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 공간에서 깨달은 현실
칸은 내가 다녀 본 프랑스의 그 어떤 도시보다 이국적인, 그러니까 프랑스 같지 않은 도시다. 여러 점에서 세상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도시, L.A.를 닮았다. 바다는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 다른 도시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야자수 하며, 해변을 따라 죽 늘어선 고급 상점까지. 칸에 L.A.적 요소를 불어넣는 것은 그 무엇보다 영화제일 것이다. 스크린으로만 보던 스타들이 바로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고, 거리는 밤낮을 가릴 것 없이 파티복을 차려 입은 사람들로 넘쳐 난다. 이렇듯 칸은, 영화와 축제라는 가장 비현실적인 요소들이 결합되어 지구상 그 어느 곳에서보다도 꿈에 가까운 현실을 만들어 내는 공간이다.
영화제 개막을 한 달가량 앞둔 지난 4월 말, 취재계획서란 것을 써서 겨우 영화제 참가 티켓을 따냈을 때까지만 해도, 칸에 가기만 하면 바로 스타들을 만나고 영화를 실컷 볼 수 있을 거라는 소박한 기대에 마냥 들떠 있었다. 계획서에 나는 이렇게 적었었다. "경쟁작들이나 다른 메인 선정작들보다는, '주목할 만한 시선'이나 '감독 주간' 등 미디어의 관심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부문들을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역시 '경쟁 부문'에는 제외되어 있지만, 영화제를 만들어감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상영관 밖 관객들의 분위기에도 주목하려 합니다." 이렇듯 나는, 상영작들 중 맘에 드는 작품들을 느긋하게 선택해서 감상할 여유가 모든 참여자들에게 무제한으로 허여되어 있을 것이고,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영화제의 존재 이유이자 가치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것이다.
칸에 도착해서 산더미 같은 자료집과 산뜻한 가방을 받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잔뜩 신이 나 있었던 나는, 지중해의 그 뙤약볕 밑에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만석"이라는 통고를 받고 허망하게 발걸음을 돌리기를 몇 번씩 반복한 다음에서야 비로소 냉엄한 현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기자들이나 영화 관계자들에게 미리 배부되는 배지가 없으면 영화 보기란 거의 불가능하고, 배지가 있더라도 워낙 사람이 많은 나머지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며, 경쟁작들은 물론이고 사람이 덜 몰릴 줄 알았던 영화들 역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기는커녕 관객들로 넘쳐나는 것, 그것이 현실이었던 것이다.
인스턴트 감상, 인스턴트 비평
크루아제트의 드뷔시관. 주로 '주목할 만한 시선'전 출품작들이 상영되는 곳이다. 그곳에서 롤라 두아이용(참고로 자크 두아이용 감독의 딸이다)의 〈넌 누구랑 사귀니? Et toi, t'es sur qui?〉(영제는 Just About Love)를 보고 나오는 길. 누군가가 동료에게 "가볍네. 그래도 잘 만들었어. 우리 아이들 생각이 나네"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들으며 '첫경험'을 둘러싼 고등학생들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갈등을 아기자기하게 그려낸 이 영화에 대한 완벽한 '20자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저렇게 즉각적인 반응과 순간적인 판단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실로 칸에서 이른바 '프로'인 관객들-주로 기자들과 평론가들로 구성된-이 반응하는 방식에는 놀라운 데가 있었다. 마켓 상영까지 합하면 정말이지 수없이 많은 영화들 가운데에서 아마추어인 내가 길 잃은 어린양마냥 헤매는 동안, 그들은 마치 맥도날드에서 음식을 골라 먹듯, 단숨에 영화를 골라서 본 뒤 곧바로 감상을 쏟아내고 있었다. 평소에 '한 영화에 대해 충분히 숙고해 보기도 전에 함부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되고, 판단을 내렸다 해서 그것을 몇 개의 소박한 평가 술어로 단순화시켜서는 안 되며, 별점 몇 개로 수량화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던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거나 심지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랬던 내가, 칸에서 며칠을 보낸 뒤에는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데일리에 실린 별점 평가부터 찾아보는가 하면, 나도 모르게 본 영화들을 20자나 별점으로 재단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넌 누구랑 사귀니?〉는 귀여웠고, 줄리앙 슈나벨의 〈잠수부와 나비〉는 '장애인의 인간 승리'라는 클리셰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나 미학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었으며, 거스 반 산트의 〈패러노이드 공원〉은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니콜라 필베르의〈노르망디로의 귀로〉는 영화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메타적 성찰이었으며, 그렉 아라키의 〈스마일리 페이스〉는 〈런던에서 온 남자〉 같은 지루한 영화들 때문에 쌓인 피로를 단숨에 날려준 아주 유쾌한 코미디였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사실 칸은, 영화들과 즐겁고 행복하게 마주하는 경험을 무한하게 제공하는 '시네마 천국'일 것이라는 애초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하루에 서너 편씩을 연이어 보다 보니 각각의 작품들이 갖는 아우라는 줄어들었고, 심지어 영화가 지루해서가 아니라 육체적으로 피곤해서 졸게 되는 경우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나머지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진 영화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 중 어떤 것들은 아마도 따로 보고 제대로 되새김질 했더라면 분명히 달리 보였을 것임을.
