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13일 금요일

파리는 늘 공사중

이 시대 파리지앵의 삶과  인격적 특징을 가장 압축적이고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영화로 나는 알랭 레네의 <우리가 아는 그 노래 On connait la chanson> 를 꼽는다.

이 영화의 특색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대중음악을 이용, 뮤지컬 영화의 형식을 기발하게 차용했다는 데에 있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인물들의 대화 한가운데에 불쑥 하고 유행가가 끼어든다. 인물들이 심경을 드러내기 위해, 상황을 인물의 시점에서 묘사하기 위해,  아니면 뭔가 아이러니컬한 상황을 연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점은 헐리웃 뮤지컬 영화와 같다. 그런데 노래는 배우들이 직접 부르는 게 아니라 입모양으로 흉내만 내고 원곡이 그대로 쓰인다. 이 점은 자크 드미 영화와 같다.

그렇다 해서 레네 고유의 스타일이 살아있지 않은가 하면 물론 아니다. 이를테면 영화의 첫 시퀀스는 이러하다. 2차대전 말, 프랑스에 주둔해 있던 독일군 사령관이 전화로 파리를 파괴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받는다. 전화를 끊자 오피스에는 침묵과 긴장이 감도는데, 심각한 표정을 짓던 사령관이 갑자기 입을 묘하게 움직이는데 그 입에서는 당대 여가수인 조세핀 베이커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부하들은 황당해 하고, 그 뒤로 노래 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멀어지는 기차 경적을 연상케 하는 불협화음의 관현악 연주곡에 묻히면서, 이에 맞춰 카메라는 추락하고 및 페이드 아웃. 그런 뒤 장면은 현대의 파리로 전환. 튈르리 공원 근처에서 가이드가 관광객들에게 말한다. "저기가 독일 점령군 본부가 있던 장소입니다. 바로 저 곳에서 사령관은 히틀러의 명령을 거부하고 역사와 문화의 도시 파리를 지키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과거에서 미래로의 시간축상의 이동, 더 간단한 말로는 시간여행을 레네는 그렇게 이미지와 음향의 몽타주를 통해 영화적으로 "실현(réaliser)"하고 있는 것이다.

서사 구조를 놓고 보자면 주인공이 한둘로 압축되지 않고 하나같이 개성이 강한 대여섯의 등장 인물들이 거의 동등한 비중으로 나와 서로 얼키고 설키는 코랄 영화. 흔히 말하는 "프랑스 영화"에서 유독 자주 볼 수 있는 설정인데, 그 중에서 레네는 대표 주자격이라 하겠다. 그는 특히 늘 같은 한 무리의 배우들과 지속적으로 작업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 극단을 이끄는 단장이나 연출가 같달까. 씨네아스트보다 메퇴르엉센느(metteur en scène), 즉 무대/장면 연출가라는 직함이 더 잘 어울리는. 특히 희곡을 각색하거나 희곡 작가가 쓴 각본으로 주로 작업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래서 나는 레네 영화들이 연극적이라고, 영화 고유의 예술적이고 매체적 속성을 유지하면서도 어떤 연극성을 지향한다고, 영화와 연극 사이의 어떤 접점이나 합의점을 계속해서 모색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도 여지없이 이른바 레네 레이블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어떤 대표성을 띤다...고 보기엔, 영화가 나온 지 거의 20년 째 되어가는 지금의 기준에서 본다면, 아무래도 "백인" 그리고 "부르주아" 중심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나. 어쨌든 각 인물들의 면면이 아직까지도 그 유효 기간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을 법한 파리지앵 및 파리지엔느의 어떤 전형 혹은 이상형을 드러내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 관광 가이드로 일하면서 중세사로 박사논문을 쓰는 카미유 (그녀도 영화 내에서 결국 논문을 끝낸다), 번듯한 커리어 우먼이지만 인간 관계에 있어서는 미숙해서 곧잘 손해를 보곤 하는 카미유의 언니 오딜, 제멋대로인 오딜에 비해 침착하고 그녀를 뒤에서 챙기지만 그런 그녀에게 넌더리가 나기도 했는지 몰래 다른 여인을 만나는 오딜의 남편 클로드, 파리를 떠났다 다시 돌아와 고급차 운전 기사로 일하는 오딜의 옛 남자친구 니콜라, 그리고 파리에서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마주칠 일이 있으나 그 마주침이 늘 유쾌하지만은 않은 직업 종사자, 부동산 중개인 마르크  등등. 그리고 그들과 마주치는 다른 수많은 파리지앵들 : 구직자, 은퇴자, 관광객, 카페 주인... 그리고 무엇보다 의사.

