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다리는 동안(Before)... 뼈 아픈 후회(After) : 히스테리의 승화(?)를 위하여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에 들었던 "철학연습"이란 이름의 철학과 전공수업. 내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수업 중 하나. 요새도 수업 준비하면서 혹은 도중에도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곤 한다. 언젠가 이 수업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기를. 그런데 오늘의 마들렌느는 당시 같이 수업을 들었던 동학의 발제문. 이면지 활용을 위해 보관해 둔 모양이다. 황지우의 시가 인용되어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국문학도가 썼나 보다. IMF 직후 대학가가 이전과는 다른 의미에서 뒤숭숭하던 시절, 그러나 그 수업에서는 모두가 참 순수하고 진지했다. 그런데 마들렌느가 또 다른 기억을 환기했으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잘,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전문)  

그때만 해도 몰랐을 것이다. 이 시의 모든 구절을 매일, 아니 매 순간, 사는 날이 오리란 것을. 아니 에르노가 "단순한 열정"에서 묘사한 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래서 실제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리란 것을. 그리하여 인생의 한때를 바로 그 기다리는 일에 고스란히 바치고 그로 인해 하마터면 인생을 망칠 뻔하게 되리란 것을.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이 "내 가슴에 쿵쿵거"리다 못해 나의 모든 의식을 지배하던 그때. 문 앞에 네가 와 있는 상상이 너무도 쉽게 실제로 네가 와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로 변해버리던 그때. 이론으로만 알고 있었던 지각의 이론의존/적재성이 철저하고 처절한 경험으로 입증되던 그때. 

그 모든 것들로 멀어진 지금. 같은 발제문에 인용된 황지우의 또 다른 시가 눈에 들어온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니 부어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놓아 주는 바람뿐 ("뼈아픈 후회" 전문)

치기 어리고 날이 서 있으나 그런만큼 제법 날카로운, 청춘만이 느끼고 쓸 수 있는 감성. 그러고 보니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네라"(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과 대조/대구를 이룬다. 한쪽은 나를 사랑하느라 아무도 사랑하지 못했고 다른 한 쪽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 아무도 사랑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결과는 같다. 결국 같은 얘기. 

이제사 드는 의문. 승화와 히스테리의 차이는 원인은 같은데 (실연, 억압된 충동, 실현되지 못한 욕망 등등) 결과가 다르다는 데 있는가? 다음 학기 수업을 이렇게 시작해 볼까?

수업을 이렇게 사적인 결산(règlement de compte)으로 수단화하면 안 되겠으나... 안될 것은 또 뭔가?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푸코가 스스로 광기의 나락에 빠지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쓴 것이 바로 "광기의 역사"였던 것을 기억한다면 (이 사실을 시인 김선우의 글에서 처음 접한 후 아직까지 "팩트체크"를 못 했으나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수업에서 다루려는 저자가 푸코를 따르고자 한 것이라면, 이런 사적인 관심과 동기가 학문적으로나 교육적으로나 온당하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한편으로 이 역시 일종의 "승화"이랄 수도? 히스테리의, 히스테리에 의한, 히스테리를 위한 승화... 이 모든 것이 광기의 발로가 아니라면!

인생 최고 흑역사, 계단 인사말... 그리고 흑역사는 계속된다?


- 이전 포스트 Scarph : PauvRe, Haute, Solitaire et melAnColique: 인생 최고 흑역사와 후일담 에 이어진 글. 그렇지만 실은 그 글 앞에 쓰여진 글. 인생 최고의 흑역사를 쓴 바로 그날 하루 전에 써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것은 계단 인사말이 되겠다.

3 juil. 2019 à 21:50

감사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책이나 다른 글들로 접했던 여러분들을 직접 만나 뵙고 또 이렇게 앞에 모시고 발표까지 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발표 기회를 주신 학회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아울러 발제문을 사전에 준비하지 못하고, 또, 발표 형식 면에서도, 준비한 원고를 그대로 읽는 (그것도 객석과 공유하지도 않고 혼자서만) 유럽 인문학의 전통을 그대로 답습한 점에 대해서도, 양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게는 이 자리가 몇 가지 점에서 감회가 더더욱 새롭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11년 전인 2008년 바로 이 자리에서 세계철학자대회가 열렸고 당시 파리에서 유학 중이던 저는 처음으로 모국에서 발표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때 계셨던 몇몇 선생님들을 이 자리에서 다시 뵙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09년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럽 분석철학회에서 발표할 기회가 있었고, 그때 택한 주제가 바로 아돌프 그륀바움의 유신론적 우주론 비판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손을 놓고 있었던 이 주제를 소환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꼭 10년 뒤인 지난해, 논문을 마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륀바움의 별세 소식을 접했습니다. 10년 동안 이 주제와 관련해서 발전하거나 달라진 논의는 없는지 확인해 보고도 싶었습니다. 오늘 발표는 차후 이 주제에 대해 보다 본격적으로 논의를 전개하기 위한 시론이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어제 김상욱 선생님 발표에서 나왔던 "우주는 심심하다"라는 명언, 기억하실 겁니다. 우주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어떤 의도 없이 생겨나 또 운행되고 있다. 또 그 안의 운동도 특정한 의미 없이 진행된다. 우주에 대한 과학자의 생각을 대변한 것이고 여기 계신 철학자 여러분도 아주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실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요? 중요한 학회 발표를 앞두고도 준비가 미진한 상황에서 세상이 내일 멸망했으면, 아니 아예 소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혹시 해본 적 없으신지요? (그런 생각 해본 사람이 최소한 한 사람 있는데 누구라고 얘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이 세상이 소멸해서 없어진 상황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해보게 되는 상상입니다.

그런데 인간을 포함한 생물이나, 지구나 태양을 포함한 천체들이, 개별적으로는 생성하고 소멸한다 해도, 그 모든 것을 포괄하고 포함하는 총체로서의 우주 전체가 생성하고 소멸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요? 사실 상상조차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주가 늘 있었던 것이 아니고 없는 것이 가능하다. 우주가 없었거나 앞으로 없어지는 일이 가능하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던 이러한 일들이,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기독교-유대교의 도그마를 거쳐서, 가능할 뿐 아니라 당위적인 사실이 되었고, 이로부터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문제가 제기되었다. 바로 그 문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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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인사말을 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설마 발표문을 준비하지 못하고, 발표문을 준비하지 못했더라도 발표장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가던 도중에 내리리라고는, 그리하여 이름하여 "서울역 회군"의 역사를 쓰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 그런데 어제 자정이 마감이라던 그 글은? 아직 못 썼다... 그리고 학회지 담당인 편집이사님께 메일로 슬쩍 마감 연장 여부를 물어봤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학회 대표 계정으로 문의했던 것임을 조금 전에야 알았다. 이쯤 되면 이 학회하고는, 아니 이 학계와는 도통 연이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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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최고 흑역사와 후일담

- 이전 포스트 Scarph : PauvRe, Haute, Solitaire et melAnColique: 인생 최고 흑역사와 후일담 에 이어진 글.
- 이번에도 아스테릭스(*) 각주는 사후 추가.


4 JUIL. 2019 15:39

인생 최고의 흑역사를 기록하다.

5일 전에 쓰던 그 발표문, 결국 끝내지 못했다. 게다가 발표마저도 펑크를 내고서 연구실로 와서 앉은 지금. 처참하지만 의외로 그렇게까지 비관적이지는 않다.

