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꿈 (feat. Aselm Kiefer & 김종학)


Anselm Kiefer, Dormeur du val (extrait)
Anselm Kiefer, Dormeur du val (extrait)
Anselm Kiefer, Dormeur du val (extrait)
빌헬름 뮐러의 시에 프란츠 슈베르트가 곡을 붙여 만든 <겨울나그네>. 흔히 <겨울나그네>를 두고 멜로디가 낭만과 서정의 극치인 데 반해 가사를 들어보면 "찌질"하다고들 한다. 실연의 아픔을 호소하는 청년의 자기 연민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꿈꾸고 그 꿈을 집요하다 싶게 좇는 사람은 타인의 눈에는 그렇게 비칠 법도 하다. 게다가 그 꿈이 가망도 없고 그럴 만한 가치도 없어 보이는 것이라면.

그중에서 11번째 곡 "봄꿈(Frühlingstraum)"은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자주 생각나고 또 자주 듣던 곡이다. 일종의 봄타령처럼. 5월에 화사하게 피어오른 듯한 찬란한 꽃들, 새들이 지저귀는 푸른 들을 꿈꾸던 몽상가. 새벽에 수탉이 울어 눈을 뜨니 세상은 여전히 춥고 어둡고 게다가 까마귀까지 울어대고. 유리창에 낀 성에도 마치 누군가 꽃을 그려놓고서 한겨울에 꽃타령하는 몽상가를 비웃는 것만 같다. 그래도 몽상가는 여전히 꿈꾼다. 사랑을 위한 사랑을. 어여쁜 소녀를. (아마도 소녀의?) 마음과 입맞춤을. 다시 수탉이 울고 마음이 깨어난 몽상가는 홀로 앉아서 꿈을 되새기며 눈을 감는다. 그의 가슴이 뛴다. 언제쯤이면 창가에 푸른 잎이 돋을 것인가? 언제쯤이면 사랑하는 이를 품에 안을 수 있을 것인가?*

안젤름 키퍼는 내가 제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현대 작가다. "좋아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은"이 좀 더 정확하겠다. 지난 20여 년 동안 두어 번 전시를 가본 것이 고작이니까. 세간의 팬덤 문화나, 꼭 대중문화가 아니더라도, 문화 및 예술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바, 그 표현과 방식에 있어 무섭도록 가속화되고 다각화된 수용 패턴에 비추어 볼 때, 나는 그의 편입을 자처하기엔 너무도 게으른 관객인 것이다. 꼭 전시 현장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다른 매체를 통한 접근도 충분히 가능하고 오히려 그 가능성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적어도 이 점에 있어서는 변명의 여지는 있다. 키퍼는 규모와 재료/질료와 재질과 장소적 맥락을 중시하는 구상을 추구하고, 그러한 작품의 속성상 감상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작과의 직접적 접촉을 필요로 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 것이다.

2015년 말에서 2016년 초까지 파리는 키퍼의 세상이었다. 작가는 콜레주드프랑스에서 강연을 했고, 라디오 프랑스퀼튀르에 여러 번 출연했으며, 국립도서관과 퐁피두센터에서 동시에 특별전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출연한 라디오 방송을 열심히 들었고, 국립도서관 전시는 틈만 나면 갔고, 퐁피두 전시에도, 언제나처럼 ㄴ 언니 덕분으로, 여러 번 갈 수 있었다. 2015년 11월 13일에 일어난 테러 때문에 모든 파리가 충격에 빠져 있었고 나 역시 그러했지만, 아니 내게 그 충격과 그 뒤로 이어진 불안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았지만, 키퍼는 버틸 수 있었던 여러 이유 중 하나였다. "내가 논문이 늦어지는 바람에 급기야는 이런 일마저 겪는구나"라고 나약하고 비겁한 생각에 빠지는 대신에, "내가 키퍼를 보려고 논문을 늦췄다"라고 공언할 정도의 긍정과 낙관을 확보할 수 있었고, 덕분에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절박하고 절망적이기까지 당시의 상황을 버틸 수 있었다. 기나긴 겨울을 버티게 해주는 봄의 꿈이었달까. 

