.

Cela m'attriste plus que quiconque parce que, Parisienne adoptée, j'aime profondément cette ville, surtout pour son cosmopolitisme et son ouverture vers autrui. Les gens comme vous laissent quitter même les francophiles dans le fond de leur âme comme moi. Ne gâchez pas Paris. Paris n'est pas seulement à vous. Elle nous appartient, à vous et à moi, à tout le monde.

고대 자연학이 "왜"라 질문하고 이에 따라 현상의 원인을 탐구함으로써 그에 설명을 부여하고자 했다면, 고전 과학에 이르러 질문은 "어떻게"로 전환되었고, 이제 유일한 목표는 현상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법칙"이라는 이름 하에 기술하는 것으로 한정된다

...는,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자명한 사실을 논하느라 나는 그토록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도 모자라 아직까지도 마무리짓지 못하여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해밀토니안 상념

지금으로부터 수년 전의 일. 한 선배의 논문심사가 끝난 후 사람들과 카페에 갔다. 아는 사이도 있었고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 불문학을 전공하는 한 분이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고 했다. 내심 반가웠다. 더구나 지금은,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18세기 여류 시인을 공부한다니, 더더욱 놀랍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역시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철학을 하는 ㅌ 선배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분은 모른다고, 학부는 다른 학교에서 했다고 했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나야말로 다른 학교이고 심지어 대학원도 다른데, 내가 "선배"라고 해서 그 학교 후배인 줄 안 모양인데... 이 말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당연히 그 학교 출신일 거라고 짐작한 것은 내가 먼저인데, 그래서 그분도 똑같이 짐작했나 본데, 이런 선판단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인가, 그 판단을 전달하는 것은 또 어떻고, 정치적 올바름까진 아니더라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가, 문제의 그 학교가 한국 사회에서 갖는 특권적 위치가 아니었다면 또 얘기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인가, 등등의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보니 정정할 기회를 놓쳤다.

또 그런 일이 있었다. 누군가를 새로 만났는데 그 사람이 학부에서 밴드 활동을 했다길래 무슨 밴드냐고 물었는데, 어디 어디 라고 답을 하는데, 아무래도 학내에서는 유명했나 본지, 말을 하면 내 쪽에서 알리라 짐작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내가 자신과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전제하에. 그런데 여기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나중에서야 계단생각으로 떠오른 답 : "그렇게 유명한 밴드는 아니었나 보네요. 다른 학교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또 다른 예. "전에는 어디에서 공부하셨나?"라는 한국에서 오신 교수님의 질문에, 출신 대학에 관한 질문임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서 "물리학과에서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때는 옆에 있던 사람이 정정 혹은 보충 답변을 해주었다.

사실 나는 내 출신 학교가 부끄럽지 않다. 그곳에서 보낸 7여 년은 내 인생 최고로 행복한 시기였으며 -- 물론 이때가 20대 초반의 꽃다운 시절이었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그와 같은 기회를 누린 것은 내 인생 최고의 행운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가장 중요한 사상적이고 정서적 토양의 상당 부분은 그곳에서 나왔고, 그것이 내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만큼, 나의 이 "출신 성분"은, 굳이 사회적 코드가 아니더라도, 나를 소개하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뺄 필요도 없고 심지어 빠져서는 안 되는 사항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졸업 후, 특히 외지에 나와 살면서부터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의 이 전기적 사실을 밝혀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차라리 프랑스나 다른 외국 사람 앞에서는 오히려 편하게 말할 수 있다. 심지어 짐짓 자랑스럽게 덧붙일 때도 있다. 세계에서 제일 큰 여자대학이라고.