그렇게 아쉬운 영화 중 하나가 60주년 기념 특별 상영작이었던 제인 버킨의 〈박스〉다. 칸에 도착하자마자 제인 버킨을 비롯, 미셸 피콜리, 제랄딘 채플린, 루 두아이용(참고로 제인 버킨이 자크 두아이용 사이에서 낳은 딸이다. 영화 속에서 버킨의 딸 역할을 맡았다) 등의 무대 인사를 구경하고는 좋아했던 것도 잠시, 영화가 그리 쉽지만은 않은 데다가 여독을 채 풀지 못했던 나는 결국 조느라 많은 부분을 놓치고 말았다. 버킨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서전적인 작품은, 영화제가 끝나고 프랑스 개봉을 즈음하여 다시금 생각해 보건대, 여성적 영상 작업의 범례라 할 만한 수작이다.
칸이 (전도연의 여우주연상 말고도) 남긴 것
지도 교수가 "칸에서 한국 여배우가 주연상을 탔다고 들었다. 한국 영화에 대해 모르긴 하지만 왠지 기뻤다. 축하한다"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왔다. 그걸 보니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칸에서 〈밀양〉을 보던 생각이 나서였다. 교수는 알까, 한국 사회의 온갖 모순과 치부,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여성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을 치밀하고 냉정하게 묘사한 〈밀양〉을 보면서, 내가 숨통이 조여 오는 나머지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참아야 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옆에 앉은 프랑스 기자가 "너희 나라는 정말 저러니?" 하고 물을까봐 자꾸 숨고 싶었다는 사실도? 한국에서 왔다 하면 당연하다는 듯이 〈숨〉과 〈밀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보통인 상황에서, 나는 영화와 국적 혹은 민족적 정체성 간의 관계에 대해 재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칸으로 떠나기 전, 누구는 영화 보기도 모자란 판에 책 읽을 시간이 있겠느냐며 어떤 책을 가져갈까 고민하는 나를 말렸고(그가 옳았다. 영화도 영화지만, 영화를 보지 않는 동안에는 영화제 프로그램을 보며 스케줄을 짜고 또 넘쳐나는 보도 자료와 데일리만 읽기에도 벅찼다), 또 다른 누군가는 선글라스와 드레스는 필수품이라며 꼭 챙겨 가라고도 했었다(그도 옳았다. 물론 불행인지 다행인지 드레스를 입을 일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칸행 소식을 전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부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영화제가 끝난 지금, 어땠느냐고 묻는 그들에게 무슨 답을 해줄 수 있을까? 적어도 내게 있어 쉽게 해볼 수 없는 경험이었음은 분명하다. 칸에서 닷새를 지내고 돌아온 후 다시 일상에 적응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동안 작렬하는 햇볕, 레드 카펫, 바다, 성장한 채 거리를 활보하는 선남선녀들 등 '칸스러운' 장면들이 본 영화들의 컷들과 더불어 만들어 낸 잔상들이 자꾸 눈앞을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그러하다. 칸 선정작들이 하나 둘씩 개봉하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다시 저 천국이라 하기엔 낯선, 천국보다 낯선 공간으로 다시 돌아간 듯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아무래도 한동안은 계속 이 후유증에 시달릴 것 같다.[*]
[*] 67회 칸느영화제를 기념(!)하여 공개(!)하는 기록물. 2007년 60회 칸트 영화제에 참가하고 써서 지금은 폐간된 영화지 <스크린> (아마도) 7월호에 실었던 글.
2007년,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으로 칸느에 다녀온 뒤, 해마다 이 즈음이면 당시 생각이 나곤 한다. 눈부신 햇살을 등에 지고 어둑한 극장으로 들어가 영화만 줄창 보다 합숙 장소로 내키지 않는 걸음을 옮기던 기억이 아무래도 지배적. 같이 묵던 동포 기자들 중에는 그 중에는 나중에 알고 보니 유명 인사였던 허모 기자도 있었다. 워낙 단체 생활을 힘들어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저런 종류의 합숙이라 무척 괴로웠는데… 상당수가 영화제 내내 그렇게 지냈고 또 여전히 지내고 있는
모양이더라. 최근 한 인터뷰에서 첫 칸느의 기억을 묻는 기자에게 마티유 아말릭 왈, «마침 칸느에 사는 친척이 있었다. 당시
같은 영화에 출연했고 동반자이기도 했던 잔느 발리바르와 그 친척네 집 거실에서 침낭을 펴고 잤다. 그녀는 수만 프랑짜리 유명
디자이너의 드레스를 빌렸었다. 레드 카펫 위의 화려한 드레스와 침낭, 이것이 칸느다». 과연 그렇다.
그런데 당시에 쓴 글을 다시 들추다 보니 참 새삼스럽다. 영화제 스태프로부터 취재 티켓을 받고 또
<스크린> 편집장으로부터 취재비를 타내기까지, 나로서는 꽤나 버거운 과정을 거쳤고,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 곤란하고 또
피곤하게 만들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밖에 문득 떠오르는 사소한 기억들. «아니, 마스트로이아니를 몰라요? 펠리니
영화에 수차례 나왔던?»이라며 황당해 하던 한 한국 기자. 마침 2014년 올해 칸느 포스터를 장식하고 있는 바로 그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아니. 당시엔 정말 그를 몰랐다. 펠리니를 제대로 접한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으니까. 그제서야 그 기자의 반응이
과장된 것은 아니었음을 알았다. 펠리니도 펠리니지만, 펠리니 뿐인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에토레 스콜라, 비토리오 데 시카 등등과 작업했다. 그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탈리아에 그 만큼 훤칠한 남자배우가 부족한 탓이 크다고들 하지만... 어쨌든 마스트로이아니를 빼놓고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논할 수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