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부재 증명과 존재 이유





Clinamen v.9
Céleste Boursier-Mougenot, 2023, Mixed materials, 70 cm × 17 m,
Production supported by the Asia Culture Center


이 블로그의 리뉴얼과 블로그인(bloggin.com) 시절 블로그의 복원은 오래된 숙원 사업이었다.  클로드 덕분에 두 가지를 해결할 수 있었다. 물론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내가 원하는 바를 전달하고 이를 실현하게끔 명령어 구문을 짜는 일은 물론 그 전에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까지도. 사실 이조차 정확치는 않다. '원하는 바'란 것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지 않고 대개 모르고 시작했다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나중에서야 비로소 구축되게 마련. 처음에 막연하게 그리고 있었던 그 무엇인가란 아마도 이상에 가까웠겠으나 결과는 그보다는 비루한 그렇지만 어디까지나실존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그 점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현실, 이상과 현실의 접점에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생성)인공지능 그리고/또는 거대언어모델에 의존하지 않고서 이렇게 자동기술/의식의 흐름만으로 한 문단을 써내려간 것, 실로 오랜만이다. 여기까지 쓰니 또 말이, 글이, 줄글이 끊긴다. 툭. 그리고 침묵. 마치 침묵으로 일관한 2년의 시간이 부족했다는 듯이. 엄마가 가끔 쓰는 표현대로 "벙어리 말문 트이듯" 봇물이 터질 줄 알았는데. 눈이 트인 심봉사에게는 잠 자는 시간도 아까웠을 텐데. 이 대목에서 몰리뉴 문제를 떠올리고 몰리뉴의 철자법을 환기하고 관련한 논설을 이어갈까 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관련해서 몇 줄 아니 몇 자라도 쓸 것 같으면 불완전한 기억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내용을 직접 확인해야 하나 몸도 마음도 이에 따르지 않는다는 생각에, 접는다. 동시에 떠오르는 무수하고 다종다양한 생각들. 글쓰기는 이 공간적 사유의 습성을 그나마 어르고 달래서 --마치 데미우르고스가 형상을 수용하도록 코라-질료를 설득하듯-- 시간과 논리의 순서에 맞도록 정돈하는 거의 유일한 방책이었다. 이를 게을리했으니 사유가 정체한 것도 당연하다. 정체가 계속되는 동안 퇴보한 것도 당연하고. 

그러고 보니 수년 전, 아마도. 수십 년 전... 또 하나의 기억이 팝업창처럼 떠올랐지만 이를 줄글로 펼칠 생각을 하니 또 지난하고 아득해질 것 같아 관둔다. 그렇지만 문자가 모여서 문장이, 문장이 모여서 문단이 기계가 아닌 방식으로 "생성"되고 있는 광경을 목도하고 있으니 (과장을 보태면) 감개무량하다. "기계가 아닌 방식"? 그것이 "자동적" 혹은 "자율적"인 방식, 심지어 "기계적"인 방식이 아니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내가 이런 방식의 "자동기술"이나 번역을 좋아했던 것도 결국은 바로 그러한 "기계적"인 면 때문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측면을 그 누구 아니 그 무엇보다 뛰어나게 수행하는 기계가 득세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지배하게 될 세상이 오고야 말았으니. 불과 몇 년 사이에. 3년 전만 해도 바로 이곳에서 바드를 시연한 결과를 옮기며 갸웃했었는데 이제는 일상의 가장 소소하고 내밀한 고민까지도 제미나이와 나누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이런 이야기도 너무 진부해져 버렸다.

사유가 부재했던 지난 2년. 이곳의 공백은 그 부재를 증명한다. 이곳 뿐이랴. 이력서 또한 공백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사실은 그 기간에, 오,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가. 여러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른다. 그 거대한 사건들 사이를 비집고 솟아났던 사소한 순간들도. 눈이 시린 푸른 하늘,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바위틈 사이에 피어난 들꽃, 반 년에 한 번씩, 잊을 만하면 나타나서 꿈에서나 이룰 사랑이나 전생의 인연의 환생인 듯 주위를 맴도는 나비... 그런 장면을 마주할 때면, 어김없이, 그 찰나의, 그렇지만 찰나이기에 지고에 이를 수 있는, 그런 행복감을 나눌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이내,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 순간과 감정을 나눌 만한 재주가 나에게는 없는데, 있다 해도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어차피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끝나 있을 것이 인생인데, 하고 이내 체념하곤 했던 것이다. 

고대 원자론자들이 공백 또는 진공에 존재를 부여했던 것은 그것을 원자들이 운동할, 원자들의 운동을 가능케 할 조건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무엇이든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그런 점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닌. 실로 부재는 역으로 존재의 이유 따라서 필연성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여 일어나라(탈리다 쿰)"(마르코 5:41)! 그대가 더 이상 소녀가 아니라는 것이 일어나지 않을, 못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왜 하필 이 시점에

이곳 생각이 났을까. 마감을 이미 넘겨버린 발표문 때문인가? 자포자기? 일생일대 중요한 일들 중 몇 개를 줄줄이 앞두고 그제부터 일이 이상하게 풀리지 않는 느낌. 불안감. 아이폰으로 글을 적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던가? 이 아이폰 SE의 성능이 저하된 탓도 있는 듯하다. 애플 뮤직의 굿 바이브 리스트를 틀었는데 라나 델 레이의 나른한 목소리가 나온다. 가사가 달달해선가? 숙대입구에서 충무로 가는 길...

급히 마무리하던 글을 다시 꺼내다. 지금은 이 글을 처음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약 2개월이 지난 후, 그리고 지금은 다시, 아니 어쩌면 여전히, 충무로다. 

이제껏 이곳에서 지켜오던 원칙을 깨고 지명을 약자가 아닌 실명으로 적은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이었을까? 이 글이 제대로 마무리되었다면, 즉 적어도 통상적인 과정을 거쳤더라면, 그 과정 중에 검열이 시행되었을 것이고 그러면서 익명화 처리도 이루어졌으리라. 그러나 이번에는 2개월 전의 기록을 있는 보존한다는 취지에서 그대로 남기기로 한다.

지난 2개월은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기 중 하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지난 2년도 그랬다. 2번의 이직. 그리고 그보다 최소한 2번의 이사. 그 외에도 자잘한 이동이 여러 번이나. 참으로 역설적인 것이, 15년 가까이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지내면서는 정작 한 곳에서 10년을 넘게 살았던 반면, 귀국 후 비로소 원주민/토착민으로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살 만한 조건을 갖춘 이후로는 좀처럼 정착하지 못하고 유목민으로 살게 된 것이다.  그러다 지난 2개월 사이에는 이제껏 가본 적이 없는 새로운 도시에 한 달 새 두세 번을 드나들었고 급기야 오는 9월부터는 바로 그 도시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제 조금은 더 안정적인 삶을 구가하게 된 셈. 그렇지만 당분간은, 적어도 앞으로 1년 간은, 안정까지는 힘들겠고 그저 준안정 상태 정도만 바랄 뿐.

그런데 왜 또 하필 이 시점에 이곳 생각이 났을까? 

우선은 이사를 1주일 남겨둔 상태... 라는 것이 이유겠다. 이것이 어떻게 이유가 될 수 있냐고? 좋게 말하면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격언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예의 그 고질적인 현실 도피 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가 하면... 도대체 할 일이 한둘인가? 

우선은 쓰던, 아니 실은 거의 시작도 안 한, 논문을 20일까지 내야 하는데... 20일이 바로 이삿날이고, 이래저래 정리할 시간을 확보하고자 한다면, 논문은 15일까지 마무리해야 한다. 그런데 15일은 마침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 개봉일이다. 마침 이 논문은 양자역학 (어쩌면 그리고/또는 양자장론!)에 관한 것이므로 어쨌든 관련 내용을 다루고 마침 개봉까지 한 이 영화를 언급하거나 나아가 분석하면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좋은 접근이 되리라 생각된다. 마침 논문에서 다루어야 하는 저자(캐런 버라드)도 양자역학과 원자폭탄을 다룬 논문을 발표한 바 있으니.

방학까지 번역을 대강 마쳐놓기로 한 "히스테리의 발명". 그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원래는 관련해서 논문도 하나 발표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그 상황에서는 벗어났다. 그렇지만 올해 안으로 저 번역을 마쳐야 하는 상황은 그대로다. 그러나 상황 상 오는 겨울방학을 기다려야 할 듯하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다른 번역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논문에 대한 부담의 무게를 이전보다는 어느 정도 덜어낸 채로 번역에 임할 수 있게 되어 다행.

기출판 논문 교정 후 개고 및 가이아를 적용한 작품/작가론. 당분간은 불가.

무엇보다도 9월부터 바로 시작할 수업이 무려 세 개나 된다. 게다가 그  중에서 둘은 처음 해보는 윤리학 수업. 물론 이전의 토론 수업에서 윤리학 관련 내용에 상당 부분을 할애한 바 있으므로 그때 쌓은 콘텐츠를 적극 이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강의는 새롭든 새롭지 않든 늘 부담이긴 매한가지. 

생각해 보니 지난 2개월을 "인생에서 가장 역동적이었던 시기 중 하나"라 한다면 그것은 정확히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겠다. 6월은 숨가삐 보냈으나 7월에는 하필 코로나에 확진되는 바람에 거의 아무 것도 못 했으니. 차라리 코로나는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확진 후 2주 정도야 증상 때문에 그렇다 쳐도 그 이후에는 그냥 시간을 흘려 보낸 것이다.

조금 아까 잠깐 바깥에 나가 보니 바람이 제법 부는 것이 한여름은 다 지나간 것임에 분명하다. 다가올 가을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고조되는 "8월 말, 9월 초" 시기.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동명 영화(Fin août, début septembre)는 박사과정 동안 그야말로 내 인생 영화였는데 지금이라고 달라졌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적어도 심정적으로는. 그러나 사실 심정적으로만 그렇고 에릭 로메르의 "가을 이야기(Conte d'automne)"에 보다 가까워진 것이 현실. 대학생이 된 아들을 두고 아들의 여자친구와 우정을 나누며 그녀의 전 남자친구이자 고등학교 철학교사였던 동년배 중년 남성의 소개를 받는 중년 여성을 그린 그 영화 말이다. 왜 하필 이 시점에 이 영화가 생각났는가 하면... 며칠 전 그 영화 주인공의 나이를 넘어섰기 때문일 수 있겠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과의 불화를 끝내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때인 것만은 분명하다.