처음에는 내가 나온 학교가 가부장 사회의 편견, 게다가 요새는 여성혐오 정서까지 가세, 표적이 되는 경우가 워낙 많아 이에 따라 발생할지 모를 불필요한 갈등과 불이익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의도인가 했는데, 꼭 그건 아닌 것 같고 (다행히 그런 문제를 직접 겪어 본 적은 없다. 같은 학교 출신, 그러니까 나에게는 동문이 되는 이와의 소개팅 담을 늘어놓는 경우는 더러 있었어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내가 가지고 있을지 모를 모종의 특권의식을 경계하는 태도인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고, 그렇다고 굳이 학벌 사회에 대한 저항의 표시인 것 같지도 않다. 그보다는, 내가 어느 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 자체(이건 내가 그 학교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와는 별개의 문제)가 나에 대해 말해주는 바가 그리 많지는 않고, 더욱이 그 학교에 대해 세상이 갖는 관념이 나에 대한 그릇된 인상(그 유명한 "ㅇ대 나온 여자"!)을 심지 않을까, 혹은 나 스스로가 그 인상을 재확인하는 사례로 추가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라 해두자. 어느 쪽이든 나와 큰 상관은 없지만 피곤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

그보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정체성 확인 및 구별 짓기 전략, 그리고 너무 안일하고 상투적인 유형학적이고 분류학적 사유에 대한 저항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분류학적 사유의 경우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고 그러한 사유에 사용되는 범주에서의 상상력의 부족이 문제다. 이러한 나의 정서 태도는 이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끊임없이 국적/출신을 환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더구나 여기에서 "출신"은 곧 근본(origine)이 아닌가. 사실 국적에 대한 정보가 나에 대한 편견으로 직결되기에는 내 출신 국가라는 것이 이네들에게는 무관심하거나 무지한 대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어차피 편견은 국적에 대한 정보 습득 이전에 이미, 그리고 히잡이나 키파 같은 종교적 상징으로 애써 가시화 수단을 쓰지 않더라도, 외양이나 이름을 통해 동양인, 게다가 여성, 이라는 판단이 내려지는 순간 이미 결정되는 사태. 나는 그렇게 기계적이고 자동적인 판단 기제, 그 속에서 작동하는 상징 권력의 기제가 거북한 것이다. 물론 그런 모든 부문에서 판단중지를 하고 순수히 개별자 대 개별자로 만나기란 쉽지 않거나 거의 불가능한 일. 그 개별자란 것도 결국 결코 단적으로 독립된 존재일 수 없고, 어느 종류든 집단의 구성원이거늘.

물론 그런 인상비평 하나하나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나아가 상호 피상적 인식을 벗어나 나를 알리고 너를 알고 어슴푸레한 너의 언어를 이해함으로써 서로의 편견을 교정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관계를 구축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내가 그럴 만한 의지도 없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게 된 데에 있다. 단순히 (그러잖아도 부족했던) 사교능력의 퇴화 때문만은 아니고, 그 기저에는 사실 자존감 상실이 있을진대. 스스로 너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자각. 겉으로 드러나는 바 이상의 심오하고 본질적인 이면, 말하자면 나의 본질--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사르트르는 그런 것 없다고 했다--에 대한 확신이 희미해졌고, 그래서 더더욱 나를 알리는 게 두려워졌단 얘기다.  

"물리학과 나왔으면 해밀토니안이랑 라그랑지안 알겠네." 이것이 물리학과 출신 불문학도가 내게 한 말이다. 덕분에 나는, 처음에 던진 미숙하고 무례하고 어찌 보면 불온한 첫 질문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던 중에, 어느 정도나마 긴장을 해소할 수 있었다. 의도했고 심지어 의식했는지도 의문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그분은 사소한 듯 던진 한마디로 선행을 베푼 것이다. 내가 어찌 반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척 고맙고 미안한 기억은 계속 남아 있다. 그래서 해밀토니안이 나오면 그분 생각이 나곤 한다.

그런데 해밀토니안과 라그랑지안? 라그랑주는 라그랑주 방정식의 바로 그 라그랑주다. 뉴턴역학을 해석(解析)적으로 해석(解釋)한 해석역학을 정립, 고전역학을 완성했다고 일컬어지는 인물.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동등한 또 하나의 해석역학 체계를 마련한 것이 해밀턴. 이들이 만든 연산자, 해밀토니안과 라그랑지안은 각각 운동에너지와 포텐셜에너지의 합(H=T+V)과 차이(L=T-V)으로 정의된다. 일종의 보존량. 한 역학계가 시간에 따라 어떤 변화를 갖든지 간에 이 양은 보존된다. 고전역학계에서 해밀토니안은 계의 에너지 총량과 일치하고, 따라서 우리가 중학교 때 배웠던바, 역학적 에너지 보존 법칙과 등가가 된다.

