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군대 얘기, 축구 얘기,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를 떠들 때 소외되는 것은 여자들만이 아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남자 역시 적어도 세 번 중 두 번은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군가산점제나 양병거 논쟁이 한창일 때, 나는 왜 군대에 갔다오지 않았거나 갔다 왔더라도 현재의 군대 제도에 대해 그 근본에서부터 진지하게 반성할 줄 아는 남자들이 침묵하는지 의문이었다. 물론 그들이 정말로 침묵했다기보다는 그들의 소리가 묻혔던 것일 수도 있다. 비단 그들의 소리뿐 아니라 "군필자"들의 격앙된 목소리 외에는 다른 소리들을 듣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어쨌든 나는 그들이 입을 열면 이 논쟁이 소모적인 성대결--"여자도 군대 가라"나 "여자는 아이를 낳지 않느냐" 등의 논점 일탈로 이어지게 마련인--이 아니라 반폭력/폭력, 반군사/군사의 구도로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최근 http://www.cultizen.co.kr/home/> color=#000066><컬티즌>에 이 웹진 편집장인 이영재씨의 http://www.cultizen.co.kr/c ... t/?cid=1765> color=#000066>"군면제자가 병역 비리에 대해 말하다" 라는 글이 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또 군대를 비판하는 여성들에 대한, 비교적 점잖지만 여전히 그다지 듣기 좋지 않은 소리가 나왔다. 아래는 그 리플에 대해 내가 달아놓은 리플이다.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은 분명합니다. 이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따라서 그 어떤 말에 대해서든 그것이 나오게 된 맥락을 고려해서 판단을 내려야 하겠지요. 비록 그 말이 결국은 같은 뜻이나 가치를 지닌다손 치더라도 말입니다.
그런 만큼, 똑같이 "군대는 멀쩡한 사람을 화석화시키는 곳이다" 하고 말한다 하더라도 그 말을 한 사람이 여성, 군필자, 군면제자 중 어떤 정체성을 가졌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이해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비록 내린 결론은 똑같지만 각각이 그 결론을 도출하기까지 거친 추론의 과정과 내용 하나 하나가 너무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부잣집만 골라 털다 잡힌 도둑이 "유전무죄 무전유죄" 하고 말하는 것과 대기업 회장이 "유전무죄 무전유죄" 하고 말하는 것의 차이, 한 대학생이 "386세대는 자기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말을 조갑제가 한 것의 차이가 거기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이러한 발화의 발화자의 맥락에 대한 의존성을 그 발화에 대한 비판에 적용하게 되면 으레 문제가 생깁니다. 발화된 내용 자체에 대한 논리적 비판보다는 발화자에 대한 인신 공격으로 이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군대에 대해 비판을 하더라도 "손에 구정물 한 번 묻혀보지 않은 여대생"이 하면 그저 철없고 몰염치한 짓이 됩니다. 왜냐구요? 손에 구정물 한 번 묻혀보지 않았으니까요. 대꾸해줄 가치가 1g도 없습니다.
반면 비교적 '정당한' 사유로 면제된 사람들--여기에는 위의 여대생들뿐 아니라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도 제외되겠지요--은 그대로 '철'이나 '염치' 면에서 그래도 카운트될 만한 존재로 인정되고, 따라서 그들의 군대에 대한 비판--불행히도 이 사람들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보통입니다만--은 '대꾸해줄 가치'를 부여받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비로소 제대로 된 논쟁이 시작됩니다.
저는 단연코, 결국 여대생들이나 군면제자나 다 같은 말을 했는데 왜 달리 대접하느냐고 반문하려는 게 아닙니다. 반대 의견을 가진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즉 상대방의 주장을 그/녀가 가진 맥락 안에 재위치시키려는 최소한의 노력 정도는 해달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그리고 그 예의에 있어서만큼은 중립성을 지켜달라는 겁니다. (만약 이대총학이 군필자 전체를 싸잡아서 "꼴통마초"로 몰았다면, 그것도 비판받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아는 한 이대총학은 그런 적 없습니다. 이대총학을 그런 "꼴통"으로 몰고 간 것은 다름 아닌 진짜 "꼴통마초"들이겠지요).
여성들이 군대를 비판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군대를 둘러싼 그 수많은 비리나 아니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등에 대한 문제 의식에서부터 군대 때문에 진로를 고민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꼈던 개인사적 경험이나 반군사주의/평화주의에 대한 신념에 이르기까지. 그치만 결코 염치가 없어서라든지 구정물에 손을 담근 적이 없어서는 아닙니다 (바라는 게 겨우 "최소한의 염치"라뇨. 그걸로 보상이 되겠습니까? 그리고 왜 여성들에게 바랍니까, 그걸? 국가에 요구해야지요). 그리고 그 비판의 화살은 궁극적으로 전쟁을 비롯해서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폭력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군필자들이 아니라.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