사실 키퍼를 "꿈"으로 "엮"기에는 좀 무리...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꿈은 곧 신화이고 이상이고 관념이기도 한데 이는 독일 민족의 신화, 탈무드 신화, 연금술 등등 그의 라이트모티프요 그의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김종학, <잡초> (1987)

원래는 키퍼의 작품론을 이렇듯 장황하고 어설프게 개진하려던 건 아니었다. 오래 소재로 묵혀둔 화두 중 하나가 "봄꿈" 덕분에 소환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덩달아 김종학의 작품도. 지난겨울 서소문 시립미술관에서 김종학의 <잡초>를 보고서는 키퍼의 바로 저 작품을 떠올렸었다. 김종학은 저런 "꽃그림"을 많이 그린 반면에, 키퍼의 저 작품은 그의 세계에서 예외적으로 밝고 화사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그림의 제목은 "무도회에서 잠든 자 (Dormeur du val)", 랭보의 시**에서 따왔다. 랭보의 시는 비극이다. 햇빛이 찬란한 푸른 들판에 젊은 병사가 하나 평화롭게 누워 있는 풍경인데 알고 보니 병사는 숨을 쉬지 않고 붉은 상처 구멍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병사 또한 꿈을 꾸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역시 봄을 꿈꾸며 기다리는, "겨울나그네"의 그 마음이지 않았을까.



* 여기에서 따온 가사의 (구글 번역을 초역으로 한) 의역이자 자유로운/창조적인 해석. 가사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

Ich träumte von bunten Blumen,
So wie sie wohl blühen im Mai,
Ich träumte von grünen Wiesen,
Von lustigem Vogelgeschrei.


Und als die Hähne krähten,
Da ward mein Auge wach;
Da war es kalt und finster,
Es schrieen die Raben vom Dach.


Doch an den Fensterscheiben,
Wer mahlte die Blätter da?
Ihr lacht wohl über den Träumer,
Der Blumen im Winter sah?


Ich träumte von Lieb' um Liebe,
Von einer schönen Maid,
Von Herzen und von Küssen,
Von Wonn' und Seligkeit.


Und als die Hähne krähten,
Da ward mein Herze wach;
Nun sitz' ich hier alleine
Und denke dem Traume nach.


Die Augen schließ' ich wieder,
Noch schlägt das Herz so warm.
Wann grünt ihr Blätter am Fenster? 

Wann halt' ich dich, Liebchen, im Arm?

** C’est un trou de verdure où chante une rivière
Accrochant follement aux herbes des haillons
D’argent ; où le soleil, de la montagne fière,
Luit : c’est un petit val qui mousse de rayons.

Un soldat jeune, bouche ouverte, tête nue,
Et la nuque baignant dans le frais cresson bleu,
Dort ; il est étendu dans l’herbe, sous la nue,
Pâle dans son lit vert où la lumière pleut.

Les pieds dans les glaïeuls, il dort. Souriant comme
Souriait un enfant malade, il fait un somme :
Nature, berce-le chaudement : il a froid.

Les parfums ne font pas frissonner sa narine ;
Il dort dans le soleil, la main sur sa poitrine
Tranquille. Il a deux trous rouges au côté droit.

점, 선, 면의 몸짓들. 클레 전의 인상

2016년 여름, 퐁피두 센터 파울 클레 L'ironie à l'œuvre 전
Merci, encore, à ㄴ 언니, 그리고 동행한 ㅎ

Bilderbogen (그림 종이/그림판) . 1937. 부분.
점, 선, 그리고 면, 이 가장 간단한 재료들만으로 가장 역동적인 몸짓을.
 
abstractes Ballet (추상 발레).1937. 부분.
선은 면이 되고, 면은 춤이 되고, 선에 기댄 면이 다시 선을 받쳐주고,
모두가 한 데로 어우러져 하나의 몸짓을. 