일반역학 강의에서 배운 기억은 난다. 내가 물리학과에서 배운 것은 대개 그런 식이다. 그런 사소한 기억들이 현재 전혀 무관하지 않은 주제로 공부하는 까닭에 직간적접으로 도움이 되는 바 없지 않으나, 그러기에는 너무 파편화되어 있고 무엇보다 이해가 수반되지 않아 무용한 것들이 대부분. 그래서 실질적 도움보다는 오히려 주로 학부 때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사실에 대한 회한이라는 부수 효과 혹은 역효과만 양산할 뿐. 그래도, 당시 부족했던 이해를 보완하고 "아, 그게 그런 의미였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 인가, 과연? 어째 모든 일에서 이렇게 일관적으로 뒤늦단 말인가. 계단 이해. 계단 답변. 계단 논문. 계단 인생.

틴더 시대의 도서관 쪽지

얼마 전 도서관에 갔다가 집에 와서 짐을 푸는데 쪽지가 하나 떨어졌다. 아무 종이나 찢은 데에 연필로 쓴 쪽지.
Salut ! Je t'ai vu [sic] à la bibliothèque mais je suis trop timide pour venir te parler en face à face. J'ai flashé sur toi comme un radar, tu m'a ébloui comme les étoiles dans le ciel en Atlantique. J'espère te revoir. Je serais là à 10h à la même salle qu'aujourd'hui.
번역하면 "도서관에서 보았다, 너무 수줍어서 면전에서 말을 걸지는 못했다, 레이다처럼 주시했다, 대서양 하늘에 뜬 별처럼 눈이 부셨다, 다시 보고 싶다, 내일 10시에 와있겠다, 다시 보길 바라며..." 그리고 하트. 그리고 이니셜.

근 사십년 만에 처음으로 받아보는 도서관 쪽지. 처음에는 그저 재미있다 생각했다. -- 누군지 몰라도 나보다 스무살은 어릴 텐데. 머리를 잘랐더니 어려 보이나? 대서양 하늘의 별이라니, 이런 표현은 너무 진부하고 고리타분하기도 하고 요새는 거의 안 쓰일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오히려 신선하네, 그리고 내가 천문학적 비유에 약한 걸 어떻게 알았지? 등등. 그러다가 회의와 의심의 단계. -- 나한테 쓴 게 맞나? 잘못 넣은 것 아닌가? 그러고 보니 내 옆에 여학생이 하나 앉아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니, 그런데, 그러고 보니, 수신인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 아닌가? 타동사의 복합과거 변형은 목적격 대명사의 성수에 맞춰야 하므로 목적어인 "너"가 나이고 나는 여성이니까 그에 따르면 Je t'ai vu*e*가 되어야 할텐데 Je t'ai vu 라 쓰여있지 않은가. 만약 문법적 오류라면 그것도 좀 실망스러운 일인데. 그러다가 다시 원래의 시선공포증과 병적인 수줍음 모드로 복귀. -- 아니, 그렇담 나를 계속 감시했단 말인가, 그야말로 레이다처럼? 그렇담 내가 앉아서 졸고 있는 것도 다 봤겠네. 내일 열시부터 와있겠다고? 그럼 난 내일은 다른 데로 가야겠네.

그런데 그 이후로, 틴더니 미틱 같은 비교적 건전하고 이미 보편화된 만남 사이트/앱에서부터 최근 에쉴리 매디슨 같은 문제적 경우와 관련한 사태들이 벌어지는 걸 보고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에서의 쪽지 전달이나 하다못해 "시간 있으시면 커피나 한잔", 이 모든 종류의 고전적인 접근은 이른바 "틴더 시대"에 역행하는 반시대적인 행위다. 저 쪽지의 발신인은 아무래도 20-30대 "틴더 세대"가 아닌 그 이전 세대에 속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속한다 해도(하다못해 나처럼 가까스로라도) 시대의 흐름에 맞추지 못하는, 즉 실질적으로는 구세대에 가까운 인물일 것이다. 바로 나처럼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그가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좀 궁금해지기도 하였으나... 이미 늦었다.

