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파랗길래 하 늘색 바지에 하늘색 윗도리를 걸치고 내친 김에 속옷까지 하늘색으로 바꿔 입고는 집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짙은 구름이 깔리고 장대비가 내리치는 바람에 하늘빛 우산을 집어 들고 망설이다가 그만 털썩 주저앉아 버린 오늘은 파리 해방 60주년 기념일.
—박쥐
blogin.com · 2004-08-26
하늘이 파랗길래 하 늘색 바지에 하늘색 윗도리를 걸치고 내친 김에 속옷까지 하늘색으로 바꿔 입고는 집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짙은 구름이 깔리고 장대비가 내리치는 바람에 하늘빛 우산을 집어 들고 망설이다가 그만 털썩 주저앉아 버린 오늘은 파리 해방 60주년 기념일.
—박쥐
blogin.com · 2004-08-22
증세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그저께 시내 프낙 (Fnac이라고, 한국으로 치면 위치상으로나 규모상으로나 성격으로 보나 딱 교보문고인 서점이라고 보면 된다. 파리에만도 여러 매장을 두고 있는데, 내가 주로 가는 시내 한복판의 프낙은 올 여름에 확장 공사를 해서 예전보다 훨씬 "장대한" 규모를 자랑하게 됐다. 말 나온 김에 거기에서 감동받은 얘기 하나. 사실 예전까지 프낙의 서적 코너에서 볼 만한 것이라고는 만화나 잘 나가는 소설이 전부였는데, 이번에 리노베이션을 하면서 인문학 코너를 아주 크게 늘렸다. 이를테면 철학 서적의 경우 예전에 고작해야 서가 두어 개 정도밖에 차지하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아예 열 개에 달하는 서가를 꽉 채운 코너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게 됐다) 에서 발견한 책이 어제 하루종일 아른거렸고, 오늘은 끝내 손에 넣고 말았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던 에밀 부트루의 해설이 실린 라이프니츠의 <모나돌로지>가 그것이다. 뒤에는 앙리 푸앵카레가 라이프니츠와 데카르트를 비교해서 쓴 아티클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1880년에 출판된 책인데, 내가 구한 건 축소판으로 1998년에 나온 판본이다. 분명히 절판됐을 터인데, 1만원이 안 되는 가격에 손에 넣다니!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가끔가다 어떤 책들이 나를 "부르고" 있는 소리를 듣게 됐고,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 책과의 만남이 "운명"이라고 판단, 어떻게 해서든 손에 넣고야 마는 습성이 생겼다. 이곳에 온 뒤에는 더더욱 심해졌다. 적어도 4~5 군데의 헌책방과 철학 서점과 헌책+새책을 나란히 꽂아 놓은 책방이 한 데 모여 있는 생미셸街에 다녀오는 날이면 그 후로 몇 끼를 굶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곤 한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얼마 전 헌책+새책을 같이 파는 질베르-조제프의 인문사회과학 분점도 개장되고 프낙에도 볼 만한 책들이 많아졌으니 말이다.
사실 조심해야 할 곳이 그 곳뿐만은 아니다. 어찌 보면 길거리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무서운 일이다. 헌책방이 최소한 다섯 블럭마다 하나씩은 꼭 있으니. 주말마다 열리는 벼룩 시장들 (파리에는 이런 종류의 생 방브, 클리냥쿠르, 몽뢰이유 등 유명한 비상설 벼룩 시장들이 몇 개 있는데, 그곳을 지나다 보면 가끔 서적상을 발견할 수 있다. 중고 서적만을 취급하는 벼룩 시장도 있다. 이 시장은 주말마다 조르주 브라상스 공원에서 열린다) 은 또 어떻고. 최근에는 애써 출입을 자제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몽뢰이유의 벼룩 시장에서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 초판을 구했을 때의 환희는 잊을 수 없다. 글쎄 그 책의 전주인이 70년 출간 당시 나온 <르몽드>와 <누벨 옵세르바퇴르>의 서평 기사를 사이에 꽂아두었지 뭔가. 더구나 그 서평은 각각 프랑수아 다고녜와 에드가 모랭이 쓴 것이었다. 게다가 거기에는 같은 시기에 출간된 프랑수아 자콥의 <생명의 논리>에 대한 미셸 푸코의 서평이 나란히 실려 있었다!
겨우 그 정도 가지고 비블리오필입네 하고 자처하다니, 진짜 비블리오필들이 들으면 비웃을 것이다. 사실 나는 경력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정말 보잘 것 없다. 그치만 책수집에의 욕구나 의지에 있어서는 "고수"들 못잖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내 처지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아니, 어쩌면 그 "불쌍한" 처지에 있다는 점이 책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더 유리한 조건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책을 사더라도 (1) 헌책으로 더 싸게 나온 게 있나 알아 보려 몇 군데나 돌아다닌 끝에 겨우 찾아내고 (2) 차비나 밥값을 아껴서 구입했다면, 어찌 그 책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요즘에는 이 식을 줄 모를 수집욕을 채워줄 또 다른 방법을 발견해서 한참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프랑스 국립 도서관의 전자 정보 서비스 갈리카가' target='_son'>http://gallica.bnf.fr/>갈리카가 그것.예전에는 그냥 무심하게 지나치다가 최근에 들어서 구석구석을 뒤져보게 됐는데, 세상에, 보물 창고가 따로 없었다. 17세기에서 19세기에 프랑스에서 출판된 저작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영어나 독어로 된 책들도 눈에 띈다. 거기에서 찾은 것이 우주생성론적 가설에 대한 앙리 푸앵카레의 소르본느 강의록. 1911년에 출판됐었고 지금은 당연히 절판된. 인터넷으로 구할 수는 있으나 구하려면 10만원 정도를 들여야 하는데, 그걸 이렇게 책상 머리에서 pdf 파일로 볼 수 있다니. 아마도 나의 논문 주제가 될 듯하다. 그걸 다운로드 받고 나니 정말 온 세상을 얻은 기분이었다. 물론 내 노트북 안에 들어 있는 푸앵카레의 책과 그 책의 1911년판 원본이 갖는 가치는 다르겠지만, 나는 전자를 소유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그런 면에서 "지적 소유권"의 문제는 갈수록 복잡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mp3보다는 CD를 선호하는 편이긴 하지만. 사실 원본과 복사본의 관계는 플라톤이 직시했던 것처럼 존재론적으로도 아주 복잡한 문제다. 책이란 것도 그렇다. 앞서 언급한 푸앵카레의 강의록은 그의 강의를 들었던 제자의 노트를 근간으로 출판된 것이다.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 강의>가 그러했듯이. 하긴, 설령 푸앵카레나 소쉬르 자신이 직접 썼다 해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관념을 물화/물질화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100%로 완성될 수는 없는 기획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 수단이 문자였든, 문자 이전의 언어였든, 문자 외의 언어였든 간에) .
물론 이 인터넷 시대가 나같이 가난한 사이비 비블리오필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http://www.chapitre.com>샤피트르 같은 사이트를 이용하면 아주 비싸고 귀한 책들을 집에서 받아볼 수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책을 찾으려면 전국 방방 곡곡을 돌아다녀야 했을 텐데 말이다. 아, 물론 그런 사이트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여전히 유용하다. 저렴한 중고책들 역시 취급되고 있으므로.
어쨌든 그렇게 해서 책들이 정신없이 쌓여가고 있는 중이다. 머잖아 책들을 베고 자야 하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를 일.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