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전 생산으로의 회복을 거부하기 위한 철벽 행동의 상상 (브뤼노 라투르)

* 번역의 변 : 브뤼노 라투르가 작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하던 시점에서 쓴 글로, 이후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한글본이 없길래 임시로 해보았다. 수정 후 2월말 정도에 페이스북에 올려 의견을 수렴할 생각이다. 가능하다면 라투르측에 요청해서 원문 게시글에 추가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 원문 출처 : Où atterrir après la pandémie? ; Where to land after the pandemic?



위기 전 생산으로의 회복을 거부하기 위한 철벽 행동의 상상

 

브뤼노 라투르 

AOC 2020년 3월 20일

 

의료진이 “현장에” 있고,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또 많은 유가족들이 고인을 묻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위기 이후에 대한 상상은 아마도 부적절할 것이다. 그렇지만 투쟁은 바로 지금이다. 구 기후 체제는 지금까지 다소 공허한 투쟁의 대상이었다. 일단 위기가 지나고 경제가 회복된 후에도 구 기후 체제로 되돌아가지 않으려면 바로 지금 맞서 싸워야 한다. 실제로 현재의 보건 위기는 위기라기보다는 (위기는 언제나 일시적이게 마련이다) 지속적이고 불가역적인 생태적 변이에 각인되어 있다. 우리가 운이 좋다면 전자[보건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 몰라도 후자[생태적 변이]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두 상황이 같은 수준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양자의 관계를 잘 살피는 것은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어쨌든 이 보건 위기를 수단으로 삼아 생태 변이를 맹목적이 아닌 다르게 맞이할 기회로 삼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망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가장 먼저 배운 것은 가장 황당한 것이기도 하다. 단 몇 주일만에 전 세계가 동시에 경제 체제를 중단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모두가 속도를 늦추거나 방향을 돌리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바로 그 경제 체제 말이다. 생활 양식의 전환에 대한 생태주의자들의 논증은 “진보라는 기관 열차”의 비가역적인 힘에 대한 논증으로 반박되어 왔다. 즉 “세계화 때문에” 열차는 선로에서 이탈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바로 지구화라는 특성 때문에 그 유명한 진보도 흔들리게 되었다. 단번에 제동이 걸리고 멈출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사실 지구의 세계화는 다국적 기업이나 상업 협약이나 인터넷이나 “관광 해설사/가이드”만의 소관은 아니다. 이 행성 위의 각 존재자들은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필요한 순간에는 다른 요소들과 결합해서 집합적인 것을 구성한다. 공기 중으로 확산되어 지구의 대기를 높이는 이산화탄소가 그러하고, 신형 독감을 옮기는 철새도 그러하다. 코로나바이러스도 마찬가지임을 우리는 고통스럽게 되새기고 있다. “모든 인간”을 잇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역량은 겉으로 보이게는 무방비한 우리의 비말이라는 수단으로 전달된다. 마치 미생물들이 수십 억 인간들을 어느 정도까지는 재사회화할 사명을 띠고 세계화 혹은 반()세계화의 주역을 맡기라도 한 듯이 보인다.

이로부터 믿기 어려운 사실이 확인된다. 세계 경제 체제가 적색 경보를 모두에게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게다가 이 체제는 커다란 금속 손잡이도 갖추고 있었다. 그리하여 국가 지도자들이 그 손잡이를 당기는 즉시 “진보의 기관 열차” 또한 요란한 제동 소리를 내며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착륙[지구로의 귀환]을 위해 90도 각도로 선회하라는 요구는 지난 1월[2020년 1월]까지만 해도 달콤한 환상이었지만 이제는 현실에 훨씬 가까워졌다. 모든 운전자들은 안다. 도로를 이탈해서 벽을 들이받는 일이 없도록 구원의 손길을 바란다면 속도를 낮춰야 한다는 사실을.