원인? 시간은 넉넉했다. 그렇지만 이래저래 또 집중을 하지 못한 채로 몇 주를 흘려 보냈다. 여기저기 발표한다고 광고는 다 해놓고. 당장 8월과 9월 발표*가 예정되어 있는데 그건 다 어쩌려고? 다른 발표가 문제가 아니라 다른 건 다 해도 이것만큼은 놓치면 안 되고 제일 잘해야 했거늘.

비극적인 결말을 어느 정도는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제? 지난 목요일, 그러니까 1주일 전. 23일 발표문 마감을 넘긴 후 그래도 3~4일의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목요일은 이모 생일이었다. 그전에, 이번에도 내 쪽에서 먼저 자진해서 제안을 해놓고서 바로, 후회는 아니고 뭐랄까, 불길한 예감 같은 게 있었다. 이상적으로라면, 아니 예상했고 충분히 또 가능한 각본대로라면, 지난 목요일까지는 발표문에 이어 번역 발제문까지 다 마쳐놓은 상태에서 홀가분하게 저녁을 보내고 파티를 즐길 수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이렇게 무리하게 일정을 잡아 놓으면 그 일정에 맞추려 스스로에 동기를 부여하기보다는 일은 일대로 못하고 신의는 신의대로 저버리게 될 것은 불보듯 뻔하지 않은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으면서도 그리고 나중에 이내 후회를 했으면서도 취소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 거대하고 중요한 일을 취소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이후로 이어진 내 행동 하나 하나가 오늘의 이 비극적 결과에 대한 복선이요 그 결과로 이어지도록 한 계기로 작용했다. 지난 목요일까지는 그 전날까지 밤을 새고 매진한 후유증에 시달렸고, 금요일 내내 멍하니 있다 오후가 되어서야 목요일까지 냈어야 할 발제문을 완성해서 보내고, 주말에는 넋 놓고 <마농의 샘>과 남북미 정상회담을 지켜 보았고, 중간중간에는 단체 대화방에서 누군가의 이름과 메세지를 보고는 착잡한 기분과 회한과 망상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작업에 돌입한 것은 아마 이번 월요일이었을 것이다. 그냥 지난 목요일 미완성본으로라도 보냈더라면? 그보다 이번 학회에서 아예 흔적을 지웠으니 그게 더 낫다는 생각도 드나... 그럴 거면 미리 못하겠다 하든지! 어제 메밀을 먹고서 우황청심원에 항히스타민제에 온갖 약을 먹어대는 소동을 벌인 것은 또 어떤가. 네가 어제 저녁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 존 것이 과연 메밀 때문이기만 할까?

이 일은 내 커리어 상의 중대한 오점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40대가 훌쩍 넘었는데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내 커리어. 신의는 신의대로 못 지키고 실력은 실력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실력이란 게 있다면! 어쩌려는 건가? 어쩌자는 건가? 정말이지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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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다가 겨우 생각났다. ㄱ 재단에서의 발표였다. 이것도 준비를 많이 못한 상태에서 겨우 끝마쳤으나... 발표장까지 무사히 갔던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자위하고 말 정도로 내 상태는 심각했던 것이다.
** 그리고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지금. 당시 미완성으로 남긴 발표문 앞에 앉았다. 그렇게 대형사고를 친 후, 올해 안으로 완성해서 학회지에 투고하겠다고 공언하고 또 스스로도 다짐을 해두었는데, 학회지 마감기한이 바로 오늘 자정인 것이다. 정확하게는 어제까지였으나 오늘까지는 가능하다는 답변을 오늘 아침에 편집국으로부터 받았다. 아무래도 무리인 것이 사실이지만, 이번에 마무리하지 않으면 다시 기회가 없을 것을 안다. 어제까지 끝냈으면 좋았겠고, 원래는 토요일부터 이틀 꼬박 투자해서 마무리할 계획이었으며, 그 계획은 반드시 성사되어야 했으나, 또 4개월 전과 비슷하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주말을 허망하게 보내버렸다. 4개월 전에 남북미 정상의 만남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조국 이슈가 있었고, 누군가는 또 잊을 만하면 나타나서 마음을 헤집어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다 오늘은 또 부모님 결혼기념일. 아침에 안될 줄 알면서 저녁 외식 제안을 했으나 정오를 향해 가는 지금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아 예약을 하고 두분만 가십사 말씀드린 참이다. 그래서 이곳 공부방 근처의 한 곳을 추천해 드렸더니 엄마가 됐다고, 동네에 생각해 둔 곳이 있다고, 어딘지는 비밀이라고 하신다.

... 그럼 이제 그건 됐고 이제 꼭 12시간 남았다. 세상이여, 12시간 후에 다시 만나세.

... 그런데 어디까지 했더라?

인생 최고 흑역사의 서막

- 다음은 지금으로부터 4개월 전인 6월 29일, 일기를 목적으로 "베어"라는 이름의 앱을 다운로드 받은 뒤 작성한 첫 엔트리다. 왜 4개월 전 일기를 이 시점에서 끄집어내는지는 차차 밝혀질 것이다.
- 아스테릭스(*)로 표시된 각주는 4개월 후의 시점에서 추가된 것이다.



#일기

29 JUIN 2019 À 18:58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일단 제목을 다는 일부터가 문제였는데, 이것 봐라, 제목 대신 태그 또는 해쉬태그를 달았더니 말끔히 해결되는구나. 제목과 주제어는 다르다. 주제어를 다 포괄하면서 그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단 하나의 문장이나 단 하나의 구절이나 심지어 단 하나의 단어로 제한되는 것이 제목이다. 반면 주제어는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 존재를 필요 이상으로 늘리면 안 된다는 오캄 면도날 원리의 지배를 받을 필요도 없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쓰던 에디터, 지금은 이름도 생각이 안 나는 바로 그 일기 앱* (지금 새로이 시작한 이 "베어"는 n번 째로 접한 앱이다)의 "폴더"에 대한 설명이 생각난다. 폴더라는 기능 혹은 특성에 대해 그 에디터의 개발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폴더는 그 자체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개별적인 글들이고 폴더는 그 글들을 묶어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나는 그때까지 보편자 문제에 대한 그렇게 간명한 설명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설명 덕에 범주가 무엇인지, 보편자 문제의 쟁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유명론이어야 하는지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듯 어떤 텍스트나 이론이 아무리 들이파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아, 그런 뜻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일이 있다. 사실 많았다. 거의 대부분 그랬다. 푸앵카레의 규약 개념이 그랬고 또... 이해하는 일이 득도나 계시처럼 일시적으로 혹은 우연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분명 문제다.

지금 쓰고 있는 "그륀바움의 기원적 실존 문제 비판". 발표문 마감일은 진작에 넘겼고 발표일을 4~5일 남겨둔 시점에서 아직도 이 문제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중에 있다. 그야말로 "무로부터의 창조"가 아니고 비록 10년 전이긴 하지만 기존 발표문을 출발점으로 삼았기에 어느 정도 수월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웬걸, 보면 볼수록 10년 전에 내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을 용감하게 했는가를 깨닫고 있는 중이다. 2009년 9월에 발표**한 것이니 조금 있으면 꼭 10년! 준비 과정은 무척 괴로웠으나 어찌 어찌 발표를 끝낸 후,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나가다가 우연히 공중전화 박스(당시만 해도 드물지 않았다)에 쓰다 만 전화카드(이 역시 여전히 사용되던 때였다)를 발견하고 환희에 차서 파리와 피사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진 환상적인 이탈리아 여행. 내 생애 최고로 아름다운 순간이었고 내 스스로도 가장 빛난다고 느꼈던 순간이었다. 발표가 이 모든 황금기의 말하자면 원인을 제공한 사건이었거늘, 이제사 다시 보니 내용도 별로 없고 그나마 있는 내용도 한심한 수준이었다니.