봄꿈 (feat. Aselm Kiefer & 김종학)


Anselm Kiefer, Dormeur du val (extrait)
Anselm Kiefer, Dormeur du val (extrait)
Anselm Kiefer, Dormeur du val (extrait)
빌헬름 뮐러의 시에 프란츠 슈베르트가 곡을 붙여 만든 <겨울나그네>. 흔히 <겨울나그네>를 두고 멜로디가 낭만과 서정의 극치인 데 반해 가사를 들어보면 "찌질"하다고들 한다. 실연의 아픔을 호소하는 청년의 자기 연민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꿈꾸고 그 꿈을 집요하다 싶게 좇는 사람은 타인의 눈에는 그렇게 비칠 법도 하다. 게다가 그 꿈이 가망도 없고 그럴 만한 가치도 없어 보이는 것이라면.

그중에서 11번째 곡 "봄꿈(Frühlingstraum)"은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자주 생각나고 또 자주 듣던 곡이다. 일종의 봄타령처럼. 5월에 화사하게 피어오른 듯한 찬란한 꽃들, 새들이 지저귀는 푸른 들을 꿈꾸던 몽상가. 새벽에 수탉이 울어 눈을 뜨니 세상은 여전히 춥고 어둡고 게다가 까마귀까지 울어대고. 유리창에 낀 성에도 마치 누군가 꽃을 그려놓고서 한겨울에 꽃타령하는 몽상가를 비웃는 것만 같다. 그래도 몽상가는 여전히 꿈꾼다. 사랑을 위한 사랑을. 어여쁜 소녀를. (아마도 소녀의?) 마음과 입맞춤을. 다시 수탉이 울고 마음이 깨어난 몽상가는 홀로 앉아서 꿈을 되새기며 눈을 감는다. 그의 가슴이 뛴다. 언제쯤이면 창가에 푸른 잎이 돋을 것인가? 언제쯤이면 사랑하는 이를 품에 안을 수 있을 것인가?*

안젤름 키퍼는 내가 제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현대 작가다. "좋아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은"이 좀 더 정확하겠다. 지난 20여 년 동안 두어 번 전시를 가본 것이 고작이니까. 세간의 팬덤 문화나, 꼭 대중문화가 아니더라도, 문화 및 예술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바, 그 표현과 방식에 있어 무섭도록 가속화되고 다각화된 수용 패턴에 비추어 볼 때, 나는 그의 편입을 자처하기엔 너무도 게으른 관객인 것이다. 꼭 전시 현장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다른 매체를 통한 접근도 충분히 가능하고 오히려 그 가능성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적어도 이 점에 있어서는 변명의 여지는 있다. 키퍼는 규모와 재료/질료와 재질과 장소적 맥락을 중시하는 구상을 추구하고, 그러한 작품의 속성상 감상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작과의 직접적 접촉을 필요로 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 것이다.

2015년 말에서 2016년 초까지 파리는 키퍼의 세상이었다. 작가는 콜레주드프랑스에서 강연을 했고, 라디오 프랑스퀼튀르에 여러 번 출연했으며, 국립도서관과 퐁피두센터에서 동시에 특별전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출연한 라디오 방송을 열심히 들었고, 국립도서관 전시는 틈만 나면 갔고, 퐁피두 전시에도, 언제나처럼 ㄴ 언니 덕분으로, 여러 번 갈 수 있었다. 2015년 11월 13일에 일어난 테러 때문에 모든 파리가 충격에 빠져 있었고 나 역시 그러했지만, 아니 내게 그 충격과 그 뒤로 이어진 불안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았지만, 키퍼는 버틸 수 있었던 여러 이유 중 하나였다. "내가 논문이 늦어지는 바람에 급기야는 이런 일마저 겪는구나"라고 나약하고 비겁한 생각에 빠지는 대신에, "내가 키퍼를 보려고 논문을 늦췄다"라고 공언할 정도의 긍정과 낙관을 확보할 수 있었고, 덕분에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절박하고 절망적이기까지 당시의 상황을 버틸 수 있었다. 기나긴 겨울을 버티게 해주는 봄의 꿈이었달까. 

사실 키퍼를 "꿈"으로 "엮"기에는 좀 무리...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꿈은 곧 신화이고 이상이고 관념이기도 한데 이는 독일 민족의 신화, 탈무드 신화, 연금술 등등 그의 라이트모티프요 그의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김종학, <잡초> (1987)

원래는 키퍼의 작품론을 이렇듯 장황하고 어설프게 개진하려던 건 아니었다. 오래 소재로 묵혀둔 화두 중 하나가 "봄꿈" 덕분에 소환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덩달아 김종학의 작품도. 지난겨울 서소문 시립미술관에서 김종학의 <잡초>를 보고서는 키퍼의 바로 저 작품을 떠올렸었다. 김종학은 저런 "꽃그림"을 많이 그린 반면에, 키퍼의 저 작품은 그의 세계에서 예외적으로 밝고 화사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그림의 제목은 "무도회에서 잠든 자 (Dormeur du val)", 랭보의 시**에서 따왔다. 랭보의 시는 비극이다. 햇빛이 찬란한 푸른 들판에 젊은 병사가 하나 평화롭게 누워 있는 풍경인데 알고 보니 병사는 숨을 쉬지 않고 붉은 상처 구멍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병사 또한 꿈을 꾸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역시 봄을 꿈꾸며 기다리는, "겨울나그네"의 그 마음이지 않았을까.



* 여기에서 따온 가사의 (구글 번역을 초역으로 한) 의역이자 자유로운/창조적인 해석. 가사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

Ich träumte von bunten Blumen,
So wie sie wohl blühen im Mai,
Ich träumte von grünen Wiesen,
Von lustigem Vogelgeschrei.


Und als die Hähne krähten,
Da ward mein Auge wach;
Da war es kalt und finster,
Es schrieen die Raben vom Dach.


Doch an den Fensterscheiben,
Wer mahlte die Blätter da?
Ihr lacht wohl über den Träumer,
Der Blumen im Winter sah?


Ich träumte von Lieb' um Liebe,
Von einer schönen Maid,
Von Herzen und von Küssen,
Von Wonn' und Seligkeit.


Und als die Hähne krähten,
Da ward mein Herze wach;
Nun sitz' ich hier alleine
Und denke dem Traume nach.


Die Augen schließ' ich wieder,
Noch schlägt das Herz so warm.
Wann grünt ihr Blätter am Fenster? 

Wann halt' ich dich, Liebchen, im Arm?

** C’est un trou de verdure où chante une rivière
Accrochant follement aux herbes des haillons
D’argent ; où le soleil, de la montagne fière,
Luit : c’est un petit val qui mousse de rayons.

Un soldat jeune, bouche ouverte, tête nue,
Et la nuque baignant dans le frais cresson bleu,
Dort ; il est étendu dans l’herbe, sous la nue,
Pâle dans son lit vert où la lumière pleut.

Les pieds dans les glaïeuls, il dort. Souriant comme
Souriait un enfant malade, il fait un somme :
Nature, berce-le chaudement : il a froid.

Les parfums ne font pas frissonner sa narine ;
Il dort dans le soleil, la main sur sa poitrine
Tranquille. Il a deux trous rouges au côté droit.

보티첼리 비너스와 카카오 어피치


- ㅁ 에게

기억하는지? 2012년 너랑 같이 피렌체에 갔을 때였어. 휴대용 클리넥스를 네가 내게 사주었어. 
보티첼리의 비너스가 새겨진. 내가 이걸로 코를 풀지는 못하겠다고 하니 네가 그랬어. 심사 받는 날까지 아껴 두었다가 끝난 후 감격의 눈물을 닦으라고. 그때만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루어질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6년도 훨씬 넘게 걸릴 줄이야. 

그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여러 번 꺼내 봤어. 그때마다 생각했어. 빨리 감격의 눈물을 그 휴지로 닦을 날이 왔으면 하는 희망, 아니, 단지 왔으면 하는 희망과 기대에 머물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오도록 해야겠다는 의지를 되새기곤 했지. 그래서 작년 겨울 짐 정리해서 귀국할 때도 잊지 않고 챙겨 왔고, 또 지난 초여름에 파리로 다시 갈 때도 챙겨갔어. 이걸 이번 여름에 쓸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정작 심사장에는 잊고 갔지 뭐야? 고대하던 그 순간을 놓쳤단 사실을 나중에 알고는 얼마나 애석했는지. 

사실 이제 그 휴지는 원래의 기능을 잃어버렸을 가능성이 커. 이후 이걸 어쩌면 좋을까 볼 때마다 고민했어. 그러다가, 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널 보러 춘천에 오면서 가방에 넣어 가지고 왔어. 적절한 활용 방안에 대해 너와 얘기해 보고도 싶었겠지.

그러다가 마지막날인 오늘, 들고 다니던 휴지가 똑 떨어졌어.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콧물을 자주 흘려서 휴지나 손수건 없이는 외출하지 못하는지라 곤란하던 차, 네가 내어준 방에 놓인 휴대용/여행용 휴지가 눈에 들어왔어. 네 동생이나 조카가 두고 갔겠지, 아마도? 카카오 프렌즈의 어피치가 그려져 있는. 불현듯, 역시 왠지는 모르겠지만,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카카오 어피치 사이의 교환이라, 기발하고 재미있는 거래라는 생각이 들었어. 