세계화된 생산 체계가 갑작스럽게 멈추면서 지구 귀환 프로그램을 추진할 더 없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 불행히도 생태주의자들만의 일은 아니다. 20세기 중반부터 행성의 구속을 벗어난다는 생각을 발명한 세계화의 주역들 또한 그들을 세계 밖으로 탈출하지 못하도록 막는 장애물로부터 급진적으로 단절할 더 없는 기회라 여긴다. 그들에게는 복지 국가, 가난한 자들의 안전망, 오염 방지를 위한 규제책 등을 해체하고, 또, 보다 냉소적으로 말한다면, 이 행성에 짐이 되는 모든 초과 인원을 제거하기 위한 너무나도 좋은 기회라는 것이다.[1]

이 세계화주의자들이 생태적 변이를 의식하면서도 기후 변화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한편, 지난 50년간 그 결과를 피하고 특권으로 무장한 요새를 건설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요새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접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진보의 열매”에 대한 보편적 분배라는 근대인의 위대한 꿈을 믿을 만큼 소박하지 않다. 그러한 환영마저 남기지 않을만큼 솔직하다는 점에서 그들은 새롭다.[2] 매일같이 폭스 뉴스에서 발언하고 또 모스크바, 브라질리아, 뉴델리, 워싱튼, 그리고 런던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모든 기후 회의주의 국가들을 지도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들이다.

현재의 상황을 그토록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매일 같이 늘어나는 사망자들이 아니다. 경제 체제의 전반적인 중단은 특히 세계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재고”할 경이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세계화주의자들이 패배했음을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것, 기후 변화의 부정이 무한정하게 지속될 수는 없다는 것, 지구상의 다양한 지층들과 그들의 “개발” 사이에서 화해할 기회는 더 이상 없으며 궁극적으로는 경제도 예외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무든 수를 써서라도 좀더 지속가능하고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보호할 수단을 강구하는 것은 태세인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세계의 멈춤”이라는 제동, 이 예견되지 않은 휴식은 그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더 빨리 그리고 더 멀리 달아날 기회를 제공한다.[3] 이 순간, 그들이야말로 혁명가다.

우리가 행동해야 하는 것은 바로 거기에서다. 그들에게 기회가 열린다면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열린다. 모든 것이 멈춘다면 모든 것이 재고되고, 변경되고, 선택되고, 분류되고, 중단되거나 반대로 가속될 수 있다. 바로 지금 전수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가능한 빨리 생산을 재가동하자”는 양식의 요구에 “그렇게는 안 된다”는 일성으로 답해야 한다. 무엇보다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우리가 이전에 했던 것과 똑같이 회복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보자. 텔레비전에 눈물을 머금은 한 네덜란드 화훼업자가 나왔다. 그는 고객이 없어 비행기로 전 세계에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던 수톤의 튤립을 폐기해야 했다. 불평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가 피해 보상을 받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카메라는 곧바로 뒤로 물러나는데 그때 그의 튤립이 인공 조명에서 자란 뒤 바다에 석유를 뿌려대는 쉬폴이라는 화물선으로 이송될 것임을 보여준다. 거기에서 의심이 싹튼다. “그런 종류의 꽃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그러한 방식을 연장하는 일이 과연 유용한가?”

마찬가지로, 만일 우리 각자가 우리 생산 체계의 모든 면에 대해 그러한 질문을 던진다면, 우리는 효과적인 세계화 방해꾼이 된다. 우리는, 비록 수백만에 불과하기는 해도, 지구의 세계화에 있어서는 나름의 방식으로 지구를 세계화시킨 저 유명한 코로나바이러스만큼 효과적일 수 있다. 바이러스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미미한 비말로써 세계 경제의 멈춤을 이루었다면, 우리는 우리의 무의미한 작은 행동으로써, 행동에서 행동으로 전함으로써 생산 체계의 멈춤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각자 질문을 던지면서 거부 행동을 상상한다. 이것은 바이러스에 대한 대항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복구하지 않기를 바라는 생산 양식에 대한 대항이기도 하다.

달리 말해 단지 생산 체계를 회복하고 변경할 것이 아니라 생산을 세계와 관계를 맺는 유일한 원리로 간주하는 데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4] 이것은 혁명이 아니다. 픽셀(화소) 단위로의 분해다. 피에르 샤르보니에가 보인 것처럼, 경제에서 이윤의 재분배에만 치중한 지난 100년 간의 사회주의 이후, 어쩌면 이제는 “생산 자체”에 반기를 드는 사회주의를 발명할 때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5] 불의는 진보의 열매를 재분배하는 방식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구를 풍요롭게 만드는 방식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생산을 축소하고 사랑과 신선한 물로만 살자는 것이 아니다. 소위 비가역적이라는 체계의 각 부분들을 선택하고, 소위 필요불가결한 연결들을 재고하며, 무엇이 바람직하고 무엇이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은지 검토해 보자는 것이다.

