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일 그레이트 솔트 레이크에서 찍힌 사진. 달, 목성, 금성, 그리고 처녀 자리의 별 중 하나인 스피카(사진에서 초승달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가 나란히. 오른쪽으로는 비행기가, 아래로는 엄마와 아이들이.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보면서 "저 모든 것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으며, 또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고 했던 어느 수학자의 말은 수정돼야 한다. 저런 풍경을 보면서 어찌 감히 "딴 생각"을 품을 수 있겠는가. 저런 곳에서만큼은, '세계'고 '우주'고 '기원'이고 '생성'이고 모든 문명어린(!) 생각일랑 집어 치우고는 그저 바라만 보는 게, 어렵사리 나란히 외출한 별님네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는가.
태양이 제가 가진 연료를 모조리 태워버리기까지의 시간도 시간이고, (그 기원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 지구라는 행성이 생겨나면서부터 지금의 내가 이 글을 쓰기까지 걸린 (지금까지 나온 가장 신빙성있는 추정치를 따른다면) 46억년이라는 시간도 시간이고, 도올이 어느날 갑자기 깨달음을 얻고 박사 논문을 완성하기까지 걸렸다는 단 사흘이라는 시간도 시간이고, "힘없는 책갈피"가 기형도의 "종이를 떨어뜨리"기까지 걸린 "아주 오랜 세월"도["질투는 나의 힘"의 첫머리],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던 그의 짧은 생도[마지막 머리] 시간이고, 집에 불이 나자 아이를 살리기 위해 창밖으로 던진 가난하고 젊은 엄마와 결국은 숨지고 만 그 아이, 이 이민자 모자가 파리에서 보냈던 그 남루한 시간도 시간이고, 내가 대책도 주책도 없이 멍하니 흘려보낸 시간도 시간이다.
이 모두가 흐른다. 흐르고 흘러 넘실댄다. 끝내는 흘러 넘친다. 그런 뒤에도 계속해서 흐른다.
여기에서 시간이 무어냐고 묻지도, 도대체 (명색이 철학도라는, 심지어 "과학"철학을 한다는 사람이) 시간 개념을 그렇게 막 써도 되냐고 나무라지도 말라. 우리 모두는, 聖아우구스티누스만큼이나, 시간이 뭔지 알고 있다. 다만 "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거대한, 혹은 구차한) 질문이 나오면 막막해지는 것일 뿐이다.
어쨌든 분명한 건, 내게는 이상한 나라의 폴이 가지고 있었던, 그 시간을 멈추게 하는 요요도, 나를 제외한 이 모든 세계를 빛의 그것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여서 시간을 느리게 가게 할 능력도 없다는 사실이다.
... 자, 알았으면 이제, 이 창을 닫고 다시 MS 워드로 돌아가라는 존재의 부름에 응하라.
그래도...
지구가 돌고, 그래서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을 행복하게 느끼게 해주는 몇 안 되는 순간 중 하나. 그래봤자, 이내, 저 눈아린 풍경이 "또 하루 멀어져"감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한숨을 내쉬게 되지만. 아, 정말이지,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 이쯤 되면 "시간 없다면서 저 위에 올린 사진들은 뭐고, 또 지금의 이 글은 뭐냐"라는 물음이 나올 법하다. 이 물음은 부당하지 않다. 다음은 질문의 정당성과는 상관 없는 답이다.
1. 나도 뭔가를 "쓸 수 있는" 인간이었음을 스스로 상기하기 위해. 2.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소"라는 신호를 한 번쯤은 보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귀뚜라미 우는 계절이 올 무렵이고 하니. 3.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물에 빠지거나 불길에 숨이 막히거나 째깍째깍 하고 타들어가다가 결국에는 펑 하고 터져버릴 것 같아서. 4. 사진--몇 주 전 어느날 저녁, 3.과 같은 이유로 생 루이 섬 인근을 산보하다가 찍은--이 맘에 들어서. 혼자 보기 아까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