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만 해도 여전히 애플 사용자는 소수였다. 주변의 컴덕들 사이에서는 반애플 정서도 제법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적잖은 비아냥을 감수하면서까지 맥의 전도사(이자 스티브 잡스의 팬)를 자처하는 걸로 지인들 사이에서는 제법 유명한 편이었다. 2010년이었던가, 잡스가 운명했을 때 내게 소식을 전하며 안부를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새부턴가 주변에서 맥북 시리즈가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운 지인들에서부터 도서관이나 학회장에서 보는 학자들, 연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청중까지. 애플이 이렇듯 이 시장을 석권하게 된 사실은 나같은 탐미주의자 그리고/혹은 스노브들을 현혹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미적인 우수성만으로는 설명되기 힘들고,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다. 아이폰의 보급으로 애플의 브랜드 가치가 상승한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학생 및 교육자들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백 투 스쿨" 행사가 상당한 파급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내 가설이다. 딱 그 용도, 즉 수업이나 세미나에 참석하고 논문을 쓰고 하는 등등의 이른바 학술적 용도에 맞으면서, 안정적이고 또 맥 특유의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를 갖춘 사실도 고려해야겠지만. 이렇게만 놓고 보면, 혹은 결과적으로 보자면, 나름대로 선구자이자 트렌드 세터였던 셈인데, 사실 그보다는, 어쩌다 아이북을 쓰게 되고 그 뒤로 쭉 이어온 경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 물론 "앺등이" 특유의 페티쉬즘과 스노비즘 성향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심지어 부끄러워 하지도 않고 대놓고 드러내고 다녔으니 말 다했다.
어쨌든 그렇게 시대에 앞서(!) 5년 간 고이고이 아껴 쓰던 아이북. 국립도서관 지하 연구관에서였다. 팬소리가 윙 하고 나더니 제멋대로 종료. 그리고 부팅 불가. 하늘이 노래졌다. 그리고 수차례 재시동 시도. 그 지하 연구관이 또 어떤 곳인가. 절대 정숙이 요구되며 일체의 소음도 불허하는 곳 아닌가. 환경도 환경이고 몇 번 시도해도 안되길래 결국 포기. 그리고는 도서관을 나서 파리 동쪽과 북쪽으로 오가며 주변의 같은 기종 사용자를 비롯 컴덕(이지만 반애플 정서의 소유자였던)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자구책을 모색했다 (그러고 보니 요전에 이 에피소드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낸 뒤, 바로 다음날, 덥썩 교체를 결정하고는, 오페라의 애플스토어에서 즉석 구매. 백투스쿨로 할인가에다가 그과 더불어 아이팟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로부터 5년 전 아이북 구입시에도 아이팟을 받았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지 6년째 되어가던 작년. 초반부터 상태가 눈에 띄게 나빠졌다. 최초의 사태가 일어난 것은 3월 30일 새벽. 아마도 운영 체제인 앨 캐피탄을 업데이트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고, 정확히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이제 가물가물한데, 아마도 유튭으로 동영상을 돌리려던 찰나였던 것 같다. 그 전에도 동영상을 돌릴라치면 팬 소리가 나서, 내가 겁이 난 나머지 강제로 종료하는 일이 더러 있긴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양상이 달랐다. 열어 두었던 논문 작성용 앱인 스크리브너에서부터 모든 앱들이 일제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애플 컴퓨터 사용자라면 누구나 아는 공포의 무지개빛 비치볼 회전 (사실 애플 사용자라고 누구나 안다면 과장이다. 정상적인 사용자라면 그다지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애플 좋다는 게 뭔가)! 너무나 놀라서 작업들을 중요하지 않은 순서대로 하나 하나 종료를 해나갔다. 스크리브너의 차례가 오기 전에 사태가 종식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그러나 결국은 실패. 강제종료를 한 뒤 수차례 재시동 시도. 복구 모드 및 안전 모드로 시도. 역시나 수차례.
나름대로 평소 백업에 신경을 쓴다고는 하나 이런 사태가 벌어질 즈음이면 하필 며칠간 경계를 늦춘 상태였다든지, 설사 그랬다고 해도 그 며칠동안 별 성과가 없었다면 크게 애석할 일도 없으련만 하필, 그 전에는 계속 안 풀리던 문제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혀 오랜만에 생산성을 고취하고 있는 시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저 사태는 그 수준이 아니었다. 아예 부팅이 안 되어 사태 이전은 물론이요 그 이후의 전개마저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이 모든 역사를 무화시켜 버리는 특이점의 사건이었달까. 메타포로 더 적당한 것은 블랙홀 이론이겠다. 지난 10년의 역사, 그리고 향후 최소한 10년 후의 역사를 빨아들인 사건의 지평선. 논문을 그만두라는 계시로 해석이 충분히 가능한 사건.