니콜라는 이 의사 저 의사를 전전하는 건강염려증 환자다 (당시만 해도 주치의 등록 제도가 없었기에 가능했던 듯. 요새 그렇게 했다간 진료비 환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천하의 건강염려증 환자도 감당키 어려울 것... 물론 건강염려증 환자이면서 갑부라면 또 모르겠다). 영화에서 그가 만나는 의사들이 하나 같이 스타일이 다르고 각자 상반된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걸 보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던 사례는 한 여의사.

다른 의사들에 비해 훨씬 권위적이고 진지해 보이는 그녀는 다른 의사가 내린 처방전을 보더니 "어떻게 의사로서 이런 처방을..." 하며 한숨을 푹 쉰다. 그리고는 부언하려는 니콜라의 말을 막고 처방된 약의 해악에 관한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려는 찰나, 공사장 드릴 소리가 들리면서 그녀의 말을 막는다. 그리고는 그녀가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후렴구 혹은 추임새처럼 계속되는 드릴 소리 :
만약 이 약을 계속 복용하면... (드르륵) 그 부작용 때문에 나중에는... (드르륵) 정말 심각한 상황이... (드르륵) 제가 충고하건대... (드르륵) 당장 그 약은 쓰레기통에 버리세요! (드르륵)
드르륵이 계속될 때마다 그녀의 표정과 어조에서 감정이 고조되고 나아가 격앙되는 것이 느껴지는데, 이 과정이 바로 저 음향 몽타주 덕분에 상당히 리듬감 있으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려진다. 개인적으로 레네의 연출 실력이 특별히 돋보인 시퀀스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이 역시 너무나 파리다운 상황. 사람 사는 곳이고 더군다나 거주 공간이 밀집해 있는 이런 대도시에서 공사가 벌어지고 또 그 소음이 들리는 일이야 흔한 것이 당연하겠지만... 왜 꼭 내가 가는 곳마다 공사중이냔 말이다. 스스로 먹구름을 몰고 다니는 탓에 가는 곳마다 비를 맞는 만화 주인공처럼, 공사 바람이라도 몰고 다니는 것 같다. 몇 년 전에는 건너편에서 건물을 아예 부수고 새로 올리느라 한참 드릴 소릴 들어야 했고, 집을 완전 개조라도 하는지 몇 달이 넘도록 계속 공사중이었던 아랫집이 그제부터는 좀 잠잠해지나 했는데, 오늘 온 시립 도서관은 또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건물 위쪽에서 공사중이어서 드릴 소리에 귀가 얼얼하다. 개발우선구역(ZUP, zone à urbaniser en priorité)인 것도 아닌데. 정작 개발우선구역인 외곽은 개발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지 않은데.

그러다 다시 반성.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다름 아닌 나의 아빠 아닌가. 그리고 그런 공사 끝에 나온 결과물들을 보면 경탄하게 되지 않는가. 그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그에 기여한 정신 및 육체 노동을 생각하면 숙연해지고.

그러다 보니 지금은 다시 잠잠해졌다. 그리고 무슨 음악이 들린다. 음악 소리를 따라 가보니, 아, 씨디와 디븨디로 가득한 공간이 나온다. 조금 아까 드릴 소음을 보상이라도 하듯. 언제나 어디서나 공사중인 파리. 그런데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떠나지 못하겠는 것은, 떠나더라도 여전히 그리울 것 같은 것은, 바로 이런 보상 체제 때문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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