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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9일 수요일

Mary Cassatt au Louvre

blogin.com · 2012-08-29

... par Edgar Degas (ca. 1880)



난 이 버전이 더 좋더라.

[원본 이미지 링크 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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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페레(Féret)라는 프랑스 감독의 마담 솔라리오를 보고는 문득, 그때 그 시절, 벨에포크 생각이 나서.
그런데 실은



[원본 이미지 링크 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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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생각난 건 베르트 모리조, 정확하게는 마네가 1872년에 그린 모리조였다. 여배우가 모리조를 너무 닮아 있어서.

[원본 이미지 링크 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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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렁치렁한 갈색머리에, 새하얀 얼굴에, 깊은 눈동자에, 호리호리하면서도 적당히 육감적인 몸매에.. 그렇기도 했으나 무엇보다 벨에포크적인 외모라 생각했다. 부족한 연기력-거의 국어책 읽는 수준-을 보완한, 아니 그 자체로서 하나의 연기라고 봐도 좋았던, 배경과 역할에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미모. "그녀는 그저 가만히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라는 문장에 완벽히 어울리는.

그런데, 아뿔싸, 감독의 딸래미였다지. 그래도, 최소한 외양 면에서는, 그다지 편파적인 선택은 아니었다고 해주고 싶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게다가 극중 마담 솔라리오는, 비록 친아비는 아니긴 하나, 어쨌든 의붓아버지인 사람의 폭력에 희생되고, 그로 인해 온갖 가족사적 개인사적 비극을 겪지 않는가. 게다가 친동생과... 코폴라 부녀는 건설적이기라도 하지, 이 부녀관계는 좀 걱정된다. 작가-여배우도 참 복잡한 관계도식이거늘.

—박쥐

2012년 6월 10일 일요일

오랜 만에, 책읽는 여인상

blogin.com · 2012-06-10


조엘 피터 위트킨의 2011년 作. 이 사람의 회고전이 파리 국립도서관의 리슐리외 분관에서 3월부터 열리고 있다. 7월까지. 국립도서관 소식지에 실린 이 작품이 맘에 꽤나 들어 가봐야겠다 생각하고 있는 중. 그렇게 생각만 하다 놓친 전시가 올해 들어서만 벌써 몇 개째 되지만. 그리고 짧고 부족하게나마 감상도 써보리라. 하이브리드를 키워드로 해서. 이렇게 생각만 하다 실행에 옮기지 않은 계획이 벌써 몇 개째인지 모르겠으나.

가능하면 화질이 좀더 좋은 사본을 다시 올려 보리라던 약속은 그래도 어떻게 지켰네. 사진은 위트킨의 또 다른 전시가 열린 ' target='_son'>http://www.baudoin-lebon.co ... 7/joel-peter-witkin> 갈레리 보두앙 르봉 에서.

' target='_son'>http://estampe.hypotheses.org/387> 여기 에 가면 더 좋은 사진 열람 가능. 판화 전문 블로그라 그런지 웹에 올린 사진인데도 확실히 질이 다르다.

more...

이 작품의 제목은 Interrupted Reading. 1999년 작.

흠. 요샌 어째 노쇠한 육체에 자꾸 눈이 가고, 볼 때마다 눈물이 핑 돈다.

문득 든 생각 (어휘 및 개념 사용에 문제가 있으나 양해를). 위트킨의 작품들은 오로지 단 하나의 판본으로만 존재한다 한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사진이나 판화임을 감안하면 의외다. 그의 작업이 사진이든 판화든 단순히 "찍어내는" 데에 머물지 않는다 해도 그렇다. 판화는, 시대가 기술적 복제를 허용하는지의 여부와 무관하게, 복제를 본성, 최소한 매체/매질 차원의 본질적 요소로 가져 오지 않았는가. 장르를 막론하고, 기술 복제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작품, 그러니까 "원본" 제작에 있어서 복제 기술에 대한 의존도마저도 나날이 높아져 가는 이 시대에, 오로지 하나의 판본으로만 존재하는 판화. 하이브리드보다 이 지점을 좀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듯.

—박쥐

2008년 9월 20일 토요일

키제트

blogin.com · 2008-09-20

뜻하지 않게 스캐너가 생긴 기념으로...



올리려 했으나, 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구글링 검색 결과 나온 그림으로 대신해서 올린다.