일단은 운영 체제를 재설치하면 되겠는데 (걸핏하면 윈도우를 재설치해야 하는 아이비엠 컴퓨터와는 달리 맥에서는 드문 일. 운영 체제를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처음에는 그래도 복구 디스크를 찾아서 복구 모드로 시동이 되더니 시동 횟수가 반복될수록 그마저도 불가능해지나 싶었다. 구입 당시 들어있던 설치 씨디롬으로도 하드웨어 테스트도 해보고, 심지어 아마도 개발자용으로 만들어졌을 벌바팀 모드로도 시동해서 파일 시스템 체크도 하고 (내가 아무리 라텍 사용자라 그 옛날 도스를 방불케 하는 사용 환경을 전적으로 낯설어 하는 건 아니라 해도 갑자기 터미널에서 fsck, cd.. 등의 명령어를 입력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어찌 당황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드디스크 테스트를 해보니 문제가 있어 포맷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포맷을 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 역시 맥 쓰면서는 좀처럼 해보기 힘든 일). 다행히 논문을 포함한 각종 데이타들은 비교적 안전히 보관돼 있는 걸로 보였다. 그래서 그 데이타들을 통째로 복사해서 외장 디스크에 옮기고, 하드 디스크를 포맷한 뒤, 운영 체제를 새로 설치하고 외장 디스크의 복사본을 원래 자리로 되옮기기로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오, 결코 간단치 않았다. 일단 외장 디스크부터 포맷해야 했다. 거기에는 주로 하드 디스크 공간 확보를 위해 따로 저장해 둔 파일들이 있었다. 논문 자료들도 있지만 지난 10년간 누군가로부터 받거나 내가 따로 모아둔 영화, 음악, 그리고 그밖의 각종 음성 및 영상자료들. 뭐 이들 중 상당수는 다시 구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10년의 역사가 아쉬웠다. 무엇보다도, 내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찬란했을 시절의 사진들. 잠시 그 영상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눈물을 머금고 삭제를 눌렀다.
그리하여 외장 디스크 포맷. 여기에 복원용 디스크 생성. 그리고는 하드 디스크 포맷. 그리고 구입당시 받았던 시디롬으로 역시 당시의 운영 체제인 스노우라이언 설치. 아니, 일단은 외장 디스크를 시동 디스크로 설정하고 거기에서 다시 시작했던가? 다행인 것은 애플에서 한두 해 전부터 운영 체제를 무료로 공개, 앱스토어에서 최신 버전 다운로드가 가능해졌다는 사실. 그러나 불행인 것은 집에서 인터넷 연결이 시원치 않아 그 정도 용량의 데이터 전송은 불가능하다는 사실. 타임머신을 타고 5-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현 시점으로 돌아오긴 했는데, 내 집만 유일하게 5년 전 그 상태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달까.
그리하여 그렇게, 하룻밤을 꼬박 새고는, 아침 일찍 유선 인터넷 연결이 가능한 국립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새 것과 다름 없는 하드 디스크를 새로이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앨 캐피탄부터 시작해서 다른 앱들, 기본 설치에서부터 스크리브너를 포함, 유료 앱들까지 다...는 아니고 정말 필요불가결한 것들만 선별, 이른바 간단 설치를 수행했다. 그렇게 하는 데만 해도 만 하루가 넘게 걸렸다. 그래도 비교적 단시간 안에 5년 간 이 컴퓨터가 초기 상태에서 가장 최근의 상태까지 걸어온 진화의 과정을 재연한, 말하자면 압축적 근대화의 작업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해서 겨우 정상화한지 불과 일주일 후인 4월 7일. 다시 비치볼이 돌기 시작하고 모든 앱들이 일제히 무응답하는 일이 발생. 다행히 지난 사태 이후로 타임머신 기능을 활성화시킨 상태였기에 이번에는 비교적 수월할 줄 알았으나... 결코 그렇지 않았다. 다시 안전 모드로 시동하고, 디스크 검사를 하고, 오닉스라는 디스크 관리 앱으로 검사 및 복구를 수행한 끝에 간신히 복구 성공. 대체 근본적인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앨캐피탄의 한 버전(10.11)에서 파일 시스템 상의 논리적 오류가 발생하게 된 것 같다는 것이 내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이다. 무선 인터넷 연결상의 문제는 앨캡 전반에 걸쳐 있는 것 같고.
