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앵카레의 괴팅엔 강연을 읽다. 아, 괴팅엔! 20세기 초 학이란 학은 다 거기에서 나왔다"고 일기에 적던 오륙년 전의 나와, 괴팅엔행 기차에서 "괴팅엔, 괴팅엔이라, 많이 들어봤는데, 어디에서 들었더라?"며 머리를 긁적였다가 도착해서야 비로소 무지/망각을 깨달은 두 해 전의 나, 그리고 이 두 일화를 떠올릴 때마다 부끄러움에 몸둘 바를 몰라 하며 스스로의 과학사가로서의, 아니 학자로서의 자질을 의심하는 요즈음의 나. "잘 잊는 사람은 복되다, 자신의 허물까지 덮어버리는즉" (니체, 선악을 넘어서). 기억력이 지금보다 좋았던 시절엔 하루에도 몇번 씩 부끄런 기억을 끄집어 내고는 몸서리치곤 했다. 심지어 허물이 될 만한 걸 행하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기의식이나 의지조차 없었거나 있었다 해도 그 효력이 지극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을 아주 어린 시절조차도, 그보다는 조금 덜 어린 시절의 내겐 받아들이기 힘든 수치스런 기억이렀다....라고 적은 것이 2010년이니 이도 벌써 자그마치 5년 전의 일이다. "푸앵카레의 괴팅엔 강연"을 읽은 것은 2005년이고, 괴팅겐행 기차를 탔던 것은 2008년. 그리고 저 두 일화를 떠올리며 몸둘 바를 몰라했던 것은 2010년. 후자의 상황은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즉 괴팅겐이라는 이름을 접할 때마다 반사적으로 두 일화가 떠오르고 또 부끄러움에 몸서리쳤다는 얘긴데, 문제는 저 이름이 내 전공과 주제의 특성상 도대체 피해 가기 힘들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럴 것 같다는 사실이다. 망각의 교설보다는 자의든 타의든 영원회귀 모델을 따라야 할 상황.
괴팅겐이 다시 떠오른 것은 어제 참관한 한 학술행사 덕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전파 및 해석이 주제였으니 말 다했다. 괴팅겐을 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가우스, 그리고 가우스의 제자 리만이 다 괴팅겐에 있지 않았는가.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포문을 실질적으로 연 리만의 1854년 교수자격논문, <기하학의 기초를 이루는 가설에 관하여>는 리만이 가우스의 주문에 따라 쓰고 실제로 괴팅겐 대학의 청중 앞에서 읽은 것이었다. 이 강연에는 수학과보다는 타 학과에서 많이 왔다고 전해진다... 여기에서 "많이"라는 부사는 아주 상대화해서 이해해야겠으나. 이후 20세기를 전후로 한 시기, 괴팅겐은 영화계의 헐리웃처럼 과학계의 많은 스타들을 배출하고 또 끌어들였다. 당장 떠오르는 이름만 기억에 의존해서 열거해 보면, 프레게, 힐베르트, 민코브스키... 그리고 아마도 플랑크도? 그리고 이번 강연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슈바르츠쉴트도 1901년에서 1909년까지 괴팅겐에 머물고, 체류 과정에서 우주론적 사변에 관심을 가졌다 한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푸앵카레의 1909년 괴팅겐 강연이 힐베르트의 초청에 따른 것이었다는 것. 이들은 힐베르트의 <기하학의 기초> 출간 후 벌어진 논쟁으로 다소 의가 상한 상태...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든 좁힐 수 없는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었던 차였다. 그래도 힐베르트가 가우스를 기념하는 행사를 준비하면서 푸앵카레를 초청하면서 둘 사이에 데탕트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나 추측할 수 있으나, 그러나 모르는 일, 이라 발표자는 덧붙였다. 그 행사란 다름이 아니라 가우스가 삼각형의 합이 실제로 180도인지 아니라면 얼마나 어긋나는지를 경험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괴팅겐 인근의 산 꼭대기 세 개를 골라 그 사이각들을 실제로 측정한 실험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가우스의 기하학적 경험론의 증거이자, 혹은 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한 경험적 반증이라 평가되는 바로 그 전설적 측정이다 (그저 전설이라는 견해도 있다. 갈릴레오의 사탑 실험처럼 말이다). 힐베르트는 초청장에서 일종의 소풍격으로 가우스가 실험 대상으로 삼은 산을 직접 탐방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실제로 성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는 것이 발표자의 전언.
이 모든 것과 별개로, 이제는 괴팅겐을 생각하면 저 유수한 과학자, 수학자, 철학자들의 이름만큼이나 바르바라가 떠오르는 것 또한 사실이니.
바르바라의 "괴팅겐"은 당시 괴팅겐 대학에 다니던 한 팬의 초청으로 괴팅겐에 가서 보고 느낀 내용을 담은 노래다. 아름다운 노래. 그러나 나에게는 또 하나의 나태의 증거이자 분열의 상징. 반성. 또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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