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에게 바치는 유쾌한 헌사

blogin.com · 2004-06-04

시험 공부를 하던 중, 올해가 푸코가 죽은 지 20년이 되는 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 내가 공부하는 방식은 왜 이다지도 하이퍼텍스트적이란 말인가.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 깡길렘 → 깡길렘에 관한 푸코의 글 → 푸코 → 푸코에 관한 글들과 웹사이트들. 그러다가 급기야는 푸코에게서 영감을 받은 노래를 발견하는 데에 이르렀다. 미국의 대학 교수들이 모여 만든 아마추어 밴드 The Professors(이름도 참...) 가 부른 "Foucault' target='_son'>http://acjournal.org/holdin ... ult-low.mp3>Foucault Funk: The Michel Foucault Postmodern Blues (low-fi version) "가 그것이다.

사운드는 조악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래도 "인간은 언젠가 바닷가의 모래 위에 그려진 그림처럼 지워질 것이다"와 같은 푸코의 명구를 그런 방식으로 듣고 있자니 기분이 다 유쾌해진다. 포스트모더니즘 ABC song 내지는 선전가로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고 말하면 혼나거나 비웃음 당하겠지? 그들은 "예술"을 단지 사상을 선전하거나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걸 계몽적이고 (전)근대적이라며, 달리 말해 촌스럽다며 비웃을 테니까.

한편으로 사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심미적인 측면에 대한 고려를 최소화해야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같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노래 가사에 "discourse"나 "foundation"이나 "민중"이나 "해방"이 들어가는 노래가 사람 맘을 움직이는 방식과 그 효과는 완곡한 어법으로 표현한 노래의 그것과는 달라진다는 것이다. 존 레논의 "Imagine"과 "Power to the People"의 차이 혹은 "아침 이슬"과 "님을 위한 행진곡"의 차이. 전자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그 맥락을 고려했을 때 또 다른 미적인 측면이 부각되는 경우. 후자는 "美"의 범주 하에서라기보다는 그 외의 맥락 안에서 감상하는 편이 보다 적절한 경우.

어쨌든(아, 하이퍼텍스추얼리티는 내 블로깅의 주된 특성이기도 하다. "어쨌든"이 유난히 많이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이 노래는 맥락과 가사를 고려하고 들을 때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종류에 속한다.

I can't find no foundations
There aint no truth anymore
I can't find no foundations
There aint no truth anymore
I'm caught in multiple perspectives
I can't think straight anymore

Man will be erased
Like a face drawn in sand
Man will be erased
Like a face drawn in sand
Like a face drawn in sand
At the edge of the sea

Do not ask me who I am
Do not ask me to remain the same
Do not ask me who I am
Do not ask me to remain the same
I am not the only one
Who writes to have no face

Discourse is not life
Its time is not your time
Discourse is not life
Its time is not your time
In discourse you have no survival
You only establish your death

바탕을 찾을 수 없어
진리는 더 이상 그 어디에도 없어
바탕을 찾을 수 없어
진리는 더 이상 그 어디에도 없어
난 여러 개의 관점에 사로잡혀 있어
난 이제 똑바로 사고할 수 없어

인간은 지워질 거야
모래 위에 그려진 그림처럼
인간은 지워질 거야
모래 위에 그려진 그림처럼
바닷가 모래 위의 그림처럼

내가 누구냐고 묻지마
내게 늘 그대로 있으라 하지도 마
내게 누구냐고 묻지마
내게 늘 그대로 있으라 하지도 마
얼굴을 지우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단지 나뿐은 아니니까

말은 삶이 아니야
말에 주어진 시간은 네 것이 아니야
말은 삶이 아니야
말에 주어진 시간은 네 것이 아니야
말 속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어
단지 죽음에 다가갈 수 있을 뿐이야


The Professors, "Foucault' target='_son'>http://acjournal.org/holdin ... ult-low.mp3>Foucault Funk: The Michel
 Foucault Postmodern Blues"(full version)
Lyrics by Gary Radford,  Marie Radford,
 and Michel Foucault
Music by Stephen Cooper and Gary Radford


◈ 출처와 가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보려면 클릭하면' target='_son'>http://acjournal.org/holdin ... lt.html>클릭하면 됨.
◈ 번역은 내가 했는데, "토대"나 "담론" 같은 학적 용어/번역어들을 그대로 가져다 붙이는 게 해당 용어에 관해 원문이 주는 묘미를 살리는 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그래도 부족하게나마 시적 완성도를 살려보고 싶은 마음에 약간 무리수를 두어가면서까지 의역했음. 그러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원문의 내용이나 푸코의 사상을 왜곡했을 가능성이 큼. 특히 <지식의 고고학>을 모티브로 한 네 번째 연의 경우가 그러함. "삶"이라고 할지 "생명"이라고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삶"이 더 시적인 것 같아서 그걸로 택했음.
◈ 사진 출처 :  http://www.nexo.org/revisiones06.htm target=_top>www.nexo.org/ revisiones06.htm.