어떻게 사소한 과거 사실들을 그렇게 잘 기억하느냐고 너는 물었지. 사실 내가 그럴 수 있는 건 결코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야. 미래에 대한 불투명하고 암울한 전망이나 무겁기만 한 현재 상태를 직시하기보다는 안온한 과거로 회귀, 아니 도피하려 하기 때문이야. 피치 못할 사정 때문이었든 아니면 불운 혹은 행운이 겹쳤기 때문이든 간에, 주어진 매 순간에 충실하게 임하다 보니 지금의 네가 되었더란 네 말이 특히 큰 울림으로 다가왔어.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느 철학자의 말보다도.

이렇게, 피렌체에서 파리, 그리고 춘천까지의 긴 여정을 함께 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음울한 시기를 보내던 나를 지켜본, 그리고 어쩌면 지켜준, 그 휴지(!)를 네게 남긴다. 지켜보거나 지켜줄 그 어느 존재 없이 혼자서 너무도 많은 걸 잘 해왔던 너란 걸 알지만, 그와는 별개로, 네가 지켜보고 또 지켜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만큼 네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기억했으면 하는 내 작은 소망을 담아서.

막다른 길, 천천히



서울 중구


춘천 소양교



다시 시작을 논하기에 앞서 다시, 시작의 노래

«Primordial», Australie, 2017. Tamara Dean. Agence VU
«Commencement», Australie, 2017. Tamara Dean. Agence VU


시작 - 최승자
  
한 아이의 미소가 잠시
풀꽃처럼 흔들리다 머무는 곳.
꿈으로 그늘진 그러나 환한 두 뺨.

사랑해 사랑해 나는 네 입술을 빨고
내 등뒤로, 일시에, 휘황하게
칸나들이 피어나는 소리.
멀리서 파도치는 또 한 대양과
또 한 대륙이 태어나는 소리.

오늘밤 깊고 그윽한 한밤중에
꽃씨들이 너울너울 허공을 타고 내려와
온 땅에 가득 뿌려지리라.
소리 이전, 빛깔 이전, 형태 이전의
어둠의 씨앗 같은 미립자들이
내일 아침 온 대지에 맨 먼저
새순 같은 아이들의 손가락을 싹 틔우리라.

그리하여 이제 소리의 가장 먼 끝에서
강물은 시작되고

지금 흔들리는 이파리는 
영원히 흔들린다.

-- ⟪즐거운 日記⟫ (1984)


좋아요

그는 자꾸만 물었다. "좋아요?" 그럴 때마다 에스엔에스가 언어 현상, 나아가 의식 전반에 끼친 영향에 대해 생각했다. 실명을 건다고는 하지만 워낙 규모가 크고 다중이 참여하는 까닭에 역설적으로 익명성이 보장되는 가상 공간의 언어가 이렇게 가장 내밀한 대화에까지 파고드는 순간. 

거기에 아니라 답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나는 마치 그런 법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답하곤 했다. "좋아요." 답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그저 상대방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거나 메아리로 되돌렸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좋아요? 좋아요. 질문도 바보 같지만, 답은 더 바보 같은데, 그것이 가능한 유일한 답이라 생각하면 더더욱 맥이 빠지곤 했다. 질문을 던진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건대 그것은 딱히 다른 한 말이 없으니 유일하게 가능한 질문, 아니 말이었겠고, 일단 그런 생각이 든 상태에서 답을 하자니 더더욱 맥이 빠졌다. 내 입장에서 보자면 나 역시 상대방에게 같은 질문을 할 수도 있었겠으나, 또다시 의미 없는 "좋아요"의 연쇄로 그 바보 같고 맥 빠진 질문과 답변이 이어질 것이 두려워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진짜로 답에 조금만 관심이 있고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최소한 이렇게 되묻지 않았겠는가. 어디가 어떻게 무엇이 왜 얼마나 좋은가 하고.

이 정도면 별점 체제는 양반이다. 세상의 모든 가치 판단과 미적 평가가 이토록 단순한 좋다/싫다는 이분법적 잣대로 귀결된다. 단순하기도 하고 원초적이기도 하다. 좋으면 웃고 싫으면 우는 신생아의 감정 표현. 가장 근본에 가까운 정서라고도 하겠다. 스피노자의 감응론도 결국은 이에 가깝다. 제법 복잡미묘해 보이는 정서들도 결국은 내 존재 역량을 상승시키는 정서와 하강시키는 정서, 이 둘의 변용에 불과하다. 거꾸로는 온갖 종류의 복잡다단하고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이를 갖는 것으로 여겨지는, 오욕칠정은 물론이요 그를 넘어 화, 울화, 분노, 한, 원한 등등 세밀화하자면 정말이지 무한히 가능할 모든 인간의 정서가 고도로 농축된 표현이 바로 "좋아요" 혹은 "싫어요"라 보는 것도 가능하겠다. 

말로는 이렇게 하지만 나도 요새는 이모티콘과 초성체를 자주 쓴다. ㅎㅎ ㅋㅋ ㅇㅇ ㅜㅜ 등등. 그런데 ㅎㅎ와 ㅎㅎㅎ 사이에 또 미묘한 차이가 느껴지는 까닭에 늘 ㅎㅎ와 ㅎㅎㅎ 중 어느 것을 쓸 것인가 고민하곤 한다. 이모티콘 또한. 씨익 하는 웃음인 😏 이나 유쾌하고 화통한 웃음인 😁, 그리고 약간 부끄러운 듯 뺨을 붉힌 웃음인 ☺️ 의 차이. 어쩌면 감정에 관한 한 이모티콘이야말로 그 어느 언어보다 더 직접적이고 확실하며 무엇보다 접근 가능하며 심지어 보편적인 표현을 가능케 하는지도 모르겠다. 괜히 emotion+icon 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좋아요"와 "I like"와 "J'aime" 가 치켜든 엄지손가락 형상의 기호인  👍 아래에 통일되는, 이것이야말로 보편 언어 이념의 실현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지 않는가. 여전히 모국어와 제2 언어 양쪽과의 불화와 소외, 그로 인한 분열로부터 헤어날 길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러한 원초적 언어의 부흥은 해방구이자 편법의 수단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남용은 해로울 터다.

Ressemblances partout 어디나 닮은꼴

1. 
<악의 꽃>의 마지막 시 : <여행>, "오, 죽음이여, 늙은 선장이여, 이제 닻을 올릴 시간" 산보객의 마지막 여행 : 죽음. 그의 목적 : 새로움. "새로움을 찾기 위해 미지의 심연으로." 새로움은 상품의 사용가치에 독립적인 특성이다. 집단무의식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분리될 수 없는 가상의 기원에 바로 새로움이 있다. 그것은 허위의식의 정수다. 이 새로움의 가상은 동일자의 반복의 가상에 반영된다. 거울이 다른 거울에 반사되는 것처럼. 
--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

2. 
내가 아주 오래 전에 얻고서 스스로 흡족해 마지 않는 깨달음이 있으니, 그것은 관찰한 기간이 짧을수록 사람들은 서로 닮은 것처럼 보이며, 급기야 순간적으로[한 순간에 이르면] 전혀 구분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와 똑같이 소중한 다른 깨달음이 있으니, 그것은 감정의 강도가 클 경우에는 유사성이 더더욱 커져 마침내 동일성에 일치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이다. 
--  발레리, <테스트 선생> 중 "테스트 선생의 몇 가지 생각"


누구에게서나 닮은꼴을 발견하는 ㅎ. ㅎ이 보기에 누구는 모 유명배우를 닮았고, 옆에서 누구누구가 모 가수를 닮았다 하면 바로 맞장구 친다. 그런 ㅎ을 사람들은 재미있어 하고 가끔 놀리기도 한다. "ㅎ씨 눈에는 다 닮았죠? 안 닮은 사람이 없죠?" 내가 보기에도 ㅎ의 유사성 판단은 겨우 "발가락이 닮았다" 수준일 때도 있긴 하다. 

Sandro Botticelli 035.jpg그러나 ㅎ에게는 스스로 자랑스러워 해도 좋을 선례가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스완의 사랑>의 주인공 샤를르 스완. 스완은 주변 사람들에게서 지오토, 미켈란젤로 등 거장들의 작품(주로 자신의 전문인 르네상스 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과의 닮은꼴을 발견하곤 한다. 화자네 집 부얶데기 하녀는 지오토가 그린 카리타스를 닮았고, 스완 자신의 마부 레미는 리조의 흉상을 연상시키고, 한 지인은 텡토레가 그린 초상의 인물과 닮았고 등등. 그리고 결정적으로 오데트. 처음에는 그녀에 대해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의 적극적인 태도에 다소 피곤해 하기까지 하던 그는 어느날 그녀에게서 시스틴 성당에 그려진 보티첼리의 제포라를 발견하게 되고, 순간 사랑에 빠진다.

실은 내게도 닮은꼴을 발견하는 재능 혹은 경향이 있다. ㅎ과 스완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한 데서 이미 알 수 있겠듯.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ㅅ은 나와 오래 알고 가까이 지낸 ㅅ 언니를 닮았고, ㅅ 선배는 자신이 공부하는 철학자를 닮았고, 그러고 보니 또 다른 ㅅ 선배도 자신이 공부하던 철학자를 닮았고, ㅈ의 여자친구 ㅇ은 <파리의 미국인>에서 진 켈리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프랑스 여배우 레슬리 카롱을 닮았고, 전에 본 수퍼마켓 계산대 점원은 프랑스 여배우 시몬느 시뇨레를 닮았고, 오즈의 <꽁치의 맛>에서 며느리 역할로 나온 일본 여배우는 아이유를 닮았고, 필립 가렐의 <정기적 연인>에 나왔고 <질투>에도 나온 한 배우는 트뤼포의 페르소나 장-피에르 레오를 닮았다. 그리고, 이건 나만의 발견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우 중 하나는 그레이스 켈리와 그녀를 그린 영화에 출연한 니콜 키드만.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예고편을 보면서 니콜 키드만은 그레이스 켈리 역할을 맡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가 하면, 말이 나와서 말인데, 닮은꼴 전문가 ㅎ 또한 외모상으로 내게 누군가를 연상케 했으니, 그것은 자크 드미의 <로슈포르의 숙녀들>에 나오는 한 여배우. 양갈래 머리를 하고 신나게 춤추다 뱃사람을 만나 떠나가는. 영화배우가 아니고 말하자면 무명의 뮤지컬 배우고 그리 비중이 있는 역할을 맡은 것도 아닌 그녀가 내 인상에 각인되었다면 그것은 거의 전적으로 ㅎ 덕분이다.

