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더니 이제는 주로, 커플 사이의 대화, 혹은 좀더 일반화하면, 어떤 동반자 관계가 연상되곤 한다.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피아노와 바이올린 각각이 각자의 악보를 따라서 독립적인 행보를 밟는데, 그 두 행보가 완벽한 균형과 조화를 자아내는 것이다. 주부 멜로디를 이끌어감에 있어 둘 중 어느 한 악기에 치우치지 않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음색으로 치자면 아무래도 바이올린이 부인이고 피아노가 남편에 가까울 것 같은데, 정말 그럴까, 그 반대는 아닐까, 따져 보다가 내린 결론 : 남녀 성역할이 아니라 성격이나 소질로 구분해야 할 문제다. 바이올린이 좀더 외향적이고 자기주장 및 표현이 강한 쪽이라면, 피아노는 내향적이고 좀더 차분하고 생각이 깊은 쪽. 각 구성인자가 무엇이고 어디에 대응하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둘 사이의 관계다. 독립적이면서도 균형이 잡혀 있는 동시에 상호보완적인, 그리하여 상호불가분한.
그러다가, 작년, 같은 베토벤의 현악 4중주를 접했다. 매개가 된 것은 역시나 영화였는데, 이번에는 고다르였다. 작년 그의 신작 개봉을 앞두고 국영 라디오 방송국인 프랑스뮤직에서 마련한 특집 방송을 통해, 그가 베토벤, 특히 현악 4중주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지니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실제로 <결혼한 여자 Une femme mariée> 등의 작품에서 사용되었음도. 물론 고다르 특유의 몽타주 기법을 거쳐 "변주"된 형태로.
그 뒤로는 기회가 닿는대로 베토벤이 남긴 16개의 4중주곡들을 들어보고 있는 중. 아직 전체를 들어보기는커녕, 이것 저것 무차별적이고 비체계적으로, 심지어 한 곡도 모든 악장이 아니라 이 악장 저 악장을, 이 악단 저 악단의 연주로 들은 게 전부. 그래서 일단은 누구의 연주가 됐든 간에 전집을 갖추고서 차례로 들어보는 것이 꿈이었는데, 얼마 전 시립도서관의 메디아테크에서 줄리어드 4중주단이 녹음한 전집을 발견, 그 꿈을 이룰 날을 눈앞에 두고 있다.
현재는 총 8장의 음반 중 마지막 두 음반에 수록된 13번부터 16번까지 옮겨놓고 들어본 상태. 그 중에서 15번(A minor, Opus 132)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그 중에서도 특히, 다음과 같이 시작하는 2악장은, 아, 8분 51초의 은총.
2중주에 비할 때, 4중주에서는 바이올린이 아무래도 수적으로도 우세하니만큼 주도적이지만, 비올라와 첼로도 단지 보조적 역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선율의 구성에서 못잖은 비중을 차지한다. 가족 형태와의 유비를 계속하자면, 커플이 새 구성원을 맞은 뒤에 구축한 4인 가족 체제랄까. 이렇게 얘기하면 동성애 결혼 반대 진영에서 내세우던 전통적 가족상이 떠오르겠지만, 꼭 이성애 부부와 두 자녀의 구성일 필요는 없다. 엄마 둘에 두 자녀, 혹은 아빠 둘에 두 자녀, 그 밖에 다른 조합도 얼마든지 가능하겠다. 나의 경우,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한 발짝 물러난 뒤, 이제 막 무대에 등장, 한창 극을 이끌어가는 중이거나 앞으로 이끌어갈 후속세대를 바라보는, 동시에 조용하게 지지하는, 장년세대를 연상하곤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손주 둘을 무릎에 올려놓고 그 재롱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두 노부부(사실 이 인상의 원형은 비틀즈의 노래 "When I'm Sixty-Four"에 있는데. 일종의 청혼가이자 혹자에 따르면 결혼장려가이기도 한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 또한, 아, 사람들이 이래서 결혼이란 걸 하나 보다, 하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설득력 있는 변이 바로 이것이었다 : "너도 언젠가는 나이가 들거야 ... 손주들을 무릎에 올려놓고..."). 이런 생각을 하며 들으면 비올라와 첼로 파트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내 파트가 될 날이 점점 가까워져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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