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in.com · 2004-04-17
31/03/2004, 수요일
1. 담배 피우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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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rtmagick.com/painti ... nopff/khnopff48>
그림 : 페르낭 크노프, , 1912 ( from artmagick.com )
* 대충 비오그라피를 훑어본 바에 의하면, 18세기 후반 고전주의(들라크루아와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및 영국의 프리-라파엘리즘과 궤를 같이 했던 작가. 부러 그 이상 자세히 찾아보지 않았다. 그림을 처음 본 순간 '탁'하고 닥쳐온 인상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다만, 이 작가가 브루게 출신이라는 점은 내게 중요하다. 브루게는 내가 본 중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였으니까.
* 이 그림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인상과는 전혀 딴판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liseuse, 즉 뭔가를 읽는 여자들을 그린 작품들에 유독 집착하게 됐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재현의 주체와 대상 간의 관계가 역전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화가가, 보통 여성을 대상화하는, 즉 대상인 여성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방식에 한계가 있었음을 아주 어렴풋하게나마 직감하고 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손에 쥔 대신에 담배를 "꼬나물은" 이 여인에게서는, 그와 비슷하지만 아주 다른 느낌을 받았다. liseuse들이 성스럽고 신비롭게 그려졌다면, 이 fumeuse, 즉 담배 피우는 여자는 상당히 저돌적이다. 그렇지만 둘 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주도권을 쥔 자들에게는, 그들이 가진 권력(전자는 지식-권력, 후자는 문화-권력)을 넘보는 "요주 인물"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 이곳에서 난 담배와 권력 간의 관계를 아주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고 있다. 한국에서 담배가 가부장의 권력 독점을 상징했다면, 프랑스에서 담배는 상당히 反자본주의적인 동시에 半자본주의적이다. 정부는 언제든지 맘먹은대로 가격을 올린다. 사람들은 길에서 나같이 가난한 유학생에게조차 담배를 구걸한다. 덕분에 맘만 먹으면 순간적으로나마 권력 관계가 역전되는 경험도 가능하다. 이것도 너무나 일반화되고 보편화되고 세련화되기까지 한 이네들 "구걸 문화"의 단편이라면 단편이겠다.
2. Time to Unlock the D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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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ock my door upon myself,
And bar them out; but who shall wall
Self from myself, most loathed of all?...
Myself, arch-traitor to myself;
My hollowest friend, my deadliest foe,
My clog whatever road I go
- Christina Rossetti,
"Who Shall Deliver Me"
* 이 시는 저 왼쪽 프로필 사진 속의 그림(Khnopff, I lock my door upon myself", 1891)에 대한, 다소 긴, 그렇지만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은 설명이다. 알고보니, 크노프는 이맘때쯤 "상징주의" 사조에 속하는 인물이고, 크리스티나 로세티는 상징주의 화가들에게 영감을 준 시인 중 한 명이었단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아래의 글을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영 틀린 것 같지도 않다. 그네들이 주요한 주제로 다뤘다는 여성적 우울, 고독, 혹은 신경증 또한 그네들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위협으로 작용했었겠고, 그런 면에서 "히스테리"가 그네들의 "근대"라는 기획에 있어 눈에 박힌, 아주 성가시기 짝이 없는, 경우에 따라서는 실명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그런만큼 위험한 에너지를 지닌, 그런 가시로 그려지고 있는 거라고 이해해도 큰 무리는 아니지 않을까.
* 어쨌든, 위의 그림과 시는 요즘의 내 상황에 대한 적나라한, 그래서 절절한 표현이다. 아, 이제 문을 열 때도 됐는데. 사실 내가 문을 안 여는 것도 아니고 내가 문을 잠근 것도 아닌데. 다만 문이 잠겨 있을 뿐인데. 적어도 그렇다고 생각했었는데. 근데, 사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문을 잠근 거라, 이거지? 그렇담 내가 문을 열려고만 하면 문이 열린다는 뜻이렷다? 그래. 내일 해가 뜨거들랑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
크노프에 관해서는 한 번 더 얘기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더랬다. 신기하게도, 저 글들을 올리고 난 뒤, 나는 크노프와 몇 번의 만남을 가졌다. 첫째는, 인터넷을 통해, 이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브뤼셀에서 크노프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었고, 둘째는, 헌책 시장에 갔다가 크노프의 화집을 발견한 것이었다. 확실히, 그 시대--벨 에포크--의 남성 화가들에 의한 여성(그리고/또는 섹슈얼리티, 우울의 정서, 히스테리)의 재현은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클림트/쉴레//크노프/로세티 등등. 더불어 국가 간 스타일의 차이도.
2.는 프로필 사진에 대한 변명/설명이자 곧 내 프로필 자체를 대신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저 위의 담배 피우는 여인의 초상 중 도도해 보이는 눈빛과 미소와 곧게 뻗은 목을 뺀 모든 것은 요즘의 내 모습과 지독하게 닮아 있다.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