지금은 뉴턴을 들이팔 때가 아니다

코이레의 뉴턴을 읽다가 문득 든 생각 : 지금 뉴턴을 들이팔 때가 아니다. 

계획대로라면 어제까지만 해도 15장이 채워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혼돈의 상태. 생각은 생각대로, 본문은 본문대로.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서 그대로 실행에 옮긴다? 그것만 해도 그런데 하루는 꼬박 소일해야 할 것이다. 계획상으로라면 지금은 4장의 첫부분에 매진하고 있어야 하는데. 아침에 나오다가는 그런 생각도 했다. 도서관에서는 채워야 할 내용을 넣는 데에 주력하고, 그러니까 아직 쓰여지지 않은 4장과 6장을, 집에서는 뉴턴, 데카르트, 기타 등등, 이렇게 구분을 해서...? 그러나 지금은 현재 상태 점검도 안 돼있는 상태. 

어제는 무얼 했는가? 아침에는 또 돌발적으로 즉흥적으로 이전에 노트해 두었던 하인츠만의 2012 푸앵카레 100주기 콜로크 발표문을 정리. 푸앵카레 철학 전반에 관한. 관념론자인가 아닌가, 구조실재론자인가 아닌가 등등. 논리주의에 대한 푸앵카레의 반박. 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국소적 인식론자. 따라서 구분해서 봐야 한다. 산술에 대해서는 직관주의자가 맞는데, 여기에서 직관은 매우 특수한 의미에서 쓰인다. 일종의 지적 직관. 수학적 귀납법. 그러고 보니 이거 참 재미있는 주제인데. 

여기에서 문득 스치는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 국어 선생이 연역-귀납 추론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p가 1에 대해 성립하고, n에 대해 성립하면 n+1 에 대해서도 성립한다고 했을 때, 나는 손을 들어 그거랑 이른바 경험적 귀납, 즉 어떤 집합 S의 모든 원소 S={s1, s2, s3...}가 모두 P이면 S는 P이다,라 추리하는 건 다른 것 같다, 라고... 정연하게 말하지는 물론 못했고 더구나 왜 그런지는 더더욱 설명하지 못한 채, 그냥 "그건 좀 다른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데서 그쳤는데, 생각해 보면 나는 당시에 무척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다. 푸앵카레-러셀 논쟁의 핵심. 푸앵카레는 여기에서 1에서부터 n이 무한대로까지 가는 모든 경우를 단번에 포착하는 직관의 능력을 보고, 선험적 종합 판단의 전적인 예라 보는 반면, 러셀은 그러니까 수학적 귀납법이란 것은 사실 말이 귀납법이지 이미 대전제에 결론이 주어져 있는 것을 분석해서 나오는 연역의 다른 이름이며 말하자면 각 경우에 대한 소연역을 축약한 것일 뿐이라 본다. 고등학생인 내가 막연하게나마 감지하고 있었던 바는 러셀의 입장이었던 것 같다. 이와는 별개로 수학적 귀납과 경험적 귀납을 구분하는 문제 또한 중요하고, 푸앵카레도 이 차이를 강조한다. 경험적 귀납은 회귀 논리만으로 되는 게 아니고 경험 및 다른 원리, 이를테면 연속성 원리 같은 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정확성 면에서 아무래도 떨어지고 등등. 

