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르의 최근 인터뷰를 듣고 그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났다. <비브르 사 비>와, 오, 무엇보다, <미치광이 피에로>를 다시 보고 싶었는데, 현재로서 내게 접근 가능한 그의 작품은 <알파빌>과 <영화의 역사(들)>이 고작(!). 보면서 새롭게 깨달은 몇 가지 사실 중 하나는 내가 본 고다르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수년 전 퐁피두에서 고다르 특별전이 열렸을 때 그래도 꽤 부지런히 그곳 상영관을 들락거렸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비브르 사 비>와 <미치광이 피에로>처럼 그 이후 수차례 반복해서 본 경우를 제외하면 당시에 봤던 상당수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그녀에 관해 내가 알고 있는 두세 가지 것들>, <오른편을 돌봐라>,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같은 영화들도 분명히 봤는데. 언어의 문제가 컸겠으나 무엇보다 관객으로서의 경력 및 안목의 부족으로 놓친 게 많았기 때문인 듯. 오, 그런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내가 좋아하는 고다르는 아무래도 60년대 카리나 시절의 그다. 비교적 서사도 있고 고전영화의 문법을 완전히 저버리지 않았으면서 무엇보다 로맨틱하고 유머러스한 정서가 완연했던 시기. «고전영화의 문법을 완전히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 완곡한, 어쩌면 사실을 왜곡하는 표현이다. <네멋대로 해라>에서부터 이미 그는 영화사를 새로 쓰지 않았는가. 한편으로 «카리나 시절의 고다르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사실 더 정확하게는 «카리나 시절 이후는 잘 모른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68을 전후로 급격히 정치화된 70년대, 그리고 80년대 이후, 영상, 음성—배경음악과 내레이션과 등장인물의 대사 모두를 포함—, 문자 등 영화의 매체, 매체로서의 영화에 대한 실험을 본격적으로 전개한 시기. 요컨대 다소 치기어린 천재에서 완숙하고 성찰적인 예술가의 길을 걷게 시절의 고다르.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변명 혹은 해명을 하자면, 후기의 그를 «전혀 모른다»고는 할 수 없다. 그의 스타일과 영화철학과 세계관을 총집약하고 있는 <영화의 역사(들)>을 본 이상… 물론 «제대로» 보았다는 가정 하에서!
그리하여 <영화의 역사(들)>과 <알파빌>을 다시 보면서 그의 최신작이자 칸느 영화제 출품작인 <언어와의 작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파리에서는 지난 주에 개봉했으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을 연기한 상태였어서. 그러던 중 뒤늦게, 결과가 발표된 지 4일이나 지난 오늘에서야 비로소, 고다르가 다름 아닌 이 작품으로 칸느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경쟁작 선정 이후 영화제 안팎에서 수많은 잡음과 파란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도 감독 데뷔 후 무려 반세기 만에 칸느에서는 처음으로! 그것도 고다르의 데뷔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이 시대의 수퍼 루키 자비에 돌란과 함께! 칸느에서 이런 극적인 심사 내역은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제인 캠피온 이하 전도연, 소피아 고폴라, 랑베르 윌슨 등등의 심사위원들에게 존경심이 들었을 정도… 고다르에게 쏟고서 남은 존경심이 있다면! 에릭 로메르에 이어 알랭 레네마저 세상을 떠난 지금, 아직 자크 리베트가 있고 또 이들 누벨바그의 후예를 표방하는 이들이 남아 있지만, 어찌 고다르 만하랴. 그가 여전히 있고 또 여전한 시대에 살고 있어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행복이 좀더 오래 유지되었으면.
위의 동영상은 Arte 의 영화전문방송 Blow-up 에서 따왔다. 고다르 영화 세계를 상당히 잘 요약하고 있는 데다가 그 표현 및 편집의 방식 또한 몽타주 이론가인 고다르에 충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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