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고 흑역사, 계단 인사말... 그리고 흑역사는 계속된다?


- 이전 포스트 Scarph : PauvRe, Haute, Solitaire et melAnColique: 인생 최고 흑역사와 후일담 에 이어진 글. 그렇지만 실은 그 글 앞에 쓰여진 글. 인생 최고의 흑역사를 쓴 바로 그날 하루 전에 써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것은 계단 인사말이 되겠다.

3 juil. 2019 à 21:50

감사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책이나 다른 글들로 접했던 여러분들을 직접 만나 뵙고 또 이렇게 앞에 모시고 발표까지 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발표 기회를 주신 학회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아울러 발제문을 사전에 준비하지 못하고, 또, 발표 형식 면에서도, 준비한 원고를 그대로 읽는 (그것도 객석과 공유하지도 않고 혼자서만) 유럽 인문학의 전통을 그대로 답습한 점에 대해서도, 양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게는 이 자리가 몇 가지 점에서 감회가 더더욱 새롭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11년 전인 2008년 바로 이 자리에서 세계철학자대회가 열렸고 당시 파리에서 유학 중이던 저는 처음으로 모국에서 발표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때 계셨던 몇몇 선생님들을 이 자리에서 다시 뵙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09년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럽 분석철학회에서 발표할 기회가 있었고, 그때 택한 주제가 바로 아돌프 그륀바움의 유신론적 우주론 비판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손을 놓고 있었던 이 주제를 소환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꼭 10년 뒤인 지난해, 논문을 마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륀바움의 별세 소식을 접했습니다. 10년 동안 이 주제와 관련해서 발전하거나 달라진 논의는 없는지 확인해 보고도 싶었습니다. 오늘 발표는 차후 이 주제에 대해 보다 본격적으로 논의를 전개하기 위한 시론이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어제 김상욱 선생님 발표에서 나왔던 "우주는 심심하다"라는 명언, 기억하실 겁니다. 우주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어떤 의도 없이 생겨나 또 운행되고 있다. 또 그 안의 운동도 특정한 의미 없이 진행된다. 우주에 대한 과학자의 생각을 대변한 것이고 여기 계신 철학자 여러분도 아주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실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요? 중요한 학회 발표를 앞두고도 준비가 미진한 상황에서 세상이 내일 멸망했으면, 아니 아예 소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혹시 해본 적 없으신지요? (그런 생각 해본 사람이 최소한 한 사람 있는데 누구라고 얘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이 세상이 소멸해서 없어진 상황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해보게 되는 상상입니다.

그런데 인간을 포함한 생물이나, 지구나 태양을 포함한 천체들이, 개별적으로는 생성하고 소멸한다 해도, 그 모든 것을 포괄하고 포함하는 총체로서의 우주 전체가 생성하고 소멸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요? 사실 상상조차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주가 늘 있었던 것이 아니고 없는 것이 가능하다. 우주가 없었거나 앞으로 없어지는 일이 가능하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던 이러한 일들이,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기독교-유대교의 도그마를 거쳐서, 가능할 뿐 아니라 당위적인 사실이 되었고, 이로부터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문제가 제기되었다. 바로 그 문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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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인사말을 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설마 발표문을 준비하지 못하고, 발표문을 준비하지 못했더라도 발표장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가던 도중에 내리리라고는, 그리하여 이름하여 "서울역 회군"의 역사를 쓰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 그런데 어제 자정이 마감이라던 그 글은? 아직 못 썼다... 그리고 학회지 담당인 편집이사님께 메일로 슬쩍 마감 연장 여부를 물어봤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학회 대표 계정으로 문의했던 것임을 조금 전에야 알았다. 이쯤 되면 이 학회하고는, 아니 이 학계와는 도통 연이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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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논문, 논문... 아직도!




"잔느는 결국 논문 끝냈다니?"
"그게... 끝내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할머니, 잔느 언니는 왜 늘 논문만 써요?"
"그건 아무도 모른단다."