그 이후로 한 6개월 간, 제발 이 논문이 끝날 때까지만 버텨주길 빌며 살얼음 걷듯 조심스레 다룬 탓에 비교적 탈없이 잘 쓰고 있었으나... 논문은 끝나지 않았고 (이것이야말로 이 모든 사태의 결과라기보다는 궁극적 원인이었던 것이다!), 급기야는 10월 13일 밤, 맙소사, 반년 전과 똑같은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경험의 힘일까, 줄잡아 하루 정도의 시간은 버리게 생겼지만, 그래도 복구가 가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게다가 이전 사태의 영향으로 백업 또한 예전보다는 자주 해두곤 했기 때문에 여파 또한 전보다 더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다음날, 파리로 출장을 와있던 동생이 마침 시간이 나서 저녁을 같이 보내게 되었고, 이때 지난 밤 사태에 관해 들은 동생은, 그렇게 불안해서 어떻게 쓰겠느냐며 구입을 제안했다. 6년 전 아이북 사태 때 새로 구입할 것을 제안한 것도 동생이었다. 그래서 그 길로 바로 라데팡스 애플스토어에 가서 맥북에어를 구입했다. 일체의 사전 조사 없이, 복권 당첨자라면 모를까, 요새 누가 할까 싶은 무모한 소비 행위였지만, 그렇게 비합리적이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시간과 타이밍이 문제였기에. 물론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날 새 맥북에어를 들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망가진 맥북프로를 복구하는 일이었다. 이전과 똑같이 지난한 과정 (복구 모드 후 운영시스템 재설치)을 거쳐 사태 직전까지의 데이타를 온전히 복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데이타와 설정을 다시 맥북에어로 옮길 수 있었다. 몇몇 중요한 앱들을 새로 등록을 하고 시리얼키를 입력하는 등의 또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긴 했지만.
그리하여 맥북프로와 맥북에어를 양손에 거느리는 2원 체제를 갖추게 된지도 어언 4개월여. 새로운 운영체제인 시에라를 설치했다 몇몇 앱과의 호환성 문제로 다시 앨캡으로 다운그레이드한다든지 등의 몇 번의 부침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어느 정도 체제 안정기에 접어든 듯하다. 여전히 문제는 논문이다.
그러다가 어느새부턴가 주변에서 맥북 시리즈가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운 지인들에서부터 도서관이나 학회장에서 보는 학자들, 연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청중까지. 애플이 이렇듯 이 시장을 석권하게 된 사실은 나같은 탐미주의자 그리고/혹은 스노브들을 현혹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미적인 우수성만으로는 설명되기 힘들고,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다. 아이폰의 보급으로 애플의 브랜드 가치가 상승한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학생 및 교육자들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백 투 스쿨" 행사가 상당한 파급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내 가설이다. 딱 그 용도, 즉 수업이나 세미나에 참석하고 논문을 쓰고 하는 등등의 이른바 학술적 용도에 맞으면서, 안정적이고 또 맥 특유의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를 갖춘 사실도 고려해야겠지만. 이렇게만 놓고 보면, 혹은 결과적으로 보자면, 나름대로 선구자이자 트렌드 세터였던 셈인데, 사실 그보다는, 어쩌다 아이북을 쓰게 되고 그 뒤로 쭉 이어온 경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 물론 "앺등이" 특유의 페티쉬즘과 스노비즘 성향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심지어 부끄러워 하지도 않고 대놓고 드러내고 다녔으니 말 다했다.