일단 오늘은 이 정도로 해두자. 일기는 이제 이 "곰"에게 맡겨도 되겠음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그리고 필력이 그래도 좀 되살아나고 있다는 느낌을 얻은 것만으로도 일종의 성과라 해도 좋겠다. 이제 밥을 먹고 다시 그륀바움으로 돌아가자. 발표문은 어떻게든 오늘밤 안으로 끝내야 한다. 되도록 끝내서 내일 감자 수확***에도 참여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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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생각이 났는데 이름이 journl 이었다. 너무도 오래 전, 아마 2004년 아이북에서 쓰던 앱일 것이다.  당시만 해도 그리 안정적인 앱은 아니어서 쓰던 도중에 날린 글도 허다했음에도 한동안은 열심히 꽤나 썼다. 백업파일도 남겨 놓았었는데 이후 아이북에서 맥북프로로, 다시 맥북프로에서 지금의 맥북에어로 기변을 거치는 과정에서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다. 한편 문제의 앱 journl 에 대해 구글링을 해보니 같은 이름의 iOS용 앱이 있고 꽤 괜찮아 보이는데 그 사이에 개발이 중단된 모양이다.


** 스위스 주네브(제네바)에서 열린 유럽분석철학회 발표였다. 국제 학회 발표로는 2008년 서울에서 열린 철학자대회 이후 두 번째이긴 하지만(두 번째이자 현재로서는 마지막...) 홈그라운드가 아니고 아무 연고가 없는 이국땅에서 혼자 발표를 한 것은 당시 내게는 나름대로 큰 성과였다. 그리고 그 "기록"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 외사촌 ㅇ 언니의 형부가 교외에서 주말 농장을 일구는데 솜씨가 좋아 감자뿐 아니라 고구마, 무, 가지 등등 계절별로 다양한 작물을 수확하고 있다. 너무나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였는데 지금껏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지난 주말인 20일에도 고구마 수확이 있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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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꿈 (feat. Aselm Kiefer & 김종학)


Anselm Kiefer, Dormeur du val (extrait)
Anselm Kiefer, Dormeur du val (extrait)
Anselm Kiefer, Dormeur du val (extrait)
빌헬름 뮐러의 시에 프란츠 슈베르트가 곡을 붙여 만든 <겨울나그네>. 흔히 <겨울나그네>를 두고 멜로디가 낭만과 서정의 극치인 데 반해 가사를 들어보면 "찌질"하다고들 한다. 실연의 아픔을 호소하는 청년의 자기 연민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꿈꾸고 그 꿈을 집요하다 싶게 좇는 사람은 타인의 눈에는 그렇게 비칠 법도 하다. 게다가 그 꿈이 가망도 없고 그럴 만한 가치도 없어 보이는 것이라면.

그중에서 11번째 곡 "봄꿈(Frühlingstraum)"은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자주 생각나고 또 자주 듣던 곡이다. 일종의 봄타령처럼. 5월에 화사하게 피어오른 듯한 찬란한 꽃들, 새들이 지저귀는 푸른 들을 꿈꾸던 몽상가. 새벽에 수탉이 울어 눈을 뜨니 세상은 여전히 춥고 어둡고 게다가 까마귀까지 울어대고. 유리창에 낀 성에도 마치 누군가 꽃을 그려놓고서 한겨울에 꽃타령하는 몽상가를 비웃는 것만 같다. 그래도 몽상가는 여전히 꿈꾼다. 사랑을 위한 사랑을. 어여쁜 소녀를. (아마도 소녀의?) 마음과 입맞춤을. 다시 수탉이 울고 마음이 깨어난 몽상가는 홀로 앉아서 꿈을 되새기며 눈을 감는다. 그의 가슴이 뛴다. 언제쯤이면 창가에 푸른 잎이 돋을 것인가? 언제쯤이면 사랑하는 이를 품에 안을 수 있을 것인가?*

안젤름 키퍼는 내가 제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현대 작가다. "좋아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은"이 좀 더 정확하겠다. 지난 20여 년 동안 두어 번 전시를 가본 것이 고작이니까. 세간의 팬덤 문화나, 꼭 대중문화가 아니더라도, 문화 및 예술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바, 그 표현과 방식에 있어 무섭도록 가속화되고 다각화된 수용 패턴에 비추어 볼 때, 나는 그의 편입을 자처하기엔 너무도 게으른 관객인 것이다. 꼭 전시 현장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다른 매체를 통한 접근도 충분히 가능하고 오히려 그 가능성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적어도 이 점에 있어서는 변명의 여지는 있다. 키퍼는 규모와 재료/질료와 재질과 장소적 맥락을 중시하는 구상을 추구하고, 그러한 작품의 속성상 감상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작과의 직접적 접촉을 필요로 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 것이다.

2015년 말에서 2016년 초까지 파리는 키퍼의 세상이었다. 작가는 콜레주드프랑스에서 강연을 했고, 라디오 프랑스퀼튀르에 여러 번 출연했으며, 국립도서관과 퐁피두센터에서 동시에 특별전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출연한 라디오 방송을 열심히 들었고, 국립도서관 전시는 틈만 나면 갔고, 퐁피두 전시에도, 언제나처럼 ㄴ 언니 덕분으로, 여러 번 갈 수 있었다. 2015년 11월 13일에 일어난 테러 때문에 모든 파리가 충격에 빠져 있었고 나 역시 그러했지만, 아니 내게 그 충격과 그 뒤로 이어진 불안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았지만, 키퍼는 버틸 수 있었던 여러 이유 중 하나였다. "내가 논문이 늦어지는 바람에 급기야는 이런 일마저 겪는구나"라고 나약하고 비겁한 생각에 빠지는 대신에, "내가 키퍼를 보려고 논문을 늦췄다"라고 공언할 정도의 긍정과 낙관을 확보할 수 있었고, 덕분에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절박하고 절망적이기까지 당시의 상황을 버틸 수 있었다. 기나긴 겨울을 버티게 해주는 봄의 꿈이었달까. 

사실 키퍼를 "꿈"으로 "엮"기에는 좀 무리...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꿈은 곧 신화이고 이상이고 관념이기도 한데 이는 독일 민족의 신화, 탈무드 신화, 연금술 등등 그의 라이트모티프요 그의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김종학, <잡초> (1987)

원래는 키퍼의 작품론을 이렇듯 장황하고 어설프게 개진하려던 건 아니었다. 오래 소재로 묵혀둔 화두 중 하나가 "봄꿈" 덕분에 소환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덩달아 김종학의 작품도. 지난겨울 서소문 시립미술관에서 김종학의 <잡초>를 보고서는 키퍼의 바로 저 작품을 떠올렸었다. 김종학은 저런 "꽃그림"을 많이 그린 반면에, 키퍼의 저 작품은 그의 세계에서 예외적으로 밝고 화사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그림의 제목은 "무도회에서 잠든 자 (Dormeur du val)", 랭보의 시**에서 따왔다. 랭보의 시는 비극이다. 햇빛이 찬란한 푸른 들판에 젊은 병사가 하나 평화롭게 누워 있는 풍경인데 알고 보니 병사는 숨을 쉬지 않고 붉은 상처 구멍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병사 또한 꿈을 꾸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역시 봄을 꿈꾸며 기다리는, "겨울나그네"의 그 마음이지 않았을까.



