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그런데 할 수가 없다. 이공계 위기론을 얘기하면서 교수가 "요즘 라보(여기서는 연구실/실험실을 "랩"이라고 하지 않고 "라보라투아 laboratoire"를 줄여 "라보"라고 한다. 이런 식의 줄임말들--사전에 절대 나오지 않는, 심지어 "은어/속어" 사전에도 나올까 말까 한, 학생들/교수들/연구원들 사이의 은어들--을 익히는 데에도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들을 봐라. 동양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순수한 프랑스 애들은 이공계에 가려 하지 않는다. 이게 다 국가적 지원이 부족해서 그런 거 아니냐" 하고 말했을 때, 그리고 한 학생이 "맞아요. 내가 있던 라보에도 일본, 중국, 한국에서 온 애들이 득시글했어요" 하고 맞장구쳤을 때, 난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말을 하더라도 하고 싶은만큼 하지는 못한다. 교수가 소논문 주제에 대해 얘기해보라고 했을 때, 난 오래 전부터 고민해 왔던 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뉴턴/라이프니츠 - 무한소를 중심으로 한 무한 및 연속성 개념 - 근대적 시,공간 및 운동 개념 - 자연의 수학화가 그것이었다. 사실 그 문제에 관해서라면 자료도 꽤 많이 찾아 모았었고, 그리고 이곳에 와서 수업 등등을 통해 그 중요성과 심각성에 확신을 얻기도 했던 터였다. 그런데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고, 결국 다른 주제를 택해야 했다.
심지어, 하고 싶었던대로는 고사하고, 하고자 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말을 내뱉기도 한다. 교수가 17, 18, 19 세기 과학사의 특징에 대해 말해보라고 했을 때, 난 너무도 간단하게 "글쎄요, 특별한 차이는 잘 모르겠는데, 보통 사람들은 17세기 과학 혁명기의 수학/물리학에서의 성과들을 18세기에 정립/확립해 나갔다면, 19세기에는 그러한 성과들을 수학/물리학이 아닌 다른 학문들과 다른 산업에 적용했다고들 하지만, 사실 그렇게 볼 수 있을지는 잘..." 하고 얼버무렸다. 그러자 교수는 "그래요, 보통 그렇게들 얘기하는데, 아니죠. 거기에 의문을 가지는 게 당연해요." 하고 말해주었다. 아! 내가 원래 말하고자 했던 것은 그게 아니었는데. 평소엔 그런 식으로 확 싸잡아서 말하는 걸 제일 경계하고 심지어 경멸하기까지 했었는데. 질문 자체가 무리가 있었음을, 과학사에 대한 접근에서만큼은 그렇게 거시적이고 일반적인 시대 구분이 무익함을 좀더 강조하고, 그에 대한 내 생각을 말했어야 했는데, 난 그만 그런 식의 통상적인 구분만을 길게 풀어 놓고 만 것이다.
내가 모국어로 말하고 쓸 때도 말보다는 글을 더 편안하게 느끼고, 그래서 전화 통화보다는 채팅을, 채팅보다는 이메일 주고 받기를, 이메일보다는 어디에든 혼자 끄적이는 일을 선호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남의 나라에 와서 살다보니 그 말과 글 사이의 간극이 더 커졌고, 그 간극은 날로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말과 글을 포함하는 언어와 사고 사이에도 균열이 생겨나고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혹은 거리를 걸으면서, 수업을 들으면서,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그 모든 생각들을 어떻게든 담아두고, 그것들을 집에 들어오자마자 포스팅하려 애썼던 것은 이를 막아 보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블로깅 중독은, 이러저러한 고립무원의, 언어도단의, 유구무언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고, 어쩌면 생존 전략이었다.
정말이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내 머릿 속을 스치고는 그냥 새처럼 달아나버리는 그 모든 것들을 어떻게든 붙잡아 두고 싶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프랑스 과학사/인식론에 대해서, 이곳에 와서 (재)발견한, 과학혁명기 이후 18세기의 놀랍도록 풍부한 과학사적/철학사적 사실들에 대하여, 콩트나 헤겔의 과학철학사적 가치에 대해, 프랑스 칸트 철학 연구의 특수성에 관해, 앙리 푸앵카레, 피에르 뒤엠, 장 투생 드장티, 자크 메를로-퐁티 등 숨은 보석같은 과학철학자들에 대해서. 그리고 헌책 시장, (헌)책방, 라디오, 보험, 도서관, 음악, 영화, 음식 등 살면서 때로는 아프게, 때로는 행복하게 부딪치게 되는 것들에 관해서도.
그런데 이렇게 멍석이 깔려 있는데도, 도대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예전엔 말을 제대로 못하는 거나 생각을 맘껏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순전히 성격 탓이라고 나름대로 자위했었는데,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말" 때문이 아니었던 거다. 생각을 깊이 하지 못하고 사고를 논리적으로 하지 못한 탓이었던 거다. 애꿎은 연장 탓만 하는 실력 없는 목수처럼. 철학도로서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설명을 못하겠어" 하고 말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니. 반성하고 또 반성할 일이다.
—박쥐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