밉살스러운,
그렇지만 미워할 수 없는 철학
데니얼 데닛의 인지과학에 대한 감상
철학이 미울 수도 있냐고? 그렇다, 적어도 내겐. 난 독단론이나 교조주의의 낌새가 보이는 철학이 밉다. 겉으로 보기에 무척이나 객관이나 관용을 추구하면서 사실상 자기 외의 다른 사상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철학은 더 밉다. 내가 기계론과 과학주의와 물리주의를 비롯해서 그리고 그에 기반한 일부 영미권 분석철학이나 개신교의 원리주의나 신자유주의 등등을 경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인지과학을, 아주 단순하고도 무식하게, 인간을 하나의 "기계"로 보고 인간의 사고와 인식이라는 행위를 특정 세포의 기계적 메커니즘에 의한 "물리적 과정"로 환원하려는 기획으로 이해했을 때, 그에 대해 호오를 말하기란 쉽지 않다.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는 건 분명한데, 마냥 소원하게 지내기는 아쉽고 찜찜한 데다가 아주 가끔씩은 곁에 두고싶기까지 한 이성친구 같다고나 할까. 한마디로 경원지심이다.
정신분석학을 "사변적 심리학"이라고 경멸하는 데서 보듯이 다소 교조의 냄새가 풍기긴 해도, 그들은 겸손한 편이다. 물리주의를 옹호하는 대표적 심리철학자인 김재권도 "인지과학이 모든 걸 설명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의 말에는 "아직까지는 아니다"라는 단서가 붙어 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설명할 수 있는 범위를 과학이 지금까지 밝혀낸 한도 내로 제한한다.
이들을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기존의 철학사를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거기에서 소스를 구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 있다. 뭇 현대 철학자들이 뉴턴 물리학이 무너졌다는 이유로 그에 기반해서 나온 당대 철학들을 낡아빠진 것으로 치부하는 반면에(모든 철학이 그 시대의 패러다임 안에서 나온 것인만큼, 현재의 효용 가치를 묻기 전에 역사적 배경 위에 위치시켜 놓고 봐야 하는 것이거늘!), 일부 인지과학자들은, 멀게는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 가깝게는 괴델 등 과거 철학자들의 인식론적 테제를 자신들의 '문제'로 삼아 그를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하긴, 인지과학의 물음 자체가, 심신 관계를 비롯해서 플라톤으로부터 이어진 서구 철학의 근본 문제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던가.
사실 인지과학은 현대 과학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혹은 형성해 가고 있는 다른 분야--생명공학/분자생물학, 나노과학, 인공지능/로봇공학 등--에 비해 사회적 비판의 성역 내에서 보다 안전한 위치에 있는 편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세 분야와 꽤 밀접하게 연관돼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역사도 짧고 또 "순수" 학문에 머물러 있어 시장에의 의존도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이 미미하기 때문인 듯하다. 거기에다 윤리적 문제에서도 자유로운 편이다. 회의론 역시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특성인 "사고"가 "겨우" 분자들의 유희로 설명될 수 있다는 데에 대한 실망감과 반발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될 정도이니.
데니얼 데닛은 인지과학과 인지과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생각하는 기계, 즉 인공지능의 개발에 아주 낙관적인 견해를 취하고 있는 대표적 철학자다. 그 유명한 괴델, 에셔, 바흐의 저자자 더글러스 호프스테터와 더불어 편집한 인지과학 선집 The Mind's I 는 한국에서 "이런, 이게 바로 나야?"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 (수록된 글들도 맘에 들고 김동광 선생님의 번역도 괜찮았는데, 제목은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언젠가 그분을 뵐 기회가 있었는데, 여쭈어 볼까 하다가 관뒀다). 작년엔가 한국에 다녀갔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그때 가서 얼굴을 보지 못한 게 참 아쉬웠다(데닛의 팬이라거나 그의 철학을 잘 알아서라기보다는, 그저 유명한 사람들 강연에 가서 목소리를 듣고 얼굴 보는 게 취미인지라).
그런 그를, 방금 전 영국의 시사지 가디언 기사( "The Semantic Engineer", Andrew Brown, The Guardian, Saturday April 17, 2004 )를 통해 접했다. 데닛 개인뿐 아니라 그를 중심으로 한 최근 인지과학 내의 흐름에 대해 개괄하기에 그만이다. 기자는 (뭇 과학자 위인 전기가 그렇듯이) 인터뷰의 한 1/2를 데닛이 얼마나 뛰어나고 철학뿐 아니라 요트, 악기 연주 등 여러 분야에서 다재다능한 인물인지를 강조하는 데에 할애하고 있는데, 대신에 나머지 1/2은 데닛의 인지과학에 대해 군더더기 없고 깔끔하게 소개하는 데에 바쳤다. 이런 식의 인물 중심적 기술이라면 과학사를 서술하는 방법으로도 손색이 없을 듯.