근거? 없다. 유사성이란 게 본래 그렇지 않은가. 유사성에 대한 판단은 직관적, 즉 단번에 주어지는 것이지, 논증의 대상이 아니지 않은가. 그리하여 그 판단의 내용 분석하자면 한도 끝도 없거나 (무한 분석 가능성), 아니면 아예 분석이 불가능하지 않은가 (분석 대상과 분석 행위 혹은 주체의 비분리성 혹은 상호의존성).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유사성 판단은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던 바, "유사성과 차이의 그물망"에서 이루어지지 않는가. 나아가, 비트겐슈타인이 바로 그 가족유사성(family resemblance) 개념을 도입한 맥락을 돌이켜 보면, 결국 유사성이야말로 모든 개념화 및 의미 작용과 언어 게임의 기저에 있는 것 아닌가. 다른 한편으로, 유사성에 기초한 유비 추리(analogy)는, 비록 반드시 진리에로 인도하는 확실한 원리가 되지는 않을지라도, 많은 경우 발견술(heuristics)로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않는가. 

그런가 하면 푸코의 <말과 사물>와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모두 유사성을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다루고 있다 (두 텍스트를 이런 식으로 연결하다니, 이 역시 유사성 판단의 힘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일례). 

푸코에게 유사성은 르네상스까지 전통적, 그러니까 전근대적 사유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다. 이 사유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로 푸코는 보르헤스의 중국 백과사전을 든다. 우리가 아는 그 어느 존재론적 범주나 분류적 질서로도 포괄하기 힘들어 보이는 사물, 아니, 어디 사물 뿐인가, 실제와 허구를 넘나드는 대상들, 개념, 관념 나아가 어떤 사실이나 사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은 각기 있어야 할 제 자리에 있는 동시에 하나로 어울리고 어우러져 하나의 조화를 이룬다. 가장 작은 것(microcosmos)에서부터 가장 거대한 것(macrocosmos)에 이르기까지  가장 본래적인 의미(최소한 가장 어원에 가깝다는 의미에서)에서의 코스모스의 구현. 여기에서 상호 유사 혹은 유비 관계는 서로 다른 물리적 시공간의 존재들을 연결함으로써 넥수스로서의 우주를 발견하는 방식이요, 무리를 무릅쓰고 말해본다면 일종의 우주론적 원리로서 기능한다. 이것이 고전시대로 넘어가서는 차이와 분류의 에피스테메로 전환된다. 벨라스케스의 <하녀들>에서 그 징후가 나타난 바, 표상 체계가 사물로부터 독립하여 더 이상 외부 세계로부터 지시 대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 독자적인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순수 차이를 근간으로 하는 들뢰즈의 존재론에서 유사성이 갖는 위상은 문제적일 수밖에 없다. 레비스트로스에게서 차용한 "유사한 것들만이 차이를 가진다"와 "차이들만이 유사하다"라는 두 명제 (<차이와 반복> 2장, p. 153). 전자는 유사성을 제일 원리로 보고 후자는 차이가 먼저라 본다. 반복도 동일한 것이 반복되는 게 아니라...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좀더 써보고 싶으나 그러려면 <차이와 반복>을 다시 그리고 제대로 읽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아무래도 힘들겠으므로 다음으로 미루거나 적임자에게 맡기기로 한다. 

서두의 두 인용문은 유사성-동일성에 대한 서로 상반된 접근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한쪽에서는 동일한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은 상품 본연의 가치와 무관하게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허위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동일성이야말로 관찰자가 아마도 관찰 대상과의 합치를 꿈꾸느라 만들어낸 궁극의 환상이라고 말한다. 동일성이든 차이든 결국 어느 하나는 본질이고 다른 하나는 가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자니 당장 주저될 수 밖에 없는 것은, 본질론이나 이분법의 한계는 차치하더라도, 하염없이 동일성을 추구하되, 그런 한편으로 끊임없이 차이를 발견하고 없으면 발명이라도 하고자 하는 모순된 욕망이 저항감을 유발하기 때문 아닐까. 적어도 내겐 그렇다. 

어떤 유비


또 하나 유사한 것은 밤에 생각이 난다는 점. 그러나 순간의 충동에 양보하면 그 즉시 후회하게 마련이라는 점 또한.

이제 조금 있으면 70일. 한 5년 전부터 간헐적으로 시도했다가 실패하기를 여러 번, 스스로도 미덥지 못해 "취미가 금연"이라는 자학적 농담까지 하고 다니던 중, 그래도 작년 가을부터 미약하게나마 성과를 보기 시작했다. 중간에 1주일 정도의 휴지기를 두어 번 가지고, 또 일종의 "포상"의 의미에서 한두 대의 예외를 두긴 했지만. 기침과 가래, 소화 장애 등 생리적인 증상에서부터, 전반적인 우울 및 불안, 체중 증가, 다소간의 퇴행성 행동--구강기 유아마냥 자꾸 입에 무언가 물고 싶은 욕구가 강해져 실제로 빨대를 물고 있는다든지, 어쩌다 얻어 피울 상대를 만나는 등의 기회가 생길라치면 강한 충동이 이는 나머지 그 상대를 집요하게 조르고 보챈다든지 하는 강박적이고 유아적인 행태를 보인다든지--등 다양한 종류의 금단 현상을 거쳐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든 듯하다. 장이 계속해서 거북한 것을 제외하면. 

이렇게 15년만(!) 계속하면 비흡연자와 똑같은 조건으로 초기화된단다. 물론 그 기간 동안 노화가 진행될 것을 생각하면 초기상태로 복원되는 것은 아니겠으나, 가차 없는 불가역성 원리가 지배하는 세계에 이 정도의 예외가 허용되는 것이 어딘가. 

가만히 돌이켜 보면, 돌이킬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위의 사례처럼 돌이킬 수 없고 돌이켜서는 안 되는 일이 더 많지만.  

일요일 늦은 오후, 72번 버스

1. 
일요일 늦은 오후. 이 시간대 72번 버스는 늘 붐빈다. 센느 강변을 따라 시내 중심 관광 요지를 지나는 덕에 관광객들도 많고, 휴일을 맞아 나들이를 다녀오는 16구의 부유한 노인들이나 (이들은 일반적으로 지하철보단 버스를 선호하는 편), 유모차를 앞세운 가족들도 많다 (이들에게도 역시 버스가 더 편할 터). 자리가 없어 뒷문 쪽에 서 있자니 앞으로는 노약자석, 뒤로는 유모차 전용 공간이어서 그야말로 2세대 사이에 낀 꼴이었다.   
그러나 이 사이의 공간은 얼마나 아늑하며 편안한가. 혼자 외출했다 귀가하는 듯한 할머니의 뒷모습은 쓸쓸해 보였고, 집채 만한 유모차를 끄는 엄마는 힘겨워 보였다. 나는 과연 기력이 쇠해 버스에서 서 있는 게 힘들어져 염치고 자존심이고 따질 새 없이 자리가 날라치면 재빨리 가서 앉게 되는 스스로를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내 아기를 위해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배려받기보다는 배려를 하는 일이 익숙하고 편하게 느껴지는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 이라 적으려다, 문득, 나 또한 많은 배려를 받고 살아온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아기였을 때 엄마도 그렇게 낯선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아가며 나와 동생을 이리저리 실어 날랐겠지. 단지 내가 남에게 베푼 것을 남이 내게 베푼 것보다 오래 그리고 많이 기억하고 있을 뿐.
 ...이라고 6년 전의 나는 적었다. 그 사이에도 같은 장면은 여러 번 반복됐고, 나는 여전히 2세대 사이에 낀 채 그대로...인가, 과연? 휴일에 혼자 외출했다 쓸쓸하게 귀가하는 할머니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심지어 어쩌면 누군가는 바로 나를 보면서 나이와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는지도 모른다. 

2.

그런가 하면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짐을 한껏 지고서 같은 버스를 타려 국영 라디오 방송국 앞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중. 마침 방송국에서 공연이 끝났는지 관객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와 내가 선 정류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부분 머리가 하얀 어르신들. 공연을 관람한 뒤 아마도 16구나 교외 주택가이자 역시나 부촌에 속하는 불론뉴-비양쿠르로 귀가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날따라 하필 꽉꽉 채운 배낭에 카트까지 들고 있던 나. 머리는 복잡해지고 가슴은 쿵쾅대기 시작했다. 과연 탈 수 있을 것인가, 탄다고 하더라도 저 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견딜 수 있을 것인가, 거북이등 효과를 피하기 위해 최소한 배낭은 벗어야 할 텐데, 그러면 카트랑 다른 가방은 또 어떻게 매니지할 것인가... 등등을 생각하다, 문득, 내게도 최소한 이동의 자유와 대중 교통을 이용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 심지어 내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으니 내겐 우선권이 있지 않은가, 언제까지 이렇게 배려와 양보만 할 것인가... 등등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본성을 거슬러 도전해 보기로 마음을 먹고, 사람들이 모여든 버스 입구 앞에 줄을 섰다. 내 차례가 오자 우선 한 마담에게 양보를 했다. 그 뒤의 다른 마담이 내게 양보를 하여 안심하고 스텝을 밟으려는 찰나,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게 양보를 한 마담에게 양해를 구하고 돌아서고 말았다.

