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5일 일요일

푸앵카레

blogin.com · 2009-01-25


푸앵카레가 1909년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던 날, 신문에 실렸던 사진이다.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가져왔다.

1854~1912. 프랑스 낭시 태생의 수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마지막 보편적 지식인. 프랑스 학술원(아카데미)과 과학 아카데미라는 양대 엘리트 기관에 선출된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 기하학의 공리와 역학의 원리들이 규약임을 주장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규약주의'의 창시자. 스웨덴 오스카 2세의 환갑을 기념한 콩쿠르에 "3체 문제와 동역학 방정식"이라는 논문을 제출, 1등을 수상하고, 이를 통해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성"이라는 구절로 유명한 카오스 이론의 서두를 장식한 장본인 (여기에는 아주 극적인 비화가 숨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논하기로 한다)... 그를 수식하는 말은 이밖에도 무수히 많다. 하나 덧붙이자면... 그를 알던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 "심성이 곱고 까다롭지 않다"고 평했다 한다.  

이곳에서 그에 대해 그리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늘 맘에 걸렸더랬다. 사실, 그와 만난 지 벌써 4년이 넘어가는데도, 그에 대해서 내가 얘기할 수 있는 게 그다지 많지 않은 듯하다. 배움과 독서가 짧은 탓이다.

최근에 그의 철학과 관련해서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 "길고 긴 밤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번갯불" (푸앵카레 : "사유란 길고 긴 밤 순간적으로 번쩍 빛나는 번갯불과 같다. 그렇지만 그 번갯불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전부다") 같은... 가장 기초적인 부분을 이제서야 깨닫다니, 한심스럽다. 단지 언어나 수학적으로 테크니컬한 부분에 대한 무지에서 온 문제는 아니고, 이해를 가로막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논문 안팎의 삶에서 부딪치는 문제들 중 상당수도 그 "무언가"들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특별할 것도, 어려울 것도 없는, 일단 없애고 난 뒤에는 별 일 아닌 것처럼 여겨질 것들. 변화를 두려워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을, 그런 것들.

  

그러니까 그 깨달음이 무엇인고 하니...


일단 그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문의 체계에 대한 선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수학에 관한 논의는 물리학이나 역학에 대한 그것과 다르고, 수학의 경우도 기하학, 수론(산술) 그리고 대수학에 대한 얘기가 각각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무체계성 혹은 비체계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철학자'로 분류함에 있어 주저하곤 한다. 실제로 그가 남긴 철학서들은 본격적인, 이를테면 칸트의 비판서들만큼의 논리정연한 체계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플라톤의 대화편들에 가깝달까. 공화국 안에 수학, 정치학, 윤리학, 과학, 인식 이론 일반 등 모든 이야기가 한꺼번에 펼쳐지듯이, 푸앵카레의 과학과 가설이나 과학의 가치 같은 저작들에는 이른바 엄밀과학(exact sciences) 각 분야에 대한 담론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다.

