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윌킨스가 죽었다

blogin.com · 2004-10-10

1.

모리스 윌킨스(Maurice Wilkins)가 지난 5일 8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가디언>의' target='_son'>http://www.guardian.co.uk/l ... ><가디언>의 기사 ). 윌킨스는 로절린드 프랭클린과 더불어 DNA의 X선 결정 데이터를 제공함으로써 왓슨과 크릭의 DNA 구조 발견에 지대한 공로를 한 결정학자.

"모리스 윌킨스가 죽었다"라는 말은 "프랜시스 크릭이 죽었다"라는 말만큼 반향을 갖지 않는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과 죽음을 통해 비로소 죽은 그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의 차이.

나는 아마도 왓슨의 글을 통해 그의 이름을 접했을 것이다. 방금 다시 보니 예전' target='_son'>http://www.blogin.com/blog/ ... eyY=00218542>예전 포스트서 소개한 바 있는 왓슨과 크릭의 53년 네이처지 논문에도 그의 이름이 언급돼 있다. Acknowledgements에, 로절린드 프랭클린의 이름과 나란히.

물론 그는 요절한 프랭클린과는 달리 뒤늦게나마(62년)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 있어서는, 프랭클린보다도 오히려 더 "잊혀진 인물"이다. 프랭클린의 경우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바로 그 이유로, 상당히 아이러니컬하고 어쩌면 정치적으로도 그다지 올바르지 못하긴 하지만, 어쨌든 과학사에 이름을 남기긴 했으니까 (내가 이렇게 얼버무리는 것은 아직까지도 어떤 것이 여성주의적으로 과학사를 서술하는 괜찮은 방법인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2.

<가디언> 기사에는 윌킨스의 동료 과학자가 한 말이 인용돼 있다 : "윌킨스는 매우 중요한 과학자였지만, 과학에 혁명을 일으킨 발견에 있어 그 자신이 담당한 몫에 걸맞는 명성을 누리지는 못했던 듯하다. 그는 분자생물학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그가 없었더라면 현재의 분자생물학도 없었을 것이다."

저 인용문의 주어에 로절린드 프랭클린을 대입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은가, 주어로 대치될 수 있는 인물 명사를 프랭클린 외에 적어도 한 대여섯은 꼽을 수 있지 않을까, 도대체 과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중에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혁명적 발견에 있어 자신이 담당한 몫에 걸맞는 명성을 누리는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되는가, 수많은 그/그녀들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없었더라면 현재의 과학이 성립할 수 있었겠는가, 도대체 과학자들 묘사하는 술어들은 왜 늘상 다 거기서 거기인가 하고 심술을 부리려다가, 참았다. 그렇담 도대체 뭘 어떻게 쓰자는 얘기냐 하는 반문에 답할 자신이 없어서. 가련키 짝이 없다.

3.

내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감히 이런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하려는 이유가 뭘까 하고 생각해 보니, 문득 피천득 선생과 그의 딸 서영의 일화가 떠오른다. 피선생이 영국 대사관의 파티에 초대받아 갔다오던 날, 마중나온 서영이 아버지의 손을 꼭 잡는다. 왜 그러냐고 묻는 아버지에게 서영은 "아버지는 영국 대사와 악수를 했을 것이고, 영국 대사는 언젠가 엘리자베스 여왕과 악수를 했을 것이니, 내가 지금 아버지 손을 잡으면 엘리자베스 여왕과 간접적으로 악수를 한 것이 된다"라고 했다나.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젊은 시절 파리의 ENS에서 포닥 생활을 했었다. 나는 지난 학기에 ENS에서 하는 수업을 듣느라 그곳 물리학과 건물에 들락거린 적이 있다. 프랭클린과 나는 한 곳을 밟았을 것이고, 프랭클린이 밟았던 곳을 그의 동료였던 윌킨스도 분명히 밟았을 것이다. 나와 그 사이에는 고만큼의 인연이 있다. 더도 덜도 아니고 딱 고만큼의 인연.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어쩌다가 이렇게 희미하디 희미한, 아니 억지에 가까울 인연을 만들어 내는 한이 있더라도, 이 땅에서 일어나는 죽음들을 내가 알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기억하고 싶을 뿐. 다른 뜻은 없다.

—박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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