"파티 하시나 봐요?"
"아뇨. 제가 집에 처박혀서 논문을 끝내려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필요한 식량을 구비하는 거랍니다."
"아, 논문 쓰세요? 저도 젊었을 때 하나 썼어요. 
고생물학으로요. 그런데 잘 안 풀려서..."

 
Tiphaine Rivière, Carnets de thésard, Seuil, 2015
 그리고 다시 보는 카프카의 "계단"생각
 

A une passante

Vous traversiez la rue, Madame. Il y avait, devant vous, des voitures qui attendaient que vous passiez, comme moi, de l'autre côté, en vélo. Vous avez jeté un regard aux voitures à votre gauche, puis à moi, à votre droite, puis vous vous êtes tournée vers moi pour me dire : "C'est interdit !" J'allais dire : crier. Oui, Madame, je suis désolée, mais moi qui n'ai pas l'habitude de parler de tonne aussi agressive avec des gens de la rue, comme la plupart des gens d'ailleurs je crois, vous m'a bien étonnée.

En effet, c'était une route "sens unique" et j'allais rouler mon vélo dans le contresens. Mais, Madame, le saviez-vous ? Paris serait peut-être une ville de cauchemar pour les conducteurs, avec ses routes étroites et de sens unique, mais il n'en est pas de même pour les cyclistes. Dans certaines routes, déjà nombreuses et de plus en plus nombreuses, il est permis aux vélos de conduire contre les sens uniques. J'ignore si tel était le cas de la rue où nous nous sommes croisées, mais, même s'il n'y a pas de signe "sauf vélo" qui garantit que telle exception est tout à fait légale, il y a souvent une complicité entre conducteurs et cyclistes pour que ceux-là laissent passer ceux-ci.

De tout cela, je ne vous ai rien dit. La route en question me paraissait assez étroite et montante, j'aillais plutôt marcher sur le trottoir, et ce, après être descendue du vélo. Quand je vous l'ai dit, vous avez répété : "Non, c'est interdit le vélo sur le trottoir !" Vous croyiez que j'allais passer en montée sur mon vélo. J’avoue que cela m'arrive de ne pas descendre du vélo au trottoir, mais ceci uniquement quand il n'y a personne ou peu et il y a suffisamment de place pour que je ne dérange personne avec mon cheval. Evidemment vous ne me connaissez pas, je ne peux vous demander de me connaitre à ce point-là pour vous renseigner sur mes règles de conduite cycliste. Mais qu'est-ce qui vous dit que je ne sois une assez bonne citoyenne, quelqu'un qui a l'horreur d'être impoli et fait tout ce qu'il faut pour ne gêner personne ? Sur quoi fonde votre raisonnement ? 

Je ne veux pas vous prendre pour une raciste ou une xénophobe. Peut-être vous aviez simplement une mauvaise humeur et vous vous sentiez irritée par rien. Cela arrive à tout le monde, m'arrive à moi aussi, peut-être plus que quiconque. Mais je crains que, vu la situation, vous risquiez de vous faire prendre pour une telle : une dame assez âgée parle de manière aussi hostile et austère à une fille asiatique plus jeune qui a du mal à se défendre, qu'inspirerait une telle situation ? J'exagère peut-être. Mais pas tellement, vu ce qui se passe en ce moment. Je sens que ce genre de tragédie n'est plus réservée aux banlieues. On dit que c'est la face sombre de la mondialisation, ce repli sur soi et ce rejet de l'autre ou d'autrui, et c'est un phénomène de plus en plus mondialisé. A quoi, hélas, Paris n'échappe pas, en tout cas semble avoir de plus en plus mal à y résister. Excusez-moi de vous le dire, vous êtes vous-même un un symptôme de ce phénomène et vous m'en avez donné une preuve.

Cela m'attriste plus que quiconque parce que, Parisienne adoptée, j'aime profondément cette ville, surtout pour son cosmopolitisme et son ouverture vers autrui. Les gens comme vous laissent quitter même les francophiles dans le fond de leur âme comme moi. Ne gâchez pas Paris. Paris n'est pas seulement à vous. Elle nous appartient, à vous et à moi, à tout le monde.

