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이는 공항을 좋아한다 했다. 헤테로토피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의 지대. 아무 곳도 아닌 곳. 어디에나 갈 수 있으면서 아무 곳도 아닌 곳. 아무 곳도 아니기에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곳. 어디를 떠나와서 어디로 가든, 얼만큼 머물렀고 머무를지 간에, 누구에게나, 인생이 전환되고 때로는 초기화되는 순간.
떠난 이가 남긴 음악을 듣는다. 함께 한 나날들이 선율에 실려 뇌리로 들어와 가슴께로 흐른다. 어떤 음악은 무척 가냘프고 구슬퍼, 듣다가 참, 이런 음악을 다 들었구나, 슬며시 웃다가, 문득, 언젠가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눈이 떠올라, 그래, 그런 여린 면이 있었지, 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떠난 이가 주고 간 물건들로 주변을 채운다. 원래 주인의 흔적이 채 지워지지 않은 가느다란 초록빛 파일럿 펜. 여고생도 아니고 이런 펜을, 하며 슬며시 웃으려다, 문득, 언젠가 종이 여백에 능숙한 솜씨로 삽화를 그려넣던 모습이 떠올라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가, 문득, 서로 알면서 모른척하고, 그러면서 설렘과 아픔을 주고받던 기억이 겹쳐지며 마음이 어두워지다가도, 이내, 그땐 우리 모두 어렸지, 하며 다시 미소를.
떠난 이와 함께 한 시간들이 뇌리를 수놓는다. 드문드문 박힌 별처럼. 가늘고 길다란 거미줄로 얽혀 있던 우리. 가늘고 길어 금방이라도 끊길 듯 아슬아슬해 보이고 때론 존재조차 의심스러웠을지라도 우리에게, 적어도 내게, 그것은 한없는 추락으로부터 구제한 구명줄과도 같았다. 서로가 서로의 질량으로 끌어당겨 휘고 비틀어 매끈하지 않고 울퉁불퉁해진 우리의 공간. 그 때문에 어쩌면 각자 가던 길이 굽어지고 멀어지기도 했겠지만, 그래도 돌아보면 외려 더 아름답지 않을지. 함께였다는 이유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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