* 여기에서 따온 가사의 (구글 번역을 초역으로 한) 의역이자 자유로운/창조적인 해석. 가사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

Ich träumte von bunten Blumen,
So wie sie wohl blühen im Mai,
Ich träumte von grünen Wiesen,
Von lustigem Vogelgeschrei.


Und als die Hähne krähten,
Da ward mein Auge wach;
Da war es kalt und finster,
Es schrieen die Raben vom Dach.


Doch an den Fensterscheiben,
Wer mahlte die Blätter da?
Ihr lacht wohl über den Träumer,
Der Blumen im Winter sah?


Ich träumte von Lieb' um Liebe,
Von einer schönen Maid,
Von Herzen und von Küssen,
Von Wonn' und Seligkeit.


Und als die Hähne krähten,
Da ward mein Herze wach;
Nun sitz' ich hier alleine
Und denke dem Traume nach.


Die Augen schließ' ich wieder,
Noch schlägt das Herz so warm.
Wann grünt ihr Blätter am Fenster? 

Wann halt' ich dich, Liebchen, im Arm?

** C’est un trou de verdure où chante une rivière
Accrochant follement aux herbes des haillons
D’argent ; où le soleil, de la montagne fière,
Luit : c’est un petit val qui mousse de rayons.

Un soldat jeune, bouche ouverte, tête nue,
Et la nuque baignant dans le frais cresson bleu,
Dort ; il est étendu dans l’herbe, sous la nue,
Pâle dans son lit vert où la lumière pleut.

Les pieds dans les glaïeuls, il dort. Souriant comme
Souriait un enfant malade, il fait un somme :
Nature, berce-le chaudement : il a froid.

Les parfums ne font pas frissonner sa narine ;
Il dort dans le soleil, la main sur sa poitrine
Tranquille. Il a deux trous rouges au côté droit.

발자국




선명하게 찍혔다가도 바로 지워지고 또 다른 이의 것과 뒤섞여 구분되지 않고 그러다 또 새로 나고 그리고 나서 또 새로 지워질진대, 어찌 지나온 것에 매이고 또 새로 만들어갈 것을 두려워 하랴.

-- 서울 종로구, 2018년 11월 첫눈 오던 날






보티첼리 비너스와 카카오 어피치


- ㅁ 에게

기억하는지? 2012년 너랑 같이 피렌체에 갔을 때였어. 휴대용 클리넥스를 네가 내게 사주었어. 
보티첼리의 비너스가 새겨진. 내가 이걸로 코를 풀지는 못하겠다고 하니 네가 그랬어. 심사 받는 날까지 아껴 두었다가 끝난 후 감격의 눈물을 닦으라고. 그때만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루어질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6년도 훨씬 넘게 걸릴 줄이야. 

그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여러 번 꺼내 봤어. 그때마다 생각했어. 빨리 감격의 눈물을 그 휴지로 닦을 날이 왔으면 하는 희망, 아니, 단지 왔으면 하는 희망과 기대에 머물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오도록 해야겠다는 의지를 되새기곤 했지. 그래서 작년 겨울 짐 정리해서 귀국할 때도 잊지 않고 챙겨 왔고, 또 지난 초여름에 파리로 다시 갈 때도 챙겨갔어. 이걸 이번 여름에 쓸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정작 심사장에는 잊고 갔지 뭐야? 고대하던 그 순간을 놓쳤단 사실을 나중에 알고는 얼마나 애석했는지. 

사실 이제 그 휴지는 원래의 기능을 잃어버렸을 가능성이 커. 이후 이걸 어쩌면 좋을까 볼 때마다 고민했어. 그러다가, 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널 보러 춘천에 오면서 가방에 넣어 가지고 왔어. 적절한 활용 방안에 대해 너와 얘기해 보고도 싶었겠지.

그러다가 마지막날인 오늘, 들고 다니던 휴지가 똑 떨어졌어.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콧물을 자주 흘려서 휴지나 손수건 없이는 외출하지 못하는지라 곤란하던 차, 네가 내어준 방에 놓인 휴대용/여행용 휴지가 눈에 들어왔어. 네 동생이나 조카가 두고 갔겠지, 아마도? 카카오 프렌즈의 어피치가 그려져 있는. 불현듯, 역시 왠지는 모르겠지만,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카카오 어피치 사이의 교환이라, 기발하고 재미있는 거래라는 생각이 들었어. 

어떻게 사소한 과거 사실들을 그렇게 잘 기억하느냐고 너는 물었지. 사실 내가 그럴 수 있는 건 결코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야. 미래에 대한 불투명하고 암울한 전망이나 무겁기만 한 현재 상태를 직시하기보다는 안온한 과거로 회귀, 아니 도피하려 하기 때문이야. 피치 못할 사정 때문이었든 아니면 불운 혹은 행운이 겹쳤기 때문이든 간에, 주어진 매 순간에 충실하게 임하다 보니 지금의 네가 되었더란 네 말이 특히 큰 울림으로 다가왔어.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느 철학자의 말보다도.

이렇게, 피렌체에서 파리, 그리고 춘천까지의 긴 여정을 함께 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음울한 시기를 보내던 나를 지켜본, 그리고 어쩌면 지켜준, 그 휴지(!)를 네게 남긴다. 지켜보거나 지켜줄 그 어느 존재 없이 혼자서 너무도 많은 걸 잘 해왔던 너란 걸 알지만, 그와는 별개로, 네가 지켜보고 또 지켜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만큼 네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기억했으면 하는 내 작은 소망을 담아서.

다시 시작을 논하기에 앞서 다시, 시작의 노래

«Primordial», Australie, 2017. Tamara Dean. Agence VU
«Commencement», Australie, 2017. Tamara Dean. Agence VU


시작 - 최승자
  
한 아이의 미소가 잠시
풀꽃처럼 흔들리다 머무는 곳.
꿈으로 그늘진 그러나 환한 두 뺨.

사랑해 사랑해 나는 네 입술을 빨고
내 등뒤로, 일시에, 휘황하게
칸나들이 피어나는 소리.
멀리서 파도치는 또 한 대양과
또 한 대륙이 태어나는 소리.

오늘밤 깊고 그윽한 한밤중에
꽃씨들이 너울너울 허공을 타고 내려와
온 땅에 가득 뿌려지리라.
소리 이전, 빛깔 이전, 형태 이전의
어둠의 씨앗 같은 미립자들이
내일 아침 온 대지에 맨 먼저
새순 같은 아이들의 손가락을 싹 틔우리라.

그리하여 이제 소리의 가장 먼 끝에서
강물은 시작되고

지금 흔들리는 이파리는 
영원히 흔들린다.