카프카의 "계단"생각

Comment, dans cette vie brève, hâtive, qu'accompagne sans cesse un bourdonnement impatient, descendre un escalier ? C’est impossible ! Le temps qui t'est mesuré est si court... qu'en perdant une seule seconde, tu as déjà perdu ta vie entière, elle n'est pas plus longue, elle ne dure justement que le que tu perds ! t'es-tu ainsi engagé dans un chemin, persévère à tout prix, tu ne peux qu'y gagner, tu ne cours aucun risque ! Peut-être qu'au bout t'attend la catastrophe, mais si dès les premiers pas tu avais fait demi-tour et si tu avais redescendu l'escalier, tu aurais failli dès le début, c'est plus que probable, c'est même certain. Ainsi ne trouves-tu rien derrière ces portes, rien t'est perdu, élance-toi vers d'autres escaliers ! Tant que tu cesseras de monter, les marches ne cesseront pas : sous tes pieds qui montent, elles se multiplieront à l'infini. 
뭐라고? 계단을 내려가겠다고? 그렇잖아도 짧고 서두르면서 또 못참고 징징대는 것이 인생인데? 그건 불가능해! 네게 주어진 시간은 짧아. 일분 일초라도 잃으면 그건 인생 전부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야. 한평생이라 한들 네가 잃은 그 순간보다 더 길다고 할 것도 없어. 그러니까 한번 가기로 한 길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계속 가야 해. 잃을 것은 없어. 위험할 것도 없고. 어쩌면 길의 끝에 끔찍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만약 첫걸음부터 되돌아갔거나 계단을 내려갔더라면 넌 아마도 시작부터 이미 실패했을 거야. 아마도가 아니라 확실히. 문 뒤에는 아무 것도 없어. 네가 잃은 건 없어. 다른 계단을 찾아 걸음을 디뎌 봐.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면 계단은 계속해서 나올 거야. 네가 계속해서 걷는다면 계단은 끝없이 펼쳐질 거야. 
- Franz Kafka, "Protecteurs" in La muraille de Chine Gallimard, 1950, p. 173. Citation tirée de Tiphaine Rivière, Carnets de thésard, Seuil, 2015

해밀토니안 상념

지금으로부터 수년 전의 일. 한 선배의 논문심사가 끝난 후 사람들과 카페에 갔다. 아는 사이도 있었고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 불문학을 전공하는 한 분이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고 했다. 내심 반가웠다. 더구나 지금은,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18세기 여류 시인을 공부한다니, 더더욱 놀랍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역시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철학을 하는 ㅌ 선배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분은 모른다고, 학부는 다른 학교에서 했다고 했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나야말로 다른 학교이고 심지어 대학원도 다른데, 내가 "선배"라고 해서 그 학교 후배인 줄 안 모양인데... 이 말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당연히 그 학교 출신일 거라고 짐작한 것은 내가 먼저인데, 그래서 그분도 똑같이 짐작했나 본데, 이런 선판단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인가, 그 판단을 전달하는 것은 또 어떻고, 정치적 올바름까진 아니더라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가, 문제의 그 학교가 한국 사회에서 갖는 특권적 위치가 아니었다면 또 얘기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인가, 등등의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보니 정정할 기회를 놓쳤다.

또 그런 일이 있었다. 누군가를 새로 만났는데 그 사람이 학부에서 밴드 활동을 했다길래 무슨 밴드냐고 물었는데, 어디 어디 라고 답을 하는데, 아무래도 학내에서는 유명했나 본지, 말을 하면 내 쪽에서 알리라 짐작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내가 자신과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전제하에. 그런데 여기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나중에서야 계단생각으로 떠오른 답 : "그렇게 유명한 밴드는 아니었나 보네요. 다른 학교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또 다른 예. "전에는 어디에서 공부하셨나?"라는 한국에서 오신 교수님의 질문에, 출신 대학에 관한 질문임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서 "물리학과에서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때는 옆에 있던 사람이 정정 혹은 보충 답변을 해주었다.