근대철학 이후 확립된 어떤 정형들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다원적' 면모는 낯설게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면모가 체계의 부재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플라톤의 경우가 그러하듯이. 더욱이, 19세기 이후 그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그러니까 더 세분화되고 정교화된 과학을 접한 사상가라면 '과학'을 대문자의, 일의적인 그것으로 취급하는 일에 몹시 부담을 느꼈을 것임에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각 과학들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그것들을 통일하는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원리--그것이 현상적인 차원에 머물든(콩트의 경우) 아니면 더 통일적이고 제일인 원리, 즉 칸트식으로 말하면 '자연과학의 형이상학 원리'가 되든 간에--를 반드시 배제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종류의 '원리'가 반드시 한 사상가를 '어엿한' 혹은 '훌륭한' 철학자로 만드는 본질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푸앵카레의 사유를 어느 정도 이해하기까지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은, 기본적으로 내 이해력이 부족한 탓도 있었겠지만, 그를 어떤 정형화된 틀에 무리하게 끼워맞추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흔히 일컬어지듯이 직관주의자라면 무한을 인정하지 않거나 무한 중에서도 잠재적인 그것만을 받아들여야 할 듯한데, 왜 정신의 무한성, 특히 단 한 번에 무한히 진행되는 수열이나 추론의 계열을 직관하는 능력을 중시하는가? 이러한 직관주의가 규약주의와 양립가능한가? 언뜻 보면 푸앵카레는, 한편으로는 기하학의 공리나 역학의 원리들의 경우, 정신이 경험에 기대어 선택한 규약임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규약들의 임의성에 의해 제약을 받지 않는, 어떤 영원 진리로서의 '구조'가 실재함을 누누히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다지 일관적이지 않다 보인다. 또 물리학의 경우, 그 법칙과 원리들을 규약주의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잠정적으로나마 내린 결론은, 각 분야들의 독자성을 우선적으로 인정해야 그의 철학적 논의들이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니 나를 일여 년간 괴롭혔던 '상대성 원리'에 대한 의문이 어느 정도 풀렸다. 상대성 원리는 한편으로는 경험적으로 획득되며 또 경험을 통해 반증가능한 다른 물리학의 법칙들과 유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이 그 선택에 있어 경험을 참조하긴 하나 일단 한 번 선택된 이후에는 결코 반증될 수 없는 규약들과 유사한, 양가성을 지닌다.* 문제는, 아인슈타인의 경우 상대성 원리의 이러한 속성을 단번에 알아차린 반면, 푸앵카레는 계속해서 그 양가성에 대해서 숙고했다는 점이다. 이는 그가 당대의 모든 물리학 신보들에 통달해 있었고, 그 당대의 물리학이란 것이 다루던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상대성 원리의 실험적 검증이었던 때문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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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서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후자의 측면이다. 거기에 우주론적 사유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왜 규약들은 정신의 발명품임에도 불구하고 절대성을 띠는가? 반증을 위해서는 모든 가능한 경험치들을 실험을 통해 조사해야 하는데, 우주는 그 자체로 실험불가능하며 경험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도 나중에 논하기로 한다.

** 참고로 이 글은, 파업으로 수업이 취소되어 이리저리 방황하던 중 발을 디딘, 내가 다니는 학교 컴퓨터실에서 쓴 것이다. 프랑스 기관 소속의 컴퓨터에서 한글을 입력한 것은 칸느 영화제 이후로 처음이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지난 목요일 대대적인 파업 이후, 그 후폭풍이 잔잔하지만 무시하지 못할 만큼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 특히 강사-연구원들 사이에서. 이에 대해서도 나중에...

그림 : 폴 모니에(Paul Monnier)가 그린 푸앵카레의 초상. 1946년 스위스에서 출판된 과학의 가치(La valeur de la science) (초판은 파리, 1905년)에 실렸다.

—박쥐

2008년 11월 10일 월요일

집단장

blogin.com · 2008-11-10

어디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나?

지금의 집, 뒤프렌느 빌라에 살기 시작한지도 이제 3년이 다 되어 간다. 매혹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집에 대한 첫인상에 대해. 누군가 은근히 가꾼 듯한 정원, 빨간 색깔의 현관문, 옛 벽난로의 흔적, 그 위의 낡은 거울, 창가로 손에 닿을 듯한, 파란 잎새들과 빨간 열매. 그래서, 설치된 난방 기기가 아예 부재하다는 치명적인 결점에도 불구하고, 다른 집들을 더 찾아보지도 않은 채로, 결정해 버렸던 것이다.