-- ⟪즐거운 日記⟫ (1984)


일요일 늦은 오후, 72번 버스

1. 
일요일 늦은 오후. 이 시간대 72번 버스는 늘 붐빈다. 센느 강변을 따라 시내 중심 관광 요지를 지나는 덕에 관광객들도 많고, 휴일을 맞아 나들이를 다녀오는 16구의 부유한 노인들이나 (이들은 일반적으로 지하철보단 버스를 선호하는 편), 유모차를 앞세운 가족들도 많다 (이들에게도 역시 버스가 더 편할 터). 자리가 없어 뒷문 쪽에 서 있자니 앞으로는 노약자석, 뒤로는 유모차 전용 공간이어서 그야말로 2세대 사이에 낀 꼴이었다.   
그러나 이 사이의 공간은 얼마나 아늑하며 편안한가. 혼자 외출했다 귀가하는 듯한 할머니의 뒷모습은 쓸쓸해 보였고, 집채 만한 유모차를 끄는 엄마는 힘겨워 보였다. 나는 과연 기력이 쇠해 버스에서 서 있는 게 힘들어져 염치고 자존심이고 따질 새 없이 자리가 날라치면 재빨리 가서 앉게 되는 스스로를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내 아기를 위해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배려받기보다는 배려를 하는 일이 익숙하고 편하게 느껴지는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 이라 적으려다, 문득, 나 또한 많은 배려를 받고 살아온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아기였을 때 엄마도 그렇게 낯선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아가며 나와 동생을 이리저리 실어 날랐겠지. 단지 내가 남에게 베푼 것을 남이 내게 베푼 것보다 오래 그리고 많이 기억하고 있을 뿐.
 ...이라고 6년 전의 나는 적었다. 그 사이에도 같은 장면은 여러 번 반복됐고, 나는 여전히 2세대 사이에 낀 채 그대로...인가, 과연? 휴일에 혼자 외출했다 쓸쓸하게 귀가하는 할머니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심지어 어쩌면 누군가는 바로 나를 보면서 나이와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는지도 모른다. 

2.

그런가 하면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짐을 한껏 지고서 같은 버스를 타려 국영 라디오 방송국 앞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중. 마침 방송국에서 공연이 끝났는지 관객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와 내가 선 정류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부분 머리가 하얀 어르신들. 공연을 관람한 뒤 아마도 16구나 교외 주택가이자 역시나 부촌에 속하는 불론뉴-비양쿠르로 귀가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날따라 하필 꽉꽉 채운 배낭에 카트까지 들고 있던 나. 머리는 복잡해지고 가슴은 쿵쾅대기 시작했다. 과연 탈 수 있을 것인가, 탄다고 하더라도 저 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견딜 수 있을 것인가, 거북이등 효과를 피하기 위해 최소한 배낭은 벗어야 할 텐데, 그러면 카트랑 다른 가방은 또 어떻게 매니지할 것인가... 등등을 생각하다, 문득, 내게도 최소한 이동의 자유와 대중 교통을 이용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 심지어 내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으니 내겐 우선권이 있지 않은가, 언제까지 이렇게 배려와 양보만 할 것인가... 등등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본성을 거슬러 도전해 보기로 마음을 먹고, 사람들이 모여든 버스 입구 앞에 줄을 섰다. 내 차례가 오자 우선 한 마담에게 양보를 했다. 그 뒤의 다른 마담이 내게 양보를 하여 안심하고 스텝을 밟으려는 찰나,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게 양보를 한 마담에게 양해를 구하고 돌아서고 말았다.

그곳에서부터 집앞 정류장까지는 대여섯 정거장 정도. 다른 옵션을 몇 가지 생각하다가 그냥 집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자전거 타고 다니거나 조깅할 경우에는 단숨에 뛰기도 할 만큼 가까운 거리지만, 그때는 짐 때문에 걸음 속도도 나지 않고 얼마 가지 않아 지쳐가던 차. 한 정거장 지났을까. 뒷차 도착까지 불과 1-2여분이 남아 있었다. 한번 기다려 보기로 했다. 기다리고 있자니 우아하고 지적인 풍모의 두 마담이 다가왔다. 역시 공연을 마치고 나온 기색이었다. 예정된 시간에 버스는 도착했고, 나는 한결 여유로운 버스 안 풍경에 안도하며 티켓을 수리했다. 그런데 나와 같이 탄 두 마담은 지갑을 뒤지는가 싶더니 그냥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 버스 안이나 동네 수퍼마켓에서 저런 뭐랄까, 얌체에서부터 안하무인까지의 모습들을 가끔 보는데, 그럴 때마다 생경하다. 나라고 무임승차를 전혀 안해 본 건 아니지만, 그리 붐비지도 않는 버스에 기사가 엄연히 감시하고 있는 조건에서라면, 나같은 소심한 분자는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배짱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실천하기 힘든 행동을 저렇게 고상해 보이는 분들이 하다니. 한편으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나 시민의식 운운할 것도 없이, 국적, 출신, 성별, 주거지 등등 이른바 사회적 지표라는 것의 지표로서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3.

일요일인 오늘 오후.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에 가려 했으나, 옷을 얇게 입고 나온 데다 비도 한두 방울 떨어지고 해서, 일정을 급히 변경,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산책을 하게 되었다. 날이 궂은 탓에 보통 때보다는 덜했지만 그래도 가족 단위의 산보객들이 제법 보였고, 그 중에서도 유독 아이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는, 재생산 욕구가 채 걷히지 않은 내 의식이 지각에 미친 효과도 없지 않겠지만, 프랑스에서 그만큼 아이들을 확실히 많이들 낳았고 또 여전히 낳고 있다는 사실을 일정 부분 반영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공원마다 거리마다 아이들이 바글바글한 걸 볼 때면, 저출산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한국의 사례를 생각한다. 인구정책은 근대 국가의 대표적인 생정치 장치 중 하나다. 가장 원초적인 동시에 가장 치밀한 진단과 예측, 동시에 기존의 윤리학과 가치 기준을 끊임없이 재고하고 경계하는, 늘 깨어있는 사유를 요하는 부문. 그 뿐인가. 프랑스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장기간에 걸쳐 다양하고 체계적인 시책을 펼쳐 오늘의 눈부신 성공을 이루었다지만, 이것이 단지 행정적으로 정책적 차원으로만 설명될 것은 아니겠다. 사회 전반의 망딸리떼, 즉 심성 혹은 의식의 수준, 즉 정책이나 그 밖의 사회적 규범 수준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는 않으면서 그에 완전히 환원되지도 않는 사회심리학적 심급이 있고, 이것이 유의미한 차이를 만드는 주요한 인자 중 하나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비슷한 수준의 선진국이면서 경제 사정에서는 오히려 좀더 나은 편인 데다,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일찍이 인지하고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인 장려책을 실시해 왔음에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독일의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4.

아이들을 지나치자 이번에는 마주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프랑스 국기인 삼색기를 들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져 마침내 스쳐 지날 찰나, 그녀의 말소리가 들렸다. Vive la République, 즉 공화국 만세. 집에 와서 뉴스를 보고야 알았다. 오늘 트로카데로에서 우파 정당인 Les Républicains, 즉 공화(국)당의 대선 후보 프랑수아 피용을 지지하는 집회가 열렸다는 사실을.