Duell (대결). 1938.
그러나 선은 때로 날을 세워 면을 찌르고, 
찔린 면은 피 한 점 한 점 흘리며 쓰러지며 최후의 몸짓을.

Tänze vor Angst (불안의 춤). 1938.

모든 칼은 춤이 되고 또 모든 춤은 칼이 되어 버린 참상을 딛고,
너의 선과 나의 면이 만나 다시 하나의 몸짓을.

푸생의 에우리디케

ㄴ 언니의 초대로 가서 보고 온 루브르의 기획전 <푸생과 신>. 그곳에서 뜻밖에 Scarph : PauvRe, Haute, Solitaire et melAnColique: 에우리디케 상황 에서의 그 에우리디케를 다시 만났다.

Orphée et Eurydice, Nicolas Poussin, 1664. Huile sur toile 124 x 200 cm.

요전에 언급한 것과는 사뭇 다른 상황. 이야기는 에우리디케가 죽음을 맞이한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까 "에우리디케 상황"의 원인이 되었던 에우리디케의 죽음이라는 사건. 에우리디케가 뱀에 물려 죽어가는데 오르페우스는 리라를 타느라 보지 못한다. 보려면 얼마든지 볼 수 있을 만큼 제법 가까운 위치에, 아니,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바로 눈앞에 두고 있음에도! 무엇보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권한을 가졌음에도!

내가 기억하는 푸생이라고는 루브르에 소장된 이른바 "풍경화"들, 그 중에서도 4계절 연작 정도가 전부였는데, 그와는 사뭇 다른 스타일, 르네상스풍부터 고전주의 형식에 이르기까지 그토록 다양한 스타일을 추구했는 줄은 몰랐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인상파를 연상케 하는 붓터치마저. 그러나 아무래도 르네상스 회화, 특히 푸생과 비교되고 실제로 초기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진 라파엘로에 비한다면, 전반적인 색조에서부터 인물의 표정과 안색까지가 무척 어둡고 윤곽마저도 희미하다는 것이 이번 전시를 통해 느낀 전반적인 인상. 조명 탓도 있겠으나 그림들 자체가 어찌나 어두운지 중간에 라파엘로가 한두 점 나오니 눈이 확 트이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누가 더 천재였는지를 겨루는 것은 무의미하고, 나는 차라리 15-16세기 이탈리아와 17세기 프랑스 사이의 지역적이고 시대적인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하겠다. 좀더 나아가 말해 본다면, 시대보다는 오히려 토포스의 차이가 더 결정적이리라는 심증을 나는 가지고 있다. 똑같이 태양을 근원으로 가졌음에도 이탈리아에서 맞은 태양광은 프랑스에서와는 분명히 다르게 느껴지더란 말이다. 단지 일조"량"의 문제가 아니라 질적인 차이가 있더란 말이다. 프랑스에서의 햇빛은 그저 눈만 밝히는 빛으로서의 역할이 전부요, 그마저도 실질적이기보다는 추상적이고 상징적 차원에 머무는 것이 전부인 반면, 이탈리아에서는 좀더 물질적이고 신체적인 것이어서 몸을 따스히 감싸는 볕의 기능도 충실히 수행한달까.

그러나 이것은 그저 옹호할 가치도 없고 나로서도 그럴 의지도 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테제. 특히 내가 비교 대상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프랑스라 함은 파리이고, 이탈리아라 함은 피렌체나 피사 등의 지중해를 낀 토스카나 지방이니, 비교가 부당함은 당연하다. 이 반론에 대한 재반론도 물론 가능하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의 본산은 피렌체고 프랑스 회화 및 기타 예술의 중심지는 어쨌든 파리였으니까. 문제는 푸생의 경우 파리에서도 활동했지만 로마 교황청을 위해서도 일했고 결국 여생을 마무리한 것도 로마에서였다는 것.