그러다 작년부터 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틈이 날 때마다 집 방문 약속을 잡았고, 인터넷에 접속할라치면 부동산 사이트부터 챙겨 보았으며, 길을 걸을 때면 부동산을 기웃거렸다. 집 건너편에서 공사를 시작한 것이 그 발단이 되었는데, 그 이후로, 정을 떼려고 그랬는지, 자꾸 이유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윗집에 한 가족이 이사왔는데 그 집 아들이 공차기를 좋아한다든지, 알레르기 증상이 심해졌다든지, 허리가 아파졌다든지, 갑자기 추위를 타게 되었다든지, 도서관 및 학교와 집 사이의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든지 하는.

그러다 얼마 전, 결심을 했다. 환율이 극히 불안정하게 된 것이 결심의 가장 큰 이유겠으나, 다른 한편으로 1년 가까이 찾았으니 찾을 만큼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잃었던 정을 다시 찾아가는 중이다. 침대를 들이고, 몇 가지 가구들을 손보면서. 다행히 앞건물 공사도 거의 끝나가고 있다.

그런데

왜 우울할까?

자가진단 : 주부우울증. 다 큰 아이들과 남편이 바깥으로 나간 뒤, 인테리어가 완벽할 뿐 아니라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집안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는 주부를 상상해 보라. 목표하던 바가 너무 싱겁게 달성되거나, 아니면, 나의 경우처럼, 수정된 상태로 달성되는 경우, 목표를 위해 돌진하던 에너지가 순식간에 소진되면서 혼돈에 빠진다. 혹은, 뭔가 더 덧붙일 것이 없나 고민하는 등, 달성되었는지의 여부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며 심지어 실존적인 고민에 빠진다.

그렇다. 사실 12 혹은 13구에 위치한, 중앙 난방에다가 30미터제곱에 600유로 이하인 집도, 지금의 집을 좀더 살기 좋게 만드는 것도, 진정한 목표는 아니었을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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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바리즘에 대하여 (시바에게의 답변을 대신하여, 일주일 후에 덧붙임)

우울을 떨치기 위해, 예전에 읽다가 그만두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던 보바리 부인을 다시 펼쳐든 것이 옳은 선택이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이 서지 않는다. 결과론적으로 볼 때 나쁘지는 않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왜"에 대한 답을 부분적으로나마 찾았으니까. 아니, 되찾았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적어도 예전에는, 이 문제에 대해 지금만큼 무감하지는 않았으니까. '이 세상에서 여성으로서 산다는 것', 그것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난 그렇게 에마를 만났다. 그러면서, 그녀를 만나는 거의 모든 여성들이 그렇겠듯이, 그녀 속의 나와 재회했다. 계속해서 에마 주위를 드리우고 있는 플로베르의 그림자도, 그가 남성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다. 그 자신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마담 보바리는 내 자신이다"라고.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가 보바리와의 동일시에서 벗어나 전형적인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할 때도 그 세밀하고 치밀한, 그리고 때로는 영화적인 상황 및 심리 묘사에 그저 탄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플로베르의 치밀함이 발자크의 그것과 다르다면, 그것은 전자의 '전지성'이 후자처럼 '거시적 관점'--그리하여 '사회학'을 가능케 하는--에서가 아니라 주인공 및 각 등장 인물의 내면에 침잠한 데에서 나오는, 미시적이고 내밀한 시선에서 비롯된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내게 있어, 이렇게 제 3자로서,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독자로서 말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적다. 에마 보바리를 비극으로 이끈 것은 다름 아닌 '여성의 조건'이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그녀로서 다른 누구보다 통렬히 절감할 수밖에 없었던. 이것이 '시골 의사의 부인이 삶에 염증을 느끼고 바람을 피우다가 재산을 날리고 자살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는 이 통속적인 이야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보바리즘'은 '실제의 자신'과 다른, 이상화된 이미지를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한마디로 '주제 파악'을 못하는 과대망상증으로 정의된다. 맞는 말이다. 여성에게 있어 과대망상 및 자아도취는 자신에게 절대로 우호적이지 않은 세상에서 필요불가결한 생존전략이다. 때로 치명적 결과를 가져오기는 할지언정...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