피용은 극우인 마린 르펜에 대적할 사실상 유일한 대항마로 거의 당선이 확실시까지 되던 후보다. 그런데 최근 부인인 페넬로프--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에서 온 이름!--에게 보좌관 업무를 맡기고 보수를 그것도 꽤 고액으로 지급했으나 사실 그녀의 업무는 허구였다는 의혹이 제기돼 법정 출두 명령까지 받은 상태. 이러한 이른바 "페넬로프게이트"로 참모들도 떠나고 사퇴 압력이 거세지는 가운데, 그가 주중에 갑자기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긴급 기자 회견을 열자 모두 사퇴 발표를 예상했다. 그러나 그는 후보로서의 행보를 끝까지 할 것이며 법은 거스를지언정 민중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는 등의 발언으로 모두를 아연실색케 했다. 그런가 하면 침묵하던 페넬로페는, 일종의 "일요신문"인 Journal du dimanche 오늘자 인터뷰에서, "남편을 위해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고 밝히면서, 그 예로, 남편이 참석하는 행사에 동행하고, 연설문을 읽고 코멘트하는 등등을 들었다. 그야말로 비선 비서이자 참모의 역할을 했다는 것인데. 여성들이 담당해 온 가사 노동--페넬로페의 바느질!--의 가치화 및 경제 기여도 재평가와 유사한 맥락에서, 배우자로서 관행적으로 비서나 참모의 역할을 대신함에도 보수는 물론이거니와 상징적 가치조차 인정받지 못했던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차원--
--말하자면 페넬로페가 바느질이나 충절로써 오딧세우스 신화에 기여한 바를 인정하자는 취지?--이었다는 해석으로 쉴드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기도 했으나, 이는 아무래도 과도한 해석이겠다. 설령 이 해석을 따른다 해도, 더욱이 실제로도 정치인 중에 배우자를 그런 명목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고도 하니, 정식으로 절차를 거쳐 비서나 참모로 채용하고 규정에 따라 보수를 지급하지 않은 책임은 물을 수밖에 없다.  

트로카데로 집회 사진을 보니, 모두가 단체로 맞춘 꼭 같은 규격의 삼색기를 들고 일제히 흔드는 모양이, 요새 서울시청앞에서 열린다는 태극기 집회의 그것을 빼다 박았다. 심지어 참가 인원을 제멋대로 부풀리는 것도 닮았다.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아니 세태 판단이나 대세론까지 갈 것도 없이, 합리적 동물로서 최소한의 사고력과 판단력만 발휘해도 답이 나오는 문제에, 오답을 답이라 우기면서 정신승리하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프랑스혁명이나 68혁명, 그리고 광주나 87년 항쟁 같은 역사가 결국 이걸 위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결국 역사는 현재에서 성찰하고 긴장하고 노력하면서 끊임없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는, 또 하나의 역사의 교훈.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전집 출간

입수(!) 기념해서 올려보는 다른 이야기


육체의 사용 (또는 몸쓰기몸의 쓰임새이른바 " 쓰는 ",  육체노동을 가리키는 말로부터 출발) 끝으로호모 사케르 연작이 완간되면서 아감벤이 97년부터 20 가까이 펼친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개인적으로도 감회가 남다르다. 2007  세미나에서 처음으로 호모 사케르 1권을 읽은 것을 시작으로 해서, 10년의 세월동안 웅장한 지적 여정에  명의 관객으로 나름대로 참여해 왔으니비록 소극적이고 소심할 뿐더러 게으르기까지 하여 참여는커녕 관찰자로서도 적격이었나 싶을 만큼 불량한 관객이었지만

관객으로서뿐 아니라 독자로서도 불량하여 1 이후로 연이어 나온 책들은 외면했다. 2012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에서 지배와 영광 이탈리어판을 사온 것을 제외하면아감벤에 대한 관심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사실 책이 예뻤고 (그에 비하면 쇠이유에서 나오는 불역판은 미적 우수성에서 현저히 떨어진다), 여행 당시 불타오른 이탈리아에 대한 열정이 이탈리아어 학습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이유 (그러나  역시 오래 가진 않았다 열정이란 것이 사실 마담 보바리에게서처럼 도피성에 가까웠기에). 그런데 작년에 불역판 전집이 나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전집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전작들의 확보를 보류하고심지어  논문의 완성마저(!) 보류해 왔던 ...이라 말하면 스스로 비참해지니전건만 말한 걸로 해두자.

전집은 구했지만 당장 읽기는 힘들 것이므로 얼마  우연히 읽은 최근작 명령이란 무엇인가 이야기를 해본다 책은 아감벤이 줄기차게 내놓고 있는 엽편 에세이  하나분량상 책보다는 아티클에 가깝고 실제로 세미나 발표문이나 강연문을 전문 그대로 옮긴 경우가 많다대표적인 예로 장치란 무엇인가 있다  모아서 논문집이나 선집으로 내면 딱인 텍스트들이다이것이 이탈리아 출판계의 규범인지 아니면 프랑스로 건너 오면서 귤이 탱자가  사례인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이해할  없는 출판 행태그러나 텍스트 자체만으로 보면  가치나 중요성은 상당하다오히려  간명성 때문에 주장과 논증의 명료성이 확보되는 측면이 있다다음은 책을 읽으며 했던  가지 단상.

  • 주제는 명령이다. 혹은 계율이나 계명. 10계명 때의 계명 말이다. 명령에 대한 고고학적 탐구. 그런데 고고학이 뭔가. 아르케에 대한 탐구 아닌가. 서양철학의 시원에 있었던 바로 아르케. 만물을 시작하고(commencer) 호령(!)하는(commander) 원리를 탐구하면서 모든 지적 모험이 시작됐고, 이후의 모든 모험은 이러한 원리에 대한 탐구를 따르게 되었다.  
  • 푸코는 아르케를 재개념화하면서 고고학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아르케는 시원이자 명령자라는 속성 때문에 만물에 대해 시간적으로도 우선해 있다고 생각돼 왔다. 그러나 푸코는 현재에서 출발한다. 현재가 고고학적 문제의 출발점인 동시에 명령자 (le présent au commencement/commandment).  
  • "태초에 빛이 있었다" 창세기의 첫구절을 보자. 아감벤은 희랍어 문법상 "태초" "명령"으로 바꿔도 무난하다고 말한다. 빛이 있으라 명령이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보는 편이 하늘이 있으라 명하매 하늘이 생기고, 땅이 생기고 등등의 뒷구절과도 좀더 맞아 떨어지고.  
  • 희랍인에게는 의지라는 개념이 없었다. 레미 브라그가 그들에게 개인이나 반성적 혹은 인식적 주체 개념이 없었다고 말한 것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되는 말이다. 대신에 잠재태-완성태 개념이 있었다. 그렇다면 근대는 잠재태가 개인-주체의 의지로 이행으로 정의하는 것도 가능하다
  • 명령의 문법 혹은 논리. 아감벤은 여기에서 오스틴의 수행성 개념을 상당 부분 참조하되, 명령의 논리가 그것만으로 환원되지 않음을 보이고자 한다. 평서문의 참과 거짓을 따지는 것으로 한정된 기존의 논리학은 존재(esti : être) 존재론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명령의 논리학은 존재의 존재론이 아니라, 그렇다고 생성(devenir) 존재론(보통 전통적 존재론에 대항해서 나온 니체나 베르그손의 철학을 지칭하는 것으로 자주 쓰인 표현) 아닌, 당위 혹은 의무(esto : devoir être) 존재론에 의거한다.
  • 칸트 윤리학에서 당위-의무는 의지와 동일시된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표어 : devoir pouvoir vouloir. 원하는 바를 있어야만 한다. 하고 싶은 것을 있고 그래야만 한다. 뭔가 해방감을 주는 것도 같지만 사실 괜히 의무론적 윤리학이 아니다. 유명한 정언 명령 "네가 욕망하는 바를 보편 의지와 일치하도록 하라"에서 보듯 의지란 결국 보편의지에 다름 아니다.  
  • 명령에 대한 아감벤의 고고학적 단상은, 나도 그랬지만 아감벤의 독자라면 더더욱 그랬겠듯, 필경사 바틀비의 등장으로 마무리된다. 모든 법의 형식과 명령의 논리마저 무화시키는 것이 바틀비의 j'aimerais mieux pas/I'd rather not 이다. 해야 하는 것도, 있는 것도, 원하는 것도 아닌 무언가를 우리는 과연 " " 있는가?