그곳에서부터 집앞 정류장까지는 대여섯 정거장 정도. 다른 옵션을 몇 가지 생각하다가 그냥 집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자전거 타고 다니거나 조깅할 경우에는 단숨에 뛰기도 할 만큼 가까운 거리지만, 그때는 짐 때문에 걸음 속도도 나지 않고 얼마 가지 않아 지쳐가던 차. 한 정거장 지났을까. 뒷차 도착까지 불과 1-2여분이 남아 있었다. 한번 기다려 보기로 했다. 기다리고 있자니 우아하고 지적인 풍모의 두 마담이 다가왔다. 역시 공연을 마치고 나온 기색이었다. 예정된 시간에 버스는 도착했고, 나는 한결 여유로운 버스 안 풍경에 안도하며 티켓을 수리했다. 그런데 나와 같이 탄 두 마담은 지갑을 뒤지는가 싶더니 그냥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 버스 안이나 동네 수퍼마켓에서 저런 뭐랄까, 얌체에서부터 안하무인까지의 모습들을 가끔 보는데, 그럴 때마다 생경하다. 나라고 무임승차를 전혀 안해 본 건 아니지만, 그리 붐비지도 않는 버스에 기사가 엄연히 감시하고 있는 조건에서라면, 나같은 소심한 분자는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배짱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실천하기 힘든 행동을 저렇게 고상해 보이는 분들이 하다니. 한편으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나 시민의식 운운할 것도 없이, 국적, 출신, 성별, 주거지 등등 이른바 사회적 지표라는 것의 지표로서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3.

일요일인 오늘 오후.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에 가려 했으나, 옷을 얇게 입고 나온 데다 비도 한두 방울 떨어지고 해서, 일정을 급히 변경,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산책을 하게 되었다. 날이 궂은 탓에 보통 때보다는 덜했지만 그래도 가족 단위의 산보객들이 제법 보였고, 그 중에서도 유독 아이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는, 재생산 욕구가 채 걷히지 않은 내 의식이 지각에 미친 효과도 없지 않겠지만, 프랑스에서 그만큼 아이들을 확실히 많이들 낳았고 또 여전히 낳고 있다는 사실을 일정 부분 반영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공원마다 거리마다 아이들이 바글바글한 걸 볼 때면, 저출산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한국의 사례를 생각한다. 인구정책은 근대 국가의 대표적인 생정치 장치 중 하나다. 가장 원초적인 동시에 가장 치밀한 진단과 예측, 동시에 기존의 윤리학과 가치 기준을 끊임없이 재고하고 경계하는, 늘 깨어있는 사유를 요하는 부문. 그 뿐인가. 프랑스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장기간에 걸쳐 다양하고 체계적인 시책을 펼쳐 오늘의 눈부신 성공을 이루었다지만, 이것이 단지 행정적으로 정책적 차원으로만 설명될 것은 아니겠다. 사회 전반의 망딸리떼, 즉 심성 혹은 의식의 수준, 즉 정책이나 그 밖의 사회적 규범 수준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는 않으면서 그에 완전히 환원되지도 않는 사회심리학적 심급이 있고, 이것이 유의미한 차이를 만드는 주요한 인자 중 하나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비슷한 수준의 선진국이면서 경제 사정에서는 오히려 좀더 나은 편인 데다,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일찍이 인지하고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인 장려책을 실시해 왔음에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독일의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4.

아이들을 지나치자 이번에는 마주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프랑스 국기인 삼색기를 들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져 마침내 스쳐 지날 찰나, 그녀의 말소리가 들렸다. Vive la République, 즉 공화국 만세. 집에 와서 뉴스를 보고야 알았다. 오늘 트로카데로에서 우파 정당인 Les Républicains, 즉 공화(국)당의 대선 후보 프랑수아 피용을 지지하는 집회가 열렸다는 사실을.

피용은 극우인 마린 르펜에 대적할 사실상 유일한 대항마로 거의 당선이 확실시까지 되던 후보다. 그런데 최근 부인인 페넬로프--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에서 온 이름!--에게 보좌관 업무를 맡기고 보수를 그것도 꽤 고액으로 지급했으나 사실 그녀의 업무는 허구였다는 의혹이 제기돼 법정 출두 명령까지 받은 상태. 이러한 이른바 "페넬로프게이트"로 참모들도 떠나고 사퇴 압력이 거세지는 가운데, 그가 주중에 갑자기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긴급 기자 회견을 열자 모두 사퇴 발표를 예상했다. 그러나 그는 후보로서의 행보를 끝까지 할 것이며 법은 거스를지언정 민중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는 등의 발언으로 모두를 아연실색케 했다. 그런가 하면 침묵하던 페넬로페는, 일종의 "일요신문"인 Journal du dimanche 오늘자 인터뷰에서, "남편을 위해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고 밝히면서, 그 예로, 남편이 참석하는 행사에 동행하고, 연설문을 읽고 코멘트하는 등등을 들었다. 그야말로 비선 비서이자 참모의 역할을 했다는 것인데. 여성들이 담당해 온 가사 노동--페넬로페의 바느질!--의 가치화 및 경제 기여도 재평가와 유사한 맥락에서, 배우자로서 관행적으로 비서나 참모의 역할을 대신함에도 보수는 물론이거니와 상징적 가치조차 인정받지 못했던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차원--
--말하자면 페넬로페가 바느질이나 충절로써 오딧세우스 신화에 기여한 바를 인정하자는 취지?--이었다는 해석으로 쉴드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기도 했으나, 이는 아무래도 과도한 해석이겠다. 설령 이 해석을 따른다 해도, 더욱이 실제로도 정치인 중에 배우자를 그런 명목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고도 하니, 정식으로 절차를 거쳐 비서나 참모로 채용하고 규정에 따라 보수를 지급하지 않은 책임은 물을 수밖에 없다.  

트로카데로 집회 사진을 보니, 모두가 단체로 맞춘 꼭 같은 규격의 삼색기를 들고 일제히 흔드는 모양이, 요새 서울시청앞에서 열린다는 태극기 집회의 그것을 빼다 박았다. 심지어 참가 인원을 제멋대로 부풀리는 것도 닮았다.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아니 세태 판단이나 대세론까지 갈 것도 없이, 합리적 동물로서 최소한의 사고력과 판단력만 발휘해도 답이 나오는 문제에, 오답을 답이라 우기면서 정신승리하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프랑스혁명이나 68혁명, 그리고 광주나 87년 항쟁 같은 역사가 결국 이걸 위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결국 역사는 현재에서 성찰하고 긴장하고 노력하면서 끊임없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는, 또 하나의 역사의 교훈.

점, 선, 면의 몸짓들. 클레 전의 인상

2016년 여름, 퐁피두 센터 파울 클레 L'ironie à l'œuvre 전
Merci, encore, à ㄴ 언니, 그리고 동행한 ㅎ

Bilderbogen (그림 종이/그림판) . 1937. 부분.
점, 선, 그리고 면, 이 가장 간단한 재료들만으로 가장 역동적인 몸짓을.
 
abstractes Ballet (추상 발레).1937. 부분.
선은 면이 되고, 면은 춤이 되고, 선에 기댄 면이 다시 선을 받쳐주고,
모두가 한 데로 어우러져 하나의 몸짓을. 

Duell (대결). 1938.
그러나 선은 때로 날을 세워 면을 찌르고, 
찔린 면은 피 한 점 한 점 흘리며 쓰러지며 최후의 몸짓을.

Tänze vor Angst (불안의 춤). 1938.

모든 칼은 춤이 되고 또 모든 춤은 칼이 되어 버린 참상을 딛고,
너의 선과 나의 면이 만나 다시 하나의 몸짓을.

탈진리 시대에 사실을 논한다는 것은

언제부턴가 너도 나도 "팩트"를 말하기 시작했다. 각 언론사마다 "팩트 체크"에 특종 보도 이상의 열의를 보이고, 토론에서는 이론이나 논리로 무장하고 있어도 상대방이 구체적인 "팩트"를 들이대면 반박하기 힘들어졌다. 정확하게는, 팩트"라" 말하기 시작했다 해야 할 것이다. 사실을 검증하는 일이나 사실로 반박하는 일이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사실의 개념과 위상이 바뀌면서 그것이 주장과 갖는 역학 관계가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팩트 폭력"이나 "팩트리어트"란 신조어가 시사하는 바, 영단어 "팩트"로의 대체는 이 현상을 일정 부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Phil Venditti/FlickrCC BY
이러한 언어 현상에는 영어 패권주의와 사대주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무엇보다도 큰 변화 중 하나는 과거 권력층과 언론이 독점했던 이것을 이제는 누구나 생산하고 배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체크, 즉 검증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실의 검증과 확인이야 누구에게나, 특히 언론에는 필수적인 직업윤리에 해당하겠으나,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매개로 사실과 정보가 민주화되면서 그 필요성이 한층 더 부각되고 강제성이 대두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사실이란 무엇인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런데 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사실에 대한 증거들은 한낱 조작된 것이거나, 사실이라 하더라도 다른 이론으로써 설명이 가능하다. 아폴로 11호의 달착륙도 마찬가지. 이를 사실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에게 착륙 장면을 촬영한 화면이나 성조기 같은 것들은 조작된 증거이고, 이는 미국의 세계 지배 음모, 군수산업 비리 등등 다른 가설과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것이 음모론의 구조다.

반대로 사실이 아닌 허구를 사실로 주장하고 이를 뒷받침할 이론과 논거를 들이대는 경우가 있다. 드레퓌스 사건이 그러했고, 한국의 현대사에 숱하게 등장한 조작 사건들이 그러했다. 한 무고한 이에게 누명을 씌운다. 그리하여 그가 유죄라는 가설을 세운다. 그리고는 물적이든 심적이든 증거를 제시한다. 증거가 부족하거나 (없는 사실을 만드는 것이니 당연히 부족할 수밖에 없다) 반박하는 증거가 나오면 애드혹 가설을 만든다. 고문 당하다가 죽은 사람이 "탁 하고 치니 억하고 죽"을 정도로 심각한 심장질환자로 돌변한다. 문제는 이런 종류의 이론과 가설은 원하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요새 말로 "정신승리"(최신 유행어이고 민간 용어인 줄 알았더니 mental attainment 라는 심리학 용어로도 있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그것이 정신의 힘이자 한계다. 