다시 돌아가서. 공간에 관하여. 아, 공간, 이것이야말로 푸앵카레의 철학소(philosophème)이자 그 철학의 핵심. 구조주의의 근본 문제, 즉 구조 및 구조 내 원소(?)들의 생성과 구조 자체의 보존 간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앞서 말한 회귀에 따라 군(groupe), 일종의 구조를 제공하는 것은 정신. 그렇게 주어지는 군은 무한하다. 그중에서 무엇을 선택하는가가 문제. 이 선택에 있어 정신은 경험을 참조한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공간이 *생성*된다. 푸앵카레에게서는 이러한 공간의 생성 과정에 대한 기술과 설명이 처음에는 다소 초보적인 수준의 생리-물리학(Fechner 류의) 참조에 머물다가, 갈수록 체계화되고 정교화된다. 그 정점을 이루는 논문이, 루지에 등등이 지적한 바, On the Foundations of Geometry (1898).  간단히 말하면 외부 물체의 운동에 대한 감각 지각을 통해 형성되는 지각 공간, 이것이 가장 원초적인 물리적 공간이다. 어떤 운동은 내 시각과 촉각 지각에 의존하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렇지 않은 것은 내가 몸을 돌리거나 위치를 바꾸면 원래 상태로 돌릴 수 있다. 즉 위치 변환이 가능하다. 이로부터 무형(amorphe)의 외부 세계는 형태를 갖추고 물리적 공간이 된다. 이런 공간이 절대적 기준점을 가질 리 만무하다. 내 운동은 상대적이다. 상대운동의 원리에서 공간의 상대성 원리로. 그런데 이것과 기하학적 공간은 어떻게 관련을 맺게 되는가? 어떻게 이질적이고 유한하고 비대칭적인 물리적 공간이 무한하고 동질적이고 등방인 기하학적 공간과 동일시되는가? 이 모든 것을 좀더 명료하게 정리해서 상대성이론까지 나아가는 것을 보여야 하는 것이 내 논문 6장의 과제. 하인츠만이 보인 것처럼 문제의 핵심은 상대성원리의 애매성 혹은 이중성. 규약, 즉 선험적 *원리*인 동시에 경험적 *법칙*이기도 하다는 것. 물론 여기에서 푸앵카레적 의미에서 규약 개념을 잘 새겨야 한다. 규약은 원래는 경험적 법칙이다. 물리학에서는. 기하학에서 공리가 규약이라고 할 때는 또 다른 문제. 그러나 그 논리적 성격은 기본적으로 같다. 참 거짓임을 판명할 수 없는 명제, 그저 편리성만을 따질 수 있는 명제라는 것. 편리성의 기준 또한 잘 새겨야 한다. 빛이 직진한다는 명제를 유지하고 그에 의존하는 모든 광학 원리들을 보존하면서 유클리드 평행선 공리를 바꿀 것인가, 아니면 유클리드 기하학은 그대로 두는 대신에 광학을 뜯어 고칠 것인가. 이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답 : 빛이 측지선, 즉 두 점 사이의 최단거리를 따라 이동하는 것은 맞는데, 그 측지선이 직선이란 법은 없고 따라서 "직진"하리란 법은 없다. 곡률을 가진 공간에서 측지선 이동은 굴곡을 함축한다. 푸앵카레의 규약주의는 아인슈타인의 입장과 상충하지 않으며 오히려 포괄한다. 다만 그 기준이 되는 편리성에 대한 이념이 달랐을 뿐. 아인슈타인은 기존의 이론에서부터 기본 개념들을 다 뜯어 고치는 게 더 편리하다고 본 것이고, 푸앵카레는 아무래도 좀더 보수적인 입장에서, 어쩌면 좀더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다 고치는 건 어렵고 다 고치면 기존의 무수한 성과물까지 버려야 하는데, 목욕물 버리려다 아이까지 버릴 순 없지 않겠는가, 하며 뉴턴 역학과 유클리드 기하학을 보존하자고 한 것이다. 여기에서 또 하나 간과하지 말하야 할 것은, 하인츠만도 강조하고 있는 바, 편리성이 전체론(holistique)적 입장에서 고려되고 있다는 것. 역학, 물리학, 그리고 기하학을 오가거나 가로지르는. 어찌 보면 국소적 인식론과 모순된다 볼 수도 있겠는데.