이 부과된 시간을 우선적으로는 각자가, 그리고는 춤, 기술하는 데에 사용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어디로부터 벗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다시 꿰거나 아니면 행동을 통해 끊겠다고 결심한 사슬은 무엇인지. 세계화주의자들은 재개 이후 그들이 무엇을 재생하고자 하는지 매우 분명히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못지 않게 분명하되 더 나쁜 것은 석유 산업과 고급 유람선이다. 그들에게 반대의 목록을 제시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한두 달 안에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새로운 “사회적 거리”를 배우고, 보다 연대하기 위해 거리를 두고, 병원이 과부하되지 않도록 집에 머물 수 있다면, 이 새로운 철벽 행동의 변화에 대한 잠재력을 상상할 수 있다. 동일한 것의 재개에 대항하기 위해서. 또는 그보다 나쁘게는, 지구 중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완충 장치에 대항하기 위해서.


철벽 행동을 위한 길잡이


주장은 실천적 수행과 연결하는 것이 좋다. 독자에게 이 간단한 설문을 제안한다. 설문은 직접 체험된 개인적인 경험을 반영할수록 더더욱 유용할 것이다. 관건은 당신의 머리에 와닿은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상황을 기술하고 나아가 또 다른 설문으로 확장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여러 기술들을 중첩해서 풍경이 생성되도록 답변을 한다면, 당신은 구체화되고 자세한 정치적 표현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는 불가능하다.


주의할 것은 이것이 질의서도 설문 조사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자기 기술을 위한 길잡이이다.[6]


이제 할 일은 현재의 위기에서 어떤 활동으로 인해 당신이 박탈감을 가지고 당신의 삶에 본질적인 조건에 위협을 느끼는지 알아보고 그러한 활동의 목록을 만드는 것이다. 각각 활동에 대해서 당신이 (예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재개하고 싶은지, 더 하고 싶은지, 아니면 전혀 재개하고 싶지 않은지 선택할 수 있다. 다음의 질문에 답해 보라.

 

1.     지금 멈춘 활동 중 당신이 재개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2.     다음을 기술하라. ㄱ) 왜 그 활동이 당신에게 해로워/불필요해/위험해/비일관적으로 보이는가? ㄴ) 그 활동의 종식/일시 중지/대체가 당신이 선호하는 다른 활동을 보다 용이하게/더 일관적으로 만들었다면 어떤 점에서인가? (질문 1.에 대한 답변에서 열거된 각 항목에 대해 별도로 답변할 것)

3.     당신이 멈춘 활동을 계속할 수 없는 노동자/직장인/수행원/기업가들이 다른 활동으로의 전환을 용이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려면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하는가?

4.     현재 멈춘 활동 중 당신이 발전되거나 재개되기를 바라는 것은? 혹은 어떤 활동이 대안으로 발명되어야 하는가?

5.     다음을 기술하라. ㄱ) 왜 그 활동이 당신에게 긍정적으로 보이는가? ㄴ) 그 활동은 어떻게 당신이 선호하는 다른 활동을 보다 쉽게/조화롭게/일관적으로 만드는가? ㄷ) 또 당신이 비호감을 표시한 활동에 맞서 저항하도록 만드는가? (질문 4.에 대한 답변에서 열거된 각 항목에 대해 별도로 답할 것)

6.     노동자/직장인/수행원/기업가들이 그 활동을 재개/발전/창조할 역량/수단/도입/소득/도구를 취득하도록 하기 위한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다음으로는 당신의 기술과 다른 참여자들의 기술을 비교할 방법을 모색하라. 답변을 모으고 겹쳐서 보면 충돌, 연합, 논쟁, 대립의 선들로 이루어진 풍경이 서서히 그려질 것이다.)


[1] 미국의 고삐 풀린 로비스트들에 관한 마크 스톨러의 기사를 보라 : 우리가 주의하지 않는다면 코로나 바이러스 구체책은 기업들의 한 탕이 될 것이다. 『가디언』, 2020년 3월 24일,

[2] 우리는 더 이상 같은 행성에 살지 않는다, AOC 2019년 12월 18일.

[3] Danowski, Deborah, and Eduardo Viveiros de Castro. Larrêt de monde. De lunivers clos au monde infini (textes réunis et présentés). Ed. Hache, Emilie. Paris: Editions Dehors, 2014. 221-339. [드보라 대노프스키, 에두아르도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 「세계의 멈춤」, 『닫힌 우주에서 무한 세계로』, 에밀리 아슈 편, 2014]

[4] Dusan Kazic, Plantes animées- de la production aux relations avec les plantes, thèse Agroparitech, 2019. [『살아 있는 작물 : 작물의 생산에서 작물과의 관계로』. 파리농업공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9.]