사실 나는 내 출신 학교가 부끄럽지 않다. 그곳에서 보낸 7여 년은 내 인생 최고로 행복한 시기였으며 -- 물론 이때가 20대 초반의 꽃다운 시절이었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그와 같은 기회를 누린 것은 내 인생 최고의 행운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가장 중요한 사상적이고 정서적 토양의 상당 부분은 그곳에서 나왔고, 그것이 내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만큼, 나의 이 "출신 성분"은, 굳이 사회적 코드가 아니더라도, 나를 소개하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뺄 필요도 없고 심지어 빠져서는 안 되는 사항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졸업 후, 특히 외지에 나와 살면서부터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의 이 전기적 사실을 밝혀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차라리 프랑스나 다른 외국 사람 앞에서는 오히려 편하게 말할 수 있다. 심지어 짐짓 자랑스럽게 덧붙일 때도 있다. 세계에서 제일 큰 여자대학이라고.

처음에는 내가 나온 학교가 가부장 사회의 편견, 게다가 요새는 여성혐오 정서까지 가세, 표적이 되는 경우가 워낙 많아 이에 따라 발생할지 모를 불필요한 갈등과 불이익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의도인가 했는데, 꼭 그건 아닌 것 같고 (다행히 그런 문제를 직접 겪어 본 적은 없다. 같은 학교 출신, 그러니까 나에게는 동문이 되는 이와의 소개팅 담을 늘어놓는 경우는 더러 있었어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내가 가지고 있을지 모를 모종의 특권의식을 경계하는 태도인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고, 그렇다고 굳이 학벌 사회에 대한 저항의 표시인 것 같지도 않다. 그보다는, 내가 어느 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 자체(이건 내가 그 학교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와는 별개의 문제)가 나에 대해 말해주는 바가 그리 많지는 않고, 더욱이 그 학교에 대해 세상이 갖는 관념이 나에 대한 그릇된 인상(그 유명한 "ㅇ대 나온 여자"!)을 심지 않을까, 혹은 나 스스로가 그 인상을 재확인하는 사례로 추가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라 해두자. 어느 쪽이든 나와 큰 상관은 없지만 피곤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

그보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정체성 확인 및 구별 짓기 전략, 그리고 너무 안일하고 상투적인 유형학적이고 분류학적 사유에 대한 저항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분류학적 사유의 경우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고 그러한 사유에 사용되는 범주에서의 상상력의 부족이 문제다. 이러한 나의 정서 태도는 이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끊임없이 국적/출신을 환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더구나 여기에서 "출신"은 곧 근본(origine)이 아닌가. 사실 국적에 대한 정보가 나에 대한 편견으로 직결되기에는 내 출신 국가라는 것이 이네들에게는 무관심하거나 무지한 대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어차피 편견은 국적에 대한 정보 습득 이전에 이미, 그리고 히잡이나 키파 같은 종교적 상징으로 애써 가시화 수단을 쓰지 않더라도, 외양이나 이름을 통해 동양인, 게다가 여성, 이라는 판단이 내려지는 순간 이미 결정되는 사태. 나는 그렇게 기계적이고 자동적인 판단 기제, 그 속에서 작동하는 상징 권력의 기제가 거북한 것이다. 물론 그런 모든 부문에서 판단중지를 하고 순수히 개별자 대 개별자로 만나기란 쉽지 않거나 거의 불가능한 일. 그 개별자란 것도 결국 결코 단적으로 독립된 존재일 수 없고, 어느 종류든 집단의 구성원이거늘.