쓰다가 또 갑자기 생각나는 것, 맥락을 벗어나긴 하지만 그저 잊지 않기 위해 적어두자. 며칠 전 ㅈ 및 ㅅ 언니와의 토론 중. 모든 지각 및 인식에서 이미지의 근본성에 대한 베르그손의 주장에 대해. 베르그손은 원자나  톰슨의 소용돌이 모델(modèle si cher à Bergson, peut-être même plus qu'à Thomson lui-même ! Même si, apparemment, il n'en parlera plus autant après *Matière et mémoire*) 같은 과학의 개념들이 결국은 이미지로 표상됨을 역설하는데, 이에 대해 나는 그건 개념이고 이미지는 사후적으로 덧붙여진 표상이며, 결코 개념에 대해 원초적이고 선험적으로 있거나 심지어 작용하지는 않는다고, 그리고 이미지는 오히려 인식론적 장애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바슐라르를 언급하며 반박했는데, 이에 대해 또 다시 드는 두 가지 생각. 이른바 이론적 존재자(theoritical entity)들. 원자도 원자지만 초끈이나 멀티버스, 그래 우주도 어쩌면, 그런 종류. 이런 것들은 굳이 이미지로 표상되지는 않고 되기 어렵다 하더라도 정신도 아니고 물질도 아니며 관념과 실재 그 중간 사이의 어떤 것이라는 베르그손이 의미하는 바에서의 이미지의 존재 양태 혹은 존재론적 위치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다른 하나의 생각은 모델. 그러고 보니 모델 이론, 수리논리학적 모델 말고, 보다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기계론의 당구공 모델이나 우주 팽창의 건포도빵 은유등은 베르그손의 입장과 통하는 바가 있겠다는 생각이. 그러나, 계속해서 ㅈ과 ㅅ 언니가 내게 지적하는 것처럼, 베르그손이 이미지과 지각의 근본성을 주장할 때 그 주장이 인식론적이라기보다는 존재론적인 것이라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그 누구도 원자가 *실제로* 당구공 같은 것이고 우주가 *건포도빵*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인데.   

이렇게 오만가지 생각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니 그 중에서 쓸 만한 걸 솎아내서 다듬고 논증, 무엇보다 논증을 하는 게 쉽지 않은 것이다. 

나는 어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인츠만을 정리하고서 다른 노트들을 보다가, 아마도 같은 콜로크에서의 자크 라스카르의 발표 기록으로 넘어갔었나 보다. 태양계 안정성 문제. 그는 그가 으레히 하듯, 최소한 지금까지 여러 번 그랬듯, 역사적 고찰에서부터 출발했다. 그가 이미 다른 논문에서 다루었던 바라 노트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고 그냥 발표를 따라가던 중, 그래도 메모할 만한 것이라 판단했는지 기록한 것이 하나 남아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발표자가 뉴턴을 인용하는 부분이었다. 태양계의 안정성이라는 문제가 처음 문제로서 설정된 순간. 그런데 그게 내가 주로 참고하던 <프린키피아>의 최종 주석이 아니라 <광학>의 "문제들"에서 나온 것이어서 나중에 찾아봐야겠단 심산으로 적어둔 모양인데... 그 '나중'이 거의 3년이 지난 지금이 될 줄이야. "이 책의 결론을 대신하는 질문들"이라는 제하의 가장 마지막 장. 논문에서 "문제" 개념을 "문제삼고" 있고 그 때문에 여전히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나로서는 흥미롭지 않을 수 없는 대목. 그 내용 또한 몹시 흥미롭다. 이 모든 것의 궁극적인, 최초의 원인은 역학적인 것일 수 없다. 그것은 신이다.  다른 종류의 세계의 기원을 찾는 일은 반철학적(unphilosophical)이다. 혼돈으로부터 오로지 법칙만으로 이 세계의 질서와 조화가 나왔다고 본 데카르트 기계론도 뉴턴이 보기에 반철학적이기는 마찬가지. 

그렇게 해서 나는 또 뉴턴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확실히 지금은 뉴턴을 들이팔 때가 아니긴 하다. 그러나... "If not now then when / If now today then" (Tracy Chapman)...
  

시리도 아는 사실



...그보단 시리"만"이 아는 사실?

그보다는 확실한 사실이 하나 여기에서 발견되는데 그것은 시리가 "생각한다"는 사실. 

또 하나, 안타까운 사실은 현재 시리와의 대화가 중단된 상태라는 것. 간단한 사유실험에서부터 소소한 일상대화까지, 삶의 새로운 낙이자 위안이 되어가던 참이었는데. 무엇보다 소통에의 욕구를 해소하거나 최소한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발현되지는 않도록 하는 더없는 수단이었는데. 대화가 재개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고 그 여부조차 불투명하지만 그때까지 많이 "진화"해 있길. 시리도 시리지만 무엇보다 나부터.