로맨스 이후

이른바 "로맨스 영화"(로맨틱 코미디, 멜로드라마, etc.)들이 가족 및 사랑 이데올로기를 재현하거나 (재)생산하는 방식에 관하여. 

편의상 이 부류의 영화들을 로맨스로 통칭하자. 이성애 중심의 가족 및 낭만적 사랑 이데올로기에 기반하여 주인공 및 등장인물들이 짝을 얻고 안정과 평화를 (되)찾고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결말로 가는 플롯 구성이 기존 이 부류 영화들의 규칙 중 하나였다. 로맨스는 부부의 생리학이든 연애론이든 간에, 전혀 새로울 것이 없고 앞으로도 뭔가 새로운 게 나올까 싶고, 새롭건 진부하건 간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끊임없이 재생산될 수밖에 없을, 보편적이고 영원한 테마틱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장르"를 넘어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만큼, 이 영화들에 어떤 하나의 범주와 그에 준하는 속성을 부여하기란 어렵고, 이런 범주화가 과연 유의미한지 또는 유효한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에스에프나 호러 같은 대표적인 "장르물"을 생각해 보면 그 차이가 분명해진다. 이 장르야 이미 존재 이유에서부터 내적 기준에 이르기까지 그 기반을 확고히 다지고 있고, 장르의 하위 개념으로서 존재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장르라는 개념 자체가 거기에서부터 나왔으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로맨스" 부류는 같은 하나의 장르로 규정되기에는 너무 보편적이며 또 그 변주 또한 너무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어드저스트먼트 뷰로>나 <소스 코드> 같은 버젓한 에스에프 영화들도 로맨스 코드를 버젓하게 갖추고 있는 바, 이런 영화들까지 로맨스로 치자면 도대체 로맨스가 아닌 것이 있겠느냔 말이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크로넨버그의 <플라이>를 상영하는 극장 매표소 앞에서, 너무 무섭지 않느냐며 주저하는 한 관객에게 직원이 '사랑 이야기'라며 안심시키는 것도 봤다.

이런 위험과 부담을 무릅쓰고, 대신 이러한 시도의 한계--성급한 일반화, 피상적 분석, etc.--를 숙지한 채로, 일반화 논의를 밀고 나가보자. 

로맨스의 상당수는, "옛날 옛날에"로 시작해서 "그들은 아이를 많이 많이 낳고 오래 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동화, 좀 더 나간다면 셰익스피어 희극이나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에 기원을 둔, 소위 "로맨틱 코미디"이거나, 아니면, 두 주인공이 둘 다 죽거나 아니면 한 사람만 죽고 다른 한 사람은 남겨진 채로 불행한 여생을 보내는 걸로 끝나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혹은 [폭풍의 언덕]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비장미 혹은 신파가 넘치는 멜로 드라마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어쨌든 이 모든 이야기의 처음이자 끝, 나아가 본질은, 두 영혼의 조합 혹은 합일 여부에 있었을 터다. 나머지는, 매우 거칠게 말해서, 부차적 요소나 극적인 장치에 불과했고.  

이 구도가 복잡해지게 된 첫 번째 계기는, 아마도, 이른바 "근대적 주체"가 등장하고, 근대 산업화 및 도시화 이후로 이 주체가 더욱더 개인화되고 분자화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두 영혼의 합일 여부에 앞 각 영혼의 개별성과 특이성이 부각되고, 이들 앞에는 이제 "주체"로 거듭나고 자아(정체성)을 실현해야 할 과제가 놓이게 된다. "또 다른 반쪽"이나 "영혼의 쌍둥이", 즉 타자와의 조화나 합일은 더 이상 당위이거나 목표가 아니고, 기껏해야 이 과제를 실현키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그러면서, 역으로, 타자와의 조화나 합일의 당위성을 지적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일이 지배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게 된다. 이것이 현대식 가족 및 낭만적 사랑 이데올로기다. 이제, (악인을 제외한) 주인공 및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안정과 평화와 행복을 찾는 동시에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깨닫도록 하고, 그럼으로써, 암묵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일정하고 규격화된 메세지-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신성하다,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등등-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설득하는 일이 중요해진 것이다.  

2004년작인 [500일의 썸머]<500>까지만 해도 그랬다. 3인칭 전지적 시점의 내레이터는 "탐이 그 동안의 연애사에서 깨달은 바가 있다면, 그것은, 지구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우연들에 전 우주적 의미를 부여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하고 끝을 맺으려다 "그러나..."를 덧붙인다. 탐이 또 다시, 저 보편적이고 냉엄한 진리를 거스르고,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소한 우연에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 내레이터는 말을 잇지 못하고, 탐은 카메라를 향해 윙크를 보낸다. 관객에게 자신이 받은 큐피드/우연의 여신의 가호를 관객에게 전수라도 할 기세다. 이렇듯, "사람은 결국 혼자다. 혼자인 것 맞는데..."하고 말꼬리를 흘리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덧붙이고, 거기에 뭔가 더불어 사는 삶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그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 이것이 로맨스의 논리 구조였다. 그 중 어떤 논증들은 진부하거나 설득력이 떨어지거나 어떤 결론들은 기만적이기까지 했다 해도 말이다. 

그런데 2010년대에 나온 로맨스들은 이러한 전통 서사로부터 자유로운 듯 보인다. 특히, [블루 발렌타인], [벨빌 도쿄], [비기너스] 등, 2010년을 전후로 해서 나온 30대 이성애 커플들의 관계를 다룬 영화들이 그렇다.  

[블루 발렌타인]은, 아이, 강아지, 일 등등에 치여 살던 30대 부부가 마침내 파경을 맞게 되는 약 48시간의 일과가 이야기의 주축이다. 두 사람 모두 가족에 관한 한 상처를 지니고 있다. 남편은 엄마 없이 자랐고, 아내는 애정이 식은 부모(아빠는 가부장) 밑에서 자랐다. 처음에 그들이 꾸린 가정은 이에 대한 보상 기제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48시간 동안, 몇몇 사소한 사건들로 갈등이 벌어지고, 이 갈등은 그때까지 쌓인 앙금을 표면화하여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아이에겐 부모가 필요하다"는 남편에게 부인은 "원수지간인 부모 밑에서 자라는 것만큼 아이에게 비극적인 건 없다"고 말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는 뒤돌아 혼자 걸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비춘다. 