물론 그런 인상비평 하나하나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나아가 상호 피상적 인식을 벗어나 나를 알리고 너를 알고 어슴푸레한 너의 언어를 이해함으로써 서로의 편견을 교정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관계를 구축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내가 그럴 만한 의지도 없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게 된 데에 있다. 단순히 (그러잖아도 부족했던) 사교능력의 퇴화 때문만은 아니고, 그 기저에는 사실 자존감 상실이 있을진대. 스스로 너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자각. 겉으로 드러나는 바 이상의 심오하고 본질적인 이면, 말하자면 나의 본질--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사르트르는 그런 것 없다고 했다--에 대한 확신이 희미해졌고, 그래서 더더욱 나를 알리는 게 두려워졌단 얘기다.  

"물리학과 나왔으면 해밀토니안이랑 라그랑지안 알겠네." 이것이 물리학과 출신 불문학도가 내게 한 말이다. 덕분에 나는, 처음에 던진 미숙하고 무례하고 어찌 보면 불온한 첫 질문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던 중에, 어느 정도나마 긴장을 해소할 수 있었다. 의도했고 심지어 의식했는지도 의문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그분은 사소한 듯 던진 한마디로 선행을 베푼 것이다. 내가 어찌 반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척 고맙고 미안한 기억은 계속 남아 있다. 그래서 해밀토니안이 나오면 그분 생각이 나곤 한다.

그런데 해밀토니안과 라그랑지안? 라그랑주는 라그랑주 방정식의 바로 그 라그랑주다. 뉴턴역학을 해석(解析)적으로 해석(解釋)한 해석역학을 정립, 고전역학을 완성했다고 일컬어지는 인물.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동등한 또 하나의 해석역학 체계를 마련한 것이 해밀턴. 이들이 만든 연산자, 해밀토니안과 라그랑지안은 각각 운동에너지와 포텐셜에너지의 합(H=T+V)과 차이(L=T-V)으로 정의된다. 일종의 보존량. 한 역학계가 시간에 따라 어떤 변화를 갖든지 간에 이 양은 보존된다. 고전역학계에서 해밀토니안은 계의 에너지 총량과 일치하고, 따라서 우리가 중학교 때 배웠던바, 역학적 에너지 보존 법칙과 등가가 된다.

일반역학 강의에서 배운 기억은 난다. 내가 물리학과에서 배운 것은 대개 그런 식이다. 그런 사소한 기억들이 현재 전혀 무관하지 않은 주제로 공부하는 까닭에 직간적접으로 도움이 되는 바 없지 않으나, 그러기에는 너무 파편화되어 있고 무엇보다 이해가 수반되지 않아 무용한 것들이 대부분. 그래서 실질적 도움보다는 오히려 주로 학부 때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사실에 대한 회한이라는 부수 효과 혹은 역효과만 양산할 뿐. 그래도, 당시 부족했던 이해를 보완하고 "아, 그게 그런 의미였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 인가, 과연? 어째 모든 일에서 이렇게 일관적으로 뒤늦단 말인가. 계단 이해. 계단 답변. 계단 논문. 계단 인생.

돌아서야 비로소, 계단생각(esprit de l’escalier)

<아멜리 풀랭> 중 한 장면. 아멜리가 사는 몽마르트르 근처 아파트 건물 1층에는 식료품 상점이 있다. 이 가게 주인은 하나 뿐인 점원 뤼시앙을 못살게 구는 악취미를 가졌다. 특히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면박을 준다. 뤼시앙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만큼 더더욱 주인이 늘 못마땅했던 아멜리. 늘 뤼시앙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 주인에게 던질 톡 쏘는 한 마디가 아쉽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날, 기회가 왔다. 손님이 아티초크를 주문하자 최상품으로 고르기 위해 야채를 하나 하나 어루만지는 뤼시앙을 보고 또 주인이 나무란다. 저 녀석 채소 다루는 꼴 좀 보라는 둥, 야채보다 나을 게 없다는 둥, 아티초크랑 친구나 하라는 둥...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멜리의 등 너머로 들리는 미지의 목소리. 돌아 보니, 건너편 건물, 반지하 창문에서 누군가가 대사를 귀띔하고 있다. 마치 연극 무대의 프롬프터처럼. 게다가 아멜리가 늘 바라마지 않았던 바로 그 적재적소의 대꾸다. 남은 일은 그가 알려준 대사를 그대로 옮기는 일 뿐. "아티초크는 그래도 마음*이라도 있죠. 아저씨한테는 없잖아요?" 손님들은 박장대소하고, 주인은 제대로 한 방 먹은 표정이고, 뤼시앙은 미소 짓는다.