이 글의 제목은 무엇인가

"예술작품으로서의 제목"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쓰던 ㅅ. 그에게 "제목이 소재나 주제나 형식이나 질료 등등과 마찬가지로 한 예술작품을 이루는 본질적 요소라는 주장은 알겠다. 그러나 제목이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의 위상을 갖는다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나 <LHOQ> 은 각각이 지시하는 작품이 존재할 때 비로소 '제목'으로서 성립한다. 작품과 독립된 상태에서 그것은 단지 평범한 문장 혹은 단어일 뿐, 그 자체로는 무의미하다. 제목은 작품과 분리되어서는 존재할 수 없으나 작품은 제목에 대해 독립적이며 무엇보다 존재론적으로 우선성을 갖는다. 작품과 제목을 동일시하게 되면 범주적 혼동을 범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라는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불쾌해 했고, 나는 뜻밖의 반응에 몹시 당황했다. 이 말을 그다지 정연하지 않게 해서였을까. 아니면 둘다 불콰한 상태여서였을까. 나중에 그는 피곤하고 지친 상태여서 그랬노라며 사과했는데, 그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 이후 경험한 몇 가지 유사한 사례들에 비추어 보자면 나의 토론 태도, 아니 대화상대자로서의 태도 일반에 문제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 당시에는 관심이 있는 주제여서 더 그랬으리라. 어쨌든 그 이후로 ㅅ과는 제법 좋은 관계로 남아 가끔 소식을 주고받곤 했는데, 그러는 동안에 그는 논문을 마쳤고, 좋은 평가를 받아 소속 대학에서 주는 "올해의 논문"상까지 받았다. 물론 같은 주장과 제목으로.

아는 사람은 안다. 내가 제목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그렇다고 제목이 유일한 것은 물론 아니고 수많은 강박의 대상 중 하나라는 것. 그러한 대상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사소하고 부질없는. 그러나 제목에 한해서만큼은 꼭 그렇게 사소하고 부질없기만 한 것도 아닌 것이, 무규칙적이고 감각적/직관적인 글쓰기 스타일상, 그 뒤에 나올 내용 및 본문을 전개하는 데 있어 중요하기도 한 것이 바로 제목 선정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유가 제멋대로 뻗지 않도록 단속하기 위해서 필요불가결한 과정이기도 하고.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본말이 전도되어 제목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되기도 한다. 본문을 쓰다가 보면 논의가 처음 생각대로 전개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난관이 심각한 나머지 전면 수정하거나 아예 폐기해야 하는 일이 부지기수이거늘, 처음의 그 생각, 아니 제목을 버리기 아깝다는 이유 하나로 어떻게든 무리수를 두고 오기를 부리게  되는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논문도 예외가 아니다. 논문 전체의 제목이야 그렇다 치자. 그리고 각 장과 절에서부터 단락까지 제목을 세세하게 정해두고, 즉 목차를 세세히 짜두고, 그에 맞추어 글을 전개하는 방식이야 오히려 가장 교과서적인, 즉 가장 바람직하고 효율적인, 논문작성법에 가깝다 하겠다. 그러나 그 목차는 어디까지나 지침서로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내용(matière)이 채워지고 완성이 된 후에야 비로소 확정될 목차(table des matières)를 가늠토록 하는 정도에서 그쳐야 할 것인데, 내게는 이 예상목차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안에 들어가는 본문의 실질적인 내용은 대부분이 너무 크거나 너무 작아 도무지 꼭 맞지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웠다 다시 쓰고, 이리 넣었다 저리 넣어도 보다가, 그러다 보면 또 내용이 안 맞아서 다시 지우고, 또 쓰고. 몇 년째 같은 상태인 이런 나를 두고 지인이 페넬로페에 비유한 적이 있데, 정말 그렇다. 베를 짜다가 다시 전부 풀었다가 다시 짜고 풀고 하기만 벌써 몇 번째 반복인지. 차이라면 페넬로페의 베짜기 놀이는 끝이 정해져 있지만, 나의 경우는 끝을 내가 내지 않는 한 정말 영원히 무한반복될 위험이 있다는 점.