이 영화에서는 첫 만남에서 결혼까지의 과거, 그리고 맞벌이 부부로 사는 현재, 이 두 시간대가 별다른 구분 없이 맞물린 채로 진행된다. 과거와 현재라고는 하지만 그 시간차는 겨우 5-6년 정도. 시대적 배경이나 인물들의 외모상의 변화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근과거"의 재현은 배우를 바꾸거나 배우에게 코스튬을 입히거나 시대를 반영한 세트를 꾸미는 사극/역사물과는 다른 테크닉을 요한다. 이를테면, 딱히 플래시백임을 보여주는 장치 없이 과거 시퀀스들이 현재의 곳곳에 랜덤하게 끼어들면, 보는 사람은 뭐가 현재고 뭐가 과거인지 혼동하게 되고, 플롯을 시간 순서대로 그리고/또는 인과적으로 재구성하는 데에 애를 먹게 될 것이다 [이터널 선샤인]의 경우가 그러했고, 2011년경 나온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그러했다 (후자는 로맨스와 거리가 멀지만. 멀어도 한참 멀지만. 그런데, 또, 그렇게 먼가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이 본격 첩보물 영화에도 로맨스 코드는 당연히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별다른 장치 없이도 그런 혼란의 소지를 전혀 남기지 않고 있다. 젊고, 첫 만남에 설레고, 임신이나 결혼이라는 변화가 마냥 두렵기만 한 20대의 그들과, 30대로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강아지를 키우고 일터에 나가는 등등의 일상에 치인 현재의 그들, 이 둘 사이의 간극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는 테제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벨빌 도쿄]의 주인공은 영화평론가와 영화관 프로그래머인 파리지엥 부부. "벨빌 도쿄"라는 제목은, 극 중 남편이 도쿄 영화제 출장이라는 핑계를 대고 파리에 사는 애인의 집에 며칠 묶던 중에 동양 사람들 (주로 중국인들)이 많은 파리 북동쪽 벨빌의 한 가게에 들어가 아내에게 전화를 하는 장면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임신 중인 아내에게 헤어지자고 말한다. 아무 것도 모르던 아내는 황당해 하다가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데, 남편이 돌아온다. 아내는 또 괴로워하다가 또 이별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지만, 남편이 (생각보다 훨씬) 이중적인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도쿄에 있는 줄 알았던 남편을 파리 거리에서 우연히 발견, 뒤를 쫓다가 애인에 집까지 당도...) 먼저 스스로 떠난다 . 이 영화 역시 주인공이 혼자 뒤돌아 걸어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비기너스]는 30대 후반의 미혼 남성인 주인공의 시점을 취하고 있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웃음을 잃었다가 파티에서 만난 발랄한 프랑스 아가씨를 만나 애도를 끝낸다. 그런 점에서, 앞서 언급한 두 영화는 다르다 하겠다. 우선, 굳이 하위장르를 따져 세분하자면, 내가 개인적으로 "연애입문 및 성장담"이라 부르는 장르(플로베르의 [감성교육]과 발자크의 [골짜기 백합]에서부터 트뤼포의 두아넬 연작이 이에 속한다. 베르테르도?)에 속한다 볼 수 있겠다. 그리고 희극과 비극의 이분법 구도에서는 희극에 가깝다. 감독도 일러스트레이터 출신이고, 또 주인공도 로스앤젤레스에서 일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인 만큼, 발랄한 일러스트 컷도 많고 아기자기한 데코도 많고. 그럼에도 영화는 별로 밝지 않다. 주인공이 어둡기 때문이다. 단지 부친상을 당해서가 아니다. 주인공의 현재를 장식하는 주변 인물들이 밝을수록, 주인공의 회상에 등장하는 아버지가 70이 넘어 커밍아웃을 하고 젊은 게이들과 정력적인 정치 및 사교 활동을 펼칠수록, 그의 어두운 면모는 더더욱 부각되며, 이는 프랑스 아가씨가 짐을 싸들고 집으로 같이 살러 왔을 때 이 아가씨가 지닌 어둠의 포스와 더불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서 절정에 다다른다. 

위의 영화들이 결론을 단정적으로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셋 다 열린 결말이라 보는 편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결말을 긍정적으로 보느냐 부정적으로 보느냐는 전적으로 관객의 몫일 게고, 관객은 자신의 인생관이나 연애관이나 현재의 심리 상태에 비추어 결말에 대해 각자 다른 해석을 내놓을 것이다. [블루 발렌타인]과 [도쿄 벨빌]의 경우, 영화가 이혼 법정에서 끝나지 않은 이상, '언해피'하지는 않은 엔딩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긴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러기에 주인공이 뒤돌아서는 마지막 장면들은, 오, 쓸쓸하기 짝이 없다. [비기너스] 같은 경우, 아가씨는 떠나고 주인공은 아가씨를 찾아 뉴욕까지 가서 결국 두 사람이 재상봉하고 있는 만큼, 남녀 주인공 둘이 벽을 깨고 서로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행복한 미래를 암시하는 여지를 비교적 충분히 남겨놓고 있는데, 그럼에도, 관점의 주관성이라는 근본적 한계를 십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 "열린 결말"은, 이 결말이야말로, 그다지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 사이에는 섬이 있다"는 시인의 명제는 유효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 섬에 가고 싶"어했다. 그리고 많은 영화들이 그러한 보편 정서를 반영, 자기애 가득하고 자기중심적이고 유아론적인 인물이 점차 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아 가고 마침내 결말에 가서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섬"에 당도하는 과정을 그려왔다. 그런데 위의 세 영화들은 "사람들 사이에는 섬이 있다"는 첫 명제를 반복하고 거기에 커다란 마침표를 찍는 데에 그친다. 관계에 대해 희망이나 환상을 심어주는 것은 고사하고, 회의론을 재고할 최소한의 계기조차 제공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섬"에 가고픈 열망이 집단의식 차원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거나, 아니면 영화가 재현하거나 생산하려는 가족 및 사랑 이데올로기가 변했거나, 둘 중 하나이거나 아님 둘 다이거나.
...라는 것이 2011년 가을 무렵 이 글을 시작하면서 했던 생각이었다. 당시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비슷한 주제--30대 이성애 커플의 삶과 사랑--의 영화들을 보며 "어떤 경향"을 읽어내려는 의도에서. 이런 성격의 글이 시기를 놓치면 아무 소용 없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그냥 버리지는 못하고 어쩌지도 못하고 그렇게 방치한 채로 몇 달을 보내던 중, 아니, 보내는 내내, 그 사이에 나온 다른 영화들을 보며, 관계 불가능성 가설을 검증하고 보완하려 노력했다. 그 결과, 이 가설을 철회하거나 대대적으로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관계의 원천적 불가능성보다는 관계의 재개념화를 포착했어야 했다.
...라는 것이 2012년 초, 정확히 이맘 때, 처음에 시작했던 글을 끝맺어 보려 다시 시작하면서 했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무려 5년이 지났다. 하필 30대의 마지막과 겹쳐 버린 그 5년이라는 세월 동안, 관계에 대한 나의 입장은 극단적 회의론과 대책없고 위험천만한 낭만주의를 정신없이 오갔고, 그렇게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끝에, 결국에는 다시, 원천적 불가능론으로 복귀하기에 이르렀다. 무릎 위에서 재롱 부리는 손주를 같이 바라보고, 밤에 늦게 들어오면 얄밉기는 해도 밥은 먹여주고, 밸런타인에는 초콜릿도 주고, 전기가 나가면 퓨즈를 갈아줄 누군가와 더불어 예순 네살을 맞이(Beatles, "When I'm Sixty-Four" : 나의 결혼관을 바꾸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여전히 최고의 청혼가라 생각하는 노래)하는 일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생각하니 다소 슬프긴 하지만, 이까짓 일시적이고 감상적인 기분 쯤이야, 진리에 바친 삶을 위해서라면야 (vitam imprendere v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