—박쥐

술먹고 하는 얘기

blogin.com · 2004-06-02

이럴 땐 만화를 그릴 수 있었음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역동적인 구성이 가능하거든. 이렇게 글만 쫘악 늘어놓으려다 보니까 쓸데없이 일관성이나 문법 같은 것들을 의식하게 되는 거라구. 어쨌든 눈앞에 둔 참이슬이랑 김치전에 대한 예를 갖추기 위해서라도 오늘만큼은 그런 것들로부터 좀 자유로워져 보자구.

술 먹으면서 무슨 얘기를 했더라 하고 돌이켜 보니까, 대개 이런 식이더군
:

1. 술이나 안주나 술집에 대한 품평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김치전을 부칠 땐 말야, 두껍게 풀면 안돼. 겉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도 속은 안 익게 되거든. "

"아, 참이슬 팩소주는 맹숭맹숭하네. 배타고 오는 동안 알콜 성분이 날아가기라도 했나? 지리산에서 먹던 것과도 달라. 기압이나 지리적 조건에 영향을 받는 게 틀림 없어. 똑같은 참이슬이라도 술집마다 농도가 다르듯이 말이야. 다들 그럴 리가 있냐고 날 구박했지만, 진짜야. 어떤 데서는 얼음처럼 차갑게 해서 주고, 어떤 데서는 뜨뜨미지근하게 해서 준다구."

2. 사는 얘기

"요즘 왜 이리 공부가 하기 싫은지 모르겠어. 다들 내가 공부만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한국에 있을 때보다도 공부를 더 안하고 있는 것 같아. 아, 내가 대학원 들어가서는 공부를 좀 하긴 했지. 그땐 학과 공부가 되게 재밌었거든. 학생회 일도 재밌었구. 나는 말야, 원래 주어진 일보다는 해도 그만이고 안해도 그만인 일을 더 잘하고 그런 일에 열심이거든. 근데 철학을 시작하니까 그 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져서 본업을 부업같이 하고 부업을 본업같이 해도 that works! 였던 거야. 물론 요즘도 그렇지. 소설을 읽거나 웹 서핑을 하거나 심지어 길거리를 돌아다니기만 해도 그게 다 불어 공부를 위한 게 되니까. 근데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까 아무 것도 하기가 싫어졌어."

"아, 이러면 정말 뭐가 되는 거지? 부모님들은 딸이 노벨 물리학상을 탈 훌륭한 물리학자가 되리라는 기대를 접긴 했어도 그래도 '과학철학'을 전공하는 '교수'가 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는데 말야 (그들에겐 내가 '철학' 중에서도 '과학철학'을 한다는 게 중요해. 왜냐고? 이건 내 생각인데 말이야, 대학다닐 때 철학과 사람이 엄마를 쫓아다녔던 것 같아. 그렇지 않다면 엄마가 '철학하는 인간들은 죄다 한여름에 바바리 코트 입고 여대 앞에 나타나서 인생이 뭐냐고 묻는다'고 악의적으로 일반화했겠어?). 나한테 이것저것 선물을 챙겨준 친구들은 또 어떻고?" 

"왜 선생들은 이메일을 받은 뒤 며칠이 지난 다음에야 답장을 하는 걸까. 어제 숙제 제출 기한을 연장해 달라는 멜을 보냈거든. 근데 답이 없네. 안 된다고 하면 어쩌지? 그래도 여기 선생들은 그런 면에서는 너그러운 편이긴 하지만..."

"난 큰 시험에 약해. 지금까지 줄곧 그랬어. 왜, 모의고사는 기차게 잘 보면서 내신에 반영되는 중간/기말 고사나 수능은 못 보는 애들 있잖아. 그게 나였다구. 6월 시험이 불안한 것도 그래서야. 사실 시험 방식은 여러 면에서 나한테 꽤나 유리한데도 말이야."

3. 과거 얘기

"걔 있잖아, 내 옛 애인. 걔가 이번 여름에 떠난대. 애인은 있을까? 있다면 남겨두고 가는 걸까? 같이 가는 건 아닐까?"

"난 그 친구가 그렇게 된 이후로 한동안은 신촌 거리를 다니기가 무서워졌더랬어. 그 친구가 그렇게 떠나고 가을이 찾아와서 그 친구가 다니던 학교 애들이 축제를 하면서 거리를 점령하고 온갖 깽판을 부리는데, 그게 그렇게 미워보일 수가 없더라구. 야! 너네는 너네 학교 친구가 죽은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그렇게 추태를 부리는 거야, 하고 악을 쓰고 싶었어. 난 겨우 그 정도로 그 친구의 죽음을 애도한다고 생색을 냈던 걸까. 야학을 다시 해야, 아니 죽을 때까지 해야 이 미안함을 지울 수 있지 않을까."

