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2일 목요일
시인의 봄
내 낡은 아이팟의 셰익스피어 앱으로 지하철을 타고 가며 <소네트>를 읽는데 아니 원래 이렇게 일방적이고 노골적이면서 은근히 협박조이기까지 한 구애의 변이었던가 새삼 놀라며 그러니까 변론의 요지는 당신의 청춘과 미모도 다 한때이고 언젠가는 사라질 것인데 이를 보존하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의 그 청춘과 아름다움을 후세에게 남기는 것이라는 것인데 그리고 결혼이야말로 선이고 인류에 대한 의무이며 싱글로서의 삶은 악이자 책임에 대한 방기라는 것인데 거참 이런 억지가 다 있나 이건 결혼 및 출산 장려가도 아니고 저 호방하면서도 소박한 기사도 정신에 슬며시 웃음도 나오기도 하는 걸 참으면서 계속 읽는데 문득 저런 억지 논리에라도 빠져 보았으면 빠져 들었으면 그러나 그마저도 이제는 아무도 하는 생각이 들어 서글퍼졌다가 이내 사실은 그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스스로 만든 논리였고 다름 아닌 내 자신이 스스로 함정을 파고 거기에 제발로 빠졌던 것임을 깨닫고는 한없이 부끄러워지려던 찰나 "시인의 봄" 행사를 맞아 지하철 안내 방송으로 시 한 구절이 흘러 나와 위로하듯 다그치니 아직은 시를 다시 읽을 준비가 되지 않았구나 봄을 맞을 준비도 하물며 시인의 봄은 요원하기만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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