[5] Pierre Charbonnier, Abondance et liberté. Une histoire environnementale des idées politiques. Paris: La Découverte, 2020. [피에르 샤르보니에, 『풍요와 자유 : 정치 사상의 환경사, 2020』

[6] 자기 기술은 『어디에 착륙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정치적 방향성을 잡을 것인가』에서 제안되었으며 이후 일련의 예술가, 연구자들에 의해 발전된 새로운 진정서(cahier de doléance)의 절차를 복구한 결과물이다.

무와 무한 (2) 유한의 무한 도전 : 세계와 정신의 한계에 관한 사유 (2019년 11월 16일)*

 서론 : 역설, 피조물의 창조적 역습 

무한 개념의 기원과 분류 : 물리적 무한과 수학적 무한, 가무한과 실무한

역설의 보고(寶庫)로서의 무한

물리적 무한과 그 역설

그리스의 유한 우주와 그 역설

근대 무한 우주의 도입

밤하늘은 왜 검은가? 올베르스의 역설 칸트의 이율배반

수학적 무한과 그 역설

연속과 무한 : 제논의 역설

무한은 얼마나 작은가? 미분의 도입과 무한소 무한을 셀 수 있는가? 힐베르트의 무한 호텔 무한은 얼마나 큰가? 칸토어의 역설

결론 : 무한과 한계, 그리고 역설의 가치


별첨(인용구)

1° 모순율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위배를 거두어야 할 필요가 우리로 하여금 수학적 연속을 발명하도록 강제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 개념의 모든 것이 정신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또 정신에 이러한 기회를 부여한 것이 경험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 앙리 푸앵카레,『과학과 가설』 (1902)

2° 잠재적 존재와 현실적 존재가 있으며, 추가에 의한 무한과 분할에 의한 무한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크기도 현실적으로 무한하지 않고 크기는 분할에 의해 무한하다고 말했다 (분할불가능한 선이 있다는 주장은 쉽게 반박된다). 그러므로 크기는 잠재적으로 무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크 기가 잠재적으로 무한하다는 말을, 잠재적인 조각 작품이 언젠가 현실적인 조각 작품이 되는 것처럼 크기가 언젠가 현실적으로 무한해지는 뜻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존재는 여러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어떤 사물이 무한하다는 말은 특정한 날이나 경기가 있다는 말과 뜻이 같다. 이 경우에도 우리는 잠재성과 현실성을 구별할 수 있다. 올림픽 경기는 거행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잠재적으로 있을 수도 있고 거행되고 있다는 의미에서 현실적으로 있을 수도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

3° 17세기 혁명에서 비롯된 변화는 코스모스의 해체와 공간의 기하학화라는 두 가지 요소로 이루 어졌다. a) 변화와 부패의 영역의 중심인 무겁고 불투명한 지구가 있고, 그 “윗편”에 무게도 없고 부패하지 않으면서 빛을 내는 별들이 위치한 천 상계가 “올라선” 것이 [코스모스의] 세계였다. 이 세계는 무제한의, 나아가 무한의 우주, 모든 부분 들을 [일괄적으로] 지배하는 법칙들, 그리고 같은 존재론적 수준에 위치한 요소들의 동일성에 의해 서만 통일된 우주가 그것이다. b) 아리스토텔레스 공간관, 즉 세계 안의 장소들의 차등화된 총체였 던 공간이 등질적이고 필연적으로 무한한 연장체 인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간으로 대체되었고, 이는 구조상 우주의 실제 공간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 될 것이었다. – 알렉상드르 코이레, 『닫힌 세계에 서 무한 우주로 (From Closed World to Infinite Universe)』 (1957)

4° 앞의 것들[무한한 선, 물체의 분할, 별들의 수...] 을 우리는 무한하다고 하기보다는 부정(不定)하다 고했다. 이는 무한이라는 용어를 단지 신에게만 쓰고자 하기 위함인데, 그 이유는 이렇다. 우리는 단지 신에게 있어서만 어떠한 한계도 인식하지 못할 뿐 아니라 어떠한 한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인식한다. 반면에 우리는 다른 것들이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와 같이 긍정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며, 그것들이 한계를 갖고 있는 경우 우리는 그것을 긍정적으로 발견할 수는 없고 단지 부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 데카르트, 『철학원리』 (1644)

