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곳에서 일어난, 그리고 규모는 약해졌지만 아직까지 완전히 끝나지는 않은, "소요" 사태는 내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있다. 나는 그렇게 멀리 있다. 그 동안은 그들과 나 사이의 거리,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이 거리가 날 힘들게 한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그 거리가 "안전 거리"의 역할을 할 때도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논문 심사를 마친 지 한 달이 다 돼 간다. 아직 논문 등록이 남아 있다. 계획서를 본 교수는 "진지하다", 그리고 "하나의 베이스(une base)다" 하고 말했다. "더 깊게 공부하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베이스"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잠도 못 잤다. 너무 초보적이라는 뜻일까? 나름대로 기초나 근거를 갖추고 있다는 뜻일까? 다른 사람들의 말을 마디 마디 곱씹고 또 곱씹는 천형을 타고 난 나 같은 이에게 외국어는 형벌이다. 논문을 쓰면서 그들의 사소한 말 한 마디에 얼마나 웃고 울었던가. 그런 걸 보면 외국어가 축복이 되기도 하는구나. 사소한 말들이 기쁨을 주기도 하니까. 교수가 무심코 "다 잘 될 테니 걱정 말아라"라는 말을 던졌을 때 긴장이 해소되면서 몸이 한 순간에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한 환희, 그러니까 카타르시스를 맛보기도 했었던 걸 보면.
어쨌든 이제 다시 시작이다. 그러고 보니, 한달 반만 지나면 우리 나이로 서른, 이 새로운 시작을 나이 서른에 맞게 되는 거구나. 늦었다거나 이르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그런 재미없는 생각들에 시간을 낭비할 틈 없이, 재미있게, 가수 아녜스 빌의 노래 제목(je n'ai pas le temps d'avoir 30 ans)처럼 "서른을 맞을 시간이 없이" 살고 싶을 뿐. 그렇게, 바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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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동기들과 꾸린 게시판에 올린 글 중 일부를 옮겨 왔다. 오랜 만에 적다 보니 자연스레 튀어 나오게 된 근황이나 그 밖의 다른 이야기들이 이곳의 독자들에게도 흥미를 주지 않을까 싶어서. "중복"이긴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친구는 없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오늘 이번 학기의 첫 수업을 들었다. 얼마 전 다녀 온 콜로키움을 빼면 정말 처음이다. 계절이 어느덧 겨울로 접어들었는데 이제서야 기지개를 켜고 있다니, 하고 한심해 하는 한편으로, 늦게 시작했다는 사실이 더 큰 동기를 부여할 지도 모른다고, 늘 그렇게 해오지 않았느냐고 자위하고 있다.
게다가 오귀스트 콩트가 살았던 집, 그가 썼던 서재에서 듣는 데카르트 기하학 강의라니, 동기가 유발되지 않을 리 없다. 교수, 그리고 세 명의 학생들과 한 테이블에서 얼굴을 맞대고 듣는 수업이 청강생인 데다가 그 학교 학생도 아닌 내게 심히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콩트의 서재에서라면야. 심지어 오늘은 일찍 도착한 나머지 서재에 꽂힌 그의 저서 초판본들까지 구경하지 않았는가. 그렇다. 난 촌스럽게도 이런 걸 좋아한다. 욘사마가 앉았던 까페 자리에 앉아 그가 마신 차를 주문해 들면서 행복해 한다는 일본 아줌마들을 난 이해할 수 있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콩트에 대해서도 이럴진대, 좋아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오죽하랴.
심사 위원이었던 교수가 "논문을 쓰기로 했다니 기쁘다"라는 메일을 보내왔다. 또 한 번의 카타르시스. 그녀가 심사 후 "박사 논문은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니 들어가기 전에 잘 생각해 봐라" 하고 얘기했을 때 나는 또 그 말뜻을 헤아리느라 밤잠을 설쳤었다. 오늘은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서른 타령은 이것으로 끝.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