*아티초크나 배추 같은 채소에서 겉잎을 떼고 남는 속알맹이를 일컬어 coeur라 부른다. 이 단어의 일차적 의미는 심장 혹은 마음. 마음이 자주 바뀌거나 바람기가 있는 사람을 두고 "마음이 아티초크 속 같다(avoir un coeur d'artichaut)" 하기도 한다.

돌아서야 비로소 생각나는 말. 딱 그 순간에 그 말을 했어야 했는데, 후회할 땐 이미 늦었다. 순발력이 부족한, 그리고/또는 이미 지난 일을 반복 재생하고 몇 번이고 곱씹으며 대안 각본을 구상하며 자책하기를 일삼는 악취미를 가진 나 같은 경우라면 자주 겪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사후의, 이미 늦어버린 후에야 대응하는 경우를 가리켜 "l'esprit de l'escalier"이라 한다. 직역하면 "계단의 정신". 순간적으로 멍해진 나머지, 헤어지고 문 닫고 걸어나와 계단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정신이 들어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는 상황. 계단에서 되찾은 정신. 의역하자면 "뒷북"도 가능하겠으나, 모종의 후회나 회한 등의 정서가 깃들어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것 같다.

불어판 위키에 따르면 이 표현의 창시자는 놀랍게도 디드로다. 「배우의 역설 Paradoxe sur le Comédien 」(1773) 중, 한 연회에서 누군가의 예상치 않은 반격에 할 말을 잃었던 본인의 일화를 술회하면서. "나같이 섬세한 사람은 누군가가 이의를 제기하면 혼란스러운 나머지 계단을 다 내려와서야 비로소 정신이 들곤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을 수없이 겪었고 또 앞으로도 겪을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 문장의 저자가 기지와 재치에 있어서라면 역사상으로 손꼽힐 만한 위인이라니. 우선은 놀랍지만 또 한편으로는 위안이 된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루소도 <고백록>에서 "계단정신"이란 표현을 직접 쓴 건 아니지만 비슷한 정황을 묘사했다는 사실. 파리 상인에게 무언가 불쾌한 일을 당한 뒤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 못하다가 파리를 떠나 한참을 간 뒤에야 "당신 목구멍에나 넣으시지, 이 파리 장사꾼아"라고 외쳤다는 한 사부아 공작의 일화를 전하며 그는 말한다.  "이건 내 얘기다."

그러나 사실 루소의 계단정신은 디드로와 달라도 한참 다르다. 디드로의 경우는 정신이 순간적으로 마비되었을 뿐 잠시 후, 즉 계단을 다 내려갔을 무렵이면 회복되는 일시적인 현상이지만, 루소의 증세는 좀더 만성적이고 근본적이다. 그는 상반된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노라 말한다. 괄괄하고 열정이 넘치는 기질, 그리고 기민하지 못하고 두서가 없는 사유 패턴. 그 때문에 늘 때를 놓치고 나중에 가서야만 생각이 떠오르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슴(coeur)"과 "정신(esprit)"의 분리에 대해 말한다. 느낌(sentiment)과 생각(idée)의 차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사람들은 내 가슴과 정신이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할지도 모른다. 느낌은 번개보다 더 빠르게 내리닥쳐 영혼을 가득 채우곤 한다. 그러나 빛을 밝히는 대신에 불태우고 눈멀게 한다. 모든 것을 느끼는 동시에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쉽게 화를 내는 동시에 좀 아둔하다. 냉정을 되찾고 나서야 비로소 생각을 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내게 기민하고 예리하며 섬세한 면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즉흥적 기지도 얼마든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자리에서는 좋은 결과를 내놓은 적이 없다. 대화가 편지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면 나는 아마도 꽤 화려한 화술을 구사했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순발력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그에 더해, 하나의 문제에 대해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생각해야 직성이 풀리는 기질. 감상이 풍부한(sentimental) 동시에 앙심으로 가득(ressentimental)하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즉각적이고 순간적인 발언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 이루어지는 대화, 나아가 인간 사이의 소통이란 얼마나 힘든 행위였을까. 그런 행위의 장인 사교계, 나아가 인간 사회는 얼마나 괴로운 공간이었을까. 역사상 가장 유려한 문장가 중 한 명인 그였던 만큼 본연의 자아와 사회적 자아 사이의 간극을 크게 느꼈으리라.