이런 걸 보면 이론이 아닌 경험이 지닌 힘에 수긍하게 된다. 그리고 왜 푸앵카레 같은 수학자들이, 그리고 오늘날 초끈이론이니 퀀텀 룹 이론이니 하는 가장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이론을 구상하는 이론물리학자들이, 아니 그런 부류일수록 더더욱, 실험과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지 . 포퍼의 반증론이 거기에서 나왔다. 아무리 수학적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믿 이론도, 그리고 제아무리 많은 경험을 수렴해서 설명하고 포괄하는 이론도, 반박하는 실험 사실 하나에 무너진다. 

그러나 다시, 여기에서 말하는 사실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사실이 지시하는 바는 무엇인가? (과학적/과학철학적) 실재론자들이 말하는 실재인 것인가? 저기 어딘가에 있으면서 주어질 때에는 거기에 있던 그대로 주어지는? 소여data가 온전히 주관에 독립적이며 있는 그대로 주어진다는 믿음은 사실 신화에 가깝다 ("소여의 신화"). 목성, 전자, 뉴트리노, 중력파 등등에 관한 사실들이 그 자체로서 실재를 가감 없이 기술한다는 믿음. 그 믿음의 근거를 따지기 시작하면 곤란해진다. 기껏해야 소극적 논변, 즉, 인식 주체인 우리에 독립해 있는 세계의 존재도 그렇거니와, 그렇게 믿지 않으면, 세계에 대한 우리의 객관적 인식이 가능하지 않다는 이유로 옹호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사실은 어쩌면 물신과도 같다. 여기에서, 맥락이 좀 다르긴 하지만, 브뤼노 라투르가 사실fait에 물신fétiche를 결합해 창안한 패티쉬 (faitiche)라는 개념이 유용하겠다 (쓰고 보니 데리다의 차연différance 처럼 음성적으로는 거의 유사하나 문자적으로 의미가 달라지니 이것도 참 재미있다). 있는 그대로 주어져 있지도, 그렇다고 구성된 것도 아닌, 그 경계에 있으며 그 경계, 나아가 경계가 구축하는 세계의 가능성의 조건이 되는 사실을 말한다. 한편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 세계를 구축하도록 하는 근거이자 원리가 되기도 한다. 패티쉬의 고유하고 역설적인 존재 양식을 스텐게르스는 우리로 인해 존재하는 동시에 우리를 존재케 하는 것이라 풀어 설명한다 ("뉴트리노의 역설적 존재 양태", Isabelle Stengers, Cosmopolitique I, p. 29). 이렇게 되면 사실-패티쉬는 사실 우리가 아는 사실이 아니라 훨씬 더 근본적이고 심오한 어떤 것을 지칭하게 되는데... 어쨌든, 사실이라 해서 무조건적으로 신봉할 것이 아니고 객관성과 중립성을 절로 담보하는 것도 아닌 만큼, 사실만능주의는 사태를 너무 단순히 파악한 결과라 하겠다.


Ron Mader/Flickr CC BY
브렉시트에 이어 미국 대선에 이르기까지, 2016년은 "탈진리post-truth"라는 이름 하에 사실과 진리라는 철학의 가장 전통적인 화두가 가장 시사적인 방식으로 재발굴되고 재조명된 해였다.  믿기지 않는 '팩트'에 기댄 선전과 선동이 정말로 믿기지 않는 또 다른 '팩트'를 생산하는 현실. 내가 믿고 싶은 바대로 사실을 보고, 아니 지어내고, 그것은 대체(적으)로 옳은 것(alt-right)으로 간주되는 대체 사실(alternatif fact)이 된다. 그러한 사실의 인식적 가치는 더 이상 진리치에 있지 않고 의미치에 있다. 사실 판단보다 가치 판단이, 사실보다 관념과 신념이, 사실의 진리보다 이성의 진리 (진리의 두 가지 종류에 대한 라이프니츠 이래 전통적인 구분법을 아렌트는 <진리와 정치>에서 이렇게 비틀고 있다. 즉 논리적이고 필연적인 진리와 경험적이고 사실적인 진리의 이항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와 현실 사회의 이항 대립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성보다 감성이, 논리학보다 수사학이, 로고스보다 독사나 파토스가, 진리치보다는 의미치가 우선시된다. 물론 이 이분법 역시 고정된 것이 아니며, 앞에서 적었듯 '사실'이라는 게 신성불가침의 영역은 아님을, 니체 이후 소위 탈근대 시대를 사는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관념에 근거해서 재단된 사실만큼 위험한 것도 없으며, 현실과 괴리되고 현실에 근거한 정당성이 부족한 관념일수록 강경화되고 독단화되는 경향이 있음을 알고 있다. 다름 아닌 경험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

의식 흐름의 기록

혹은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에 관한 시론>에 대한 모방의 시도. 결과는 물론 모방의 대상과는 전혀 무관하게 나오리라. <마장동>. <한양도 성>. <공원을 읽다>. 현재 바로 눈앞에 들어오는 한글책들. 이런 책들이 눈앞에 두고 하필이면 또 파리 한복판에 위치한 도서관에서 그 책들과는 전혀 무관한, 무척이나 프랑코프랑스적인 논문을 가지고 전전긍긍하는 상황. 10년째. 이제 조금 있으면 정말 10년을 꼭 채우게 된다. 이곳은 ㅅ 언니가 다녔고 또 논문 심사까지 마친 곳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어언 7년 전. 그리고 그녀는 나보다 7살 위이니, 당시 그녀는 지금의 내 나이였다. 그녀가 힘든 여름을 보낸 끝에 가을에 논문을 제출하고 겨울에 심사를 받기까지의 과정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그녀가 그 여름을 얼마나 치열하게 보냈는지도. 역사의 반복. 그런데 역사는 반복되는가? 푸앵카레에게서의 역사성의 의미에 대해 적다가 만 참이다. 그는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사실을 구분한다. 반복되는 사실이 있어 그 사실이 축적되어 자료/소여가 되어야 하고, 그 가운데에서 항상적인 패턴을 발견해야 그로부터 법칙을 수립할 수 있고, 그로부터 예측을 이끌어내는 것이 과학이라면, 역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곧잘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 않는가? 그러나 반복이라고 꼭 동일한 것이 재연되는 것이 아니고 그에 우선하고 그보다 근본적인 것은 차이라고 들뢰즈는 설파하지 않았는가? 들뢰즈에 대한 오독/모독. 결국 들뢰즈는 제쳐두기로 했다. 대신에 푸코를. 그렇지만 푸코 독해 역시 오독/모독으로 점철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슈발레나 앙젤 등의 전례를 기억하자. 이들은 과학철학/과학사에서 출발, 각각 양자역학의 역사와 철학, 언어분석철학 및 인지과학의 철학에서 착실한 커리어를 쌓아왔는데 언젠가부터 푸코의 독자가 되었다. 이에 대해 앙젤이 <에른느> 시리즈의 푸코 편에 실은 글에서 말하길, 70년대에 보낸 학부 시절부터 충실히 푸코를 따라왔다고. 뱅센느에서 들뢰즈의 강의를,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푸코의 강의를 듣느라 주중 내내 바빴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푸코의 강의를 들으려면 두세 시간 전부터 가서 줄을 서야 했다니까. 그러다가 학업을 마친 후 전임강사 시절, 푸코를 초청하여 직접 만나게 되었는데, "예전에 당신 수업을 열심히 들었는데 지금은 논리학자가 되었다"고 하니 푸코가 웃더라고. 앙젤보다는 조금 세대가 앞서지만, 앙젤이 속한 프랑스의 소수파 분석철학 진영의 수장, 자크 부브레스도 최근에 푸코에 관한, 약간 안티푸코 성격을 지닌 저서인 Nietzsche contre Foucault 를 출간했는데, 그 역시 초창기부터 꾸준한 독자였다고 밝히고 있다. 또다른 일례로 영미권이지만 이 분야의 정통인 해킹은 또 어떤가. 그의 통계학의 역사나 정신분석학 역사 연구는 푸코의 고고학 방법론에 영감을 받은 바 크다 (그는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2003-4년 경 푸코 세미나를 열었었다. 그리고 앙젤도 이번 학기에 재직중인 사회고등과학원에서 푸코 세미나를 열었다. 나는 둘 다 가지 않았다). 내 경우를 말하자면, 독자...라기엔 무척 편파적이요 파편적으로 푸코를 읽긴 하지만, 어쨌든 남몰래 자칭 푸카디엔느가 되어 논문에서 어떻게든 써먹을 요량에 이르게 된 계기는 "고전시대" 때문이었다. 인문학/인간과학의 고고학. 고전시대 광기의 역사. 소위 초기의 인식론자 푸코. 그래서 나는 "지식-권력"이나 생권력 등등으로 환원되는 소위 중기나 <성의 역사> 이후의 후기는 전혀 모른다. 파레지아, 자기 통치, 자기에의 염려 등등의 개념을 양산한 70년대-80년대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연도 전혀 모른다 (계속 "소위"라는 말을 붙이는 까닭은 한 사람의 학문적 인생을 시기별로 구분하는 일은 늘 한계를 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푸코의 경우 단순한 편리상의 이유나 또 그만큼의 한계를 넘어 그의 사상의 진화를 잘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수년 전, 푸코랑 전혀 무관한 한 수학사 세미나에서, 17세기 데카르트 혹은 라이프니츠를 주제로 발표한 한 미국 학자가 그랬다. "고전시대라는 말을 쓰고 싶어요. 푸코의 나라이니까요." 한편 게리 거팅은 A Short Introduction to Foucault 에서 푸코를 소개하는 서너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푸코로 너무 나가 버렸다. 더 길게 잇지 않는 것은 원래의 논의로 돌아가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 이어 쓸 자신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가장 중요한 목적은 재활이다. 논리력과 집중력 재활 훈련. 원래의 논의로 돌아가서 그 논의를 이어가는 연습을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의 논의가 무엇이었더라? 역사. 역사의 반복.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우연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학의 역사는 어떠한가? 과학 자체는 우연의 지배를 받지 않는데 그것의 역사는 역사이기 때문에 우연의 지배를 받는다 ("과학 자체가 우연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말도 기실은 이미 푸앵카레 시대에 수정되는 중이었다. 우연의 법칙--오늘날 용어로는 통계학 법칙이 물리학에서도 중요한 방법으로 쓰이기 시작하고 또 그 자체 엄밀하고 독립적이고 고유한 방법 중 하나로 인정돼가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푸앵카레는 역시 이 부문에서도 양가적이고 모호한 태도를. 모든 종류의 "신문물"에 대해 그는 참으로 일관적으로 양가적이고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이를테면 왜 열역학은 2개의 근본 법칙을 바탕으로 정립되었는가? 왜 2개이고 왜 하필 그것들인지를 연역적으로 보이는 것은 불가능하고, 따라서 푸앵카레는 수립과정을 카르노에서 마이어, 줄, 클라우지우스, 톰슨 등등이 2개 법칙을 어떻게 정립했고 그로부터 어떻게 열역학의 이론들이 구축되었는지 역사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고 <열역학 강의> 서문에서 말한다...