검색 결과, 이 그림이 낭트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타마라 드 렘피카가 자신의 딸 키제트를 꽤 많이 그렸다는 사실도. 원래 그림이 내가 가진 정사각형 모양의 엽서와는 달리 길쭉한 직사각형의 판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이 그림을 보면 정말 책 읽는 여자가 위험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저 꼬마 여자애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제목이 "핑크빛의 키제트"인데, 그림에서 핑크빛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어쩌면 원작에서는, 아니 좀 더 그럴듯한 복제판에서는 키제트의 옷이 분홍색을 띠고 있을지도). 작가가 이 색조를 즐겨 썼던 것 같긴 하나...(그렇지만 그녀는 더 밝은 그림들도 많이 그리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책읽는 딸래미를 이토록 어둡게 그렸단 말인가.) 원경을 보면 더 암울해진다. 모나리자의 뒤태를 장식했던, 평화로운 목가 혹은 시골 풍경이 산업화된 도시로 대체되었다. 그런데 그것들을 저 꼬마 여자애가 감싸는 게 아니라 압도하고 있다. 역시 책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낭트

낭트에 발길을 디딘 것은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7년 전의 일.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한 화랑에서 자신이 그린 거라며 건넨 엽서 하나 뿐. 덕분에, 처음에는 분명 조용하고 깨끗하며 어느 정도 포근하기까지 한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건만, 지금은 뭔가 뿌옇고 아련한 이미지만 남아 있다. 안개에 싸인 도시에 대한 안개에 싸인 기억.

그러고 보니 작년에 본 에마뉴엘 무레의 영화 "제발 키스 한번만 해주세요 (Un baiser, s'il vous plaît)"에서 낭트가 등장했었다. 거기에서 업무차 낭트에 가게 된 여자 주인공은 우연히 만난 근사한 한 그 지역 남성과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된다. 키스 한 번만 하면 안되냐고 묻는 남자에게 그녀는, 바로 그 단 한번의 키스로부터 시작된, 자신의 친구가 겪은 비극 하나를 길게 들려준다. 그러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그와 작별의 키스를 나누게 된다.

영화를 볼 땐 그녀가 남편을 "배신"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건 그녀의 정조 관념 때문이라기보다는, 배경인 낭트라는 도시가 사람 하나 없고, 자못 경건해 보이며, 도대체 우환이라곤 겪어보지 않은 듯한 탓도 있을 거라고 추측하면서. 그 어떤 종류의 모험(aventure)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그 도시. 

그런데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지금은 든다. 작별의 키스 이후에 일어난 일에 대해 영화가 단지 침묵하고 있었을 뿐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낯선 곳에서 사람은 때로 도덕적 가치나 사회적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는가. 그곳이 안개에 싸여 있다면 더더욱 그럴 테다.

—박쥐

2004년 7월 25일 일요일

Liseuse 4

blogin.com · 2004-07-25

Pablo Picasso, 1920
Oil on canvas, 1,02 m x 1,66 m
Centre Pompidou,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Paris

◈ "독서녀"들을 그린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거의 모든 작품들을 볼 수 있는 ' target='_son'>http://www.boekgrrls.nl>http://www.boekgrrls.nl 내의 사이트를 보려면 이곳을' target='_son'>http://www.boekgrrls.nl/BgD ... tm>이곳을 클릭~!

—박쥐

Liseuse 2

blogin.com · 2004-07-25

Jean-Honoré' target='_son'>http://www.nga.gov/cgi-bin/ ... 850>Jean-Honoré Fragonard, 1776
oil on canvas, 81.1 x 64.8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박쥐

Liseuse 1

blogin.com · 2004-07-25

Johannes Vermeer, 1657
Oil on canvas, 83 x 64.5 cm
Dresden, Staatliche Kunstsammlungen,
Gemäldegalerie Alte Meister

—박쥐

Liseuse 3

blogin.com · 2004-07-25

Camille Corot, 1845-1850
Oil on canvas. 42.5 x 32.5 cm
E. G. Buhrle Collection, Zurich

—박쥐

2004년 4월 17일 토요일

페르낭 크노프의 여자들, 그리고 나

blogin.com · 2004-04-17

31/03/2004, 수요일
1. 담배 피우는 여자 

 http://artmagick.com/painti ... inting4383.aspx>

http://artmagick.com/painti ... nopff/khnopff48>
그림 : 페르낭 크노프, , 1912 ( from artmagick.com )

* 대충 비오그라피를 훑어본 바에 의하면, 18세기 후반 고전주의(들라크루아와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및 영국의 프리-라파엘리즘과 궤를 같이 했던 작가. 부러 그 이상 자세히 찾아보지 않았다. 그림을 처음 본 순간 '탁'하고 닥쳐온 인상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다만, 이 작가가 브루게 출신이라는 점은 내게 중요하다. 브루게는 내가 본 중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였으니까.

