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잠까지 안 올 때, 무슨 일을 하는 게 좋을까?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하지 못했을 혹은 일부러 하지 않았을 일을 하는 게 좋겠지.
1. 시를 쓴다 → 그런 말을 함부로 하다니, 시한테, 시인들에게,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도 않냐?
2. 산더미같이 쌓인 읽거리를 해치운다 → 하, 참 읽기도 하겠다.
3. 옛 애인에게 국제 전화를 한다 → 근데 전화 번호도 모르잖아.
4. 지하철에서 만난 낯선 이에게 전화를 한다 → 아, 그가 그렇게 끈적끈적하게 굴지만 않았어도.
5. 청소를 한다 → 그렇지만 청소는 이미 했는걸. 청소하느라 오후 한나절을 고스란히 날려 버렸단 말이지.
6. 설거지를 한다 → 그런데 그러다 또 그릇 깨면 어쩌려고?
7. 블로깅을 한다 → 이것이 정답일세. 지금 하고 있잖아.
8. 잠을 부르기 위해 한 잔 더 한다 → 그런데 술이 없는걸. 그리고 정답이 이미 나왔는데 왜 계속 이러고 있는 거니?
9. 읽어야 할 것들 말고, 읽고 싶었으나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에 읽지 못했던 것들을 읽는다. 이를테면 스포츠신문 연재 소설이나 아나이스 닌의 準포르노급 로맨스 소설 같은 것들 → 근데 스포츠신문 읽으려면 로그인을 해야 하잖아. 아이디도 기억 못하면서.
10. 지금 하고 있는 이 짓을,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하고 세듯이, 잠 올 때까지 한다 → 그러다 날 새겠다. 그리고 지금 이 답안은 7. 이랑 중복되는데?
11. 지금까지 이 블로그에 털어놓지 못한 얘기를 한다. 이를테면, 이제 만으로도 스물 일곱 살이 돼버렸다는 얘기라든지, 아니면 바보같은 짓--서연 언니의 말마따나 "철학도가 아니라면 하지 못했을"--을 하는 바람에 9월에 한국에 또 갈 수밖에 없는 바보같은 상황에 처했다는 얘기라든지 → 이런! 벌써 몇 번째 중복 답안인 거야?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