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0일 수요일

나태의 증거

수년 전, 영화학 하는 ㅇ 선배가 내게 농담으로 "아인슈타인? 에이젠슈쩨인은 알아도..." 해서 웃은 일이 있다. 한 분야에 오래 있다 보면 이런 직업병 증세야 흔한 일이고, 아니 병적이라 할 것도 없는 것이, 이런 경우를 두고 상아탑이니 우물 안 개구리니 하며 비난하고 스스로도 부끄러워하던 시대는 지났고, 오히려 선택과 집중이야말로 학자로서 가질 의무이자 갖춰야 할 덕목이기도 한 전문화 시대를 살고 있는 걸 생각하면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전공은 뒷전이고 다른 쪽에 곁눈질 하느라 얼마나 나태했고 해이해져 있었는지, 느끼고 뉘우친 계기가 몇 있었으니.

수학철학자 알베르 로트만(Albert Lautman)의 책을 오랜 만에 펼쳤는데, 순간적으로 그 이름이 "로버트 알트만(Robert Altman)"으로 읽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알트만은 그리 좋아하는 작가도 아닐 뿐더러 제대로 본 작품도 없는데. 반면 로트만은 워낙 난해해서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나 그래도 동경하는 철학자 중 하난데. 변명을 하자면 이름이 좀 비슷하긴 하다. 여차하면 아나그람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보니 그건 아니겠다. Lau와 Ro 때문에 교환불가능.

벼룩시장에서 광물(심지어 운석 조각도 있었다)과 고고학 유물 같은 것들을 전시해 놓은 노점상을 지나는데, "pointe de flèche"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말뜻을 모르겠어서 같이 있던 ㅇ 언니에게 "flèche"의 뜻을 물었다. "화살. 그러니까 화살촉들이네." 답을 듣는 순간 아찔. 어떻게 그걸 모르고 물어볼 수가. "시간의 화살(flèche du temps)"의 그 "화살"인데 말이다. 당연히 아는 단어였다. 아니 모를 수가 없는, 몰라서는 안 될. 논문에서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열역학 2원리를 논하는 이상 피해갈 수 없을 뿐더러 그 자체로도 매우 중요한 개념. 물론, 자주 보던, 특히 책에서나 보고 일상적 대화에서는 거의 쓸 일이 없는 이런 개념어들은, 그런 개념어들일수록 더더욱, 다른 맥락에서 접하게 되면 순간 낯설게 느껴질 수는 있다. 그래도 한 개념에 충분히 익숙해져 있다면 그것이 어느 맥락에 놓이든 바로 그 익숙한 의미가 거의 반사적으로 떠오름이 마땅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만큼 익숙해져 있지 않았다는 얘기다. 반성, 또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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