그러나 결국은 인정욕의 좌절이고 인정투쟁의 실패인가. 디드로건 루소건 앞서 후회나 회한이라 했지만 결국 그 기저에는 상당한 자기애 및 자아도취가 놓여 있음이 분명하다. 둘 다 결과가 스스로에 대한 기대에 어긋나 타인으로부터 기대만큼의 인정을 받지 못한 데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바로 그 기대치를 애당초 너무 높게 설정한 데에 문제의 근본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다음은 발렌타인 기념 계단생각.
  1. 언발렌타인 (One day, a un-Valentine day, which is, like un-birthday, every other day). "당신의 그 매력은 어디에서 왔나요?" 도서관에서 만난 낯선 이로부터 받은 질문. 아마도 그 의도는 출신 혹은 국적을 묻는 가장 평범한 것이었을 텐데, 이를 이렇게 완곡하고도 매혹적인 방식으로 번역하는 정성과 그야말로 재치를 발휘한 그에게 무안을 준 것은 두고 두고 미안하고 생각할수록 아쉽다. 전에도 여기에다 이에 관해 한 번 적은 적이 있는데, 또 이렇게 반복하고 있는 걸 보니 참 많이 아쉬웠나 보다. 그때 이렇게 답했으면 좋았을 것을 : "글쎄요. 아마도 내면에서?"
  2. 발렌타인 전날 (Valentine's Eve, which was yesterday). "어떤 용도로 드실 건가요?" 포도주 가게에서 받는 의례적인 질문. 질문은 의례적이나 질문자는 포도주 가게 주인 혹은 점원으로는 이례적으로 젊고 세련된, 뭐랄까, 전형적인 파리지엥 같은 인상이었다. 원래 생각했던 용도는 카망베르 처치(!)용이었고 그대로 말했는데, 역시나 돌아선 뒤에서야 떠오른 답 : "발렌타인에 혼자 마시려고요."
  3. 발렌타인 (Valentine's Day, which is today). 내 앞의 아가씨가 계산대 점원에게서 튤립 한 송이를 받고 고맙다고 인사한다. 발렌타인 기념 행사인가보다. 그래서 나도 고맙단 인사를 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값을 치루었는데, 저 계산대 점원 아가씨, 앞 손님과는 달리 내게는 그냥 고맙다, 잘가라,란 의례적인 인사만 할 뿐이다. 그때 하고 싶었던, 해야 했던, 말 : "저는 안 주세요?" 이건 사실 뒤돌아서 생각난 건 아니고, 그 자리에서도 생각은 했는데, 그 얘기를 하자니 스스로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서 관뒀다. 그리고는 도서관으로 향하면서 생각했다. 어차피 받았어도 도서관에 들고 가려면 번거롭기만 했을 거라고.
마지막은 계단생각보다는 신포도 논법에 가까운 사례라 할 수 있겠는데... 그래도 신포도라는 이름의 사후 정당화/합리화 논법도 계단생각과 그 메커니즘 면에서는 유사하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왜 이 모든 것이 그 자리에서가 아니라 꼭 돌아서야 떠오르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