* 이 그림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인상과는 전혀 딴판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liseuse, 즉 뭔가를 읽는 여자들을 그린 작품들에 유독 집착하게 됐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재현의 주체와 대상 간의 관계가 역전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화가가, 보통 여성을 대상화하는, 즉 대상인 여성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방식에 한계가 있었음을 아주 어렴풋하게나마 직감하고 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손에 쥔 대신에 담배를 "꼬나물은" 이 여인에게서는, 그와 비슷하지만 아주 다른 느낌을 받았다. liseuse들이 성스럽고 신비롭게 그려졌다면, 이 fumeuse, 즉 담배 피우는 여자는 상당히 저돌적이다. 그렇지만 둘 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주도권을 쥔 자들에게는, 그들이 가진 권력(전자는 지식-권력, 후자는 문화-권력)을 넘보는 "요주 인물"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 이곳에서 난 담배와 권력 간의 관계를 아주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고 있다. 한국에서 담배가 가부장의 권력 독점을 상징했다면, 프랑스에서 담배는 상당히 反자본주의적인 동시에 半자본주의적이다. 정부는 언제든지 맘먹은대로 가격을 올린다. 사람들은 길에서 나같이 가난한 유학생에게조차 담배를 구걸한다. 덕분에 맘만 먹으면 순간적으로나마 권력 관계가 역전되는 경험도 가능하다. 이것도 너무나 일반화되고 보편화되고 세련화되기까지 한 이네들 "구걸 문화"의 단편이라면 단편이겠다.

2. Time to Unlock the Door
<

/strong>
I lock my door upon myself,
And bar them out; but who shall wall
Self from myself, most loathed of all?...
Myself, arch-traitor to myself;
My hollowest friend, my deadliest foe,
My clog whatever road I go
- Christina Rossetti,

"Who Shall Deliver Me"

* 이 시는 저 왼쪽 프로필 사진 속의 그림(Khnopff, I lock my door upon myself", 1891)에 대한, 다소 긴, 그렇지만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은 설명이다. 알고보니, 크노프는 이맘때쯤 "상징주의" 사조에 속하는 인물이고, 크리스티나 로세티는 상징주의 화가들에게 영감을 준 시인 중 한 명이었단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아래의 글을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영 틀린 것 같지도 않다. 그네들이 주요한 주제로 다뤘다는 여성적 우울, 고독, 혹은 신경증 또한 그네들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위협으로 작용했었겠고, 그런 면에서 "히스테리"가 그네들의 "근대"라는 기획에 있어 눈에 박힌, 아주 성가시기 짝이 없는, 경우에 따라서는 실명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그런만큼 위험한 에너지를 지닌, 그런 가시로 그려지고 있는 거라고 이해해도 큰 무리는 아니지 않을까.

* 어쨌든, 위의 그림과 시는 요즘의 내 상황에 대한 적나라한, 그래서 절절한 표현이다. 아, 이제 문을 열 때도 됐는데. 사실 내가 문을 안 여는 것도 아니고 내가 문을 잠근 것도 아닌데. 다만 문이 잠겨 있을 뿐인데. 적어도 그렇다고 생각했었는데. 근데, 사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문을 잠근 거라, 이거지? 그렇담 내가 문을 열려고만 하면 문이 열린다는 뜻이렷다? 그래. 내일 해가 뜨거들랑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



크노프에 관해서는 한 번 더 얘기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더랬다. 신기하게도, 저 글들을 올리고 난 뒤, 나는 크노프와 몇 번의 만남을 가졌다. 첫째는, 인터넷을 통해, 이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브뤼셀에서 크노프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었고, 둘째는, 헌책 시장에 갔다가 크노프의 화집을 발견한 것이었다. 확실히, 그 시대--벨 에포크--의 남성 화가들에 의한 여성(그리고/또는 섹슈얼리티, 우울의 정서, 히스테리)의 재현은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클림트/쉴레//크노프/로세티 등등. 더불어 국가 간 스타일의 차이도.

2.는 프로필 사진에 대한 변명/설명이자 곧 내 프로필 자체를 대신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저 위의 담배 피우는 여인의 초상 중 도도해 보이는 눈빛과 미소와 곧게 뻗은 목을 뺀 모든 것은 요즘의 내 모습과 지독하게 닮아 있다.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