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초크나 배추 같은 채소에서 겉잎을 떼고 남는 속알맹이를 일컬어 coeur라 부른다. 이 단어의 일차적 의미는 심장 혹은 마음. 마음이 자주 바뀌거나 바람기가 있는 사람을 두고 "마음이 아티초크 속 같다(avoir un coeur d'artichaut)" 하기도 한다.
돌아서야 비로소 생각나는 말. 딱 그 순간에 그 말을 했어야 했는데, 후회할 땐 이미 늦었다. 순발력이 부족한, 그리고/또는 이미 지난 일을 반복 재생하고 몇 번이고 곱씹으며 대안 각본을 구상하며 자책하기를 일삼는 악취미를 가진 나 같은 경우라면 자주 겪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사후의, 이미 늦어버린 후에야 대응하는 경우를 가리켜 "l'esprit de l'escalier"이라 한다. 직역하면 "계단의 정신". 순간적으로 멍해진 나머지, 헤어지고 문 닫고 걸어나와 계단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정신이 들어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는 상황. 계단에서 되찾은 정신. 의역하자면 "뒷북"도 가능하겠으나, 모종의 후회나 회한 등의 정서가 깃들어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것 같다.
불어판 위키에 따르면 이 표현의 창시자는 놀랍게도 디드로다. 「배우의 역설 Paradoxe sur le Comédien 」(1773) 중, 한 연회에서 누군가의 예상치 않은 반격에 할 말을 잃었던 본인의 일화를 술회하면서. "나같이 섬세한 사람은 누군가가 이의를 제기하면 혼란스러운 나머지 계단을 다 내려와서야 비로소 정신이 들곤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을 수없이 겪었고 또 앞으로도 겪을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 문장의 저자가 기지와 재치에 있어서라면 역사상으로 손꼽힐 만한 위인이라니. 우선은 놀랍지만 또 한편으로는 위안이 된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루소도 <고백록>에서 "계단정신"이란 표현을 직접 쓴 건 아니지만 비슷한 정황을 묘사했다는 사실. 파리 상인에게 무언가 불쾌한 일을 당한 뒤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 못하다가 파리를 떠나 한참을 간 뒤에야 "당신 목구멍에나 넣으시지, 이 파리 장사꾼아"라고 외쳤다는 한 사부아 공작의 일화를 전하며 그는 말한다. "이건 내 얘기다."
그러나 사실 루소의 계단정신은 디드로와 달라도 한참 다르다. 디드로의 경우는 정신이 순간적으로 마비되었을 뿐 잠시 후, 즉 계단을 다 내려갔을 무렵이면 회복되는 일시적인 현상이지만, 루소의 증세는 좀더 만성적이고 근본적이다. 그는 상반된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노라 말한다. 괄괄하고 열정이 넘치는 기질, 그리고 기민하지 못하고 두서가 없는 사유 패턴. 그 때문에 늘 때를 놓치고 나중에 가서야만 생각이 떠오르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슴(coeur)"과 "정신(esprit)"의 분리에 대해 말한다. 느낌(sentiment)과 생각(idée)의 차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사람들은 내 가슴과 정신이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할지도 모른다. 느낌은 번개보다 더 빠르게 내리닥쳐 영혼을 가득 채우곤 한다. 그러나 빛을 밝히는 대신에 불태우고 눈멀게 한다. 모든 것을 느끼는 동시에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쉽게 화를 내는 동시에 좀 아둔하다. 냉정을 되찾고 나서야 비로소 생각을 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내게 기민하고 예리하며 섬세한 면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즉흥적 기지도 얼마든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자리에서는 좋은 결과를 내놓은 적이 없다. 대화가 편지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면 나는 아마도 꽤 화려한 화술을 구사했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순발력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그에 더해, 하나의 문제에 대해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생각해야 직성이 풀리는 기질. 감상이 풍부한(sentimental) 동시에 앙심으로 가득(ressentimental)하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즉각적이고 순간적인 발언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 이루어지는 대화, 나아가 인간 사이의 소통이란 얼마나 힘든 행위였을까. 그런 행위의 장인 사교계, 나아가 인간 사회는 얼마나 괴로운 공간이었을까. 역사상 가장 유려한 문장가 중 한 명인 그였던 만큼 본연의 자아와 사회적 자아 사이의 간극을 크게 느꼈으리라.
그러나 결국은 인정욕의 좌절이고 인정투쟁의 실패인가. 디드로건 루소건 앞서 후회나 회한이라 했지만 결국 그 기저에는 상당한 자기애 및 자아도취가 놓여 있음이 분명하다. 둘 다 결과가 스스로에 대한 기대에 어긋나 타인으로부터 기대만큼의 인정을 받지 못한 데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바로 그 기대치를 애당초 너무 높게 설정한 데에 문제의 근본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다음은 발렌타인 기념 계단생각.
- 언발렌타인 (One day, a un-Valentine day, which is, like un-birthday, every other day). "당신의 그 매력은 어디에서 왔나요?" 도서관에서 만난 낯선 이로부터 받은 질문. 아마도 그 의도는 출신 혹은 국적을 묻는 가장 평범한 것이었을 텐데, 이를 이렇게 완곡하고도 매혹적인 방식으로 번역하는 정성과 그야말로 재치를 발휘한 그에게 무안을 준 것은 두고 두고 미안하고 생각할수록 아쉽다. 전에도 여기에다 이에 관해 한 번 적은 적이 있는데, 또 이렇게 반복하고 있는 걸 보니 참 많이 아쉬웠나 보다. 그때 이렇게 답했으면 좋았을 것을 : "글쎄요. 아마도 내면에서?"
- 발렌타인 전날 (Valentine's Eve, which was yesterday). "어떤 용도로 드실 건가요?" 포도주 가게에서 받는 의례적인 질문. 질문은 의례적이나 질문자는 포도주 가게 주인 혹은 점원으로는 이례적으로 젊고 세련된, 뭐랄까, 전형적인 파리지엥 같은 인상이었다. 원래 생각했던 용도는 카망베르 처치(!)용이었고 그대로 말했는데, 역시나 돌아선 뒤에서야 떠오른 답 : "발렌타인에 혼자 마시려고요."
- 발렌타인 (Valentine's Day, which is today). 내 앞의 아가씨가 계산대 점원에게서 튤립 한 송이를 받고 고맙다고 인사한다. 발렌타인 기념 행사인가보다. 그래서 나도 고맙단 인사를 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값을 치루었는데, 저 계산대 점원 아가씨, 앞 손님과는 달리 내게는 그냥 고맙다, 잘가라,란 의례적인 인사만 할 뿐이다. 그때 하고 싶었던, 해야 했던, 말 : "저는 안 주세요?" 이건 사실 뒤돌아서 생각난 건 아니고, 그 자리에서도 생각은 했는데, 그 얘기를 하자니 스스로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서 관뒀다. 그리고는 도서관으로 향하면서 생각했다. 어차피 받았어도 도서관에 들고 가려면 번거롭기만 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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