좀더 진지하게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 본다면 이렇다. 종교개혁 이후 구교 세력이 신교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미지숭상(iconolatrie) 정책을 적극적으로 실시하는 과정에서 특히 회화를 장려했고, 이러한 배경을 업고 17세기 종교화의 경향을 바로 대표하는 것이 바로 푸생이다. 그러나 동시에 푸생은 17세기, 화이트헤드가 "천재의 시기"라 부른 바 있는, 과학혁명 시기의 산물이기도 하다. 데카르트, 파스칼, 갈릴레오, 뉴턴 등의 이 "천재"들은, 18세기의 급진적 무신론까지 나아가지는 못하지만, 믿음을 합리적 근거에 정초하거나 반대로 믿음을 수단화하되 이 또한 합리적 논거와 논증을 거친 경우에만 유효한 것으로 받아들이고자 한 이신론(déisme)의 전통을 마련하는데, 푸생의 종교성은 바로 이 전통을 따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갈수록 배경으로서의 자연이 부각되면서 상대적으로 그 자연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측면이 강조된다...고 보는 것은 좀 무리인가? 실제로 푸생의 이력을 종교화에서 풍경화로의 이행으로 볼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푸생의 이른바 풍경화를 보면서 칸트의 숭고 개념을 떠올린 것은 사실이다. 이성을 통해 자연의 법칙을 파악하고 나아가 이를 통해 자연 내 불리한 존재조건을 넘어설 줄 아는 것이 인간이요,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바로 단적으로 크거나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자연을 관조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재확인하도록 한다는 것이 칸트 숭고 이론의 대략적 요지. 푸생의 4계절 연작을 처음으로 봤을 때에는 아마도 <판단력비판>을 읽은지 얼마 안 됐었고 그래서 숭고를 떠올렸던 것 같으나, 다시 생각컨대 푸생의 자연관을 숭고로 해석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겠다. 독일과 프랑스라는 차이에 100년 이상의 시대 차이는 물론이고, 100년도 그냥 100년이 아니라 계몽시대를 거쳐 프랑스 대혁명까지를 포함하지 않는가. 칸트적 의미에서의 숭고를 체화하는 작품으로 흔히 거명되곤 하며 칸트와 동시대인이기도 했던 프리드리히의 작품과의 비교하면 차이가 좀더 분명해질 것이다. 인간과 자연의 이분법과 갈등이라는 구도야 사상적으로는 베이컨을 위시, 17세기부터 이미 널리 퍼져 있던 관점이었을 것인데, 푸생과 그의 시대는 이러한 구도를 받아들임에 있어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모티브에 여전히 갇혀 있지 않았는가 하는.

그러나 이 역시 그다지 진지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 좀더 진지할라치면 공부와 사유가 필요하겠다. 실제로 전시장에서, 혹은 전시장을 나서며, 당장 떠오른 것이 세르가 푸생에 대해 쓴 글. 그 밖에 관련 주제로는 바로크와 역동론/동역학(dynamisme/dynamique)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들뢰즈의 <주름>에서도 푸생이 언급되고 있던가?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봤던 유진 그린(Eugene Green)의 영화 <라 사피엔자 (La Sapienza)> 역시 바로크 건축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Francesco Borromini, 1599–1667 ; 참고로 푸생은 1594–1665)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었다. 그린의 오랜 관심 주제였던 바로크에다가 또 그 특유의 규범적이고 설명적인 스타일이 건축이라는 주제와 접목한 결과로 나온 일종의 바로크 "건축학개론".  이 모든 것을 당장 뒤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참는다. 사실 위에 적은 얘기도 자신이 없고 나중에 보면 마냥 부끄러워질 테지만 그냥 첫인상에 대한 기록 차원에서 남겨둔다.

수미쌍관의 원칙에 입각해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 마무리를 하자면... tant pis pour Orphée et merci à ㄴ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