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1년 전. 당시 살던 지붕밑 하녀방에는 침대가 없었다. 대신에 메트리스를 올려두도록 만든 메자닌이 있었다. 사실 메자닌이라 하면 좀 거창하고, 두꺼운 나무판자를 두 벽 사이에 걸쳐놓은 것이 전부. 게다가 일단 올라가면 앉아있을 수도 없을 정도로 천장에 가까운 높이. 아주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르내릴 때는 사다리를 타야했는데, 그 사다리란 것도 사실 매우 낡고 부실한 것이라 아무리 익숙해졌다 싶어도 늘 조심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곳에서 산 2년 동안 총 2회의 추락사고가 있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11년 전, 날짜를 보건대 아마도 요맘 때였던 것 같다.
온몸에 멍이 들었지만 그보다는 책상이 파손된 사실이 당시로서는 더 속상하고 큰 일이었다. 떨어지면서 메자닌 바로 밑에 놓아둔 책상과 부딪히는 바람에 책상판의 모서리가 떨어져 나간 것. 내 몸이 던진 충격이 적진 않았겠으나, 그 책상이란 것도 톱밥을 채워 만든 허술한 제품이었던 것이다. 손상된 모서리를 보며, 새로 사야 하나, 한숨을 쉬다가, 결국에는 그냥 쓰기로. 파손된 부분에다가는 어딘가에서 주워온 브레송 영화 카탈로그의 포스터 사진들을 잘라다가 붙였다. <잔 다르크의 재판>, <소매치기>, <돈> 등등. 누군가 와서 보더니 브레송을 좋아하냐고 물었는데, 마침 가지고 있었고 또 잘라서 써도 아깝지 않을 만한 것으로 골랐을 뿐. 오히려 이를 계기로 브레송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 이후로 중간에 몇 번 교체의 기회가 있었고 실제로 교체하기도 했으나, 결국 원래의, 그 문제의 책상판으로 돌아와서 지금껏 쓰는 중. 놀라운 것은 책상에 달려있던 서랍 같은 부위는 몇몇 연유로 해체 분리했음에도, 이 책상판만은 여전히 보유하고 또 사용중이라는 사실. 브레송 사진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남아 수난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생각해 보니 나의 파리생활 12년을 함께 한 유일한 가구인 것 같다.
그 책상의 다리...라기보다는 지지대 구실을 하는 나무 판대기 또한, 부실하긴 해도 계속 쓰고 있었다. 며칠 전, 또 다른 불의의 사고가 있기 전까지는.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에 서서 기지개를 켰는데 갑자기 눈앞이 캄캄했다. 가끔 있는 가벼운 현기증인가 싶었는데, 웬걸, 몸이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사태에 이르렀다. 순간적으로는 사태가 파악되지도 않았다. 몸이 쓰러진 것까지는 알겠고, 다른 무언가가 쿵 하고 쓰러지는 소리를 아련하게 들은 듯도 했다. 의식은 있었다.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서 사태를 파악해야겠는데, 하는 생각까지는 했으니까.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고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몇 초 지나니 감각이 돌아와서 사태를 확인해본즉슨, 책상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 위에 올려놓은 물건들도 함께. 몸이 쓰러지면서 책상을 쳤고, 그렇잖아도 부실했던 다리가 충격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종류의 실신은 처음이었다. 원인이 무엇인가, 수면 및 영양 부족인가, 아니, 그보다는, 이 새로운 종류의 지각경험을 어떻게 전유할 것인가 등등의 상념에 빠진 것도 잠시, 사고의 방향은 즉시 현실적인 쪽으로 전환되었다. 이제 와서 다리를 새로 사다가 끼워야 하나, 속상해 하던 중, 벽장에 넣어둔 두 개의 이동식 난방기 생각이 났다. 난방 시설이 따로 없는 이 집의 유일한 난방 수단. 책 몇 권을 받치면 높이가 얼추 맞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지금은 임시로 이동식 난방기를 지지대로 쓰고 있는 중. 임시라고는 하나 아마도 마지막이 될 것이다. 책상의 수난도 이것이 마지막이길.
그리하여 지금은 임시로 이동식 난방기를 지지대로 쓰고 있는 중. 임시라고는 하나 아마도 마지막이 될 것이다. 책상의 수난도 이것이 마지막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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