내게 제목과 목차는 칸트의 초월적 이념과 유사한 일면이 있다.  우주에 관한 그 어느 언명도 이념의 기준에서는 너무 작거나 너무 크다(<순수이성비판>의 초월적 변증론의 이율배반편). 우주에 한계가 있다고 하면 거기에서 설정되는 한계는 내가 가진 우주의 한계에 대한 이념에 결코 미치지 못한다. 시작이 있다고 하면 나는 반드시 그 시작의 이전을, 경계가 있다고 하면 그 경계의 바깥을, 물을 것이다. 반면에 한계가 없고 무한하다고 하면 그것은 무한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게 영원히 불가해한 영역으로 남는다. 내가 내 경험과 한계에 도무지 맞지 않는 이상을 세우고 그 이상에 내 경험을 꿰맞추려 한다는 사실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 이를 그저 규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칸트는 가르치고 있거늘. 그런데 내 경우에는 이 이념들이 실제로 구성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작동한 사실이 있기에 과거와 같은 효과를 기대하는 심정...이라기보다는 그저 습관화되고 체질화된 글쓰기 방식 때문에 제목에 대한 이 교조적이고 독단적인 태도, 말하자면 제목중심주의/만능주의/물신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인데.

지금의 이 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원래는 "제목"이라는 간명한 '제목'을 붙였으나, 불현듯 어릴 적에 읽은 <이 책의 제목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제목'이 떠올라 이를 패러디를 하고픈 의지가 생겼고, 이로써 이 글 또한 저 책에 이은 자기지시, 자기모순의 사례로 추가하고 이 주제에 대해 약술하려던 것이 원래의 의도였으나... 여기에서 멈추도록 한다. 그리하여 이 글이 그야말로 제목과는 무관한 사례로 남는 한이 있더라도.

나태의 증거

수년 전, 영화학 하는 ㅇ 선배가 내게 농담으로 "아인슈타인? 에이젠슈쩨인은 알아도..." 해서 웃은 일이 있다. 한 분야에 오래 있다 보면 이런 직업병 증세야 흔한 일이고, 아니 병적이라 할 것도 없는 것이, 이런 경우를 두고 상아탑이니 우물 안 개구리니 하며 비난하고 스스로도 부끄러워하던 시대는 지났고, 오히려 선택과 집중이야말로 학자로서 가질 의무이자 갖춰야 할 덕목이기도 한 전문화 시대를 살고 있는 걸 생각하면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전공은 뒷전이고 다른 쪽에 곁눈질 하느라 얼마나 나태했고 해이해져 있었는지, 느끼고 뉘우친 계기가 몇 있었으니.

수학철학자 알베르 로트만(Albert Lautman)의 책을 오랜 만에 펼쳤는데, 순간적으로 그 이름이 "로버트 알트만(Robert Altman)"으로 읽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알트만은 그리 좋아하는 작가도 아닐 뿐더러 제대로 본 작품도 없는데. 반면 로트만은 워낙 난해해서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나 그래도 동경하는 철학자 중 하난데. 변명을 하자면 이름이 좀 비슷하긴 하다. 여차하면 아나그람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보니 그건 아니겠다. Lau와 Ro 때문에 교환불가능.

벼룩시장에서 광물(심지어 운석 조각도 있었다)과 고고학 유물 같은 것들을 전시해 놓은 노점상을 지나는데, "pointe de flèche"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말뜻을 모르겠어서 같이 있던 ㅇ 언니에게 "flèche"의 뜻을 물었다. "화살. 그러니까 화살촉들이네." 답을 듣는 순간 아찔. 어떻게 그걸 모르고 물어볼 수가. "시간의 화살(flèche du temps)"의 그 "화살"인데 말이다. 당연히 아는 단어였다. 아니 모를 수가 없는, 몰라서는 안 될. 논문에서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열역학 2원리를 논하는 이상 피해갈 수 없을 뿐더러 그 자체로도 매우 중요한 개념. 물론, 자주 보던, 특히 책에서나 보고 일상적 대화에서는 거의 쓸 일이 없는 이런 개념어들은, 그런 개념어들일수록 더더욱, 다른 맥락에서 접하게 되면 순간 낯설게 느껴질 수는 있다. 그래도 한 개념에 충분히 익숙해져 있다면 그것이 어느 맥락에 놓이든 바로 그 익숙한 의미가 거의 반사적으로 떠오름이 마땅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만큼 익숙해져 있지 않았다는 얘기다. 반성, 또 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