수녀원에 계신 당신께 보내는 세속의 편지

- ㄴ 언니에게

무심히 보낸 짧은 메세지가 이렇게 세심하게 쓰인 장문의 편지로 돌아오다니. 제가 있는 지금의 여기와 차원이 다른 우주 어딘가로부터 날아온 편지 같아요. 수녀원이라는 공간, 그곳에서 당신이 지내신 일주일 남짓한, 아니 이제 이주가 넘어가는 시간, 그 세계와 이 속세는 질서도 논리도 이렇게 다르군요. 

논문을 쓰기 위해선 오롯이 혼자여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으셨다는 당신. 재미있는 것이 마침 저는 그와 전혀 반대인 깨달음을 얻고 그에 따라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중이었거든요. 너무도 오랜동안 혼자서 살고 쓰고 사유해 왔고, 이것이야말로 지체 및 퇴보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었다는 거죠. 사실 이 깨달음도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에요. 외부의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물체는 자기 운동을 지속한다는 것이 근대역학의 근간이 된 관성원리. 이 원리는 제가 논문에서도 조금 다루는데 볼 때마다 제 경우에 비춰보곤 했죠 (실제로 데카르트와 갈릴레오에 의해 정립된 이 원리에서 인간학과 윤리의 기본 원리를 유추한 경우가 제법 있었죠. 스피노자, 루소 등. 덧붙이면 속도가 변치 않은 상태로 제 운동을 지속하는 물체는 자신의 운동 상태를 말하자면 자각하지 못하고 자신은 멈춰있고 다른 물체들이 움직이는 것으로 인지한다는 것이 갈릴레오 상대성원리). 너무도 오래 관성 운동을 지속해 오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웬만한 외부 자극에는 꿈쩍도 않게 되었던 것인데. 그러다 얼마 전, 더 이상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새삼스런 자각에, 바닥에 남은 마지막 용기와 의지를 끌어모아 외부 세계를 향한 창을 다시 열게 된 것이죠. 

십수 년만에 안과에 가서 검사를 받고 안경을 맞춰서 쓰기 시작했어요. 써보니 그 동안 얼마나 흐릿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또 살아왔는지 알겠더라고요. 작년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하면서 파리를 재발견하는 기쁨을 누렸는데, 이번에는 그 이상이에요. 신천지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그야말로 계몽, 즉 미몽의 상태에서 깨어난, 나아가 새로 태어난 기분. 

지난 주에는 오랜만에, 실로 너무나도 오래만에, 콜로크 하나에 참석했어요. "사상사"가 주제였는데 푸코에 대한 언급이 많았죠. 딱히 푸코를 전공한 사람은 없었지만, 그가 재직했던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열린 만큼, 그리고 그가 해당 혹은 유사 분야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니만큼. 덕분에 지적인 자극과 자신감을 동시에 얻었어요. 푸코의 고고학을 방법론적으로 차용해서 고전시대 우주론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이 제 논문 1부의 목표거든요. 꼭 푸코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만 푸카디앙임을 천명할 수 있는 건 아니구나. 내 주장과 주관이 확실하고 그 안에 나만의 고유한 해석을 녹여내면 그것만으로도 의의를 찾을 수 있겠구나. 

그리고 불현듯 찾아온 깨달음 (푸코나 사상사와는 무관하게 얻은 것이지만 사후적으로 그리고 결과적으로 보면 푸코랑은 전혀 무관하지는 않겠네요. 다 그가 다룬 주제들) : 순수한 앎에의 의지, 지적 욕망보다, 일정한 지적 수준을 인정받고 싶은, 그야말로 인정욕, 그리하여 결국에는 지적 허영심을 충족하고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말하자면 권력에의 의지가 앞서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이것이 그동안 내 논문에, 나아가 삶에서 얼마나 큰 장애물로 작용해 왔는가.

근처에 간 김에 오랜 만에 푸앵카레 연구원 도서관에, 그리고 저녁에는 주느비에브 도서관에 갔는데, 주느비에브에선 아,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주느비에브는 제가 이곳에 온 직후 자주 드나들었던 도서관. 당시 수업이 주로 근처 쥐시유에서 있었고, 또 당시만 해도 저녁 늦게까지 개관하는 도서관이 퐁피두 말고는 유일했던 까닭에. 처음에는 도서 대출 및 출입 시스템을 몰라 입구를 마비시킨 일도 있었고, 그밖에도 당시에는 수치심으로 죽을 듯 괴로웠지만 이제사 다시 생각하면 웃음만 나오는  기억들로 가득한 곳. 높은 천장, 철제 궁륭, 넓은 열람실, 낡고 삐걱대는 책상과 의자, 청록빛 유리갓을 쓴 책상램프,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복제한 벽화, 모든 것이 그대로인 걸로 보였어요. 지난해 테러 이후 등록 및 재등록시 신분증을 요구하는 걸 빼면. 아, 무선인터넷이 가능해진 것도 있네요. 그리고 이는 무척 큰 변화.

그리고 무언가 일을 하나 도모했어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시도를 했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정도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심각한 무기력증에 시달려 왔는지 짐작할 만하죠. 과감하고 무모해진 김에 지도교수에게도 메일을 보냈어요. 얼마 전 메일을 보냈는데 답이 없어 불안해 하던 차였거든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답장이 왔는데 건강에 문제가 있어 답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기다리라는 내용이었어요. 순간 걱정이 많이 됐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상하고 불경하다고도 할 안도감이. 내가 잊혀지거나 아주 많이 밉보인 것은 아니구나, 그래도 희망이 없지 않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록 불행한 소식이고 가슴은 아프긴 해도 어쨌든 그로 인해 내겐 시간이 좀더 주어지게 된 셈이구나, 하는 생각도.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이것이 정말로 마지막 기회겠구나, 하는 경각심이.

이제 당신이 돌아올 날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돌아온 당신에겐 기쁜 소식이 기다리고 있을 거고요. 나도 또 다른 기쁜 소식을 전하는 주인공이면 좋겠지만, 이번엔 힘들겠네요. "혹시 알아? 돌아와 보니 그 동안에 다 썼다고 할지?"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당신을 놀라게 해주고도 싶었는데. 그래도 다음에는, 조만간에는 꼭.

해밀토니안 상념

지금으로부터 수년 전의 일. 한 선배의 논문심사가 끝난 후 사람들과 카페에 갔다. 아는 사이도 있었고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 불문학을 전공하는 한 분이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고 했다. 내심 반가웠다. 더구나 지금은,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18세기 여류 시인을 공부한다니, 더더욱 놀랍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역시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철학을 하는 ㅌ 선배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분은 모른다고, 학부는 다른 학교에서 했다고 했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나야말로 다른 학교이고 심지어 대학원도 다른데, 내가 "선배"라고 해서 그 학교 후배인 줄 안 모양인데... 이 말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당연히 그 학교 출신일 거라고 짐작한 것은 내가 먼저인데, 그래서 그분도 똑같이 짐작했나 본데, 이런 선판단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인가, 그 판단을 전달하는 것은 또 어떻고, 정치적 올바름까진 아니더라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가, 문제의 그 학교가 한국 사회에서 갖는 특권적 위치가 아니었다면 또 얘기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인가, 등등의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보니 정정할 기회를 놓쳤다.

또 그런 일이 있었다. 누군가를 새로 만났는데 그 사람이 학부에서 밴드 활동을 했다길래 무슨 밴드냐고 물었는데, 어디 어디 라고 답을 하는데, 아무래도 학내에서는 유명했나 본지, 말을 하면 내 쪽에서 알리라 짐작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내가 자신과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전제하에. 그런데 여기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나중에서야 계단생각으로 떠오른 답 : "그렇게 유명한 밴드는 아니었나 보네요. 다른 학교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또 다른 예. "전에는 어디에서 공부하셨나?"라는 한국에서 오신 교수님의 질문에, 출신 대학에 관한 질문임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서 "물리학과에서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때는 옆에 있던 사람이 정정 혹은 보충 답변을 해주었다.

사실 나는 내 출신 학교가 부끄럽지 않다. 그곳에서 보낸 7여 년은 내 인생 최고로 행복한 시기였으며 -- 물론 이때가 20대 초반의 꽃다운 시절이었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그와 같은 기회를 누린 것은 내 인생 최고의 행운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가장 중요한 사상적이고 정서적 토양의 상당 부분은 그곳에서 나왔고, 그것이 내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만큼, 나의 이 "출신 성분"은, 굳이 사회적 코드가 아니더라도, 나를 소개하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뺄 필요도 없고 심지어 빠져서는 안 되는 사항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졸업 후, 특히 외지에 나와 살면서부터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의 이 전기적 사실을 밝혀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차라리 프랑스나 다른 외국 사람 앞에서는 오히려 편하게 말할 수 있다. 심지어 짐짓 자랑스럽게 덧붙일 때도 있다. 세계에서 제일 큰 여자대학이라고.