어쨌든 그렇게 시대에 앞서(!) 5년 간 고이고이 아껴 쓰던 아이북. 국립도서관 지하 연구관에서였다. 팬소리가 윙 하고 나더니 제멋대로 종료. 그리고 부팅 불가. 하늘이 노래졌다. 그리고 수차례 재시동 시도. 그 지하 연구관이 또 어떤 곳인가. 절대 정숙이 요구되며 일체의 소음도 불허하는 곳 아닌가. 환경도 환경이고 몇 번 시도해도 안되길래 결국 포기. 그리고는 도서관을 나서 파리 동쪽과 북쪽으로 오가며 주변의 같은 기종 사용자를 비롯 컴덕(이지만 반애플 정서의 소유자였던)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자구책을 모색했다 (그러고 보니 요전에 이 에피소드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낸 뒤, 바로 다음날, 덥썩 교체를 결정하고는, 오페라의 애플스토어에서 즉석 구매. 백투스쿨로 할인가에다가 그과 더불어 아이팟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로부터 5년 전 아이북 구입시에도 아이팟을 받았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지 6년째 되어가던 작년. 초반부터 상태가 눈에 띄게 나빠졌다. 최초의 사태가 일어난 것은 3월 30일 새벽. 아마도 운영 체제인 앨 캐피탄을 업데이트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고, 정확히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이제 가물가물한데, 아마도 유튭으로 동영상을 돌리려던 찰나였던 것 같다. 그 전에도 동영상을 돌릴라치면 팬 소리가 나서, 내가 겁이 난 나머지 강제로 종료하는 일이 더러 있긴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양상이 달랐다. 열어 두었던 논문 작성용 앱인 스크리브너에서부터 모든 앱들이 일제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애플 컴퓨터 사용자라면 누구나 아는 공포의 무지개빛 비치볼 회전 (사실 애플 사용자라고 누구나 안다면 과장이다. 정상적인 사용자라면 그다지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애플 좋다는 게 뭔가)! 너무나 놀라서 작업들을 중요하지 않은 순서대로 하나 하나 종료를 해나갔다. 스크리브너의 차례가 오기 전에 사태가 종식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그러나 결국은 실패. 강제종료를 한 뒤 수차례 재시동 시도. 복구 모드 및 안전 모드로 시도. 역시나 수차례.
나름대로 평소 백업에 신경을 쓴다고는 하나 이런 사태가 벌어질 즈음이면 하필 며칠간 경계를 늦춘 상태였다든지, 설사 그랬다고 해도 그 며칠동안 별 성과가 없었다면 크게 애석할 일도 없으련만 하필, 그 전에는 계속 안 풀리던 문제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혀 오랜만에 생산성을 고취하고 있는 시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저 사태는 그 수준이 아니었다. 아예 부팅이 안 되어 사태 이전은 물론이요 그 이후의 전개마저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이 모든 역사를 무화시켜 버리는 특이점의 사건이었달까. 메타포로 더 적당한 것은 블랙홀 이론이겠다. 지난 10년의 역사, 그리고 향후 최소한 10년 후의 역사를 빨아들인 사건의 지평선. 논문을 그만두라는 계시로 해석이 충분히 가능한 사건.
일단은 운영 체제를 재설치하면 되겠는데 (걸핏하면 윈도우를 재설치해야 하는 아이비엠 컴퓨터와는 달리 맥에서는 드문 일. 운영 체제를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처음에는 그래도 복구 디스크를 찾아서 복구 모드로 시동이 되더니 시동 횟수가 반복될수록 그마저도 불가능해지나 싶었다. 구입 당시 들어있던 설치 씨디롬으로도 하드웨어 테스트도 해보고, 심지어 아마도 개발자용으로 만들어졌을 벌바팀 모드로도 시동해서 파일 시스템 체크도 하고 (내가 아무리 라텍 사용자라 그 옛날 도스를 방불케 하는 사용 환경을 전적으로 낯설어 하는 건 아니라 해도 갑자기 터미널에서 fsck, cd.. 등의 명령어를 입력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어찌 당황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드디스크 테스트를 해보니 문제가 있어 포맷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포맷을 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 역시 맥 쓰면서는 좀처럼 해보기 힘든 일). 다행히 논문을 포함한 각종 데이타들은 비교적 안전히 보관돼 있는 걸로 보였다. 그래서 그 데이타들을 통째로 복사해서 외장 디스크에 옮기고, 하드 디스크를 포맷한 뒤, 운영 체제를 새로 설치하고 외장 디스크의 복사본을 원래 자리로 되옮기기로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오, 결코 간단치 않았다. 일단 외장 디스크부터 포맷해야 했다. 거기에는 주로 하드 디스크 공간 확보를 위해 따로 저장해 둔 파일들이 있었다. 논문 자료들도 있지만 지난 10년간 누군가로부터 받거나 내가 따로 모아둔 영화, 음악, 그리고 그밖의 각종 음성 및 영상자료들. 뭐 이들 중 상당수는 다시 구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10년의 역사가 아쉬웠다. 무엇보다도, 내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찬란했을 시절의 사진들. 잠시 그 영상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눈물을 머금고 삭제를 눌렀다.
