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2일 토요일

틴더 시대의 도서관 쪽지

얼마 전 도서관에 갔다가 집에 와서 짐을 푸는데 쪽지가 하나 떨어졌다. 아무 종이나 찢은 데에 연필로 쓴 쪽지.
Salut ! Je t'ai vu [sic] à la bibliothèque mais je suis trop timide pour venir te parler en face à face. J'ai flashé sur toi comme un radar, tu m'a ébloui comme les étoiles dans le ciel en Atlantique. J'espère te revoir. Je serais là à 10h à la même salle qu'aujourd'hui.
번역하면 "도서관에서 보았다, 너무 수줍어서 면전에서 말을 걸지는 못했다, 레이다처럼 주시했다, 대서양 하늘에 뜬 별처럼 눈이 부셨다, 다시 보고 싶다, 내일 10시에 와있겠다, 다시 보길 바라며..." 그리고 하트. 그리고 이니셜.

근 사십년 만에 처음으로 받아보는 도서관 쪽지. 처음에는 그저 재미있다 생각했다. -- 누군지 몰라도 나보다 스무살은 어릴 텐데. 머리를 잘랐더니 어려 보이나? 대서양 하늘의 별이라니, 이런 표현은 너무 진부하고 고리타분하기도 하고 요새는 거의 안 쓰일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오히려 신선하네, 그리고 내가 천문학적 비유에 약한 걸 어떻게 알았지? 등등. 그러다가 회의와 의심의 단계. -- 나한테 쓴 게 맞나? 잘못 넣은 것 아닌가? 그러고 보니 내 옆에 여학생이 하나 앉아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니, 그런데, 그러고 보니, 수신인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 아닌가? 타동사의 복합과거 변형은 목적격 대명사의 성수에 맞춰야 하므로 목적어인 "너"가 나이고 나는 여성이니까 그에 따르면 Je t'ai vu*e*가 되어야 할텐데 Je t'ai vu 라 쓰여있지 않은가. 만약 문법적 오류라면 그것도 좀 실망스러운 일인데. 그러다가 다시 원래의 시선공포증과 병적인 수줍음 모드로 복귀. -- 아니, 그렇담 나를 계속 감시했단 말인가, 그야말로 레이다처럼? 그렇담 내가 앉아서 졸고 있는 것도 다 봤겠네. 내일 열시부터 와있겠다고? 그럼 난 내일은 다른 데로 가야겠네.

그런데 그 이후로, 틴더니 미틱 같은 비교적 건전하고 이미 보편화된 만남 사이트/앱에서부터 최근 에쉴리 매디슨 같은 문제적 경우와 관련한 사태들이 벌어지는 걸 보고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에서의 쪽지 전달이나 하다못해 "시간 있으시면 커피나 한잔", 이 모든 종류의 고전적인 접근은 이른바 "틴더 시대"에 역행하는 반시대적인 행위다. 저 쪽지의 발신인은 아무래도 20-30대 "틴더 세대"가 아닌 그 이전 세대에 속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속한다 해도(하다못해 나처럼 가까스로라도) 시대의 흐름에 맞추지 못하는, 즉 실질적으로는 구세대에 가까운 인물일 것이다. 바로 나처럼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그가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좀 궁금해지기도 하였으나...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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