처음에는 내가 나온 학교가 가부장 사회의 편견, 게다가 요새는 여성혐오 정서까지 가세, 표적이 되는 경우가 워낙 많아 이에 따라 발생할지 모를 불필요한 갈등과 불이익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의도인가 했는데, 꼭 그건 아닌 것 같고 (다행히 그런 문제를 직접 겪어 본 적은 없다. 같은 학교 출신, 그러니까 나에게는 동문이 되는 이와의 소개팅 담을 늘어놓는 경우는 더러 있었어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내가 가지고 있을지 모를 모종의 특권의식을 경계하는 태도인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고, 그렇다고 굳이 학벌 사회에 대한 저항의 표시인 것 같지도 않다. 그보다는, 내가 어느 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 자체(이건 내가 그 학교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와는 별개의 문제)가 나에 대해 말해주는 바가 그리 많지는 않고, 더욱이 그 학교에 대해 세상이 갖는 관념이 나에 대한 그릇된 인상(그 유명한 "ㅇ대 나온 여자"!)을 심지 않을까, 혹은 나 스스로가 그 인상을 재확인하는 사례로 추가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라 해두자. 어느 쪽이든 나와 큰 상관은 없지만 피곤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

그보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정체성 확인 및 구별 짓기 전략, 그리고 너무 안일하고 상투적인 유형학적이고 분류학적 사유에 대한 저항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분류학적 사유의 경우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고 그러한 사유에 사용되는 범주에서의 상상력의 부족이 문제다. 이러한 나의 정서 태도는 이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끊임없이 국적/출신을 환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더구나 여기에서 "출신"은 곧 근본(origine)이 아닌가. 사실 국적에 대한 정보가 나에 대한 편견으로 직결되기에는 내 출신 국가라는 것이 이네들에게는 무관심하거나 무지한 대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어차피 편견은 국적에 대한 정보 습득 이전에 이미, 그리고 히잡이나 키파 같은 종교적 상징으로 애써 가시화 수단을 쓰지 않더라도, 외양이나 이름을 통해 동양인, 게다가 여성, 이라는 판단이 내려지는 순간 이미 결정되는 사태. 나는 그렇게 기계적이고 자동적인 판단 기제, 그 속에서 작동하는 상징 권력의 기제가 거북한 것이다. 물론 그런 모든 부문에서 판단중지를 하고 순수히 개별자 대 개별자로 만나기란 쉽지 않거나 거의 불가능한 일. 그 개별자란 것도 결국 결코 단적으로 독립된 존재일 수 없고, 어느 종류든 집단의 구성원이거늘.

물론 그런 인상비평 하나하나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나아가 상호 피상적 인식을 벗어나 나를 알리고 너를 알고 어슴푸레한 너의 언어를 이해함으로써 서로의 편견을 교정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관계를 구축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내가 그럴 만한 의지도 없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게 된 데에 있다. 단순히 (그러잖아도 부족했던) 사교능력의 퇴화 때문만은 아니고, 그 기저에는 사실 자존감 상실이 있을진대. 스스로 너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자각. 겉으로 드러나는 바 이상의 심오하고 본질적인 이면, 말하자면 나의 본질--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사르트르는 그런 것 없다고 했다--에 대한 확신이 희미해졌고, 그래서 더더욱 나를 알리는 게 두려워졌단 얘기다.  

"물리학과 나왔으면 해밀토니안이랑 라그랑지안 알겠네." 이것이 물리학과 출신 불문학도가 내게 한 말이다. 덕분에 나는, 처음에 던진 미숙하고 무례하고 어찌 보면 불온한 첫 질문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던 중에, 어느 정도나마 긴장을 해소할 수 있었다. 의도했고 심지어 의식했는지도 의문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그분은 사소한 듯 던진 한마디로 선행을 베푼 것이다. 내가 어찌 반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척 고맙고 미안한 기억은 계속 남아 있다. 그래서 해밀토니안이 나오면 그분 생각이 나곤 한다.

그런데 해밀토니안과 라그랑지안? 라그랑주는 라그랑주 방정식의 바로 그 라그랑주다. 뉴턴역학을 해석(解析)적으로 해석(解釋)한 해석역학을 정립, 고전역학을 완성했다고 일컬어지는 인물.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동등한 또 하나의 해석역학 체계를 마련한 것이 해밀턴. 이들이 만든 연산자, 해밀토니안과 라그랑지안은 각각 운동에너지와 포텐셜에너지의 합(H=T+V)과 차이(L=T-V)으로 정의된다. 일종의 보존량. 한 역학계가 시간에 따라 어떤 변화를 갖든지 간에 이 양은 보존된다. 고전역학계에서 해밀토니안은 계의 에너지 총량과 일치하고, 따라서 우리가 중학교 때 배웠던바, 역학적 에너지 보존 법칙과 등가가 된다.

일반역학 강의에서 배운 기억은 난다. 내가 물리학과에서 배운 것은 대개 그런 식이다. 그런 사소한 기억들이 현재 전혀 무관하지 않은 주제로 공부하는 까닭에 직간적접으로 도움이 되는 바 없지 않으나, 그러기에는 너무 파편화되어 있고 무엇보다 이해가 수반되지 않아 무용한 것들이 대부분. 그래서 실질적 도움보다는 오히려 주로 학부 때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사실에 대한 회한이라는 부수 효과 혹은 역효과만 양산할 뿐. 그래도, 당시 부족했던 이해를 보완하고 "아, 그게 그런 의미였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 인가, 과연? 어째 모든 일에서 이렇게 일관적으로 뒤늦단 말인가. 계단 이해. 계단 답변. 계단 논문. 계단 인생.

장미 화분 이야기를 해볼까

전에도 얘기했던 그 장미 화분 말이야. 수퍼마켓에서 파는 한 철용 싸구려였지. 원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 그저 물을 가끔 주는 것 빼면 무관심으로 일관해선지 언젠가부터 줄기가 하나둘씩 줄어들기 시작했지. 무관심하긴 해도 신경은 좀 쓰였었는지, 어느 날엔가는 안 되겠다, 안됐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가망 없는 건 잘라내고 줄기 두 개만 남겨놓고는 분갈이를 했지. 그랬더니 남은 줄기는 되살아나고 제법 잘 자라서 지난해에는 한두 송이나마 꽃도 피워내더군. 그 꽃이 지고 나서도 한참은 잘 자랐어. 잎도 별로 없고 병약해 보이긴 했어도. 그래도 잎들이 제법 고왔어. 붉은빛이 감도는 짙은 녹색. 그런데 문제는 그 잎이 달린 가지들이 밑단에서부터 고르게 뻗지 않고 위쪽 부분에만 집중돼 있었다는 거야. 아마 밑의 줄기들은 그사이에 떨어져 나갔었나 봐. 그래도 윗부분은 잘 자라고 있었으니 별문제는 없었는데. 언제부턴가 줄기만 삐죽 솟은 모습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어. 중간을 잘라서 키를 줄이면 딱 좋겠다 싶었지. 그러던 어느 일요일. 줄기를 자르고 접붙이기 시도를 감행했지. 밑동과 줄기 부분을 잇고 막대를 덧대어 이 세 부분을 끈으로 묶어서 말이야. 그랬더니 원래 가지들은 시들해진 대신 새로운 잎이 나기 시작했어. 파릇파릇하던 잎들을 잃은 게 좀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기뻤어. 새로운 생애를 선사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고. 그런데 그마저도 오래 가진 못했어. 줄기가 마르기 시작했어. 이어 붙인 부분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던 거야. 봉합이 부실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화분 밑에 고인 물을 빼느라 화분을 들었다 놓느라 그 부분을 움직였던 것이 주요인이었던 것 같아. 며칠, 아니 몇 주는 고민을 한 끝에, 어느 일요일. 재수술을 시도했어. 붕대를 풀고, 더 이상 가망이 없어 보이는 부위를 절단하고, 비교적 건강해 보이는 윗동과 밑동을 잇고 새로운 부목을 덧대고 다시 붕대를 붙였지. 지난번처럼. 아니, 그래도 지난 번보다는 그래도 요령이 생겨서 붕대도 제법 솜씨 있게, 좀 더 단단히 감았어. 그랬다고 생각했어. 처음에는 또 새잎이 그래도 나더라고. 지난번에도 그랬지만. 사실 지난번이랑 똑같았는데, 그래도 차이가 없지 않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거였겠지. 그러던 어느 날 밤, 바람이 세차게 불었어.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접합 부위가 엇나가고 붕대 사이로 노출돼 있는 거야. 다시 자세를 잡아 주고 며칠 예후를 지켜보았어. 그리고 생각을 해보았어. 또다시 재수술을 시행한다 한들 차도가 있을까. 소수에 불과할지언정 그래도 경험이 쌓이고 요령을 터득했으니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삼세번은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던 어느 날. 잘린 줄기를 통째로 쓰레기통에 넣었어. 사실 이번에는 특별히 숙고를 거치지는 않았어. 그저 순간적으로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을 뿐이야. 사실 애당초 결론은 나와 있었어. 맨 처음 가지를 잘라내던 그 순간부터. 근거없 희망적 사고요, 에 모든 걸 파스칼적 도박이었던 것이지. 데, (), 지. 그 모든 숙고는 합리화와 정당화의 과정에 지나지 않았고, 그에 따른 그 모든 시도 또한, 결론을 재확인할 순간을 지연시키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이야. 순간적 판단, 아니 차라리 충동이, 그 모든 것을 무화시켰어. 충동을 결단으로, 결단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무척 쉬웠어. 쓰레기통에 담긴 줄기와 잎사귀를 보니 헛웃음이 났어. 지난 몇 주, 아니 몇 달간 쓰레기를 키운 셈이었던 거지. 그런데, 그러고 나니까, 옆에 나 있던 다른 줄기가 보이기 시작했어. 뿌리는 같은데 가지도 없고 그저 몸통만 남아 있어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던 이 줄기가 글쎄, 이웃 줄기가 몸이 잘리고 두 차례 대수술을 받고 하는 동안에, 조용히 성장하고 있었던 거야. 뿌리로부터 공급되는 영양을 독점하게 되면서부터는 성장률이 가속되기 시작했어. 가지도 제법 뻗고 끝에는 푸른 싹도 보이고. 그리고는 마침, 마침내, 봄이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