그리하여 외장 디스크 포맷. 여기에 복원용 디스크 생성. 그리고는 하드 디스크 포맷. 그리고 구입당시 받았던 시디롬으로 역시 당시의 운영 체제인 스노우라이언 설치. 아니, 일단은 외장 디스크를 시동 디스크로 설정하고 거기에서 다시 시작했던가? 다행인 것은 애플에서 한두 해 전부터 운영 체제를 무료로 공개, 앱스토어에서 최신 버전 다운로드가 가능해졌다는 사실. 그러나 불행인 것은 집에서 인터넷 연결이 시원치 않아 그 정도 용량의 데이터 전송은 불가능하다는 사실. 타임머신을 타고 5-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현 시점으로 돌아오긴 했는데, 내 집만 유일하게 5년 전 그 상태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달까.
그리하여 그렇게, 하룻밤을 꼬박 새고는, 아침 일찍 유선 인터넷 연결이 가능한 국립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새 것과 다름 없는 하드 디스크를 새로이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앨 캐피탄부터 시작해서 다른 앱들, 기본 설치에서부터 스크리브너를 포함, 유료 앱들까지 다...는 아니고 정말 필요불가결한 것들만 선별, 이른바 간단 설치를 수행했다. 그렇게 하는 데만 해도 만 하루가 넘게 걸렸다. 그래도 비교적 단시간 안에 5년 간 이 컴퓨터가 초기 상태에서 가장 최근의 상태까지 걸어온 진화의 과정을 재연한, 말하자면 압축적 근대화의 작업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해서 겨우 정상화한지 불과 일주일 후인 4월 7일. 다시 비치볼이 돌기 시작하고 모든 앱들이 일제히 무응답하는 일이 발생. 다행히 지난 사태 이후로 타임머신 기능을 활성화시킨 상태였기에 이번에는 비교적 수월할 줄 알았으나... 결코 그렇지 않았다. 다시 안전 모드로 시동하고, 디스크 검사를 하고, 오닉스라는 디스크 관리 앱으로 검사 및 복구를 수행한 끝에 간신히 복구 성공. 대체 근본적인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앨캐피탄의 한 버전(10.11)에서 파일 시스템 상의 논리적 오류가 발생하게 된 것 같다는 것이 내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이다. 무선 인터넷 연결상의 문제는 앨캡 전반에 걸쳐 있는 것 같고.
그 이후로 한 6개월 간, 제발 이 논문이 끝날 때까지만 버텨주길 빌며 살얼음 걷듯 조심스레 다룬 탓에 비교적 탈없이 잘 쓰고 있었으나... 논문은 끝나지 않았고 (이것이야말로 이 모든 사태의 결과라기보다는 궁극적 원인이었던 것이다!), 급기야는 10월 13일 밤, 맙소사, 반년 전과 똑같은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경험의 힘일까, 줄잡아 하루 정도의 시간은 버리게 생겼지만, 그래도 복구가 가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게다가 이전 사태의 영향으로 백업 또한 예전보다는 자주 해두곤 했기 때문에 여파 또한 전보다 더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다음날, 파리로 출장을 와있던 동생이 마침 시간이 나서 저녁을 같이 보내게 되었고, 이때 지난 밤 사태에 관해 들은 동생은, 그렇게 불안해서 어떻게 쓰겠느냐며 구입을 제안했다. 6년 전 아이북 사태 때 새로 구입할 것을 제안한 것도 동생이었다. 그래서 그 길로 바로 라데팡스 애플스토어에 가서 맥북에어를 구입했다. 일체의 사전 조사 없이, 복권 당첨자라면 모를까, 요새 누가 할까 싶은 무모한 소비 행위였지만, 그렇게 비합리적이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시간과 타이밍이 문제였기에. 물론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날 새 맥북에어를 들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망가진 맥북프로를 복구하는 일이었다. 이전과 똑같이 지난한 과정 (복구 모드 후 운영시스템 재설치)을 거쳐 사태 직전까지의 데이타를 온전히 복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데이타와 설정을 다시 맥북에어로 옮길 수 있었다. 몇몇 중요한 앱들을 새로 등록을 하고 시리얼키를 입력하는 등의 또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긴 했지만.
그리하여 맥북프로와 맥북에어를 양손에 거느리는 2원 체제를 갖추게 된지도 어언 4개월여. 새로운 운영체제인 시에라를 설치했다 몇몇 앱과의 호환성 문제로 다시 앨캡으로 다운그레이드한다든지 등의 몇 번의 부침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어느 정도 체제 안정기에 접어든 듯하다. 여전히 문제는 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