5°모든 사물들이 공유하는 성질들이 있고, 그 성질들에 대한 앎은 우리의 정신을 자연의 가장 큰 경이로움으로 이끈다. 그 중 가장 으뜸이 되는 경이로움은 모든 사물에서 발견할 수 있는 두 가지 무한, 즉 무한대와 무한소이다. 어떤 공간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우리는 더 큰 공간을 상상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그것보다 더 큰 공간도 상상할 수 있다. 이 상상은 더 이상 확장할 수 없는 공간에 도달함 없이 무한히 계속된다. 반대로 어떤 공간이 아무리 작다 할지라도 우리는 더 작은 공간을 생각할 수 있고, 그 생각은 더 이상 분할불가능한 공간에 도달하지 않고 무한히 계속된다. 시간도 마찬 가지다. 우리의 한계를 깨닫자. 우리는 한 사물이지 모든 사물이 아니다. 우리의 존재는 무에서 발생하는 최초 원리에 대한 앎을 방해하고, 우리 존재의 작음은 우리의 눈앞에서 무한을 감춘다. [...] 이 무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 블레즈 파스칼, 『팡세』

6° 무한한 공간 전체에 정말로 태양들이 있다면, 그 태양들이 대략 같은 거리를 사이에 두고분포 하든지 아니면 은하수-시스템들에 속해서 분포하든지 간에, 태양들의 개수는 무한대일 테고, 따라서 온 하늘이 태양에 못지 않게 많아야 할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눈에서 뻗어나간다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직선 각각이 반드시 어떤 항성과 만날 것이고, 따라서 하늘의 모든 지점이 우리를 향해 항성의빛,곧태양의빛을보낼것이기때문이다. – 하인리히 빌헬름 올베르스, 1832

7° 별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다면, 밤하늘의 배경은 은하수처럼균일하게밝을 것이다.왜냐하면밤하 늘의배경전체에별이없는지점이단하나도없 을 터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망원경 들이 무수한 방향에서 포착하는 허공을 이해하는 유일한 길은, 보이지 않는 배경까지의 거리가 어 마어마하게 멀어서 거기에서 출발한 광선이 아직 우리에게 도달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일 성싶다 – 애드거 앨런 포, 『유레카 : 산문시』 (1848)

8° [모든 사물은] 분할가능하거나 분할가능하지 않 거나 둘 중 하나다. 분할가능한 것은 분할가능하지 않는 것으로 분할되거나 계속해서 분할되거나 둘 중하나다.마지막경우가연속에해당한다. –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

9° 시간이 어떻게 영혼과 관계하는지, 왜 시간이 땅과 바다와 하늘에 있는 모든 것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 연구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만일 영혼이 없다면 시간이 존재할까, 라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는 사람이 존재할 수 없다면, 어떤 것이 셀 수 있는 것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세어지는 것 혹은 셀 수 있는 것인 수도 명백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세는 능력을 가진 영혼이나 영혼 속의 정신이 없다면 시간은 존재할 수 없다. 영혼 속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면 시간의 바탕만 존재할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

10° 사유되지 않는 것은 순전한 무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직 사유만을 사유할 수 있으며, 사물에 관해 말하기 위해 우리가 가진 언어란 오직 우리의 사유를 표현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사유 외에 다른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생명은 죽음이라는 두 영원 사이의 짧은 일화에 지나지 않고 –시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모순으로 보이겠지만–, 이 일화에서조차 의식적 사유는 얼마 지속되지 않았으며 오직 한 순간만 지속할 뿐임을 지질학의 역사는 보여준다. 사유란 기나긴 밤의 한 가운데 내리치는 번개일 뿐이다. 그러나 이 번개야말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다. – 앙리푸앵카레, 『과학의 가치』 (1905)


참고문헌과 동영상

- 존 D. 배로 지음, 전대호 옮김, 『무한으로 가는 안내서 : 가없고 끝없고 영원한 것들에 관한 짧은 기록』, 해나무, 2011
-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전대호 옮김, 『밤을 가로질러 : 밤, 잠, 꿈, 욕망, 어둠에 대하여』, 해나무,  2015
- EBS 지식채널 e “왜 밤하늘은 어두울까”
- 제프 데코프스키 Jeff Dekofsky, “무한 호텔 역설The Infinite Hotel Paradox” on YouTube
- EBS 다큐프라임 “넘버스 2부 – 천국의 사다리,∞”
- 카오스재단, [카오스 술술과학] “도대체 무한이란 무엇일까” 1 & 2 (무한의 신비 & 무한을 세는 법)

Scarph : PauvRe, Haute, Solitaire et melAnColique: 무와 무한 : 피조물의 창조적 역습 (이화인문아카데미, 2019년 11월)*: 6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