그의 철학적 화두는 "어떻게 이 모든 것이 없지 않고 있는가?"라는 라이프니츠의 그것과 비슷한 물음에서 비롯된다 ("How can meaning, design and morality arise in a universe that began as meaningless, void and without form?"). 비록, 서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추구되고, 한쪽은 "유심론", 한쪽은 "유물론"이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긴 했지만. 데닛의 유물론은 "기계"적 유물론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는 기계가 생각할 수 있다고, 그리고 기계나 사람의 사고 과정을 과학에 의해 "기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문제는, 과연, 그렇게 해서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인간은 외부 세계를 인식하고 인식된 내용에 대해 사고할뿐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해서 의사를 결정하고 의미를 창조하기도 한다. 사고, 믿음, 욕망 등이 다 같은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이 심신 수반론의 가장 큰 걸림돌인 감각질(qualia) 및 창발(emergence)의 문제다. 한편으로 사고라고 해서 다 같은 것도 아니다. 사고의 대상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과정 또한 달라질 수 있다. 사과나 참새에 대해 사고하는 것과 유리수나 무리수에 대해 사고하는 것은 다르고, 또 "나"에 대해 사고하는 것도 다르다.
여기에서 데닛의 낙관론은 다위니즘으로 이어진다. 의미와 기능의 산출이 생명 현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왜 우리가 믿음을 갖는지 모른다. 뻐꾸기 새끼가 왜 형제자매를 둥지 밖으로 몰아내는지 모르는 것처럼. 바로 그런 의미에서 믿음에는 (우리가 파악할 수 있을 만한) 이유가 없다. 그저 본능처럼 자연발생적인 현상이다. 이 현상의 본질은 궁극적으로 외부의 자극에 대한 내적 표상에 있다. 바로 그것이 믿음을 포함해서 두뇌에서 일어나는 모든 과정의 원인인 것이다 (참고로 원인과 이유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원인-결과는 인과론의 틀 안에 있는 개념이고, 인과론은 환원론의 기본 전제다. 반면, 이유는 분석되는 것이라기보다는 결과의 사후에 설명되고 해명되는 것에 가깝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자극을 인풋해주면, 아웃풋으로서 의미가 산출될 수 있다. 의식 현상 역시, 인풋에 대한 정보와 그 처리 과정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면 설명될 수 있고, 또 기계에 응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기존의 구문론적 기계를 넘어서는 의미론적 공학(semantic engineering)에 대한 데닛의 기획이다.
흠.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뭐라 말하기도 그렇고, 그리고 남의 전공에 콩 내놓아라 팥 내놓아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원대한 포부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포부가 큰 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무에서 유가 나오는가?"에서부터, "나는 무엇을 아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나는 누구인가?" 등에 대한 답이 하나일 순 없다. 그 모든 물음에 대한 답을 단 한 마디로 대체하려는 생각은 너무 큰 포부일 뿐더러 착각이요 오만이다.
데닛을 비롯한 뭇 인지과학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이러한 생각이 인간의 마음이나 두뇌를 신비화하려는 낭만주의적 태도--흔히 반과학주의와 짝을 짓는 것으로 이해되는--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과학을 "신비화"하려는 그들의 전략을 냉철하게 비판하고자 함이고, 그런 점에서 지극히 "과학적"인 태도다. 나는 인지과학이 모든 시점을 하나로 모으기보다는 시야의 범위를 넓혀 비가시적 영역까지도 볼 수 있게 해주리라 믿는다. 주는 것 없이 미운 그 녀석을 미워하지 못하는, 아니 미워하지 않으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 Daniel Dennett
Born: March 28, 1942, Boston.
Education: Philips Exeter Academy; Wesleyan University; Harvard (BA 1963); Oxford University (DPhil 1965).
Married: 1962, Susan Bell (one son, one daughter).
Career: 1965-70 assistant professor of philosophy, University of California at Irvine; '70-71 assoc prof, Irvine; '71-75 associate prof, Tufts; '75- prof, Tufts, '76-82 chairman, department of philosophy, Tufts; '79 visiting lecturer, Oxford; '85-2000 distinguished prof of arts & sciences, '85- director, Center for Cognitive Studies, 2000- University Professor, Tufts.
Books: 1969 Content and Consciousness; '78 Brainstorms: Philosophical Essays on Mind and Psychology; '81 The Mind's I: Fantasies and Reflections on Self and Soul, co-edited with Douglas Hofstadter; '84 Elbow Room; '87 The Intentional Stance; '91 Consciousness Explained; '95 Darwin's Dangerous Idea; '96 Kinds of Minds; '98 Brainchildren: Essays on Designing Minds; 2003 Freedom Evolves.
사진, 약력, 참고 기사 출처' target='_son'>http://books.guardian.co.uk ... 084,1192975,00.html>http://books.guardian.co.uk ... nbsp;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