4.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토론

"난 2년 전에 사람들이 김규항 때문에 치를 떨 때 사실 무덤덤했어. 왜, 철학하는 사람들의 병 있잖아. '객관성'에 대한 집착이나 편향되지 않은 관점에 대한 이룰 수 없는 갈망. 아, 물론 내게 여성운동 하는/했던 친구들이 있다고 해서 내가 그쪽에 밝다고 할 수도 없긴 하지. 사람들의 현실 인식은 확실히 정말 다른가봐. 내 눈에는 김규항이 '주류'라고 일컫는 그 '중산층 브루주아 여성 운동'이 그가 얘기하는 식의 '주류'처럼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말이야. 고작 인터넷 통해서 한국을 들여다 보고 있는 주제에 뭘 아냐고? 에이, 누구나 자기한테 보이는 만큼밖에 볼 수 없다는 거 알면서, 뭘 그런 질문을 하고 그래?"

"전여옥에 대해 아직까지도 말이 많더군. 조금 전에 컬티즌의 한 독자가 그녀에 대해 라깡의 온갖 이론을 끌어다가 패러디해놓은 걸 봤는데, 열이 확 받았어. 전여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도 말야. 그녀가 여성이 아닌, 그것도 남자애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이대 출신이 아니었더라도, 아니 최소한 남자들이 좋아하는 외모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얘기했을까. 걔들은 전여옥이 토론에 임하는 기본적인 자세를 갖추지 않았다는 것만큼이나 '이쁘지도 않은 게 깝쭉대는' 걸 가지고 걸고 넘어지려 하는 것 같아."

5. 영화나 문학 등등에 대한 얘기

"며칠 전에 A ton image 라는 영화를 봤어. 음. 뭐라고 번역하면 좋을까. 저런 preposition 은 번역하기 힘들다구. 한국에 개봉된다면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네 얼굴에 비친 나"라고 의역하면 좋을 듯 싶은데. 어쨌든 인간 복제에 관한 영화였어. 뤽 베송 감독 밑에서 시나리오 쓰던 여자의 감독 데뷔작이고. 전 남편이 정신 병원에 가 있고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잃고서 아이를 낳을 수 없게된 한 여자와 다른 어떤 남자가 만나고, 그 여자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녀를 닮은 아이를 낳고 싶어서 그녀의 세포를 복제해서 그녀에게 임신시켜서 여자 아이를 낳고, 그 여자 아이가 자라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서 행복한 가정을 파탄내고, 끝내는 저를 낳은 어미이자 제 자신인 엄마를 죽이고 아빠를 차지하려다가 제가 죽고 마는, 뭐 그런 얘기였어.
복제 인간을 다룬 영화나 소설은 꽤 많지. 복제 기술이 가져올 암울한 미래를 다룬 SF류의. 그런 면에서 '복제'는 어느새 보통내기가 아니면 상투성을 벗어나기 힘든 소재가 돼버렸지. 근데 감독이 그러더군. 복제 기술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먼 미래가 아닌, 아주 가까운 현재의 시점에서, 특히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다뤄보고 싶었다구. 전적으로 동의해. 훌륭한 영화였다구. 근데 왜 잡지들마다 평이 그 모양인거야. 죄다 스릴러물치고는 소재도 진부하고 플롯도 엉성하며 다루는 형식도 어디서 많이 베낀 것 같다는 투야. 감독 자신은 자기 영화를 스릴러물이라고 규정하지도 않았는데 말야. 그녀는 과학 기술을 보다 구체적인 인간의 삶의 맥락에서 바라보려고 했을 뿐.
뜬금없이 <4인용 식탁>이 생각났어. 여자 감독들을 보면, 참 하고 싶은 얘기들이 많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그걸 한 영화에다가 다 쏟아부으려고 하니까 어딘지 모르게 아귀가 안 맞고 이야기 구성에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결과를 낳은 게 아닐까 하는. 그런만큼 그녀들의 영화는 아주 찬찬히 보고 보고 난 뒤에도 며칠이고 곱씹어 보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구."

6. 술자리를 파할 시간과 집에 돌아갈 수단에 관한 확인 절차

"집에서 술마시니까 집에 갈 걱정 안해도 되고, 좋다. 여긴 있잖아, 지하철이 새벽 1시까지 다녀. 서울도 그랬던가? 며칠 전에 선배 집에 다녀오다가 그 지하철을 타봤는데, 다들 술에 취해서 고래고래 소릴 지르고 그러더라구. 그런가 하면 얼굴이 벌개진 채로 책을 보는 사람들도 있었구. 나도 후자에 끼어들려고 책을 펼쳤지."

"생각해 보니 나, 택시에다가 토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어찌나 미안하고 부끄러웠는지 몰라. 근데, 있잖아, 언젠가부터 그런 일들을 떠올려도 예전만큼 괴롭진 않게 됐어. 예전같으면 과거의 부끄러운 일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쿵 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가라앉곤 했었는데 말야. 그리고 지금 얼굴이 불콰해질만큼 마셨는데도, 눈물이 한 방울도 나지 않아. 나, 많이 컸지?"

어쨌든, 다 술먹고 하는 얘기들이라구.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아. 그렇다고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것도 곤란하겠지만 말야.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